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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이슨 본으로 돌아온 배우 맷 데이먼. |
잃어버린 기억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첩보 영화 <본>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 <제이슨 본>이 이달 말 개봉한다. 맷 데이먼이 <본 얼티메이텀>(2007) 이후 9년 만에 ‘제이슨 본’ 역을 맡아 기억을 되찾아 분투하는 활약상을 그린다.
하버드 대학을 다녔던 수재이자, 지적인 남성 배우의 대명사인 맷 데이먼은 스스로 “제이슨 본은 내 생애 최고의 캐릭터”라고 말할 정도로 <본>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본> 시리즈는 21세기 ‘스파이 액션’물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억될 만하다. 50년 넘게 스파이물의 대명사 역할을 하고 있는 <007> 시리즈가 테제라면, <본 시리즈>는 그 안티테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는 모든 상황이 극과 극이다.
<007 시리즈>는 MI6의 엘리트 요원인 영국 해군 중령 제임스 본드가 그 주인공이다. 제임스 본드 역은 현재의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까지 잘 뻗은 체형의 미남인 숀 코너리, 조지 라젠비,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등이 맡아 멋진 수트에 넥타이를 매고 첨단 장비, 화려한 액션, 수많은 미녀들을 후리는 남성들의 로망을 담아내고 있다.
슈트와 최첨단 자동차가 등장하는 <007>(왼쪽)과 점퍼에 맨몸액션이 특징인 <본> 시리즈. |
이에 비해 <본 시리즈>는 제이슨 본이라는 주인공 이름부터 안티 제임스 본드임을 상징한다. <본> 시리즈는 망망대해에서 원양어선에 구조된, 미국 해병대 대위 출신의 기억을 잃은 제이슨 본(본명 데이비드 웹)이 주인공이다. CIA의 특수요원으로 선발되어 트레드스톤 작전에 참여했지만 CIA로부터 용도 폐기돼 버려진 인물이다. 제이슨 본의 생존 소식을 접한 CIA가 혼란에 빠진다는 것이 <본 시리즈> 영화의 주 스토리라인이다.
<본> 시리즈에선 첨단무기도 나오지 않는다. 제이슨 본은 시리즈 내내 숱한 생사 고비를 넘기면서 맨손, 볼펜, 수건, 병 등 일상생활에 흔히 있는 것들을 이용해 적을 제압한다. 제이슨 본이 활용하는 무술이 바로 필리핀 전통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칼리)다. 이 무술은 배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상대와의 대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익힘과 동시에 ‘손에 잡히는 어떤 것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훈련무술로 자리잡았다. <본>시리즈는 실전무술인 칼리를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주제곡도 <007>시리즈는 매번 바뀌는 반면, <본> 시리즈는 매번 영화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으로 흘러나오는 모비(Moby)의 <Extreme Ways>가 제이슨 본의 극한의 삷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을 맡은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2007)에서 극단적인 ‘핸드 헬드’(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는 기법) 촬영 기법은 압도적인 현장감과 박력을 제공해 관객들에게 극한의 긴박감을 느끼게 한다. 맷 데이먼은 이번 <제이슨 본> 출연 조건으로 폴 그린그래스의 연출을 내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데이먼과 그린그래스는 9년 만에 <본> 시리즈에서 만나게 됐다.
<본> 시리즈는 다른 액션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007> 시리즈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지 미끈한 외모의 미남들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다면, 우락부락하고 남성적인 인상과 근육질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 배역을 맡으면서부터 몸을 사리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액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안티테제인 <본> 시리즈는 테제인 <007>에 영향을 끼쳐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시리즈란 진태제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액션 영화도 <본>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2009)에서도 특공 무술인 ‘칼리’가 등장해 관객들을 열광하게 했다. 원빈이 역할을 맡은 차태식은 아내를 잃고 소외된 생활을 하는 전직 국정원 요원이라는 점에서 제이슨 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영화 <본> 시리즈의 원작은 미국 작가 로버트 러들럼의 작품 <제이슨 본> 시리즈다. 러들럼이 제이슨 본과 관련해 쓴 소설은 <본 아이덴티티>(1980), <본 슈프리머시>(1986), <본 얼티메이텀>(1990) 세 편이다. 소설 원작과 영화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제이슨 본의 연인인 마리가 영화 <본 슈프리머시> 초반에 죽는 것으로 설정된 반면, 소설에선 본과 마리는 애까지 낳아 키우면서 살고 있다. 아마도 고독한 제이슨 본을 형상화하기 위한 영화의 설정이리라. <본 슈프리머시>부터는 소설과 영화는 별도의 작품이라고 할 만큼 차이가 더욱 확연해진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각색에 참여했었던 원작자 러들럼이 영화가 개봉하기 1년 전인 2001년에 사망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 이달 개봉하는 <제이슨 본>과 2002년 시리즈 첫 작품 <본 아이덴티티> 포스터. 맷 데이먼의 모습에서 14년의 세월이 그대로 보인다. |
러들럼의 원작은 3부로 끝이지만, 러들럼 사후 에릭 밴 러스트베이더가 유족들의 허락을 맡아 공식적으로 <본 레거시>(2004), <본 비트레이얼>(2007), <본 생션>(2008), <본 디셉션>(2009), <본 오브젝티브>(2010) 등 거의 해마다 한 권씩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러들럼의 팬들은 러스트베이더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긴박감과 역동성이 러들럼의 소설보다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이다.
영화 <본> 시리즈에 앞서 1988년 리처드 체임벌린과 재클린 스미스가 주연으로 나온 3부작 미니시리즈 <본 아이덴티티>가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를 처음으로 영상에 담은 작품이다. 국내에선 KBS 2TV를 통해서 1990년대 초반 <읽어버린 얼굴>이란 다소 생뚱맞은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러스트베이더의 소설을 영화한 게 <본 레거시>(2012)다. 배우 제레미 러너가 미 육군 일등병이자 CIA의 비밀 프로젝트 ‘아웃컴’의 요원 ‘애런 크로스’의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본>시리즈 영화팬들로부터는 아쉽게도 외전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 영화는 국내외 흥행이나 평론에서도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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