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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짐(28~32절)-고소(告訴)
산헤드린은 아침 일찍 예수님을 이끌고 빌라도의 관정으로 갔습니다.
빌라도의 임시 관정이 로마의 성전 수비대가 진주하고 있는
안토니아 요세에 있었는지 아니면 헤롯의 궁궐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은 안토니아 요세가 총독 빌라도가 머물기에는
너무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헤롯의 궁궐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1)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가지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28절).
“[28]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관정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그들이 더럽힘을 받지 않고 유월절 식사를 할 수 있기 위함이다”라고 논평합니다.
이들은 보통 유대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결례의식을 지키는 산헤드린 회원들입니다.
그러므로 총독의 관정에 들어가서 더러운 이방인들을 접촉하면
자신을 의식적으로 더렵히는 결과가 되므로,
유월절 식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관정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고,
유대인들의 이러한 관습을 잘 알고 있는 총독 빌라도는 이러한 관습을 존중하여,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예수님과 산헤드린 회원들을 왔다 갔다 하는 불편을 감수한 것입니다.
2) 빌라도는 그의 관정 밖으로 나가서 고발한 이유를 묻습니다(29절).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빌라도는 그의 관정 밖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나와서,
그들이 어떤 죄목으로 예수님을 고소하는지 물었습니다.
3) 예수님이 행악 자 이기 때문에 넘기러 왔다고 합니다(30절)
“[30]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악을 행한 자가 아니라면 빌라도에게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악 자라는 그들의 고소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안나스 앞에 섰을 때에
그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아무런 추궁도 받지 않았습니다.
심문 내용은 19절 말씀을 보면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까지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에 계속된 논쟁에서,
예수님의 잘못된 행동을 한 차례도 발견한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아버지의 말과 일만 해온 예수님을,
행악 자라고 고소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4) 빌라도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하니, 유대인들은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31절).
“[31]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 사실을 눈치 챘는지 모르지만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데려다가 그들의 법대로 재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법으로는 어떤 사람도 죽일 권세가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5) 이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응하게 하려 것입니다(32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것은 예수님이 어떤 성격의 죽음을 당할지를 예언한 그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이와 같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그들의 법으로는
어떤 사람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들의 말을 번복(飜覆)하여,
예수님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법에 따르면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유대인들은 몸의 정결과 유대 절기를 지키는 일에는 철저했지만,
속마음은 미움과 살인의 의도로 부정해 졌습니다(28~32절).
몸을 부정하게 하지 않음으로 유월절 잔치에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자기 몸을 유월절 양으로 희생(犧牲)하시고,
영원한 하늘의 양식으로 주신 주님의 식탁에서는 제외될 것입니다.
외식으로 외모를 꾸미면 사람들의 인정은 얻을 순 있어도,
주님의 인정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속 마음을 정결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2. 빌라도가 예수님의 왕권에 대해 심문함(33~38)
1) 빌라도는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33절)
“[33]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이제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재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파악(把握)하고 다시 관정으로 들어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빌라도는 들어오자마자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이 질문은 참으로 흥미있습니다.
그와 예수님을 고소하는 유대인들 사이에,
예수님의 왕 됨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왕이냐고 물어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예수님을 행악자로 고소했으니,
예수님에게 “네가 무슨 악한 일을 했느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고 되묻습니다(34절).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예수님도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빌라도가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었는지 물었습니다.
3) 빌라도 역시 동문서답합니다(35절).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 질문은 사실 빌라도가 예수님이 있는 곳에 들어올 때 먼저 했어야 했던 질문입니다.
4) 예수님은 빌라도의 처음 질문에 대답합니다(36절)
“[36]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빌라도가 그에게 처음에 질문한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는 말에 대답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왕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그의 왕국의 성격에 대해 말함으로,
그가 왕임을 간접적으로 시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셨습니다(33~36절).
예수님은 빌라도가 생각하는 그런 정치적인 왕이 아니시며,
그분의 나라는 힘으로 지키고 제왕적 권세로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속한 나라로서 칼과 창이 아닌 희생과 사랑을 무기로 이 땅을 점령해나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사랑과 긍휼과 섬김으로 통치하십니다.
그 통치가 내 삶 구석구석 미치고 있습니까?
세상 나라로 변질되고 있는 내 삶의 영역은 어디입니까?
5) 빌라도가 네가 왕이냐고 묻는 말에,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말합니다(37절).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왕국의 성격에 대해들은 빌라도는
예수님께 “그러면 네가 왕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왕이라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진리에게 속하는 자마다 그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을 염두에 두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인격적인 절대 진리이면서 동시에 왕이심을 암시합니다.
6) 빌라도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고 선포합니다(38절).
“[38]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1) 진리(眞理)가 무엇이냐(38a절).
“[38a]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서
“진리가 무엇이냐”고 엉뚱한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리(眞理)만 말씀하셨고,
은혜(恩惠)와 진리(眞理)로 충만(充滿)하신 예수님(1:14,17)을 보였는 대도,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8:32~34,14:6)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빌라도가 얼마나 무지하고 어둠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빌라도는 이 질문을 통해 그가 확실히 진리이신,
예수님에게 속하지 않은 자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가 진리이신 예수님께 속하지 않았다면,
참 목자의 음성을 듣는 그의 양이 아니고,
그의 양이 아니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는 산헤드린 당국자들과 동일하게 어둠의 주관자인 사탄에 속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질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첫째,그는 버림을 받았습니다.(3절)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구약 선지자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의 선지자입니다. 한 700년 전이에요.
구약 선지자가 자기 보다 뒤에 오시는 그가 멸시를 받을 것을 알았어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알게 하셨어요.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는데, 나사렛이란 동네가 바로 예수님이 자라난 곳입니다. 그런데 나사렛이란 동네가 구약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동네, 갈릴리 지역, 시골 구석에서 예수님이 자라나셨습니다. 예루살렘 도시 사람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저 시골 동네~ 그런 곳에서 선한 것이 날수 없다. 이렇게 멸시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고, 죄인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죄인들의 친구다” 조롱했습니다.
여러분! 무시 받고 멸시 당해 보셨습니까? 그것 만큼 서럽고 속상한 일이 없습니다. 무시당해보세요. 눈물 납니다. 너는 얼마나 잘났길래 나를 무시하냐? 그럽니다.
예수님이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멸시를 받아서는 안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왜요?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멸시 받아요. 우리가 고통당해요. 여러분! 세상 살아가면서 멸시를 한두번 다 당해봅니다. 멸시받고 무시당하지 않은 분은 없어요. 무시받고 고통당하는 우리 때문에 멸시를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멸시를 받아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버림받은 대표적인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버림받았어요.~
둘째, 그는 찔리고 상하셨습니다.(5절)
5절에 나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님이 찔릴 것을 알았습니다.
*제 아내가 몇주전에 수원에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습니다. 엄청 아파하더라고요. 무통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첫날에는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 있지를 못해요. 아파서.... 한쪽 손으로 침대 안전대를 잡고 옆으로 돌려 누웠다가. 아프니까. 반대쪽으로 잡고 돌려 누우려고 해요. 밤새도록 아파서 잠을 못자는 겁니다. 간호사가 그래요. 도저히 못참겠다 싶으면 무통약이 들어있는 작은 병의 버튼을 한번씩 눌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무통이 들어가도 아픈 겁니다. 만일, 무통을 맞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아파서 난리납니다. 무통이라도 맞으니까 그만큼 견디는 거에요.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당시에 오늘날처럼 좋은 무통약이 없어요. 마태복음에 보면 로마 군병들이 쓸개즙을 탄 포도주를 마시게 하려고 했습니다. 쓸개즙이 마취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쓸개즙을 거절 하셨습니다. 고통을 마취없이 감당하시겠다는 겁니다. 아파도 참겠다는 거에요.
화면을 보여주세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장면입니다. 예수님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히셨어요.
현대에 연구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은 대략 1000번 정도 기절했다가 깨었다를 반복한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달리게 되면 몸이 아래로 늘어지게 됩니다. 늘어진 상태에서는 호흡을 할 수 없다고 해요. 호흡하기 위해서는 조금 일어서야 합니다. 발에 못이 박혔으니까 얼마나 아플까요? 그래도 숨을 쉬어야 하니까 조금 다리에 힘을 내어 일어섭니다. 조금 숨을 쉬고, 또 축 늘어집니다. 늘어지면 손목이 찔어질 듯 아픕니다. 너무 아파서 1000번을 기절했다가 깨었다가 한답니다.
오늘 말씀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이 찔리시고, 상하신 것입니다.
당시 역사적인 기록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을 박기 전에 채찍질을 한다고 합니다. 로마에서 사용한 채찍은 39줄이 있는 가죽 채찍입니다. 가죽 채찍줄은 머리를 땋듯이 가죽 줄을 땋았어요. 그 속에 쇠구슬,쇠조각과 뼈조각들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죽을 하루 동안 물에 담가 둔다고 합니다. 가죽에 물이 불어서 무겁게 됩니다. 이 채찍으로 맞게 되면 근육까지 찢어지고, 살가죽이 리본처럼 너들 너들 하게 된다고 합니다. 학자들이 그런 연구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정맥이 들어나고, 창자까지 보이게 됩니다. 등만 때리는 것이 아니라, 팔과 다리, 온몸을 무차별하게 가격을 합니다.
사형수의 가족들이 채찍질 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십자가형이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그래도 채찍질이 낫다. 십자가 지기 전에 많이 때려서 죽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십자가가 고통스럽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찔리고 상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말씀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을 때 죄사함받고 구워을 받습니다.
셋째,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5절)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대신 죄 값을 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옥에 가서, 펄펄 끊는 지옥에 가서, 영원토록 나음을 입었어요.
왜 우리가 징벌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할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 값을 지셨다니까요? 그래서, 우리 죄가 없어졌어요. 우리 죄가 깨끗이 사함 받았어요.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기독교는,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예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지옥갈 형벌에서 사함받았습니다. 지옥가야할 죄인인데, 천국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뻐고 행복합니다.
“나는 구원 열차 올라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죄악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열차 올라타고서 하늘 나라 가지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때문에 멸시 당하시고 버림받으셨고, 찔리시고 상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죄사함 받고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꼭 예수님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