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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
박 태 원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으레들 그러하듯이, 그 골목 안도 한 걸음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홱 끼치는 냄새가 코에 아름답지 않았다. 썩은 널쪽으로나마 덮지 않은 시궁창에는 사철 똥오줌이 흐르고, 아홉 가구에 도무지 네 개밖에 없는 쓰레기통 속에서는 언제든지 구더기가 들끓었다.
제각기 집 안에 뜰을 가지지 못한 이곳 주민들은 그들이 ‘넓은 마당터’라고 부르는 이 골목 안에다 다투어 빨래들을 널었다. 이름은 넓은 마당터라도 고작 여남은 평에 지나지 않는 터전이다. 기둥에서 기둥으로, 처마 끝에서 처마 끝으로, 가로, 세로, 건너 매어진 빨랫줄 위에, 빈틈없이 삑삑하게 널려진, 해어지고 미어지고 이미 빛조차 바랜 빨래들은 쉽사리도 하늘을 가리고 볕에 바람에 그것들이 말라갈 때, 그곳에서도 이상한 냄새는 끊이지 않고 풍겨지는 것 이다.
그러나 그들의 빨래는 오직 냄새를 풍기고 하늘을 가리고 그럴 뿐이다. 달리 놀이터를 갖지 못한 채, 진종일 이 안에서 북적대는 아이들의 옷은 언제든 더러웠다. 더러운 것은 물론 옷뿐이 아니다. 목덜미와 종아리에 때는 몇 겹으로 달라붙고, 핏기 없는 그 얼굴에 입술 위로 흘러내리는 콧물이 또 쉴 사이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즐거우니 가엾다. 총도 칼도 세발자전거도 가지지 못한 이곳 어린이들은, ‘오오랴아, 이이랴아’며, ‘잇센 도오까아’ ‘열 발에 나가서 여덟 발에 처먹기’와, ‘자치기’ ‘찌게공기’……¹ 그러한 놀이로 날이면 날마다 바쁘다.
이 골목 안 막다른 집에 순이(順伊)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순이 아버지는 집주릅 영감으로 계유생(癸酉生)이라니까 올해 예순일곱이 분명하다. 현재 칠백 원 전세로 들어 있는 함석지붕의 일각대문집―, 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의 매한간² 집으로 오기 전에는, 참말이지 남부럽지 않게 살았었노라고, 이것은 영감보다 두 살 위인 그의 마나님이 툭하면 뇌는 소리다.
그것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진솔³ 두루마기라도 새로 다려 입고서 단정히 갓을 쓰고 거리로 나설 때, 자못 기품과 위엄조차 갖추고 있는 영감의 신수는, 어느 모로 뜯어보든, 가쾌나 그러한 사람으로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수는 그처럼 좋아도, 복덕방의 세월은 도무지 말이 아니다. 수삼 년 이래로 집 값만 무턱 대고 올랐지 매매가 통히 없다. 영감은 싸전 가게 어둠침침한 방 안에 들어앉아, 동관⁴들이 하염없이 몇 판이고 장기만 두는 옆에서, 자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문만 뒤적거렸다.
“집 좀 보러 왔습니다구 여쭤라.”
점잖게 한마디 한 다음에, 헛기침과 함께 떡 안으로 들어서서,
“남향판에 서상방⁵이오, 두벌대⁶에 부연⁷ 달고, 안방이 간방통 이 간이요, 건넌방 이 간에, 마루 삼 간에, 부엌 이 간 반…….”
하고, 계약만 성립이 되면, 오래간만에 돈푼이나 만져보게 될 흥정은, 근래는 있기도 어려웠거니와, 간혹 말이 나더라도 서로 부르는 값들이 엄청나게 틀려서, 대개는 중도에서 틀어지고 말고, 젖먹이를 들쳐 업은 아직 젊은 과부라든 그러한 아낙네들이 매일 같이 와서 조르는 것은, 월세 오륙 원 정도의 사글셋방이었다.
그러니 온종일 싸전 가게 어두컴컴한 방 속에서, 신문이나 뒤적거리고 있을밖에는 아무 다른 도리가 없는 영감이었다.
“이 사람아. 그저 상(象)만 피하면 심이 핀단 말인가? 내 포장(包將)을 받아야지 포장을…….”
국면이 매우 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어가고 있는 듯싶어, 한국 시대에 경성 감옥 간수를 이 년인가 삼 년 동안 다녔다는 동관 하나가 한편으로 장기를 두며, 또 한편으로는 영감을 돌아다보고,
“참, 자네 끝의 놈, 이번에 학교에 붙었다데그려.”
하고, 문득 생각난 듯이 한마디 묻는다.
“들어갔으면 뭐얼 허나? 중학굘세 말이지. 그까짓 고등소학굘, 그래, 기 쓰구 들어가면 뭐얼 헌단 말인가? 흥!”
영감은 보고 있던 신문을 방바닥에 놓고, 별 까닭도 없이, 미닫이에 붙은 유리쪽을 통하여 길 건너 솜틀집의 초가지붕을 멀거니 바라본다.
“거기래두―아, 이 사람이 부러 이러나? 왜 이래? 어딨던 차(車)가 이리 오는 게야? 여겄었지? 게 있었나?―거기래두 들어간 게 다행이지. 그나마 못 들어갔었더면…….”
“거기두 못 들어가서야 어떡허게? 허지만 들어갔대야, 그게 어디 학문에 진보가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고등소학을 졸업 맡으려구, 그래. 들어간 게 아니라, 결국은 내년에 다시 중학교 시험을 뵐려구, 그 준비루 들어간 게니, 남보다 일 년 밑지기야 매한가지 아닌가?”
“흥! 졸(卒)이 또 올라오신다? 이건 덮어놓구 올라만 오면 젤인가? 자아 또 장 받구―, 아아니, 그런데 효섭(孝燮)이 놈이 밤낮 우등 첫찌만 했다며 어째 그렇게 중학교서 떨어진 게야? 역시, 시험 보는 애들이 원체 많아놔서, 그래 그랬나?”
“경쟁자도 많기야 많았지만, 하여튼 효섭 이가 학력으루 떨어진 건 아니라니까……, 똑 신체검사루 해서……”
“온, 벌써 진 장길 가지구 저러는구먼. 그린 못 도네. 그럼 외통이야 외통. 허지만, 그 녀석이 몸이야 또 좀 실한가? 운동두 잘허구…….”
“잘허면 뭘 해? 똑 걔는 고개 하나가 문젠걸.”
“허지만 절뚝발이두 공부만 잘허면 들어가나 보던데, 효섭이 고개 좀 갸웃한 거야, 아무 상관이 없을 게 아니야?”
“온, 절뚝발이 병신이 학굘 으떻게 들어가? 그, 다아, 옛날 얘기지. 인젠 정부에서 교육 방침이, 똑, 학력버덤두 신체에 치중을 한단 말이야.”
“온, 참 답답허긴……, 그럼, 또, 이 차가 바루 들어가는 걸 되나? 어여 그러지 말구 다시 한 판 두세. 그 어째서 방침을 그렇게 했누? 그래두 신체버덤 학력을 봐야 안 할 게야?”
“이 사람아. 신문두 못 보나? 그게 모두 후생성이 생기기 때문이거든. 후생성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국민의 체위라는 게 연년이 못 돼가거든. 그래, 어차피 공부를 시킬 바에는 학력두 학력이지만, 체격 좋구, 몸 튼튼한 애들 뽑자는 게지.”
영감은 말을 마치고, 문득, 입안말로,
‘온, 고얀 놈의…….’
하고 중얼거려본다. 어렸을 때, 몹시 앓고 난 열병 끝에, 외로⁹ 약간 비뚤어진 막내아들의 고개가, 이내 그대로 굳어버린 채, 현대의술로도 어쩌는 수 없다는 사실을, 영감은 또 한 번 생각해낸 까닭이다.
“그래두 올 일 년, 착실히 준빌 허라지. 내년에나 중학교에 꼭 뽑히게시 리……”
“허지만, 실상, 걔가 학력으루 떨어졌을세 말이지, 똑 고개가 삐뜰어지기 때문에 입학 못한 걸, 일 년 아니라, 십 년을 준비한대야, 무슨 소용이 있을 겐가? 고개를 바루잡어놓기 전엔 영 틀릴 노릇이 아니냐 말이야. 생각해보면 걱 정일세, 걱정이야!”
“……”
“그저 이 자식이나 하나 무탈허게 키워놔야 헐 노릇인데, 이게 그처럼 병신이 되고 보니, 온, 누굴 믿구 산단 말인가? 기가 맥히네, 기가 맥혀……”
“허지만, 이 사람아. 자넨 딸이 아들 외딴치게¹⁰ 돈을 잘 벌어들이니까, 그만만 해두 다행이지. 시체¹¹ 딸년들, 모두 저 잘될 궁리만 했지, 어디 제가 벌어다 부모 공양허구, 오라비 공부시키구, 그러는 년 있다든가? 자넨, 딸을 잘 둬서…….”
“……”
그러나 영감은 문득 그 말에 당황하여 다시 얼른 신문을 집어들었다. ‘딸이 아들 외딴치게 돈을 곧잘 벌어들인다’는 말에, 그의 얼굴은 쉽사리 붉어지고, 또한 마음은 비감하였던 까닭이다.
늙은 내외가 막내아들 학교까지 보내며 그래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 카페 여급으로 다니는 큰딸 정이(貞伊)의 덕이다. 아들은 삼 형제나 두었대야, 이번에 심상고등소학교에 들어간 효섭이 놈은 철도 안 났으니 말도 말고, 큰아들 인섭(仁燮)이, 둘째 아들 충섭(忠燮)이, 그 두 놈이 모두 집안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들이다.
제 형이 집에 없으니, 응당 제가 나서서 집안일 돌보아야만 마땅할 것을 충섭이 녀석은 나이 이십 이 넘어도 똑 우미관¹² 앞으로만 빙빙 돌며, 툭하면 사소한 일로 남을 치기가 일쑤요, 그러면 또 ‘남 치려다 제가 맞기도 일쑤’로, 곧잘 붕대로 대가리를 둘둘 싸매고 며칠 만에야 집으로 들어와서는, 으레, 늙은 아비 화만 돋우고, 늙은 어미 애만 태우고 그러던 것이,
“너, 사람 치구 대녀야 네 몸에 한 푼어치 이로울 것 없느니라. 이로울 것 없어!”
하고, 늙은 부모가 입이 아프게 타이르는 말에, 문득, 그는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라, 삼 년 전부터는 남을 치기는 치되 말썽이 안 난다는 ‘권투’라는 것을 배워가지고, 인제 선수만 될 말이면 일숫돈도 잘 벌어들인다고 바로 큰일이나 하는 듯싶게 꺼떡대는 것을, 늙은 마누라는,
“얘애, 듣기두 싫다. 남을 치면 고작 지소¹³루나 끌려갔지, 아무리 말세기루 잘했다구 돈 줄 사람이 어딨단 말이냐?”
한마디로 물리쳐버렸던 것이나, 영감은 매일 열심히 보는 신문으로, 권투가 어엿한 운동 경기로서, 직업 선수만 될 말이면 사실 돈도 벌 뿐이 아니라, 신문 지상에 사진까지 게재되고, 바로 명예가 대단한 것이라고, 짐작이 있어서,
‘그저 그런 거래두, 허기만 잘해라!’
은근히 속으로 기대하였던 것이, 참말 기대한 보람이 있어, 작년 봄부터는 매우 유망한 선수라고 바로 신문에도 이름은 오르내리나, 그만하면 돈도 많이 탈 듯싶은 것을, 타도 저만 혼자 쓰고 돌아다니는지, 어째 가다 집에 들어와야 주머니 속은 언제든 털털이요, 집안에 피천¹⁴ 한 닢 들여오기는커녕은 도리어 때때 카페로 제 누이를 찾아가서는, 담뱃값이 떨어졌느니 어쩌니 하고, 일 원씩 이 원씩, 뺏어가기가 일쑤인 모양이라, 영감은, 그래, 누구 입에서 혹 충섭 이 말이라도 나오면,
“그 자식, 내 자식 아니요.”
그렇게 말하였고, 자기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려 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따져보자면 충섭이 한 놈만 가지고 내 자식이니 아니니 할 것도 없었다. 내 자식이 아니기는 둘째 놈보다도 그 형, 인섭이가 먼저다. 환진갑 다 지낸 이가 이처럼 다 늙게 집주룹으로 나서서, 남들 집 팔고 사는데, 객쩍게시리, “밥을 내 푸느니” “들여 푸느니” 하고, 그러한 사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도시 맏아들 인섭이가 계집에게 미쳐서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주색잡기에 패가망신 안 하는 놈 없다더니, 과시, 옳은 말이다. 잡기는 별로 잡아보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술이나 계집으로는, 벌써 이십 안팎서부터 부모 애도 퍽 말렸다. 볏백¹⁵이나 해서 뭐 넉넉지는 않으나, 그래도 그저 먹고는 살 집안이, 지금 이 꼴이 되기도 그 자식 때문이다. 그래도 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듯싶어 부모 생전에 호강이나 한번 시켜드리겠다고, 바로 팔 걷고 나선 것은, 그 마음만이라도 고마우나, 고등보통학교를 중도에서 퇴학하였을 뿐으로, 취직을 하자니 무슨 자격이 있나? 장사를 하자니 무슨 밑천이 있나? 대체 제가 무슨 수로 돈을 벌어 늙은 부모 호강을 시켜주마는 겐고? 동정을 살피려니까, 딴은 그밖에는 수가 없는 것으로, 이 자식은 브로커로 나서가지고, 바로 수첩에나 무엇을 모두 적어 넣고 다니며, 한창 바쁜 꼴이 볼만도 하였었다. 그뿐 아니라, 사실, 돈도 곧잘 벌어들였다. 벌이가 벌이라, 없을 때는 참말 쇠천¹⁷ 한 푼 없었으나, 생길 때는 또 백 원 지폐가 몇 장이고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러나 역시 주색이 탈이었다. 단양인가 어디 산판 매매를 붙여주고, 돈 천 원이나 착실히 생겼을 때, 어디서 갈보년 하나를 떼내어다가, 조갯골에다 딴 집 살림을 시켰던 것을, 영감 내외는 물론 꿈에도 모르고 있었으나, 역시 한자리 속에서 지내고 보면, 냄새로라도 나타나는 모양이라, 며느리년이 어떻게 어떻게 알아가지고 어느 날 사생결단을 하고야 말겠다고, 첩년의 집을 찾아간 것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며느리년 하는 말을 들어보면, 눈깔이 씰룩하고 안장코에 귀가 짝짝이라지만 인섭이 놈은 그래도 아주 미쳤던 모양이라, 아낙에게 들킨 뒤에도 그렇다고 잊는 수는 없고, 여우 같은 고년은 또 고년대로, 본마누라 등쌀에 견딜 수 없으니, 같이 어디로 멀리 가 살자고, 그렇게 충동이었던 것이 분명하여, 보름 뒤 그대로 집을 나간 채 소식이 없기 이미 칠 년이다.
언제는 누가 부산서 인섭이를 보았다고도 하고, 또 언제는 만주 들어가 있다는 말을 들은 법하다고, 그러한 소식을 전하여, 이리되면 남북으로 서로 상거가 수천 리라, 그야말로 갈피를 차릴 수없는 이야기나, 그 자식이 대체 어디 가서 살고 있든, 그 통에 집안 식구가 굶어 죽게 된 것에는 틀림이 없어, 큰딸 정이가 여급으로 나서겠다는 것을 영감은 한숨으로 허락하고,
“너만 고생을 시켜 되겠느냐?”
하고, 자기는 자기대로 동리 복덕방으로 놀러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서기는 나섰어도,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다 늙게 이 고생을 하노?―하고 생각하면, 저 없으면 집안 꼴 이럴 줄 뻔히 알고도 계집에 미쳐서 집을 나간 아들이 괘씸하였고, 집안은 비록 이래도 계집이란 어떻게 서방이나 잘 맞으면 제 팔자는 고칠 것을, 일꼇 저만큼 길러낸 내 딸이 가끔 밤늦게 술조차 취해 가지고 와서, 난잡한 소리를 늘어놓을 때는, 남자가 계집 한둘 얻는 것은 없는 일도 아닌 터에, 그것을 등쌀을 대서 집을 나가게 하고, 그래 제 시누이를 저 꼴을 만든 며느리년이 가증하기 짝이 없어, 여급도 말고 아주 갈보로 팔아먹어도 싸다고. 늙은 마누라가 말하는 것을,
“마누라. 그 무슨 상스런 말이요?”
영감은 가만히 나무라면서도, 속으로는, 갈보란 온당하지 못하나, 어디 공장에라도 들여보내 찬 용이라도 보태도록 해야지, 참말 저만 놀고 있다니 말이 되느냐고, 그러한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낌새를 채었든 어쨌든, 어느 날, 식구가 모두 나가고 없는 사이에, 며느리는 조그만 보퉁이를 만들어 들고는 그냥 집을 나간 채 소식이 없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달리 형제도 없이, 참말 무의무탁한 몸이 대체 집을 나가면 갈 데가 어디냐고.
“이년이 벌써부터 눈치가 다르더니, 필시 서방을 맞어 갔지. 죽긴 그년이 왜 죽우? 죽으러 가는 년이 옷가지는 왜 싸가지구 나가우? 영감 어림두 없는 말씀이지.”
하고, 혹시 서방은 잃고, 집안에서는 구박이 심해서, 그래, 죽으러 간 것이나 아닐까?―하여, 은근히 염려를 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시어머니는 도리어 비웃었던 것이나, 그것은 마누라의 추측이 역시 옳아, 작은딸 순이가 작년 가을에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먼빛으로 보니까, 그는 갓난것을 들쳐 업고 웬 국방복 입은 사십쯤 된 사내와 화신상회서 나오는데, 옷도 바로 잘 차려입었더라 한다.
그 말을 듣고, 마누라는 며칠 동안 동네로 다니며 그처럼 괘씸한 며느리 욕만 하였다. 그것을,
“욕할 것 없습뉜다. 정절을 지키느니 어쩌느니 하는 게, 다아 옛말이지, 눈 멀뚱멀뚱 뜨고 있는 서방, 버리구 달아나기두 일쑤인 세상에, 서방이 딴 계집 얻어 어디루 간 채 생사두 모르는 터에, 저 서방 맞아 가기도 괴이치 않지. 공연히 동네방네 떠들어놓아야 우리만 꼴이 사납습늰다!”
하고 영감은 일러주었던 것이나,
“온, 하누님 맙시사. 세상이 아무리 꺼꾸루 됐다기루서니, 그래, 영감이 서방질해 간 년, 편역을 드셔야 옳단 말씀이유?”
하고, 밖으로 나가서, 영감 하던 말을 음성까지 흉내 내가며,
“그래, 이럴 데가 있수? 이럴 데가 있어?”
하고, 행실 부정한 며느리와 함께, 그처럼 주책없는 영감을 탓하였다.
그러면, 그와 한동갑으로, 십 년 전에 과부가 된 복술(福述)이 할머니는, 풍으로 부은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공연한 말씀이지, 영감님이 참말 노망이라도 나시기 전에야, 진정으로 그 말씀 하시겠소? 이리 됐거나, 저리 됐거나, 어떻든 지난 일이라, 새삼스레 따져보아야 소용없는 일이니, 그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지.”
그리고 이어서 ,
“어린게 없기나 한 게 외레 다행 이구먼. 이렇게 된 바에야.”
하면,
“왜 어린게 없긴? 우리 순이가 봤다는데, 이년이 복술이만 한 젖멕이를 들쳐 업구 나왔다던데? 온, 그런 더러운 년. 서방질해서 자식 꺼정 낳구……”
하고, 펄펄 뛰는 것이다.
“아아니, 누가 그것 말이유? 죽은 갑순(甲順)이 말이지?”
하고 다시 일러주면,
“갑순이두 그년이 죽였지. 그년이 죽인 셈이지. 감기 든 걸, 글쎄 제가 구경에 미쳐가지구, 그 추운 겨울밤에 연극 구경을 업구 갔다 왔으니 그게 글쎄 성허겠어? 좀 나아가던 애가 그날 밤으루 더쳐가지구, 의사 불러왔을 땐 일이 다아 그른 뒤니……. 온, 그런 열 번 죽어두 시원치 않은 년 같으니?”
하고, 좀더 숨을 험하게 쉬어보는 것을,
“허지만, 살았어두 걱정이죠. 애아버지는 그처럼 어디 가서 소식두 없구, 에미는 또 딴 사내 얻어 갔으니, 살았으면 애만 불쌍했을 게 아네요?”
하고 올해 갓 서른인 복술 어미가 말참례를 하면,
“왜? 갑순이만 죽지 않았으면, 걔가 아무리 딴 계집에 미쳤더래두, 그렇게 아주 소식을 끊지는 않지. 아무렴. 걔가 갑순일 어떻게 귀애했다구 조갯골에다가 딴 계집 얻어 산 것두, 그게 갑순이 없애구 홧김이지, 홧김이야. 난, 똑 그렇게 생각이니까…….”
하고, 갑자기 풀이 좀 죽을 때, 그것을 보고,
“둘째 아드님은 요새두 운동이 바쁜 모양인가요?”
하고, 복술 어미가 제 딴에는 딴 이야기를 꺼내본다는 것이, 갑순이 할머니에게는 좀더 상심만 되는 말이어서,
“누가 아우? 운동을 허는지 무얼 허는지……, 얘길 들으면 때때루 돈두 생긴다나 보던데, 언제 제 에미 담배 한 갑 사 먹으라구 그럴 줄 아나? 그저 이 녀석두, 부모두, 성제〔형제〕두 없이 저만 쓰구 댕기니까…….”
하고, 손등으로 코밑을 훔치는 것을,
“허지만 이거 봐요.”
하고, 이번에는 복술이 할머니가 다시 나서서,
“그래두 막내아들 하난 잘 뒀으니 다행이지. 걔가 나인 어려두 어떻게 음전허구 착하다구. 인제 두구 보구료. 저이 성들 대신 삼아, 소자¹⁹ 노릇은 걔가 혼자 할 테니…….”
하고, 위로를 해주는 것이나,
“소자면 뭘 해? 인제 열넷 먹은 아들, 언제 크길 바라?”
하고, 눈을 끔벅끔벅하다가,
“아, 왜요? 근력이 좋시니깐, 인제두 십 년은 더 사실걸. 십 년이면 막내아드님 나이 스물넷이니, 며느리는 고사허구 손주두 다 보실걸요” 하고, 이 집 며느리가 다시 한마디 하면,
“더 살라는 게 내겐 덕담이 아니라, 악담이야. 내가 더 살면 뭘 해? 고생만 더 헐걸? 그저 어서 죽어야지. 하루바삐 죽어야 해애.”
하고, 문득 자기 말에 자기가 비감해져서,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허지만, 죽는 건 또 임의루 허우? 죽을 때가 와야 죽지. 십 년은 과시 몰라두 오 년은 염려 없이 살걸, 우리가 한동감이래두, 나는 뭐 등걸만 남았으니, 낼 일을 누가 알겠소마는…….”
“어유, 맙시사. 오 년씩 더 살어서 으쩌게? 십 년만 전에 죽었어두, 이 꼴 저 꼴 안 봤을걸. 십 년 전이면, 내 나이가 그래 몇이야?”
“지금 예순아홉이니, 십 년 전이면 쉰아흡이지 얼마야?”
“쉰아홉―. 그래, 쉰아홉에 죽더래두 아무두 단명했다군 않겠지? 살 만큼은 살았달 게 아니야? 그럼 자식일래, 며느리년일래 해서 애두 안 태구, 속두 안 썩구, 좀 편했을 게야? 그걸 모진 목숨이 죽지 않구 살아가지구……”
그리고 갑순이 할머니는 후유우 하고 한숨을 쉬고, 언제까지든 복술이 할머니를 바라보며,
“그저 하루바삐 죽어야지. 더 살어서 뭘 해애?”
그러한 말을 몇 번이고 하였던 것이나, 죽고 싶다는 그는 가는 귀만 좀 먹었을 뿐이지, 그저 정정한 채 구태여 죽지 않아도 좋을 듯싶은 복술이 할머니가 그 겨울을 나지 못하고 그예 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갑순이 할머니에게 있어 일종의 일과가 꾀어버렸거니와, 그는 복술이네 집 조석상식²⁰에 거의 한 차례도 궐하지²¹ 않고 뛰어들어가 상주 내외와 함께 울었다.
언제든 가장 섧게 울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이의 아들보다도 갑순이 할머니였다. 자기 설움도 설움이려니와, 복술이 할머니와는 이 골목 안에서 가장 가까이 지내며, 대소사를 물론하고 서로 통사정 해오던 사이라, 그것만 생각해도 울음은 얼마든지 터져나왔다.
울고 나면 마음이 한결 시원한 듯하다. 그래 갑순이 할머니는 목을 놓아 맘껏 우는 것이다.
“온, 빌어먹다 뒈질 늙은이 같으니, 남의 집 조석상식 올리는데 왜 뛰어들어가 울긴 우는 거야? 그것두 온, 하루 이틀일세 말이지, 이건 그저 한때라 빼놓지 않으니……, 아마 자기 죽은 뒤 생각허구 우는 거겠지만, 저 죽으면 제 친자식들두 저렇겐 안 울어줄걸그래?”
저와 이해관계 없는 일에도 이처럼 객쩍은 말이 늘 많은 것은, 이 골목 안에서 ‘청대문집’이라 불리는 집 행랑에 들어 있는 갑득(甲得)이 어미다. 원래 타고나기를 남 유달리 기승스러운 데다 입이 험하고, 물론 배운 것도 없거니와, 또한 경우가 밝지 않아, 동네 안에서 말씽은 대개 이 여편네가 일으키며, 심지어 제 자식이 남의 집 아이와 말다툼하는 데까지 나서는 터이니, 뭐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러면 밤낮 계집에게 핀잔만 맞고 지내는 양서방(楊書房)도 참다 못해 한두 번은 타이른다.
“남 울거나 말거나, 우리가 아랑곳할 게 뭐 있어?”
“뭐?”
“괘애니 그렇게 욕허다 듣기나 허면 으떡 헐려구……”
“들으면 대수야? 바른말 했지, 내가 언제 그른 말 했어? 그 집이서두 그저 초하루, 보름, 삭망에나 곡허지, 조석상식엔 울지는 않으려는 겐데, 괜시리 이 주책없는 늙은이가 뛰어들어가선, 어어이 어어이 우는 통에 복술이 어머니두 마지못해 따라 우나 보넌 데……, 온, 눈치 그렇게 없는 늙은이두 첨 본다니까.”
“그래두…….”
“그래둔 무슨. 나야 으떡허든 상관 말구, 임자나 어서 나가서, 오늘은 세상 없어두 돈 좀 벌어 와. 밤낮 뭐어야? 펀등펀둥 놀구만 있구?”,
“온, 제에미. 누가 놀구 싶어 노나? 일이 없는 거야 으째?”
“일이야 왜 없어? 임자가 다아 벤벤치가 뭇해서 그래 남에게 모두 뺏기는 게지!”
“……”
“아, 이 자식들아. 다아 처먹었거든 어서 밖에 나가 놀아라. 좁은 방 속에서 뭘 이리 꿈지럭거리니?”
“엄마. 나, 응가!”
“응가? 똥 매렵건 밖에 나가 누지 뭬 어려워 그래?”
“참, 병득(丙得)이, 골목 안에다 똥 누게 말지. 남한테 욕먹을 까닭이 어디 있어?”
“욕은 누가 해애? 어느 화냥년이 해애? 갓난것이 길에 똥 좀 누기루 으때 그래? 을득아. 병득이 데리구 나가 바루 그년의 집 문 앞에서 똥 눼줘라!”
그년의 집이란 정이네 집을 가리키는 말이다. 겨울 한 철만 빼어놓고는 언제든 아랫두머리는 벌거벗겨서 밖에 다 내어놓는 행랑 어린것이, 그저 아무 데나 똥오줌 질질 깔기는 것을, 누구나 좋아할 리야 없지만, 그 어미 입이 시끄러워 듣는 데서는 아무도 말이 없었던 것을, 정이가 언젠가 카페로 나가는 길에, 쓰레기통 앞에 가 앉아서 역시 똥을 누고 있는 저 병득이를 보고
“아이, 더러. 온, 자식새끼두 더럽게두 길르지?”
하고 한마디 한 것이 문제로, 갑득이 어미는 당장 그 옆에 있지는 않았지만, 을득(乙得) 이한테 나중에 그 말을 전하여 듣자,
“온, 제에미. 별 아니꼬운 소릴 다 듣지. 자식새낄 더럽게 기른다니, 어디다 함부루 허는 소리야? 아니꼰 년 같으니……, 그래 병득이 똥이 더러워 더러워두 제 행실버덤은 정허겠지.”
방 속에서도 말한 것이 아니고, 바로 밖에 나와 외쳤던 것이라, 그 말은 또 그대로 정이의 귀로 들어가, 그래 그 이튿날은 두 계집 싸움에 골목 안이 소란하였던 것이나, 원래, 아무 데나 함부로 깔기는 병득이 녀석 똥에는 누구나 머리를 앓던 터라, 비록 나서서 정이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동리 안의 공기는 갑득이 어미에게 매우 불리하였고, 더구나,
“그래, 내 행실버덤은 정하다니, 내 행실이 으때서 더럽단 말이냐? 내가 무슨 짓을 했게, 행실이 더럽단 말이야? 봤건 말을 해애?”
하고 따지는 것에 대하여,
“더러우니깐 더럽다지. 보지 않아두 뻐언허지!”
하는 말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 결국 그때 싸움은 자기가 진 것으로 갑득이 어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분하였다.
그뿐이 아니다. 한참 정이와 별의별 말이 다 오고 가고 하였을 때, ‘불단집’에서 막 설거지를 하고 있던 갑순이 할머니가 뛰어나왔다. 갑득이 어미는,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 모녀를 상대해서도, 할 말에 궁하지는 않다고 은근히 마음에 준비가 있었던 것이나, 뜻밖에도 갑순이 할머니는 자기 딸의 역성을 들려고는 하지 않고,
“애초에 니가 말실수헌 게 잘못이지, 남을 탄해 뭘 허니? 이게 모두 모양만 숭업구……, 온, 글쎄, 그만 허구 들어가아. 네가 잘못했어. 네 잘못이야.”
하고 도리어 딸을 나무라던 것을, 갑득이 어미는 그 당장에는, 귀에 솔깃하여
“그렇지, 자기가 먼저 말을 냈지. 나야 그저 대꾸헌 죄밖엔 없으니까. 잘했든 잘못했든 자기가 시초를 낸 게니까.”
하고, 뽐내도 보았던 것이나, 나중에 깨달으니,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생각으로, 갑순이 할머니가 그렇게 자기 딸을 꾸짖으며 한사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에는,
“아, 그 배우지 못헌 행랑껏허구, 쌈이 무슨 쌈이냐?”
“똥이 무서워 피허니? 더러우니까 피허는 게지!”
하고, 그러한 사상이 들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사실, 을득이 녀석이 나중에 보고하는데 들으니까, 저녁 때 돌아온 집주릅 영감이 그 얘기를 듣고 나자,
“걔두 그만 분별은 있을 아이가, 그래, 그런 상껏허구 욕지거리를 허구 그러다니…….”
쨋, 쨋, 쨋, 하고 혀를 차니까 늙은 마누라는 또 마주 앉아서,
“그렇죠. 그렇구말구요. 쌈을 허드래두 같은 양반끼리 해야지, 그런 것허구 허는 건, 꼭 하늘 보구 침 뱉기지. 그 욕이 다아 내게 돌아오지, 소용 있나요.”
그리고 후유우 하고 한숨조차 내쉬는데, 방 안에서들 그러는 소리가 대문 밖까지 그대로 들리더라 한다.
“흥! 아니꼽게, 양반? 그래 다아 굶어죽게 돼두 양반이 좋아서 남을 상껏이라 능멸이 여기는구먼. 온, 참, 배지가 꼴려서……, 그래 내가 행랑껏으루 배지 뭇힌 상껏이면 저이들은 뭐어야? 영감쟁인 고작 세월없는 집주릅. 딸년은 양국 갈보. 메누리년은 서방 맞어 달아나구, 자기는 또 뭐어야? 불단집 할멈이지 뭐어야? 밤낮 전엔 잘살었다구 떠들어 버티지만 누가 본 사람 있나? 또 정말 잘살었으면 으쩔 테야? 온, 염병을 허다가 금방 거꾸러질 늙은 게……”
갑득이 어미는 정작 같이 싸움을 한 정이에게보다도, 도리어 갑순이 할머니에게 반감을 가지고 은근히 마음에 품었다. 그는 무슨 기회든 있기만 하면, 한번 톡톡히 욕을 보여주리라고 별렀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갑득이 아비가 바로 이 갑순이 할머니의 손으로 불단집 바깥²³ 뒷간 속에 시간 반을 갇힌 사건이 생겼다.
불단집이란, 골목 안에서 유독 그 집만 외등을 달았다 해서 부르는 말이데, 문전이 어두우면 답답하다 해서 외등을 단 만치, 이 동리에서는 그래도 사는 편이다.
주인은 오십을 바라보는 키 작은 사내로, 황금정에 있는 어느 화재보험 회사에 근무한다는데, 키는 작아도 수완은 대단한 모양이라, 재산이라고는 도무지 들어 있는 집 한 채밖에는 없어도, 시시로 차려입고 먹고 하는 품이, 웬만치 있다는 집안만 못하지 않았다.
이 집 문전에 가 지붕을 함석으로 이은 뒷간이 있다. 본래 사랑 뒷간으로 대문 안에 있어야 옳을 것이, 터전이 마땅치 않아 문밖에 있는 터이라, 그냥 한데 뒷간과 다른 것은, 언제든 맹꽁이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으로도 알 일이다.
그러나 소유는 불단집 소유라도, 그 집 식구는 도무지 이용하는 일이 없었다. 어째 가다 사랑에 손님이라도 있기 전에는 참말 소용이 안 되었고, 이것은 거의 골목 안의 공동변소인 감이다. 그러기에 전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을 때는, 골목 밖에서 일부러 이 뒷간을 찾아 들어오는 사람까지 있었던 것이나, 그것이 싫어서 잠가버린 뒤로는, 오직 골목 안의 주민으로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는 바깥 사내만에게 사용을 허락해왔다. 그리고 그 열쇠는 갑순이 할머니가 맡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갑득이 어미가 그를 가리켜,
“자기는 또 뭐어야? 불단집 할멈이지 뭐어야?”
하고 입을 씰룩거리고 지껄이던 것은 아주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어서, 갑순이 할머니는 뭐 월급을 정해놓고 아주 그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매일같이 불단집에 가서 밥도 지어주고 빨래도 해주고 그랬다.
주인 내외, 아들 내외, 단 네 식구로, 우선 아이가 없는 집안이라, 뭐 군식구 들일 필요가 도무지 없다 하여 형세로 말한다면 하인 한두 명 부려서 못 부릴 것이 아니겠지만, 이제껏 그냥 그대로 지내오는 터이다. 그것을 혹 명절이라든 그러한 때, 어려운 집주릅 집 살림살이에는 명절이고 뭐고가 별로 없었으나, 이 집은 남만큼 차려먹는 집안이라, 그래 손이 째는²⁴ 것을 보면, 한 이웃 정의로서 저편에서 청하러 오기 전에 마나님 편에서, 먼저 떡도 가서 찧어주고, 지짐질도 해주고, 그러던 것이, 다음에는,
“혼인집에 갔다 올 테니 집 좀 보아주세요.”
하고, 곧잘 그러한 부탁도 받게 되고,
“갑순 할머니 바쁘시지 않거든 오늘 우리 빨래 좀 해주시까?”
그래, 빨래가 끝나면 술도 사 오고 저녁 대접도 있고 하여, 그러는 동안에 어느 틈엔가 갑순이 할머니는 이 집의 조석 끼니까지 살피게 된 것이다.
물론 정해놓은 보수라고는 없다. 만약 단돈 일 원이라도 정해놓고 받는 것이 있다면, 그는 결코 이 집 일을 보아주려고는 안 하였을 것이다. 갑득이 어미와 같은 것은, 자기를 이 집 안잠자기와 진배가 무엇이냐고²⁵ 빈정 댔으나, 보수 없이, 이 집 식구들에게,
“갑순 할머니.”
“갑순 할머니.”
하고, 깍듯이 존대를 받아가며 일을 해주는 것이, 갑순이 할머니에게는, 이를테면, 어른 없는 조카딸네 집에라도 들어가서 뒷배²⁶라도 보아주는 듯싶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달리 소득은 있었다. 우선 자기 한 입은 이 집에서 매양 먹었고, 때때로 순이와, 효섭이, 두 아이의 시간밥을 못해줄 때, 아침이야 간밤에 남은 찬밥, 물에 말아서라도 한술 뜨면 그만인 것이지만, 싸서 들려줄 벤또는 그렇지가 못하여, 그래, 더운밥 한 그릇이나마 구구한 소리 않고 얻어 갈 수 있는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일 것이다.
그보다도 좀더 이로운 점을 들자면, 당장 아쉬울 때 돈 돌려쓰기 좋았고, 수통이 또 있는 집이라,
“우리만 써선 암만 써도 최저액을 다 못 쓰니, 갑순 할머니, 수통 물은 얼마든 갖다 쓰세요.”
이 집 며느리가 일러주는 말이 고마웠다.
더구나 담배를 태우는 그로서 꽁초에나마 궁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몰랐다. 이 집 주인마누라는 ‘마코’를 태우고, 그의 아들은 ‘미도리’를 태운다. 하루에 버리는 꽁초만 하여도 갑순이 할머니 혼자서는 사흘은 먹고도 남겠다. 그래, 그는 건넌방에서 나오는 꽁초만 자기가 모아서 태우고, 안방에서 나오는 것은 그것을 종이에 싸서 골목 밖 막걸리집 더부살이를 갖다 주었다. 그래 그러한지는 몰라도, 순이네 집에서 술국을 사러 가면 다른 사람의 갑절은 실히 퍼준다.
그것은 한 달포밖에 안 된 일이지만, 어느 잡지사라나 다니는 이 집 아들이 그날은 다른 때보다 일찌거니 와서, 누구 아는 이가 보내주었다는 양주를, 마침 찬장 속에 남아 있던 오징어로 안주 삼아 먹으며,
“갑순 할머니. 약주 한잔 잡수시죠. 이게 위스키라구 서양 술이랍니다.”
하고, 별나게 모양이 생긴 유리 곱보에다 한 잔 가득히 부어 권한다.
이러한 때면 갑순이 할머니는 늘 감격한다.
“아이, 어서 자시지. 무얼, 나까지……”
하고, 말로는 사양하면서도 부리나케 행주치마에다 손을 씻으며 그는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서양 술이 무척 독하다던데……”
“독하면 얼마나 독하겠습니까? 그저 취할 만큼만 잡수시지!”
“아이, 취해 으떡허게요? 집이 가서 또 빨래를 취겨야" 허는 걸…….”
“자아, 안준 이 오징어루 허시구…… 아, 참, 딱딱해서 잡수시까?”
“내가 이야 성허죠. 가는귀가 좀 먹었지, 눈두 바늘귀는 아직꺼정두 남의 손을 안 비니까요. 그래두 전에 호두 깨 먹던 생각을 허면 지금은 어림두 없지만…….”
“하, 하, 노인이 호두까지 이루 깨뜨리지 않으시면 으떱니까? 자아 한 잔 더 드시죠.”
“아이, 못해요. 두 잔 먹었는데, 금방 올라오는걸?”
“그래도 주불쌍배²⁸라구 짝은 안 채운다는 겐데……”
“아이 정말 못해요. 먹구 그냥 쓰러져 자라기나 한다면 몰라두…….’,
“아, 그럼, 더 잡숫구 누우시죠.”
“일이 있는 걸 되나요? 아이, 어서 가봐야…….”
그리고 분주히 자기 집을 향하여 밖으로 나서려니까, 바깥 뒷간문에 자물쇠가 안 채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오, 참, 아까 갑득이가 열어달래 열어주군 그만 잊었구먼…….’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리나케 자물쇠를 채운 갑순이 할머니는, 갑득이가 똥을 누고 난 뒤에 이번에는 그 아비가 들어가 있을 줄을 도무지 몰랐다.
허기야, 갑득이 아비가 좀 크게 헛기침이라도 두어 번 하였으면 그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갑득이 어미 말마따나 좀 변변하지 못한 이 사내는 어떻게 주저하는 사이에 그만 고리는 걸려고 자물쇠는 채워졌다. 그제서야,
“어어, 저어, 내가……”
하고 새삼스러이 당황하였으나, 언제는 하루에 한두 번 빌리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종시 남의 집 뒷간을 얻어 쓴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떳떳하지 못하여, 낮은 소리로 우물우물한 것을, 물론 가는귀가 먹은 갑순이 할머니는 알아듣지를 못한 채, 그대로 자기 집 방으로 들어가버렸던 것이다.
인제는 정말 큰 소리를 내어야만 된다. 그러나 큰 소리래야 지척 사이에 불단집이 있는 터이니까, 보통 ‘이로나라’²⁹를 부르는 정도의 소리면, 그는 뒷간에서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벙어리도 아닌 터에 사람 있다고 말도 못했다 말인가? 어떻게 하다가 이처럼 뒷간에 가 갇히고 말았다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자기가 딴은 변변하지 못한 까닭이라, 한시바삐 남에게 알려 갑순이 할머니를 을러내도록 하여야만 되겠다고 마음은 초조하면서도, 그처럼 이나 불유쾌한 자기의 경우를 남에게 알리는 것이 또 우울하여, 그는 아무도 모르게 자기 혼자서 어떻게 빠져나갈 도리가 없을까 하고, 그러한 것을 궁리하느라 제법 오랫동안을 애를 태웠다.
그전에는 자물쇠를 채우기는 채워도 고리가 아니라 철사를 얽은 것이 돼놔서, 구태여 갑순이 할머니를 불러내어 열쇠를 빌리고 어쩌고 할 것 없이, 손으로 비틀면 용이히 열리고, 또 용이히 걸리고 그랬다. 그것을, 하도 아무나 드나드는 통에, 이래서는 잠그나 마나 하지 않으냐고, 고리를 사다가 장식을 새로 하여, 인제는 꼼짝달싹을 않는다.
‘제에미, 이게 무슨 꼴이야? 밤새 꿈자리가 사납더니·…’
그는 아무리 상고해보아도 나갈 도리가 없는 것에 은근히 울화가 올랐다.
‘제 집 뒷간두 아니구 남의 집 것을 그렇게 기가 나서 꼭꼭 잠그구 그럴 건 뭐 있누? 늙은이두 제엔장헐…….’
인제는 할 수가 없으니, 소리를 한번 질러볼까? 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경우에 있어,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꼭 어떠한 수상한 인물인 듯싶게 스스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 그는 생각 끝에,
“아, 누가 문을 잠겄어?”
“문 좀 여세요오. 아 누가…….”
하고, 그러한 말을 제법 외치지도 못하고 그저 중얼대며, 한참이나 문을 잡아 흔들어 자물쇠 소리만 덜거덕거렸던 것이다.
을득이한테 저의 아비가 불단집 뒷간에 가 갇혀 있다는 말을 듣고, 어인 까닭을 모르는 채 그곳까지 뛰어온 갑득이 어미는, 대강 사정을 알자, 곧 이것은 평소에 자기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는 갑순이 할머니가 계획적으로 한 일임에 틀림없다고 혼자 마음에 단정하고,
“아아니, 그래, 애아범이 미우면 으떻게는 못해서, 그 더러운 뒷간 속에다 글쎄 가둬야만 헌단 말예요? 그래 노인이 심사를 부려야 옳단 말예요?”
하고, 혼자 흥분을 하였다. 갑순이 할머니는, 그것은 전혀 예기하지 못하였던 억울한 말이라, 그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조차 내저어가며,
“그건, 괜한 소리유. 괜한 소리야. 이 늙은 사람이 미쳐서 남을 뒷간 속에다 가둬? 모르구 그랬지. 모르구 그랬어. 난 꼭 아무두 없는 줄만 알구서, 그래, 모르구 자물쇨 채웠지. 온, 알구야 왜 미쳤다구 잠그겠수?”
발명³⁰을 하였으나,
“모르긴 왜 몰라요. 다아 알구서 한 짓이지. 그래 자물쇨 채울 때, 안에서 말하는 소리두 못 들었단 말예요? 듣구두 모른 체했지. 듣구두 그냥 잠거버린 거야.”
하고, 갑순이 어미는 덮어놓고 시비만 걸려는 것을, 구경 나온 이웃 사람들이
“아무러 기루서니 갑순이 할머니께서 아시구야 그러셨겠소?”
“노인이 되셔서 귀두 어두우시구 그래 모르셨지!”
하고 말들이 있었고, 정작, 양서방이 또 머뭇거리다가,
“자물쇨 채우실 때, 내가 얼른 소리를 냈어두 아셨을 텐데, 미처 못 그래 그리된 거야?”
하고, 그러한 말을 매우 겸연쩍게 하여, 갑득이 어미는 집주릅 집마누라를 좀더 공박할 것을 단념해버릴 수밖에 없는 동시에,
“오오, 그러니까, 채, 뭐, 말할 새두 없이 문이 잠겨서, 그냥 갇힌 채, 누구 오기만 기대린 게로군?”
“그래, 얼마 동안이나 들어가 있었어?”
“뭐어 오래야 갇혔 겠수? 동안이야 잠깐이겠지 만……”
뭐니 뭐니 하고들 왁자지낄한 소리를 듣고, 웬만큼 술이 취하여 자기 방에 누워 있던 불단집 아들이 나와,
“그래, 갑순 할머니. 아까 빨래 취기러 가신달 제 문을 잠그셨죠? 그럼, 그게 석 점 반가량인데, 지금 다섯 시니, 한 시간 반이나 되는구먼.”
하고 양서 방의 유폐되 었던 시간이 분명해지자,
“온, 어쩌면 한 시간 반씩 들어가 있으면서, 문 열어달란 소리두 못 질렀어.”
“아이, 냄샌들 오죽했을까?”
“참, 세상엔 벨일두 다 많으이.”
하고, 은근히 제 서방 놀림감 되는 것에 화가 치밀어,
“왜 입이 있으며 말을 못해? 뭇났기는 지지리두 뭇났지. 불러서 뭇 듣거든 소리래두 뭇 질러? 에이, 천치지, 천치야.”
얼굴이 시뻘게가지고, 제 서방에게다 대고 이번에는 욕을 퍼부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누구나 재미있어하였으나, 그중에도 특히 흥미를 가졌던 것은, 일찍이 갑득이 어미와 불쾌한 교섭을 가져보았던 정이였다. 그날은 ‘하야방’³¹이 돼놔서 사건 당시에는 집에 없었고, 그러니까 밤늦게 점에서 돌아와서야, 비로소 그때까지 잠을 안 자고 소설책을 읽고 있던 순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나, 듣고 나자 그는 짤깍짤깍 손뼉조차 치며, 한참을 호, 호, 호, 호, 하고 웃어댔던 것이다.
“한 시간 반이면 냄샌 또 좀 했겠어? 허지만 그 순허디순헌 아범이 갇힌 건 억울헌데. 그 배러먹다 뒈질 년이나 아주 똥통 속에 다 빠져서 꼭 세 시간만 허위적거리지 않구서……”
그러고는 또 얼마든지 웃는 것을,
“얘애, 또 그년 귀에 들어갈라. 시끄럽다. 웃긴 왜 그리 웃니? 젊은 계집이 밤중에 웃는 게 다아 승업단다.”
늙은 어머니가 타이르니까, 정이는 뜻밖에도 그 한마디로 웃고 지껄이기를 그치고, 잠깐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다음에 약간 호젓한 웃음을 입가에 띠다가, 고개를 두어 번 모로 흔들어 보고,
“얘애, 순아. 너 뭐 먹고 싶지 않니?”
하고 후유우 한숨을 쉰다.
“뭐든지 사주면 먹지. 아이, 술냄새.”
얄밉게 찡그리는 동생의 얼굴을 오늘 밤에는 특히 귀엽다고 보며,
“나마까시,³² 너, 좋아하지?”
순이가 자리에 바로 누워 있는 채 고개를 끄떡하는 것을 보자, 이번에는 머리를 돌려 어머니를 보고,
“어머닌 뭐 잡수실 테유? 떡국 좋아하시니, 그것 하나 시켜다드리까?”
“아이, 싫다. 엊그제 빨래힌 것, 오늘 취기구, 또 다듭구, 그랬더니, 원, 온몸이 아파서……, 인젠 나두 다아 살었어. 힘드는 일은 도무지 못허는걸.”
“그렇다구 떡국 못 잡술 거야…….”
“싫다. 사주겠거든 낼 사다우. 지금은 졸립기만 해서……”
그러한 말을 하며 저편으로 돌아눕더니, 곧 뒤이어 가만한 숨소리가 들린다.
“아버진 오늘 싸전에서 주무시니?”
효섭이가 아랫목에서 자는 것을 보고, 정이는 동생에게 그렇게 묻고, 일어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나가더니, 얼마 있지 아니하여 과자 봉지와 사 흡들이 정종병을 들고 돌아왔다.
“가게, 그저 열었어?”
“열긴? 닫구 자는 걸 막 흔들어 깨웠지. 그게 사십 전어치다. 반은 낼 효섭이 줘라.”
“응. 아이, 언닌, 또 술이유?”
“……”
“더구나 데우지두 않구·…‥”
“아이. 언제 구찮게 데우구 으쩌구 그러니?”
“언니. 내, 불 펴서 데다 디리까?”
“얘가 오늘은 그런 말을 다아 하구 웬일이야? 그만둬라.”
소금에 볶은 왜콩을 안주 삼아, 맥주 곱부에 따라놓은 정종을 한 모금씩 마시며, 정이는 문득 생각난 듯이,
“너, 오늘 본정 갔었지!”
곁눈으로 순이의 기색을 살피며 한마디 묻는다.
“아니. 왜? 언니 어디서 봤수?”
순간에 얼굴을 붉히며 당황해하는 동생을, 일종 연민을 가지고 지켜보며 정이는 잠깐 말이 없다가,
“네 고이비도, 그거 어디 쓰겠던? 아주 전형적 오봇쨩³³이라, 나 보기엔 도무지 미덥지가 뭇허드라…….”
사랑하는 이를 가리켜 그처럼 말하는 형에게 순이는 역시 본능적으로 반감을 느꼈으나, 인제 겨우 열일곱이건만, 자기 형 정이를 닮아 조숙한 이 소녀는, 그것은 또한 저도 남자에게 일찍이 느꼈던 불만인 듯싶어 ,
“허지만, 으떡 허우?”
하고 말하는 소리에 풀이 없다.
“으떡허긴……, 그래, 오늘은 만나서 무슨 얘기들을 했니?”
“별 얘기 없지, 뭐어.”
“그저 같이 산보나 허구, 차나 먹구, 그랬겠구나?”
“몇 살이나 된 사람이냐?”
“스물둘.”
“스물둘이라?…… 너는 열일굽이구…… 흥!”
“왜?”
“왜는 무슨 왜? 아직 갓난애들이란 말이지. 그래두 소설두 읽구, 활동사진두 보구, 그래 견문은 있으니까, 서루 만나면, 그저, 사랑이니 행복이니 허구, 야단들이 겠구나?”
“몰라!”
금시에 샐쭉하여 그에게 등져 누우며 다시 책을 집어드는 순이의 옆얼굴을 이윽히 내려다보고,
“허지 만, 얘 애.”
하고, 정이는 이제까지 얼마쯤 농조이던 것이 갑자기 엄숙한 표정으로 고쳐지며,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다 말고 남은 술을 마저 벌컥벌컥 마셔버린 다음에,
“아이, 졸려. 또 구들장이나 짊어지나? 제에길헐…….”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벌떡 일어나서 한 가지씩 옷을 벗어 윗목에 놓인 머릿장 위에다 아무렇게나 팽개치고는 그대로 자리 속으로 들어가버리더니,
“얘애, 그만 불 끄구, 너두 자거라.”
한마디를 더하고, 다음에 일 분이 못 되어 그대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그러나 불을 끈 뒤에도 순이는 쉽사리 잠들지 못하였다. 그는 오늘 밤 형이 카페에서 돌아오면, 어머니 몰래 그에게만 의논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말을 꺼내기 전에, 형 쪽에서 먼저, 둘이 같이 가는 것을 본정에서 보았다고 그러고, 또 갓난애들이니 뭐니 하고 조롱만 하여, 순이는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는 어둠 속에 똑바로 천장을 향하여 드러누워, 아무리 하여도 부모가 두 사람 사이를 허락해주실 듯싶지 않으니, 둘이서 그저 어디로든 도망을 가지 않겠느냐 하던, 남자의 말을 다시 머릿속에 되풀이 해보았다.
물론 남자는 아직 한 번도 자기 부모에게 향하여 순이 말을 꺼낸 일은 없었다. 그러나 뭐 구태여 의향을 묻지 않더라도, 남자 말마따나, 그의 부모가 자기들의 사이를 너그러이 허락해주지는 않을 것 같이, 순이에게도 생각되었다. 무엇보다도, 피차 집안이 기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남자의 집안은 수삼십만의 자산가이다. 그의 아버지는 외과 전문의로서 전에 부회의원을 지낸 일이 있었으며 그의 큰형은 또 × ×은행 전주 지점장으로, 이를테면, 모두 사회 유지였다.
그것을 생각할 때, 어린 순이는 그들 앞에 자기의 행색이 너무나 초라함을 마음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먹고는 살던, 이전이나 같았으면 얼마쯤 희망을 가져도 볼까? 그러나 지금은 도무지 사랑하는 이 앞에서 떳떳지 못한 저의 집 안이었다.
남자는 자기 아버지가 과히 완고하지는 않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자식의 결혼 문제에 대해 참말 관대하고 이해 있는 어버이가 얼마나 될까? 제법 개화하였다는 이들로서도 그 경우에만은 얼마든지 완고할 수 있어, 그래 크나큰 비극이 곧잘 일어나고, 그러는 것을, 순이는 자기가 즐겨서 읽는 소설 속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의 어버이에게 자기 말을 고하였다 하고,
“그래, 어떤 집 안이게? 색시 아버지는 뭣 허는 사람이냐?”
마땅히 있을 질문을 받을 때, 색시 아버지는 집주릅이요, 색시 형은 카페 여급이요――하고, 그렇게 말을 해 어버이에게 승낙을 받고 어쩌고 하는 결과야 대체 어떠한 것이든, 우선 그 말을 입밖에 낼 때에, 남자 자신, 그의 어버이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순이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머리를 모로 흔들었다. 어려운 일이다.
‘그럼, 역시, 그이 말대루, 같이 어디루 달아나야만 하나?…….’
그러나 말이 그렇지, 자기 눈으로 보기에도, 사내로서 퍽 겁이 많고 결단성이 없는 듯싶은 남자가, 정작 일에 마주쳐가지고, 그만한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깨닫지 못하고 눈물이 두 줄, 순이의 뺨 위를 흘러 베갯잇을 적셨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소녀가, 그 가슴속 깊이 순정을 품었으면서도, 오직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는 그 까닭만으로 하여, 그 순정이 애처롭게도 짓밟히고 마는 사실에 문득 술픔이 샘솟듯 하였던 까닭이다.
순이는, 그렇게도 굳게 자기 앞에 맹서를 하였으면서도, 끝끝내는 그 어버이의 명령을 거역하는 수 없어 자기를 저버리고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그들의 호화로운 결혼식장 밖에 가 서서 남의 눈을 피하여, 원한과 슬픔이 가득 찬 얼굴을 들고 막 문을 나서는 신랑 신부를 바라보는 자기의 가엾은 모양이, 바로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다.
그는, 그것이 문학소녀인 자기가, 제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공상한 것이 아니라, 참말, 자기 몸이 지금 그러한 그지없는 슬픔 속에 놓여 있는 듯이 느끼고, 이불 아래 머리를 감추고서 얼마 동안 소리를 죽여 눈물에 젖었다.
그가 남자와 서로 안 것은 작년 봄의 일이다. 친한 동무를 따라, 그 동무의 동무 집으로 놀러 갔던 것이, 이 남자와 알게 된 시초이다. 문주(文柱)라는 것이 그의 이름이거니와, 문주는 순이의 동무의 동무의 오빠였던 것이다.
문주를 처음 보았을 때, 순이는 저도 모르게 자기의 둘째 오빠를 연상하였다. 서로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서로 틀리기 때문이었다. 자기 오빠가 시꺼머니 그저 아무렇게나 생겨먹은 것에 비하여, 문주는 살결이 희다 못하여 푸르르니, 우선 보기에 귀공자다. 자기 오빠가 운동 한 가지밖에는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는 것과 비겨, 그는 실로 글만을 아는 선비였다.
문주 누이의 방은 문주의 방과 서로, 복도 하나를 격하여 마주 본다. 순이는 이편 방에서 동무와 이야기하며 때때로 저 모르게 문주의 방 쪽을 바라보곤 하였다. 문학 서적이 그뜩 찬 책상을 배경으로 하고, 등의자에 앉아서 시집을 읽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양이 순이에 게는 지극히 탐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동무는, 문주가 이번 삼월에 중학을 마쳤으나, 너무 문학 서적을 탐독하여 신경쇠약이 심하였으므로, 상급 학교를 지망하지 못하고, 저렇게 집에서 휴양하는 것이라 말하였다. 순이는, 어쩌면 병이 다 나도록 공부를 할 수가 있었던고?――하고 마음에 놀라웠다. 더구나 그의 나이 이제 스물하나에 지나지 않건만, 재주가 비상하여, 이미 신문 잡지에도 그의 시가 여러 차례 실렸었노라고, 그렇게 동무가 일러줄 때, 순이는 마음에 감격함이 컸다.
무식하니 아무것도 아는 것은 없이, 그저 주먹이나 내휘두르고 뽐내는, 그러한 오빠 대신에, 저러한 이가 나의 오빠라면 얼마나, 좋을꼬?――하고, 어느 틈엔가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을 깨닫고, 순이는 보는 사람도 없건만 얼굴을 붉히곤 하였다.
동무와 함께 세 번 그 집에를 놀러 가고, 네번째는 순이 혼자 나섰다. 새로 사귄 동무를 보기보다도, 그의 오빠를 만나기 위해서 라고 스스로 생각할 때, 순이의 마음은 스스로 수줍었으나, 몇 번이나 주저하면서도 마침 내 그는 청 진동 골목을 들어섰던 것 이다.
그가 현관에 서서 인주(仁珠)를 찾았을 때, 나온 것은 뜻밖에도 문주였다. 그의 얼굴을 대하였을 뿐으로, 순이는 이미 뺨이 달고 가슴이 울렁거렸으나,
“어디 잠깐 나갔는데……, 그래두 얼마 안 있어 돌아올 게니, 그 애 방에 들어가셔서 좀 기다리시죠.”
하고 문주가 일러주었을 때, 그는 잠깐 망설거렸으면서도, 마침내 그의 말을 좇았다.
“심심하실 텐데……, 뭐 책이라도 보시죠. 이런 건 좋아 안 하십니까?”
한 번 자기 방으로 돌아갔던 문주가 다시 누이 방으로 건너오며, 순이 앞에 내어준 것은 하이네 시집 이었다. 순이는 마땅히 뭐라고든 대답을 해야만 될 것을 알면서도, 한마디 말이 혓바닥 위에 오르지 않은 채, 그대로 얼굴만 달았다.
문주는, 자기가 그처럼 그의 앞에 있음으로 하여, 그래, 순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 것이나 아닐까?――하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는 잠깐 머뭇머뭇하다가,
“그럼, 좀 기다려보세요.”
그러한 말을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더니, 다음에 전기 축음기로써 실내악이 들려왔다.
그뒤로 순이의 가슴속에, 문주 생각은 언제고 떠나는 일이 없었다. 언제든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의 음성이 듣고 싶었다.
‘나는 그이를 사모한다…….’
제 마음속에 그러한 속삭임을 들었을 때, 가슴은 또 뛰었으나, 구태여 부정 하려고도 안 하였다.
그러면서도――아아니, 그러니까 도리어, 인주의 집을 전과 같이 찾아갈 수 없는 순이다. 인주나 문주의 얼굴을 대할 때, 자기가 왜 이렇게 청진동 골목을 찾아 들어왔나 하는, 그 은근한 마음 속이, 여지없이 그들 앞에 드러나고야 말 것만 같았다. 그래, 사실, 순이는 그의 집 근처까지 갔으면서도 마침내 현관에 달린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돌아오기를 두 차례나 하였다.
더구나 어느 때, 기약하지 않고,
‘나는 이러하여도 그이는 나를 아무렇게도 생각 안 하는 게라면 으떡허누?…….’
그러한 생각이 가슴 한구석에 일자, 소녀의 마음은 새삼스러이 놀랍고 또 슬펐던 것이나, 사실은 문주 편에서도 은근히 사모하는 정은 순이에게 지지 않아, 마침내 그는 한 장의 편지를 순이에게 전해왔다.
“몇 번인가 주저하였사오나, 마침내 참지 못하고 이 글월 올립니다. 행여나 저를 흔히 있는 경박한 청년처럼 아시지 말고, 부디 끝까지 읽어주십시오……”
이러한 서두로 시작되는 그 편지는, 그것이, 곧, 문주가 순이에게 처음으로 보낸 엽서였던 것이다.
그동안 어찌하여 그리 한 번도 놀러 오지를 않았느냐는 말과, 언제든 고독한 몸은 얼마나 순이가 찾아주기를 고대하였는지 모른다는 말…… 이미 알고 있겠지마는, 자기는 문학을 지망하여, 그 방면에는 충분한 소질이 있다고 자부하나, 집안에서는 아무도 너무나 이해가 없다는 말……, 아직 서로 조용히 만나 이야기를 해본 일은 없지만서도, 순이만은 능히 자기의 뜻을 알아줄 것같이, 그렇게 자기는 굳게 믿고 있다는 말……,
그리고
“부디 이번 일요일에 꼭 놀러 오십시오. 시간은 작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고 오시고 싶으신 때 오십시오. 저는 온종일 집에 있을 터이니까.”
하는 말로, 그 편지는 그쳤다.
편지를 읽으며, 그의 가슴은 얼마든지 두근거렸다. 자정이 넘었건만, 그는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졸리거나 그래서는 물론 안 될 일이다. 그는 집안사람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오늘 오후에 배달된 이 편지를 이제야 남몰래 손에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이도 나를 이처럼 생각해주나!’
편지를 다시 접어 봉투에 넣고, 그것을 가슴에 품어볼 때, 순이는 저의 험한 숨소리를 어쩌는 수 없었다. 가슴에 품은 문주의 편지가 천 근 무게를 가져 제 몸을 누르는 듯싶었으나, 하지만 그것은 조금도 불쾌한 무게가 아니었다.
그래도, 문득 이 편지가 자기에게보다도 형에게 먼저 읽혀졌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이 생각이 미쳤을 때, 그는 당황하였다.
“이를 어쩌누? 이를 어쩌누?…….”
무심코 입 밖에까지 내어, 순이는 그러한 소리를 중얼거려보고, 다음에 또 당황하여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오늘도 하루 종일, 각기 자기 일에 바빴던 식구들은 숨소리도 곤하였다.
만약 문주에게서 이러한 편지라도 올 줄을 알았다면, 순이는 물론 열 일 제쳐놓고 문간에 나가 서서, 배달부 오기만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터이라, 그래, 정작 문간에서,
“이순이, 편지요.”
하고 외쳤을 때, 마당에서 막 발을 씻고 난 정이가,
“또 뉘게서 왔누? 밤낮 만나는 동무끼리 편지는 무슨 편지냐?”
그러한 말을 중얼거리며, 문 안에 떨어진 편지를 집으러 가는 것을,
‘또, 숙잔 게지…….’
그렇게 생각하고 집어다 주기만 방 속에서 기다렸던 것이 잘못이었다.
“얘애, 이거 남자한테서 온 편지가 아니야?”
형이 반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다음에 곧 이어서,
“정문주라구, 너, 아아니?”
그렇게 묻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차?’
하고 순이는 뉘우쳤으나, 이미 하는 수 없었다.
얼떨결에, 우선,
“모르는 사람인데……어디?”
하고, 짐짓 태연한 모양을 꾸미려 애쓰며 미닫이 밖으로 손을 내밀려니까 정 이는 또 한 번,
“정말 모르는 사람이야? 정문주라구…….”
하고, 다지고 나서, 순이가 일껏,
“응. 정말이야. 허지만 이리 내애. 어디 좀, 보게 !”
하고, 이번에는 미닫이를 활짝 열고 마루까지 나갔으나, 정이는 저 만치 물러서며,
“정말 모르는 남자한테서 온 게라면 내가 먼저 봐야 헌다. 너두 어느새 사내 녀석들한테서 편질 다아 받게 됐니?”
그러며, 부욱, 겉봉을 뜯었던 것이다. 순이는 형이 나중 한 말에 그만 얼굴이 달고 풀이 죽어, 그가 끝까지 편지를 읽도록 그냥 버려두지 않을 수 없었다.
다 읽고 나자, 정이는 입가에 뜻 모를 웃음을 띠고,
“웬 아인지 미친 아이구먼. 본 일두 없다는 네게다가, 뭐 왜 요새는 놀러 오지 않느냐, 어쩌냐, 순이씨만은 내 뜻을 이해해주시겠지, 어쩌겠지……”
한 번, 동생의 홍당무가 된 얼굴을 흘낏 보고, 봉투와 한데 겹쳐 두 쪽에 낼 듯하다 말고,
“이런 건 그저 밑씻개나 해버려야…….”
하고, 마루 끝에 놓여 있는, 그따위 휴지 넣어두는 줄궤짝에다 팽개치고,
“거지 같은 거 읽다가 괘애니 시간만 늦었지?”
중얼중얼하며 방으로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는 그냥 나가버렸던 것이다.
형이 밖으로 사라진 뉘, 순이는 황망히 줄궤짝 속에서 편지를 집어내었던 것이나, 곧 읽어보는 도리가 없었다. 온종일 불단집에서 김칫거리를 만지던 어머니가, 좀 쉬어야겠다고 돌아오고, 뒤이어 효섭이가 학교서 와서는, 무슨 상자를 만든다고, 나가 놀지도 않고, 마루 끝에서 마분지 쪽을 가지고 골몰하여, 그래 순이는 마침내 모든 식구가 잠들 때까지, 문주의 편지 읽기를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옳지. 변소엘 들어가면…….’
하고, 그러한 생각을 못하였던 것이 아니지만,
‘그이가 첨으루 내게 보낸 편지를 그런 데서 보아서야…….’
하는 마음이 그것을 주저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자기가 위하고 아끼는 문주의 편지가, 마치 불량소년의 것이나 한가지로 거지 같은 것이니, 밑씻개나 할 것이니 하고, 형의 손으로 아무렇게나 휴지 궤짝 속에 버림을 받은 생각을 하면, 뭐 그이와의 사이가 형에게 알려졌다고,
“이를 어쩌누? 이를 어쩌누?”
하고 당황해한다거나, 그러기보다도, 먼저 형에게 대하여 분노를 느껴야만 옳은 것이 아닌가?――하고 순이는 험악한 표정을 지어도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문득, 형은 모든 일을 다 눈치 채고도 짐짓 그런 것이나 아닌가?――하고, 그러한 의혹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듯도 싶었다. 아아니, 분명히 그러하였다. 문주의 편지를 읽기까지 하고서 자기와 문주가 전연 모르는 사이라고 그러한 것을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형은 겉으로는 부러 모른 체하고, 속으로는 은근히,
“나, 나간 댐에 나중에 읽어보렴……”
그러한 뜻을 품어 아주 대수롭지나 않은 것처럼 문주의 편지를 그렇게 줄궤짝 속에다 팽개치고, 그러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한 것을 뒤늦게 이제야 깨닫자, 순이는 또 제풀에 얼굴이 붉어지면서도, 한편, 마음에는 기쁨이 꽉 찼다. 형 이 문주의 편지를 찢어 없애거나 그러지 않고, 자기 눈앞에다 남겨두고 나갔다는 것이, 곧 자기더러 읽어도 좋다고 허락한 것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허락한 것은, 또, 문주와 사귀어도 좋다고, 이번 일요일에 그의 집을 찾아가도 좋다고, 그러한 것까지 허락한 듯싶게 생각되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문득, 문주는 대체 어떻게 우리 집 주소를 알았나?――하고 새삼스러이 그러한 것에 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잠깐 어리둥절하였으나,
‘그럼, 혹시 그이는 언제 내 뒤라도 밟아, 우리 집을 알고 간 것이나 아닐까?……’
하고, 그러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순이는 수치와 또 굴욕으로 하여, 그만 귓바퀴 까지 새빨개졌다.
신축한 양관 안에서 호화롭게만 지내는 그이의 눈에, 우리 집 꼴이 얼마나 을씨년스럽고, 또 궁상맞게 비쳤을까?――하고 생각하니, 순이의 얼굴은 얼마든지 더 익어 올랐다.
‘허지만, 내 뒤를 따라오다니. 그런, 정말 불량소년이나 하는 짓을, 아무러기루서니, 그이가 할 리야…….’
하고, 순이가 한 번 돌이켜 생각하자,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은, 저를 처음으로 문주 집에 데리고 갔던 숙자(淑子)다.
‘오오라, 그럼, 숙자한테서 그이가 내 집 주소를 알아가지구…….’
그래, 이렇게 편지를 한 것이리라 생각해보니, 역시 그 추측이 옳을 듯싶었다.
‘그래. 그래. 그이가 우리 집은 왜 쫓아와봤겠어. 자기 누이동생 인주를 통해서 숙자한테 우리 집 주소만 알아가지구,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낸 게지……’
그 일로는 비로소 마음에 안도를 갖는 순이였으나, 그와 함께 이번에는,
‘그럼, 그이가 우리 집 형편을 전연 모르니까, 이러한 편지도 내게 준 것이지. 만약 우리 아버지가 보잘것없는 집주릅이구, 우리 언니가 카페 여급이구, 그러한 것을 알기만 한다면, 결코 내게 호의를 가져주지는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냐?…….’
하고, 그러한 새로운 불안에 다시 사로잡혀, 그의 좁은 가슴은 달대로 타서, 시계가 어느덧 두 시를 치는 것도 몰랐다. 시계 치는 소리와 함께, 오늘도 술이 취한 정이가 이제야 돌아와 대문을 여닫는 소리도 못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뭐, 순이는 객쩍게 근심할 것이 없었다. 문주는 숙자와 자기 누이의 주고받는 이야기로 대개 순이네 집 사정을 눈치 채었고, 이를테면, 그러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도리어 순이에게 좀더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스물이나 그밖에 안 된 젊은이 ―더욱이, 예술을 좋아하고, 제 자신 서정시라도 몇 줄 쓰려는 젊은이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툭하면 감격하는 경향을 갖는다.
문주가 처음 순이를 대할 때, 그 아리땁고 또 총명한 얼굴에 얼마쯤 매력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이라면, 몇 번 안 보는 사이에 그러한 편지를 써 보내도록 급격하게 연모하는 정을 그에게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순이가 집주릅의 딸로, 그의 형 되는 사람은 또 카페의 여급으로 그 살림살이가 웬만치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순이는 새로운 빛을 그 온몸에 띠고서 문주의 머릿속에 군림하였던 것이다.
그와 함께 문득 생각나는 것은, 바로 수일 전에, 순이를 자기 집 담 밖에서 보았던 사실이다. 그날 오후에 그는 아버지 서재에 무엇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창 너머로, 자기 집 문간에서 잠깐 머뭇거리는 순이를 발견하였다. 그는 분명히 문주의 방 쪽을 쳐다보는 듯싶었다. 남향한 이 층 양옥에 문주의 방은 동편 끝에 있었고, 아버지의 서재는 서편 끝에 있었으니까, 순이는 그렇게 당치도 않은 방향에서 문주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을 것이다.
‘왜 얼른 들어오질 못하고 저러나?…….’
생각을 하며, 자기 편에서 먼저 창을 열고, 그를 부를까?――하였던 것이나 마침내 순이는 다시 한 번 이 층 동편 끝의, 커튼 내린 창을 쳐다보고는 채 문주가 어쩔 수 있기 전에 문 앞에서 사라져, 골목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 당시에는,
‘왜, 일껀 왔다가 그냥 가누?…….’
그것이 의아스러워,
‘하여튼 인주를 보러 온 거라면, 그렇게 망설거릴 것은 없을 터인데……, 그럼, 호옥, 인주가 아니라 나를 만나러 오기는 왔어도, 종시 용기가 안 나서?…….’
그렇게까지도 생각해보았으나.
‘아무러기루서니……’,
어림도 없는 자기의 생각을, 자기 스스르 즉시 부정해버리고, 그대로 무심하였던 것이, 순이의 집안 사정을 알고 보니, 문주는 그때 순이가 그렇게 한참을 망설거리다가 그냥 돌아간 가엾은 심사를, 능히 이해할 수 있을 듯싶게 생각하였다.
사실, 순이는 그날 인주가 아니라, 그 오빠 되는 문주, 자기를 보러 왔던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야 도무지 자기 방 유리창을 그렇게 한참씩 쳐다보다가, 그대로 돌아간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순이는 분명히 자기를 만나보고 싶어 왔던 것이나, 차마 용기가 나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그냥 수줍다거나 그러해서가 아니리라. 필연코 너무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기 집안이, 종시 그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그래, 끝끝내 자기와 만날 것을 단념하고,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분명히 그렇다.’
문주는 어느 틈엔가 혼자 그렇게 작정을 해버리고, 가엾은 소녀를 위하여 그 마음이 아팠다.
그의 눈에는,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초가집 속에서, 애달픈 사랑을 좁은 가슴속 깊이 지닌 채 끝끝내 그리운 이 앞에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나날이 병들어가는 순이의 모양조차 역력히 보였다.
문주는 순이가 다시 찾아오는 때, 그에게 향하여, 자기도 그를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있는 것을 알려주리라 결심하였다. 그래, 그는 오후면 언제고 창 앞에 앉아, 커튼 틈으로 끊임없이 문전을 바라보았던 것이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순이의 모양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흘, 나흘이 지나고 닷새째 되는 날, 문주는 드디어 참지 못하고 순이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어느 틈엔가, 그동안 보지 못하는 사이에, 견딜 수 없게시리 순이를 그리고 있는 자기 마음에 스스로 놀랐던 것이다. 과연 자기의 추측한 바와 같이, 순이가 자기를 연모하고 있는지는 꼭 장담 못할 일이다. 다만 문주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순이가 자기를 생각하고 있든 없든 간에 자기가 그지없는 열정을 가져 순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문주는, 그래, 마침내 순이에게 편지를 전하고, 만약 자기가 전날 추측하였던 것은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그래 순이가 자기의 사랑을 용납해주지 않는 일이라도 있으면 어찌할까?――그 마음 속에 초조와 불안이 그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이 남몰래 만나, 서로 은근한 심사를 하소하고, 그래 몸은 각각이어도 마음은 하나인 것을 서로 분명히 알았을 때, 그들 소년과 소녀는 함께 감격하였다.
감격한 속에 덧없이 때만 흘러갔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까지 그렇게 감격 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나이들이 어리니, 뭐 결혼이야 급히 서두를 것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각기 부모에게 자기들의 사이를 고하고, 어엿하게 혼약이라도 맺자는 것이, 문주의 그윽한 생각이었었는데, 말이 그러하지, 대체 순이 말을 하여서 자기의 어버이가 쉽사리 그들의 사이를 허락해줄 것인지, 도무지 자신이 생기지 않아, 그래. 문주가 망설거리고 있었을 때, 자기들의 사이는 자기들이 고하기보다 먼저 어버이들 편에서 어떻게 알아가지고, 하룻날, 문주는 자기 집 문객 한 명에게 안동³⁴되어 전주, 큰형이 있는 곳으로 보냄이 되었다.
물론, 그보다 먼저 아직도 어린아이라고만 여기고 있던 셋째 아들 문주가, 벌써부터 어떤 여자를 데리고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의 어버이는 우선 놀라고, 다음에 당자를 불러, 준절히 꾸짖었던 것이다. 뭐 부모는 아직도 어리다 하나, 생각해보면 저도 이미 나이 스물둘이라, 그 나이면 차차 이성도 그리울 것이라, 그래, 한때 호기심으로, 어떻게 아는 여자와 그처럼 왕래가 있는 것이게니――하고, 그쯤 생각하여, 그래, 좋은 말로 몇 마디 타이르면, 두말없이 그 버릇 고치려니――하였던 것이, 문주의 태도는 참말 뜻밖의 것이어서, 자기는 설혹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순이를 잊을 수는 없다고, 만약 억지로라도 자기들의 사이를 가르려 한다면, 자기는 거침없이 집을 나갈 결심이라고, 의외에 흥분이 심하여, 그의 어버이는, 이것이 모두, 아직 뇌가 굳지 않은 아이가 유해한 문학 서적을 너무 탐독한 데서 온 병이라고, 얼마 동안은 어리둥절한 채 내외가 서로 얼굴만 마주 바라보았던 것이나, 물론 언제까지든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저 그중 좋은 해결책이란, 그처럼 간절히 원하는 바이니, 문주의 소청을 들어주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나,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아무렇기로서니 집주릅의 딸로는 저울이 너무 기울었고, 설사 가문이라는 그러한 것을 일체 무시한다손 치더라도, 카페 여급이 바로 색시의 형이어서는 환경이 또한 아름답지 못한 터이라, 열 번 생각해도 며느리를 그러한 집에서 구하기란, 될 뻔도 않은 소리 였다.
하지만 제 말 안 들어주면 집을 나가겠다니, 이를 또 어찌해야 좋을지 아버지는 그렇게 일러도 너무나 고집 센 아들에게 문득 화를 벌컥 일으켜,
“이놈이 부모를 협박하는 셈이냐? 나가거나 죽거나 조금도 두렵지 않으니, 해보려거든 네 맘대로 어디 해보아라!”
하고, 한번은 소리도 쳐보았으나, 가만히 내버려두면, 좁은 소견에 족히 전후 생각 없이 집을 나가기라도 할 모양이라. 이리도 못하고 저리도 못할 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문주를 어디 시골로라도 보내어 여자와 도무지 만날 기회를 없이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지금은 한껏 흥분이 되어, 무슨 말을 하든, 귀에 바로 들어갈 까닭이 없는 일이라, 어떻게든 달래서 시골로 보내놓으면, 하루 이틀 지나는 사이. 한때 홍분도 가라앉을 것이요, 그러하면, 본래 남 유달리 똑똑한 아이라, 저도 냉정히 생각해본다면, 마침내는 제 잘못을 깨닫고 말 것은 분명한 노릇이라, 그저 어디 마땅한 데를 가려 시골로 가 있게 하는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일이라고,
딴은 그도 그럴 법하였지만, 말이니 쉽지. 지금의 경우가 경우인 때에, 어디 시골로 얼마 동안 가 있으라면, 곧 그러마고, 그 애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리는 없는 일이라, 그렇다고 스물둘이나 된 놈을 종아리를 때린다는 수도 없었고, 이것은 참 실없이 일이 난처하지 않으냐고, 한참들 머리를 앓을 때,
“가만히들 겝쇼. 어디, 제가 한번 말을 해보지요.”
하고 나선 것은 이 집 사랑에서 놀고 있는 김서방이라고, 바둑을 잘 두어 때때 주인 영감의 상대도 하였고, 약간의 전기 지식도 써먹으려면 써먹을 수 있는 것이어서, 안에서 다리미나 곤로 같은 것 병이 나면, 제 손으로 일쑤 잘 고쳐놓는 사나이였다.
저의 친부모가 그처럼 일러도 듣지 않는 문주가, 김서방 따위의 말을 귀 근처에 범접이나 시킬까 보냐고도 생각은 되었으나, 이러한 일에는 오히려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의 의견이 유력한 수가 있다는 말도 그럴 법하였고, 설혹 김서방이 용이하게 설복하는 것에 실패한다더라도, ‘밑져도 본전’이란 이러한 경우에 쓰이는 말일 게라, 그래, 되나 안 되나, 어디 말이나 해보라고 문주의, 방으로 보냈더니, 불과 이삼십 분 하여 돌아와 하는 말이 문주는 오히려 자기가 자진하다시피 하여 시골에 가 있겠다고 하였다 하는 것이 아닌가?
반은 믿으면서도 반은 의심스러워, 대체 어떠한 말로 달랬기에, 그처럼 고집 센 문주가 그리 쉽게 마음을 돌린 것이냐 물으니까, 알고 보니, 그러한 조건이면 문주보다 열 곱절 고집 센 사람이라도 듣고 말 것은 분명한 노릇이 매양 흥분된 속에 하다가는 일을 저지르기 쉬운 것이라, 이 기회에 지방으로 가서 조용히 전후사를 생각해보아, 만약 그 색시를 잊을 수 있다면 피차에 그만한 다행이 없겠으나, 가령 석 달이면 석 달 한정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잊을 수 없는 노릇이라면, 그때는 어르신네께서 그 색시와 결혼할 것을 허락하마 하셨다고, 그렇게 말을 하였노라 한다.
석 달이면 석 달 한정하고, 그동안 생각해보아도 단념할 수가 없으면 결혼시켜주마라니, 그러면 결국 지금 약혼해놓았다가 석 달이면 석 달 뒤에 결혼식을 거행해주마 하고, 그렇게 약속한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지 아니하냐?――하고, 하도 어이가 없이 물은 것에 대하여, 김서방은,
“말이 그렇죠. 지금 자제가 열병에 걸린 셈이라, 지금 같아서는 천년만년 지내도 변할 듯싶지 않게 생각을 허고 있지만, 인제 두고 보세요. 석 달은 고사허고 불과 한 달 지내지 아니하여 열이 식을 게니……”
“허지만 그때까지 두고 보아도 그 애 열이 식지 않으면 어쩌나?”
“그때는 또 그때지요. 누가 자제를 정말 장가들이자는 겝니까?”
“그럼, 이 사람아. 내가 자식 데리고 거짓말허는 게 되지 않나?”
“왜, 병부염사(兵不厭詐)³⁵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쯤, 뭐어, 죄 될 것 없습니다.”
“허지만 그것이 만전지책³⁶은 못 되는 것 같구먼.”
“그러기에, 우선 그 말로 자제를 속여서 시골로 내려 보내놓고, 한편으로는 색시 집으로 사람을 보내어 색시 부모 되는 이를 만나본다는 말씀이에요. 그 여자 부모 되는 이도 무식은 할지 모르나, 나이 먹은 사람이 분별은 있을 게라, 아적 나어린 딸자식이 외간 남자와 몰래 만난다는 말만 듣더라도 펄쩍 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제 부모한테 꾸지람이나 톡톡히 듣고 나거들랑, 남자는 벌써 자기 부모 말씀을 순종하여, 모든 것을 단념하고 시골로 내려가버렸노라고 그렇게 꾸며댈 말이면, 아직 나어린 여자가 그저 일시 호기심에 자제와 만났던 게지, 무슨 애정이 그리 깊었겠습니까? 영락없이 자제 일을 단념해버릴 것이요. 그럼, 그다음엔, 또 시골 내려가 있는 자제한테다, 여자는 자기 부모에게 야단을 만나고 벌써 모든 것을 단념해버렸는데, 이편에서만 그렇게 죽자 사자 허고 생각을 한대야, 오직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수단을 쓴단 말씀이에요. 그저, 이편에 와서는 저편이 단념했다, 저편에 가서는 이편이 단념을 했다, 이러기만 하면 문제는 영락없이 해결될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소위 반간고육계(反間苦肉計)³⁷라는 게죠.”
하고, 김서방은 평소에 자기가 즐겨 읽은 『삼국지 (三國志)』가 결코 소일만 삼아 읽은 것이 아니라는 듯싶게, 장황하게 그러한 말을 늘어놓았다.
문주 아버지는 아무리 하여도 자기의 공명(孔明) 선생 술책이 정당한 것은 못 되는 듯싶어, 마음에 매우 께름칙하였으나 그의 주저하는 빛을 보고, 김서방이 다시 입을 열어,
“아, 자제를 위하여선, 지금 경우에 무슨 수단은 안 써볼 땝니까? 그저 제 말씀대로만 하십쇼.”
하고 일러주는 말에, 달리 좋은 방도를 갖지 못한 이 가엾은 유황숙(劉皇叔)은, 하는 수 없이 그의 의견을 좇기로 마음에 작정을 해버렸던 것이다.
집주릅 영감은 그러나 같은 서울 안에서 이러한 음모가 계획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한 음모커녕은, 순이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 하는 것부터, 전연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나. 그래, 그날도 그는 다른 때나 한가지로, 조반을 치르고는 어슬렁 어슬렁 싸전 가게로 나갔다.
내일모레면 창경원의 벚꽃이 한창이라고, 마침 연일 계속되는 좋은 날씨에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는 때, 세월이 없는 가쾌들은, 그 음침한 방 속에 가 들어박혀 있어, 어제나 오늘이나, 하잘 수없어 붙잡느니, 손때가 까맣게 묻은 장기짝이다.
“아, 이 사람. 오늘 학교 간다더니, 왜 안 갔나?”
오늘은 싸전 가게 주인이 장기판에 한몫을 끼어, 그래, 예전 경성 감옥 간수는 옆에서 무루하게 구경만 하고 있던 것인데, 영감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는 말동무가 생겼다고 반색을 한다.
“아, 벌써 가아? 이따 두 시에 시작인데……”
영감은 쌀섬 위에 놓인 조간을 집어들고 방으로 들어가며 대답하였다.
“뭐어, 저어, 입학식인가?”
“입학식은 접 때 했구, 오늘은 후원회 발기회라네.”
“뭐?”
“후원회 발기회.”
“그 뭐 허는 횐구?”
“학교에다 돈 기부허라는 게치 별겐가?”
“저어, 월사금 말구 또 따루?”
“그러니까, 우리 형세에 바루 무슨 자식 공부시킵네――그러겠느냐 말이지. 아마 또 한 오 환 내야만 될 게라…….”
“오 환? 흐으음…….”
오 환커녕은, 단돈 오 전이 지금 염낭³⁸ 속에 들어 있지 않은 동관은 눈을 둥그렇게 떴으나, 그렇기는, 말을 한 영감도 매한가지였다. 효섭이를 이번에 심상고등소학교에 입학을 시키느라 적쟎이 든 전후 입비는 큰딸 정이가 변통을 하였던 것인데, 이제 후원회비를 또 만들어달라기가, 정히 마음 괴로웠던 것이다.
‘온 빌어먹을……’
물론 전향한 까닭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제는 사람들도 약아만 져서, 전같이, 으레 집주릅을 사이에 두는 일 없이, 어떻게 직접 저희들끼리 우물쭈물 팔고 사는 수가 많았다.
‘원, 양조장 뒤, 열여덟 간 집을 파는 줄만 알았더면, 지금 돈 오 환에 이렇게 머리를 앓진 않으련만…….’
영감이 무심코 입 안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동관은,
“뭐어? 양조장?”
하고, 돋보기안경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뜬다.
“아, 왜, 엊그제 팔렸다는 양조장 뒷집 말야.”
“오오, 그, 장진팔이 집?…… 온, 제에기 그렇게 소문 없이 내놨다가 작자 나오면, 구문 없이 자기들끼리 팔고 사기가 일쑤니, 우린 꼭 굶어 죽으라는 게 아니야?”
하고, 코를 벌렁거리며 중얼대는 것을, 옆에서 말없이 장기만 두고 있던 싸전 가게 젊은 주인이 말참건을 하여,
“참, 그, 양조장 뒷집을 산 사람이, 얘길 듣고 보니, 평안도 사람이라는데, 약거간 댕기던 이라는군요.”
“약거간? 약거간이 웬 돈이 있어서 칠천여 환씩 허는 집을 다 사구 그랬누?”
“그러기에 팔자가 좋다는 게지. 그 사람이 그게 제게 돈이 있어 산 게 아니라, 아들이 사주었다더군요.”
“아들은 뭣 허는 사람인데?”
“광산 기수라는군.”
“광산 기수라니, 그럼 전문학굘 나온 사람이란 말야?”
“아, 어엿한 고등공업학교 출신이랍니다그려.”
“그, 약거간이, 웬 돈으로 아들 공부는 그렇게 시켰누?”
“그것두 다아 제 복이죠. 보통학교버텀 공부두 잘허거니와, 아이가 또 참해서, 그래 그 동리, 부자가 그냥 버려두기 애석하다구, 형제를 다달이 이십 원씩이라든가, 삼십 원씩이라든가, 그렇게 대 주었다는군요.”
“형제를 대주다니? 그럼. 그 약거간이, 광산 기수 다니는 사람 말구, 아들이 또 있었던가?”
“광산 기순 둘째 아들이구, 큰아들이 또 있다는데, 그 사람은 의학전문학굔가 졸업허구, 지금 대구라나 어디 도립병원의 의사루 가 있는데, 오늘까지 꼭 삼 년 동안을 한 번 거르지 않구서 십 원이라든가, 십오 원이라든가, 자기 월급에서 떼서 저의 집으로 부친다는군요.”
“허어, 둘째 아들은 또 집 사주구?…… 그저 사람이란 후분⁴⁰이 좋아야 허는 겐데, 그 약거간이 아들을 잘 둬서, 참 자식 덕 보는구먼.”
싸전 가게 주인과 동관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영감은 신문을 뒤적거리며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온, 참말이지, 누군, 아들을 잘 둬서…….’
그래, 그렇게 늘그막에 칠천여 원짜리 뎅그렁 한 기와집 사들고, 만판 호강을 하는 것인가?――하고 생각하니, 영감은 자기 신세를 돌아보아, 가슴 한구석 에 슬픔이 샘솟듯 하였다.
그는, 그 이야기에 추연⁴¹한 기색을 띤 자기의 얼굴을 곁의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 꼭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나, 물론 그 눈에 글자 한 자 들어갈 리 없었다.
충섭이란 녀석이, 뭐, 이번 대회에 뽑히기만 하면 동경으로 원정을 가게 되느니 어쩌니 하고, 보름 만에 바람개비같이 집에 들렀다가는, 다시 바람개비같이 나가버린 지가 또 보름이 되어온다.
‘고얀 자식……, 나야, 물론, 내 복이 없어서 그러한 게니, 뭐 이제 와서 자식 탓해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러구 돌아댕기며, 불쌍한 제 누이 고생시키는 게 가증허지…….’
그래도, 저나 큰 실수 없이 저대로 살아간다면, 그것만이라도 다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인섭이는, 이눔, 대체, 어디 가 죽었냐? 살았냐?……’
이번 음력 오월이면, 아들이 집을 나간 지 꼭 여섯 해가 되는 것이다.
‘필시, 이눔이 죽었지, 죽었어. 만주 벌판이 어떤 데라구, 어림없이 들어가가지구……, 설혹 죽지 않었더래두 제가 성공은 못했지……, 만약 성공을 했다면. 여태 아무 소식이 없을 리 있나? 저두 자식 된 도리에 집 버리구 나갔다가 성공은 뭇허구, 그래, 부모 볼 낯 없어 뭇 들어오는 게지…….’
그는 그저께 온종일, 늙은 마누라가 울던 생각을 하고, 코허리가 시큰하였다. 다른 때 모양으로, 팥을 안 두고, 그날 아침은 흰밥에다, 무 맑은장국이어서,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고 무심코 자기가 물은 말에, 마누라는 벌써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 가지고,
“영감. 잊으셨소? 오늘이 삼월 초여드레가 아니요?”
하고, 일러주는 것이나, 삼월 초여드레가 대체 무슨 날인지, 얼른 생각이 돌지 않아, 멍하니 마누라 얼굴을 바라보려니까, 책보를 싸고 있던 순이가 대신 나서서,
“오늘이, 왜, 큰오빠 생일 아네요?”
하고, 대답하는 그 한마디 말에, 마누라는 그만 참지 못하고 어어이, 어어이 소리를 내어 느껴 울었던 것이다.
영감은 신문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 어디 가나?”
하고 묻는 동관의 말에는 대답을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물론, 그곳을 나와서 갈 곳이란, 자기 집밖에 없는 것이다.
영감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문고리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마누라가 또 불단집에 가 있는 것이 분명하여, 영감은 그 집 대문으로 가서
“효섭아아.”
하고 외쳤다. 어째, 자기 목소리에 울음이 섞인 듯싶은 것이, 그의 마음을 좀더 비감하게 해주었다. 그는 침 한 덩어리 삼키고, 헛기침을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효섭아아.”
하고 불렀다.
웬만큼 큰 소리로는 한두 번쯤 불러서 마누라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가 세번째 부르려 하였을 때, 마침내 건넌방에서 이 집의 며느리가,
“갑순 할머니. 나가보세요. 갑순이 할아버지께서 아마 오셨나 봅니다.”
하고, 그렇게 일러주는 소리가 들리고, 다음에, 걱정과 가난으로 하여 앙상하게 뼈만 남은 늙은 마누라의 모양이 문간에 나타났다.
“저어, 열쇠 좀 줘어.”
“지금 학교 가시나요?”
“학교야 두 점이지만, 좀 놀려구…….”
집으로 돌아가, 어두컴컴한 방 안에 가 홀로 앉아 있었을 때, 영감은 문득,
‘이년이 또 간밤엔 어디서 자구 안 들어왔누?…….’
하고, 큰딸 정 이의 일이 궁금하였다.
하기야, 밖에서 자고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어제가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일이 달에도 서너 번은 있었다. 여급 나가서 석 달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밤에 안 들어오고 이튿날 아침에야 돌아온 정이를 보고, 근심으로 하여 하릇밤을 꼬박이 새운 늙은 어머니가, 웬 까닭이냐고 물으니까, 딸의 태연스러운 대답은 이러 하였다.
“아이. 모두들 달려들어 술을 먹이는구료. 못 먹는대두 막무가내지? 그래 곯아떨어진 걸, 동무들이 이 층에다 갖다 뉘어줬구료. 입 때 정신 모르구 자다 왔는걸.”
두번째 안 들어왔을 때도 역시 이유는 같았고, 세번째도 그러하였다. 그래, 그뒤로는 집안에서, 일일이 그러한 것 캐어묻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것이나 때때로,
‘혹시나?·… ‥’
하는 의혹이 들 때, 그것은 영감의 마음을 어둡고 슬프게 해주었다. 그러나, 설혹, 정이가 밖에서 어떠한 아름답지 않은 일을 하였다손 치더라도, 노인에게 그것을 꾸짖고 나무랄 권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 애가 몸을 망치더래두, 그건 모두 제가 애비 에미 잘못 만난 탓이 아니냐? 오라비 놈들이 몹쓸 놈들이기 때문이 아니냐?…….’
그러니까, 노인의 마음은 좀더 슬프고 좀더 어두웠다.
노인은 참말 땅이라도 꺼질 듯싶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보고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 때, 눈물은 두 뺨에 흘러내렸다. 그는 또 한 번 한숨짓고 권연에 불을 피워 물었다. 그때, 밖에서 이로나라――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황망히 손등으로 눈을 씻었으나, 그것은 도무지 처음 듣는 음성 이어서,
‘누군구? 올 사람이 없는데―’
의아스러이 생각하며 나가보니까, 코밑에 몽당수염을 기른, 한 사십 되어 보이는 평복한 사내가, 닳아서 글씨가 분명치 않은 문패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저어, 이 댁이 이순이라구, 순정녀학교 다니는…….”
하고, 말끝을 어물거리며 영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예에. 이순이는 내 딸이오마는 그래, 어디서 무슨 일루 오셨나요?”
순이 아버지라는 말을 듣더니, 그 사내는,
“아, 그럼, 영감께서 바루 이순이의?……, 첨 뵙습니다. 저는 청진동 정의사 댁에 있는 김덕수라구 합니다.”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고 나서,
“다름이 아니라, 따님에 관해서 조용히 좀 여쭐 말씀이 있어서……”
하고 영감의 어깨 너머로 대문 안을 기웃하는 꼴이, 뭐, 내외할 사람이라도 없거든, 안으로 좀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듯 싶다.
“따님이라니, 그럼, 내 큰딸 말씀이오? 또는 작은딸 말씀이오?”
“저어, 그러니까, 작은따님이 되시나? 이순이라고…….”
혹, 정이 일로 해서 왔다면, 원래, 그 애는 카페 같은 데 있어, 아는 남자도 많은 터이라, 모르는 남자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용혹무괴⁴³한 일이겠지만, 순이 일로 왔다는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어서, 영감은 잠깐 고개를 기웃거렸으나,
“하여튼, 누추한 곳이나마 잠깐 들어오시교오.”
하고, 앞장을 서서 방으로 들어가, 객과 주인이 자리를 나누어 앉은 뒤에
“그래, 순이 일로 오셨다니, 무슨 일인가요?”
하고, 한마디 물은 것에 대하여, 그 김덕수의 대답은 열 마디도 더 되어, 그것은 참말 노인으로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 영감의 작은따님의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여, 지금 청진정 정의사 댁에서는 아주 난리가 나다시피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노인은 처음에,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아적 열일곱에 지나지 않은 어린 계집애가 아니냐? 그것이 바로 일 년이나 전부터 남자와 알아가지고, 사랑이니 무엇이니 하고, 시큰둥하게 놀리라고는 도무지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인 것만 같아서,
“원, 아아무러기로서니, 그 어린게…….”
하고, 의심스러이 김서방의 얼굴을 바라보려니까, 그 사내는, 바로 영감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
“그렇게 말씀허시는 것도 괴이치는 않습니다마는, 그러기에 여기 증거 물품을 가지고 왔습지요.”
하고. 조끼 주머니에다 손을 넣는다.
증거 물품이란 말부터 불안스러운 것이어서, 영감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대체, 저 사람의 주머니 속에서 무엇이 나오려누? ― 하고, 이윽히 지켜보려니까, 그는 꽃무늬 놓은 양봉투를 내어 놓으며,
“자아, 이걸 좀 보십쇼. 이게 바루 어제 오후에 저이게로 배달된 따님의 편집니다.”
하면서, 인제도 할 말 있느냐는 듯이 얄밉게 생글생글 웃는다.
“내 딸이 한 편지?”
하도 뜻밖인 통에, 영감은 잠깐, 자기 앞에 놓인 편지와, 김서방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만 있다가, 급기야 집어보니, 겉봉 뒤에는 아마 영어라는 것인지, 뭐 알지 못할, 글씨가 몇 자 적혀 있을 뿐이어서, 발신인의 주소 씨명은 도무지 분명하지 않아도, 앞쪽에,'靑進町 ―三七番地, 鄭議院內, 鄭文柱氏 殿〔청진정 137번지, 정의원내, 정문주씨 전〕이라 씌어져 있는 글씨는 두 번 볼 것도 없이, 틀림 없는 순이의 필적이었다.
입맛을 한 번 쩍 다시고 이번에는 속에 든 편지를 꺼내어보니, 사연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어저께도 명치정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곧 청진정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으나, 나온 사람이 인주여서, 다른 말은 도무지 못하고 끊었었노라고, 혹시 병이나 난 것이 아닌가 하여, 그 염려로 간밤은 꼬박이 새우고 말았노라고, 곧 답장을 달라는 것이었다.
읽고 나자, 굴욕과 또 분노로 하여, 영감은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 올랐다. 그 얼굴을 흘낏 보고 김서방이라나 하는 사나이는 가장 은근한 어조로,
“그만허면, 영감께서도 아셨겠죠. 이렇게 편지 왕래가 벌써 일 년 전부터 있었던 모양이란 말씀예요. 그야, 남녀 칠 세에 부동석이라던 예전과는 달라서, 시체는 자유연애라구 자기들끼리 알아가지고, 서로 교제하는 중에 피차 의합〔意合〕하면 결혼하는 일이 많이 있는 터이라, 뭐 이번 일을 꼭 책을 잡을 것은 아니겠습니다마는, 나이나 좀 들었다면 또 몰라도, 이건 피차에 그저 공부에나 전심을 해야 할 어린 학생들이라, 지금 이러는 것이 공부에 크게 방해가 될 것은 물론이요, 또 지각들 없이 언제 어떤 아름답지 않은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더구나 학교 당국에서 알고 볼 말이면, 즉각에 퇴학 명령이 내릴 것은 정한 노릇이라, 그렇게 된다면, 당자들의 전정⁴⁴도 그것으로 그르치려니와, 또 가문의 불행은 일러 무얼 하겠습니까?”
그는 잠깐 말을 끊고 노인의 기색을 살핀 다음에,
“허지만, 따져보자면 당자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게 아니요, 가정에서도 감독이 충분하지 못해서 그랬던 게니, 이왕지사야 이제 다시 말할 것 없는 게고, 그저 이제부터나 그런 일 없도록 피차 주의하시자구, 그래서 제가 이렇게 온 것입지요.”
제멋대로 늘어놓고 정의사 집 식객이 돌아간 뒤, 영감은 흡사 실성한 사람의 얼굴을 해가지고, 불단집에서 늙은 마누라가 부리나케 돌아와,
“두 점이라뇨? 벌써 새루 한 점 들어가는데, 얼른 진지 한술 뜨시구 가보세 야지.”
하고 일깨워줄 때까지, 그는 꼭 같은 자세로 그곳에 가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정동 골목 안에 올봄에 새로이 생긴 명정심상고등소학교에서는, 이날, 이 학교 후원회의 발기회가 있다 하여, 정각인 오후 두 시에, 수삼십 명의 학부형이, 그 회장인 이 층 강당에 가 모여 있었다.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차차 회를 시작해야만 마땅할 것이나, 비록 학부형 전부가 참집 〔參集〕하기를 바란다는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오십 명에도 차지 않는 인원으로는 시작할 도리가 없는 것이어서, 이 학교의 상무이사로, 후원회가 조직되는 날에는 필연적으로 그 회장에 추대될 운명을 가진, 다액 납세자 권오순씨는,
“뭐얼……, 두 점이라면, 으레 석 점이나 되어야 올 줄루들 알구 있는걸…….”
하고 그러한 말을 중얼거리며, 일찌감치 온 사람들이야 대체 얼마를 기다리거나 말거나, 자기는 교장실에 가 들어앉아, 아까부터 담배만 뻑 뻑 태우고 있었다.
그러면 강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정각이 벌써 십 분이 지났건만 사회라도 볼 듯한 이가 종시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이럴 줄 알았더면, 고지식하게 시간에 대어 오지 않을 것을 그랬다고, 잠깐 뉘우쳐도 보았으나, 저편 창 앞에 가 앉은 얼굴 검은 사내가, 특히 누구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들떼어놓고,
“아, 올같이 중등학교 지망자가 많아서야, 어디, 자식놈, 좀처럼 학교에 집 어넣겠습디까?”
하고 그러한 말을 한마디 하니까, 그 맞은편에 앉은 눈 가는 사나이가,
“그러게 말씀이죠. 몇 년 전만 해도 입학률이 고작 십 대 일밖엔 안 됐었는데, 올엔 그저 툭하면 십오 대, 십팔 대, 저엉 심한 곳은 이십 대가 넘어놓으니, 이 노릇을 어쩝니까?”
하고 대꾸를 하여, 물론 그야, 고등소학이란 따로 고등소학으로서의 사명이 있는 것이지만, 이곳에 입학한 아동의 과반수는, 그 목표가 이 학교를 졸업하는 것에 있지 않고, 불행히 금년도 중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원한을, 일 년의 수험 준비로 명년에는 기어코 풀어보려는 것에 있었던 바이라, 그래, 강당에 모인 학부형들도, 그러한 화제에는 쉽사리 흥미를 느끼고 열정을 가져, 후원회 발기회가 시작되기까지, 그것은 완연히, ‘금년도 중등학교 불합격 아동 학부형 좌담회’인 느낌이 있었다.
“하여간 불쌍한 건 아이들밖에 없죠. 그 많은 경쟁자 중에서 뽑힌다는 것은 실상 실력버덤두, 운수라구 헐 텐데, 이걸 밤에 잠을 못 자구 수험 준비라구 해가지구, 가슴을 졸이며 기대린 결과가 낙제라니, 의무교육제도두 조선엔 아직 실시가 되지 않았지만, 적어두 중등학교까지는 지원자는 다 뽑아야만 허죠.”
이번에는 문 쪽으로 그중 가까이 앉아 있는 염소수염을 기른 사내가 한몫을 끼노라니까, 아직 젊은 대모테⁴⁵ 안경잡이가 곧 그 뒤를 이어서,
“옳은 말씀입니다. 학교가 부족하죠. 너무나 부족하죠. 학교가 부족허기 때문에 수험 준비하는 아동들도 아동이려니와, 학부형들이 정신적으루 물질적으루 받는 부담이라든 손실이, 사실, 여간한 것이 아니죠. 그곳에 소모되는 것을 다른 일에 이용할 수 있다면, 좀 좋겠습니까?”
바로, 주먹으로 탁자라도 칠 듯이 연설 투로 말하고 나자,
“허지만 ―”
하고, 국방복 입고 머리 박박 깎은 사내가 차를 한 잔 먹고 나서,
“입학시험에 다 같이 합격이 못 되더래두, 실력이 없어 그런 게라면, 아동이나, 학부형이나, 어느 정도까지 단념도 하겠지만, 이건 학력이 남만 못하지 않은데, 불행히, 신체가 좀 허약하다든지 그러한 이유로 떨어뜨려버리는 건, 너무나 억울허구 분허단 말씀이에요.”
하고 장내를 한번 쭉 훑어보니까, 그 말은 모두 한마디씩 하고 싶던 말인 듯싶어,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옳은 말씀이죠. 참말 분하죠.”
“아, 분하다뿐입니까?”
“올엔, 사실, 신체검 살 너무 심허게 보았거든요.”
“그렇게까지 할 게 없을 텐데 똑…….”
하고, 잠깐 장내는 소란하였었는데, 그것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애초에 화제를 끌어낸, 얼굴 검은 사내가,
“하여튼, 한심스러운 일이죠, 아이 입학시험 뵈기는 이번이 두 번짼데, 보통학교 적 성적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보아서두, 분명히 큰놈버덤은 작은놈이 월등히 나은데, 삼 년 전에 제 형이 어렵제 않게 들어간 경기중학을, 동생 놈은 그 애를 쓰구두 떨어지구 말았단 말씀이에요. 이번에, 그놈, 시험 뵈느라구, 내가 이 관이나 가깝게 체중이 다아 줄었으니, 말할 것두 없지만……”
하고, 딴은, 참, 약간 여윈 뺨을 손바닥으로 쑤다듬는 것을 보고, 염소수염이, 또,
“허기야, 부모가 자식 때문에 애를 말리는데, 어디 학교 들여보내는 것뿐이겠습니까? 그저 이래두 걱정, 저래두 걱정……, 똑 부모 걱정만 시키구두, 다아 길러논즉슨, 그저 저는 저 혼자 컸다죠. 부모 은공은 모른단 말씀예요.”
하고, 가만한 한숨조차 토하는 것을, 다시 국방복 입은 사내가 받아서,
“자식이 부모 은공 모르는 건 다아 말해 무얼 합니까? 그저 자식 키워서, 늙은 뒤에 의지 삼자는 것은, 다아 옛날 얘기지, 이것저것 그만두구 저나 잘살아주었으면 좋겠더군요. 늙은 뒤까지 자식들루 말미암아 근심 걱정을 해서야 어찝니까?”
하고, 박박 깎은 맨머리를, 그는 손바닥으로 한 차례 문지르고 나서, 문득, 자기 곁에 가 아까부터 말없이 앉아 있는 노인이 눈에 띄자, 순간에 그는 약간 얼굴을 붉힌다. 정작 노인을 옆에다가 앉혀놓고, 이제 겨우 사십이 넘을까 말까 한 자기가, 너무나 외람스러운 소리를 한 듯싶게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좀 바른 어조로, 그 신수가 환하니 퍽 이나 품이 있어 보이는 노인을 향하여,
“영감께선 자녀를 몇이나 두셨습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나, 말씀이오? 오 남맬 두었죠.”
“오 남매요? 똑 알맞히 두셨군요. 그래, 성가〔成家〕나 모두 시키셨습니 까?”
“예에. 이번에 이 학교에다 집어넣은 놈 빼놓군, 성갈 시킨 셈이죠.”
“그럼, 아드님이 모두…….”
“예에, 아들 셋에 딸 형제죠.”
노인은 대답을 하며, 무심코 눈을 들어 장내를 둘러보았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자기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큰아드님은…….”
“예에. 그놈은 경성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허구, 지금 대구도립병원에 근무하지요.”
“허어, 그, 공부 많이 시키셨습니다그려?”
“허, 뭐어, 많이 시켰달 게 있겠소이까?……, 허나, 실상 말허자면, 그 자식 사람 맨드느라, 남만큼 애두 썼소이다.”
사실, 그 자식 사람 만들려고 갖은 애를 다 쓴 노인이었다. 그러한 것이 계집에 미쳐 집을 버리고 나간 채, 칠 년이 지나도록 소식을 끊다니?……, 노인은 다시 눈을 들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기에게 대한 흥미와 호의를 가지고 자기 하나만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자, 가만히 한숨지었다.
“허지만, 훌륭한 의사 하나 맨들어노셨으니, 좀 기쁘시겠습니까?”
모든 사람을 대표하여, 노인의 이야기를 청하는 것은, 역시 국방복 입은 사내였다.
“예에. 애쓴 보람이 있다면 있지요. 사실, 애를 공부시키느라, 이만저만하게 힘이 든 게 아니죠. 지금두 뭐 넉넉허지는 않지만, 그 당시는 참말 한때, 밥을 다아 굶어본 일이 있었던 게니까……, 아, 자식놈이 학교 갔다 와서, 곧잘 그땐 울었습늰다. 허나, 그게 호옥, 학교서 선생한테 꾸중을 들었다거나, 또는 몸이 어디 아프다거나, 그래서 우는 걸세 말이지, 이건 배가 고파서 그러는 게니, 그 꼴을 본 때, 아비 된 내 마음이 대체 어떠하였겠느냐, 말씀이요.”
말을 잠깐 끊고, 노인이 세번째 좌중을 둘러보았을 때, 그와 시선이 마주친 모든 사람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떡이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노인은 저도 모르게 침을 한 덩어리 삼키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집에서 밥을 굶을 지경이니까, 월사금 제때에 내본 일이란 또 거의 한 번두 없었죠. 그 당시와 지금과는 물론 돈의 값어치가 다르긴 하지만, 아무리 그 당시라구, 수업료 십 전이, 사실, 얼마나, 큰돈이겠소이까? 헌데, 이것을 못 맨들어줘서, 학교 가서두 애가 기를 못 피구 지내게 했으니, 그게 부모로서, 참말, 할 노릇이겠소? 아, 애들 없을 때, 내가 마누라허구 단둘이 마주 앉아서 운 일
까지 있었다니까……”
노인이 또 잠깐 말을 끊고 강당 안을 둘러보았을 때, 이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아, 그러셨겠죠.”
“허허, 참, 그…….”
하고, 그러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연단 위에 걸려 있는 시계는 두 시 사십 분을 가리키고, 노인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차차로이 모여든 수십 명의 학부형도 먼저 와 있는 이들이나 함께 입을 봉하여, 오직 노인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러한 것을 알자, 노인은 조금 전처럼, 이미 당황하여 한다거나 그러지 않고, 일종의 자신과 자랑조차 가지고서 말을 이었던 것이다.
“그래, 본래루 말허자면, 보통학교 졸업시키기두 어려운 처지에, 고등학교는 당하며, 더더군다나, 전문학교야 말이 되겠소마는, 그래도 예전과는 달라서, 학문이 없고 보면 사람은 아무짝에 쓸데가 없게 되는 게라, 그저 기를 쓰구 공부는 시켰지요. 그러나, 말이니 쉬움지, 그것두 큰놈 하나가 아니라, 둘째 놈이 또 있죠. 큰딸년 작은딸년두 있죠. 이것들을 모조리 공부시키느라, 참, 아닐 말루, 도둑질허구 비렁뱅이 짓만 빼놓군 대체 안 해본 게 없구료. 그저 이것들이 겨끔내기⁴⁶루 내게 와선, 윌사금 해주, 공책 사주, 연필 사주, 운동모자가 없수, 낼 학교서 원족 간다우……, 온, 정신이 혼란하게 야단들인데, 형편이 어디, 사달라면 사달라는 대루, 해달라면 해달라는 대루 그렇게 됐습니까? 그러니, 그것을 옆에서 보구, 마누라는 또, 전에 살던 생각을 허구서 툭허면 쫄쫄쫄쫄 눈물을 짜내죠. 요망스레 울긴 왜 우느냐구, 내가 나무란 것두 한두 번이 아니지만, 허기야, 그게 다아 내 잘못으루 인헌 것이라……, 금광에만 섣불리 손을 안 댔다면, 선친께서 물려주신 것으루, 왜, 자식놈들 그까짓 공부쯤 시키는데 그 애를 썼겠소?”
눈 가는 사내가, 그 가는 눈을 한층 더 가늘게 뜨고 물었다.
“허어, 그럼, 영감께서 금광으루?…….”
“예에. 금광에 패를 보구, 그 곤경을 당했지요. 그래두, 생각에, 자식들한테 재물은 물려주지 않드래두, 어째, 왼망은 그리 안 들을 듯싶은데, 공부를 못 시켜준즉슨 내가 죽은 뒤까지두 저희들이 그게 똑 한이 될 게라 그래 더욱 기를 쓰구 공분 시켰던 겐데, 그저 으떡해서 보통학교 마치구 고등학교 마치구 그랬는지 모를 새에, 아, 큰놈이 의학전문학교 졸업장이라구 타가지구 나오더니, 난 아직 어린아이거니 했던 그게, 아, 의사라구 뽐내는군요. 참, 내겐, 흡사 꿈꾸는 것 같았습늰다. 그래, 졸업을 허자, 이놈이 대구도립병원에 취직이 돼 갔는데, 나 보기엔 그놈이 뭐 아는 게 있을까 싶지두 않건만, 실상인즉슨, 이애가 집맥을 잘한다는군. 그래, 아주 용한 의원이라구 제법 칭찬을 받는다는데, 그야 누가 알겠소마는……, 하여튼 이놈이 내려가서 첫 달 월급을 타더니, 그 속에서 십 원 한 장을 내게 부쳐줍디다그려. 그러구 편지에다, 다달이 십 원씩 부칠 터이니, 효섭이 학비나 보태 쓰라는군. 효섭이란 게, 이번에 이 학교에 입학시킨 내 막내아들이죠?”
다시 장내에 속삭이는 소리가 일어났다.
“허어, 자제가 참……”
“그 무던허군요.”
“말이 그렇지, 저마다 못허는 일이지.”
노인은 만족한 듯이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조금 전에 국방복이 따라놓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또 다음을 이었다.
“허지만, 나는 속으루, 이놈, 실행이 젤이지, 말부터 앞서선 못쓰느니라――그랬단 말이야. 고작 두 달이나 석 달 보내군 그만둘 줄 알았거든. 헌데, 넉 달째두 오구, 다섯 달째두 오구, 아, 여섯 달째두 여전히 오는구려. 그래, 내 자식이지만서두, 내, 무던허다구 그랬죠. 무던허다구 그랬에요. 뭐, 십 원이란 돈이 대단해 그러는 게 아니라, 제 부모며, 제 동기 생각을 그쯤 허는 게 무던허다구 그랬죠……. 그랬드러니, 일곱 달째 가서, 딱, 그친다. 여덟 달째 아흡 달째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역시 마음에 서운헙디다그려. 금전 문젠 상관 아니나, 어째, 그놈이 인젠 부모와 동기를 잊어버리구 만 것만 같애서……, 허지만, 생각허면, 그두 그럴밖에. 아 저두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제 기집 멕여 살릴랴, 어린것 옷가지래두 해 입힐랴, 쓸데는 많은데, 돈 나오는 구멍은 하나라, 그, 괴이치 않은 일입늰다. 뭐, 내 자식이라구 그러는 게 아니라……”
노인이 다시 찻종을 집어들 때, 사람들은 제각기 또 중얼거렸다.
“아아무렴요.”
“아, 제게 처자가 있다면, 사실 어렵죠.”
“여보, 처자 없는 놈두, 저 혼자 쓰구 댕기느라, 제 부모 생각 않는 게 흔허디흔헌데…….”
“흔허다뿐이에요? 허지만 그것두 오히려 나은 편이구, 어떤 놈은 육십 원씩, 칠십 원씩, 타는 게 있으면서두 외레 집이서 끌어내지 못해 안달들이죠.”
이미 시계는 세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마치 이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러 이곳에 모인 듯이나 싶었다.
“그래, 큰놈은 대구서 그러구 지내구……. 다음은 내 작은놈인데, 이놈은 고등공업을 마쳤죠. 거길 마치구 광산 기수가 됐단 말씀야. 헌데, 애최, 그놈이 광산과를 지망헐 때, 난 반댈 했었죠. 왜 그런고 허니, 내가 가산을 탕진힌 게 본래 금광 때문이라, 그래 반댈 했지만, 이놈 말이, 예전과는 달라서, 뭐, 인젠 금광이래야, 모두 과학적으루 조사를 허는 게라, 전 모양으루 그냥 투기사업이 아니라는구먼. 그뿐 아니라, 정부에서두 산금장려⁴⁷에 주력허는 만치, 이를테면 국가적 사업이라, 그래, 그냥 허겠단 대루 둬버렸더니 딴은, 그놈 말이 옳아서 아, 이놈이 지금은 월급 삼백 원을 받구 창성금광에 있는데, 새루 유망헌 군데를 발견허구 볼 말이면, 와리⁴⁸를 또 먹는다는군요. 그래, 바루 이놈이, 늙은 부모 돌아가기 전에, 호강이나마 시켜주겠다구, 이번에 저어 연희장에다, 뭐, 돈 만 환 들여서 집을 짓는다구, 요샌 똑 그걸루 법석이죠.”
모든 사람의 입에서 찬탄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큰아드님 두 큰아드님 이지만, 작은 자제두 또 무던헙니다그려.”
“아, 영감께서 자제는 모두 잘 두셨는데요.”
“그 고생을 허시면서 공부시키신 보람이 과연 있습니다.”
“광산과가 그 실없이 유리헌 게거든.”
어느 틈엔가, 그곳에 다액 납세자 권오순씨가 나타나 있었다.
그는 너무 늦기 전에 그만 회를 시작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나, 아무도 그의 편을 돌아다보지 않았다. 몇 번인가 입을 열려 하면서도, 그는 못하였다. 그래 그도 사람 틈에 끼어 노인 편만 바라보았다.
국방복이 따라준 차를 또 한 모금 마시고 난 노인은, 당당한 태도로,
“그댐은, 내 큰딸년인데…….”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를 또 계속하는 것이었다…….
-끝-
2016년 6월 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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