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이욱정 감사 축복 은혜 영광 원문보기 글쓴이: 이욱정
▲ 차이코프스키. |
차이코프스키는 바이올린 연주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곡의 바이올린 독주 부분 작곡은 요지프 코테크의 도움을 받았다. 이 곡은 매우 빨리 작곡이 이루어져, 비록 2악장은 나중에 다시 쓰여졌지만, 거의 한 달 안에 곡이 완성되었다.
차 이코프스키는 당대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거장이었던 페테르부르그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인 레오폴드 오어(Leopold Auer)에게 헌정할 목적으로 그에게 작품에 대한 자문 및 초연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기교적으로 보아 도저히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초연이 거부되었다.
실 망한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을 3년 동안이나 발표하지 않고 묻어두었는데, 모스크바 출신으로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교수였던 아돌프 브로드스키(Adolph Brodsky)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에 관심을 보이면서 발표할 것을 적극 권하여 1881년 12월 4일, 빈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빈 필하모니와 협연함으로써 초연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현대 음악비평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당시 빈 음악계를 주름잡던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slick)는 “차이코프스키의「바이올린 협주곡」은 악취를 풍기는 음악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혹평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가치를 굳게 믿고 있던 브로드스키는 연주 여행 때마다 이곡을 연주하여 청중들의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그 후 아우어 교수도 이 곡의 가치를 인정하여 직접 연주함으로써 점차 유명해 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원래 헌정할 예정이던 레오폴드 아우어 대신, 초연과 이 곡에 알리는데 공로가 많은 브로드스키에게 헌정됐다.
이 작품의 특색은 바이올린 독주의 눈부신 근대적 연주기교를 충분히 발휘하였고 오케스트라에 있어서 풍부하고 색체적인 면을 볼 수 있으며, 러시아 민요의 정서와 그가 지닌 독특하고 애수에 젖은 아름다운 선율 등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독창적인 면을 볼 수 있다.
차이콥스키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단 한 곡만 작곡했지만, 세 개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도 작곡했다. 그 중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유명하다.
이 곡은 다음과 같이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llegro moderato)
제 2악장 칸초네타 -안단테 (Canzonetta -Andante)
제 3악장 알레그로 비바치시모 (Allegro vivacissimo)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 Cadenza
소
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일반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 2주제를 연주한 다음 바이올린이 그것을 받아서 연주하게
되는 반면,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게 된다. 전개부에서 화려한 바이올린의
테크닉이 펼쳐지고 폭풍처럼 터져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질주하는 선율은 가히 폭발적이다. 카덴차(Cadenza,독주자가 반주 없이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하는 즉흥 연주 부분)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고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끝나게 된다.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독주 사이의 대비감이 잘 표현 되어있다.
제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4/4박자
소나타 형식. 여느 협주곡은 처음에 오케스트라가 제1, 제2주제를 연주한 다음에
독주 바이올린이 그것을 받아 연 주하는데,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서주 다음에
대뜸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제2주제의 제시에 이어 전 개부는 제1주제만으로 펼쳐지며,
작곡자 자신이 쓴 카덴짜를 거쳐 재현부가 따른다.
조용한 서주와 함께 두 개의 주제가 제시되는데 여리게 도입 선율을 연주하고 10마디부터 제1주제를 다시 연주한다. 그리고 바이올린 카덴차가 연주되는데, 대단히 화려한 특징이 있다. 폭풍처럼 몰아붙이는 파워는 차이코프스키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에 힘입어 폭발적인 파워를 느끼게 한다. 중요한 점은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독주 사이의 미묘한 균형인데, 차이코프스키는 기교적인 카덴차와 질주하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대비감을 표현하는 데 있어 최상급의 작곡가였다.
난해한 기교로 가득 찬 제1악장 allegro moderato에서도 두 개의 주제만큼은 매혹적인 서정성을 풍기고 있기 때문에 솔로 바이올린의 노래하는 듯한 특성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빠르면서도 느리고, 서늘하면서도 격정이 넘치는 1악장은 전 악장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악장이다. 즉각적으로 빠져들기에는 다소 이질적이고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이 곡은 마치 외로운 한 떨기 장미화같다고나할까. 어딘가 고독한 이방적인 요소, 북방이면서도 동쪽에서 불어오는 듯 동풍의 서늘한 신비야말로 차이코프스키의 거절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일반적인 바이올린 협주곡이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2 주제를 연주한 다음
바이올린이 그것을 받아서 주제를 연주하게 되는 형식인데 비해서
이 곡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서주에 이어 바로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연주하게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제1악장은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장쾌함이 절묘하게 어울린 소타나 형식의 악장으로
서주에서 시작되는 주제 부분이 카덴짜(즉흥 연주부분)와 서로 밀고 당기며
계속해서 반복되다가 마지막에 절정에 이르게 되면
숨가쁘게 전개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들이 정말 눈부신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제2악장 칸쪼네타, 안단테, 3/4박자
<칸쪼네타>(작은 노래)라고 씌어 있는 3부형식. 흐느끼듯 아름답게 떨리는
제1주제의 매력은 한 번만 듣고 말 수 없는 황홀감을 안겨 준다.
슬라브적 비애감에 젖어 있는 악장이라 하겠다.관악기의 서주가 흐른 후 서정적인 주제를 바이올린이 노래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감수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음색 조절은 연주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슬라브적 애수 어린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칸쪼네타(Canzonetta)' 로 되어있는 A-B-A의 3부 형식인데,
'칸쪼네타'는 이탈리아의 포퓰러송을 뜻하는 칸초네(canzone)의 축소형으로
주로 16~17세기에 유행했던 가벼운 기분의 작은 가곡작품을 뜻하는 말로,
그냥 '작은 노래' 라고 하면 된다는군요.
흐느끼듯 아름답고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황홀한 매력에 빠지게 하는 이 2악장은
차이코프스키만의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나타나는 선율이라고 평가됩니다.
이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첼로 등 현악기들의 저음을 바탕으로
혼(Horn)과 함께 애절함을 장식하다 끝난 것 같지도 않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이어서 깜짝 놀랄만큼 강렬한 음량이 터지면서
곧바로 열광적인 3악장 연주와 연결됩니다.
제3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비바치시모, 2/4박자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제2악장에서 중단없이 계속되는데,
앞의 악장과는 달리 매우 열광적이고 웅장하다.
제1주제 는 러시아의 민속춤곡 트레파크의 음형이며, 제2주제는 씩씩한
러시아 농민들의 악곡 가락이다.
전개부는 뚜렷하지 않고 제시부가 그대로 연장된다.
allegro vivace는 러시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활발한 음악으로 첫 주제는 민속 음악적인 요소에서 온 것으로 러시아 민속 춤곡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 주제 역시 민속적인 색채가 있지만 여기에 집시 풍의 요소도 끼어 더욱 이국적으로 채색된다.
피날레. 화려하고 여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입니다.
2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하게 됩니다.
중간 부분에서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의 선율로 잠시 우수어린 연주가 이어지다가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면서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간 후
마지막에 환희에 넘치는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연주로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게 됩니다.
오케스트라의 강력한 어택과 함께 16마디부터 37마디까지 바이올린 카덴차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러시아의 민속 춤곡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3악장은 서정성과 격정 그리고 탄식과 희망 사이를 교차하고 있다. 5도음정의 관악기들과 함께 제2주제가 시작되는데 활발하게
움직이는 독주 바이올린은 절망과 희망을 교차하면서 감정의 등고선을 자극한다.
하이페츠의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은 RCA의 대표적인 레코딩 중 하나로
여러 음반에 걸쳐서 출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연주는
시카고 심포니 // Fritz Reiner(프릿츠 라이너) 지휘의 57년 녹음입니다
야
샤 하이페츠(1901~1987, 혹은 1899년 생이라는 설도 있습니다)는 20세기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러시아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3세 때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아 평생 바이올린과 함께
했습니다. 9세 때 헝가리 출신의 레오폴드 아우어의 제자가 된 그는 신동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1917년 10월 27일,
그의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의 연주는 일대 하나의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같은 해 11월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자 그는 그대로 미국에 눌러 앉게 되며, 192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죽을 때까지 미국에 살게 됩니다.
그
의 연주는 인간이 갈 수 있는 '완벽'의 경지에 최고로 가깝게 간 연주라고 평가됩니다. 악보상의 단 하나의 음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음악으로 들려주는 그의 연주, 그러면서도 그 연주는 단지 악보의 재생이 아니며, 폭넓은 표현력과 해석, 그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색을 보여줍니다. '신이 빚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 질 만합니다. 그와 동시대의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을 가리켜 하이페츠의 그늘에만 존재할 수 밖에 없던 '불쌍한' 자들이라고 평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그
의 연주를 듣고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을 박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하며, 버나드 쇼는 하이페츠에게 편지를 보내 "인간이
그렇게 완벽한 연주를 하면 하느님의 시기를 사서 요절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그에게 저녁에 잠을 자기 전에 기도 대신 아무
곡이나 서툴게 연주할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노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그는 1987년 긴 생애를 마치고 세상을 떠납니다
1악장 야샤 하이페츠의 연주다. 이 동영상은 영화자료여서 악구가 생략되었다.
야샤 하이페츠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I. Allegro moderato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1908~1974)는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 1901~1987)와 함께
바이올린 연주로 세계 음악계를 뒤흔든 대단한 연주자입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다비트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
지휘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 (Gennady Rozhdestvensky)
Tchaikovsky-Violin Concerto
David Oistrach (violin), Gennady Roshdestvensky (conductor) Staatskapelle Berlin. live 1963.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
차이코프스키 / 바이올린 협주곡 사라장 Sarah Chang [1980,12,10~]
Pyotr Ilych Tchaikovsky, 1840-1893
Sarah Chang, Violin
사라장, Sir Colin Davis, Cond / London Symphony Orchestra
매혹적이고 재능있는 사라장(만11세)-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 Major Op.35 ,Sarah Chang,장영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리(sound)'를 '저장(recording)'할 수 있었던 것은
발명가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1887년에야 처음 이루어진 일입니다.
17세기 바흐(Bach)와 하이든(Haydn)의 시대나 그 이전 시대는 물론,
바흐(Bach) 사후에 태어난 18세기의 위대한 음악가들... 예컨데
모차르트(Mozart), 베토벤(Beethoven), 슈베르트(Schubert) 등은
당연하게도 축음기를 만날 수 없었던 시대의 사람들이니
확실한 '라이브(live)의 세계'에 살았던 천재 음악가들입니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이 위대한 음악가들의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대단한 음악적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이 낳은 바이올린 신동 장영주 일화를 여기에서 소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어렵기로 소문난 차이코프스키의 이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단 4일만에 마스터해서 일찌감치 천재성을 드러냈다고 전합니다.
불과 4세 때 바이올린을 배워 1년만에 필라델피아에서 연주회를 가진 바 있는 장영주는
8세 때 받은 오디션에서 주빈 메타로부터 뉴욕 필과 협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정도로
세상이 놀랄만큰 뛰어난 천재적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장영주양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정도의 타고난 천재성을 저도 분명히 인정하지만
만 4세 유아기의 그녀 역시, 시대를 앞 선 뛰어난 선배들의 연주를 반복해서 감상하면서
이미 '귀'를 통하여 그 수준의 기대치를 스스로 충분히 높여 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타고난 천재성에 더욱 더 뛰어난 기교를 덧붙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곡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작곡하던 1878년에는
당연히 축음기도 발명되기 전이었으니, 100년 앞을 내다 본 그의 위대한 작품의 초연을 보고
"천하고 품위없는 얼굴만 봤고, 거친 고함소리만 들었고, 싸구려 술냄새만 나는" 곡이라고
아주 형편없는 졸작으로 혹평한 당시 음악평론가 빈(Wien) 대학의 한슬릭(E. Hanslick, 1825-1904)의 수준을
위대한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없었던 시대의 탓으로 웃으면서 돌릴 수밖에 없겠지요.
제 1악장(Allegro moderato - Candenza)
소나타 형식의 악장이다. 서주에서 잠시 주제가 암시된 후 바로 바이올린에 의해 낭랑히 울려펴진다. 전개부에서는 화려한 바이올린의 테크닉의 향연이 펼쳐지며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야성적인 외침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카 덴짜 (독주자가 반주없이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과시하는 즉흥연주를 하는 부분. 고전파 이후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작곡자가 대부분 카덴짜까지 겸해서 작곡해두는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연주자들은 자신만의 카덴짜를 연주하기도 한다)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주제가 반복되고 곡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끝나게 된다.
1악장(Allegro moderato - Candenza)
Sarah Chang, Violin
Sir Colin Davis,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1993. 3. 23
제 2악장(Canzonetta -Andante)
' 칸쪼네타 (작은 노래)' 라고 되어있는 A-B-A의 3부형식으로 되어있다. 애수어린 멜로디가 곡전체를 지배하며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데, 이는 매우 슬라브적인 정서가 풍부한 선율이다. 곡은 명확히 끝나는 부분이 없이 3악장으로 연결된다.
2악장 (Canzonetta-Andante)
Sarah Chang, Violin
Sir Colin Davis,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1993. 3. 23
제 3악장(Allegro vivacissimo)
자 유로운 소나타형식의 악장이다. 전악장에서 이어진 곡은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열광적인 리듬의 축제로 변한다. 중간에 잠시 우수어린 선율이 고개를 내밀다 제시부의 첫선율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 하다 점점 열기를 고조시켜 나가면서 마지막에는 환희에 찬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끝맺는다.
3악장 (Allegro vivacissimo)
Sarah Chang, Violin
Sir Colin Davis,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1993. 3. 23
음반소개
사 라는 12살 (1992년 녹 음)때 차이코프스키를 선택함으로써 레코딩에 있어서도 전문연주가의 틀을 잡기 시작했다. 그라모폰은 이 앨범이 출시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사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라모폰 93년 신인 아티스트상 수상. 에코 음반상을 수상했다. 1993년, 3월 23일에 나온 이 음반은 3/4 크기 바이올린으로 연주했으며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브람스의 헝거리 춤곡" 이 수록 되어 있다.
장영주(Sarah Chang, 1980. 12. 10~ )
바 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재능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그녀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미국의 여러 음악 중심지에서, 뉴욕 필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필, 보스턴 심포니,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LA 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및 피츠버그 심포니를 포함한, 거의 모든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또 한 그녀는 유럽에서 베를린 필,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그리고 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그녀가 함께 협연했던 지휘자로는 다니엘 바렌보임, 콜린 데이비스 경, 샤를르 뒤트와,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제임스 르바인, 쿠르트 마주어,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앙드레 프레빈, 볼프강 자발리쉬, 레오나르드 슬라트킨 등이 있다. 그녀는 콘서트 실황 중계나 음반의 방송 등을 통하여 그동안 방송에 많이 출연하여,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장 영주는 1996년 여름 시즌, 남미 순회 연주를 가졌고, 아스펜 음악제에 재출연하기로 계약하였으며, Hollywood Bowl에서 사이먼 래틀 경 지휘로 LA 필과 협연하였고, 라비니아 축제에서 에센바흐 지휘로 시카고 심포니와의 협연하였다. 또 Mann 센터 및 Saratoga 공연센터에서 영국의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고, 이어서 헬싱키 필, 로테르담 필, 로열 스톡홀름 필과 차례로 협연하였다.
장 영주는 1996-97 시즌(즉, 겨울 시즌) 동안에 테미카노프 지휘로 뉴욕 필과 협연하였고, 워싱턴에서 내셔널 심포니와 협연하였으며, 이어서 몬트리올 심포니, 신시내티 심포니,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몬테 카를로 필과 협연하였다. 또한 그녀는 샤를르 뒤트와 지휘로 한국, 일본, 홍콩에서 몬트리올 심포니와 연주를 가졌다. 그 후 그녀는 주빈 메타의 지휘로 빈 필과 협연하였고, 이 기간 동안 베를린에서 얀손스 지휘로 베를린 필과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녹음하였다.
1995 년과 1996년 사이에 있었던 그녀의 연주 중에는 뉴욕 필과의 협연 및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발티모어 심포니, 달라스 심포니, 디트로이트 심포니와의 협연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녀는 르바인 지휘로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와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시기 유럽에서는 주빈 메타의 지휘로 파리에서 이스라엘 필과 협연하였으며, 틸레만 지휘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래틀 경 지휘로 버밍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이어서 그녀는 침머만의 지휘로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을 비롯하여 블롬스테트의 지휘로 밤베르크 심포니와 협연하였으며, 자발리쉬와는 함부르크 필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녀는 유럽에서 이 시기에 처음으로 리사이틀을 가졌는데, 그녀가 리사이틀을 가졌던 곳은 더블린, 리딩, 하노버와 볼로냐였다.
장 영주는 EMI에서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그녀의 첫번째 앨범인 'Debut'에서 그녀는 사라사테, 파가니니, 엘가, 프로코피에프 등 대가의 소품들을 선보였는데, 이 앨범을 녹음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9세였고, 1/4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가지고 녹음했다. 이 앨범은 1992년 대단한 인기를 모았고 단숨에 빌보드 차트의 클래식 분야 1위를 차지했다.
그 녀의 두 번째 앨범은 콜린 데이비스 경의 지휘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Op.35 (위 음원)과 볼프강 자발리쉬의 지휘로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생상의 소품들 그리고 샤를르 뒤트와 지휘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비외탕 바이올린 협주곡 제 5번을 담고 있다.
이어서 그녀는 베르나르드 하이팅크의 본 윌리엄스 시리즈(런던 필) 중 삽입된 "종달새의 비상" 을 녹음했다.
1997년에 그녀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품집 "Simply Sarah"를 선보였다. 뒤이어 1998년에는 마리스 얀손스 지휘로 베를린 필과 협연한 시벨리우스, 멘델스존 협주곡 앨범을 발매했다.
그녀는 1993년 그라모폰 상 중 "올해의 젊은 음악가" 부문을 수상했고, 같은 해 독일의 "에코 음반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93년에 로열 필의 음악데뷔상, 1994년 국제고전음악상의 "올해의 신인음악가" 부문을 수여받았다.
그 녀의 또다른 주요한 경력으로는 쿠르트 마주어 지휘로 링컨 센터에서 뉴욕필과 생중계로 협연했던 것을 꼽을 수 있으며, 그녀가 플로렌스에서 주빈 메타와 함께 했던 베를린 필과의 협연은 전유럽에 생중계되었다. 또 그녀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라이프치히 등에서 순회 공연을 가졌는데, 그 중에는 유엔에서의 공연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1994년 카네기 홀에서 데뷔를 가졌는데, 이 때에는 샤를르 뒤트와의 지휘로 몬트리올 심포니와 협연했다.
그 리고 1995년에는 탱글우드 음악 축제에서 보스턴 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데뷔를 가졌다. 그 외에도 바이에리셔 룬트풍크 오케스트라,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홍콩 필, NHK 심포니, 토론토 심포니 등과 연주했다. 그녀는 또한 존 윌리엄스 지휘 아래 보스턴 팝스와 두 번의 연주를 가졌다. 그녀는 한국의 가장 권위있는 음악상인 난파 음악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1990년 서울에서 갈라 콘서트에 참여하였고, 1992년 6월에는 UN 정상회담이 열리는 리오데자네이로에서 "지구를 위한 음악회"에 출연하였다. 그녀는 1995년 8월, 서울에서 한국 광복 5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에 출연하여 KBS 심포니와 협연하였다. 당시 이 콘서트에는 한국 출신의 유명 음악인들이 대부분 출연했다.
이 런 까닭에 장영주는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녀는 The New York Times, The Washington Post, San Francisco Chronicle, The Philadelphia Enquirer, Life, People, USA Today, The Strad, The Times (London), Le Figaro, Berliner Morgenpost, Stern 등의 세계 유수 언론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녀는 TV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The Tonight Show"와 "Good Morning America"를 비롯하여 NBC 방송의 "Today" 쇼, "CBS This Morning", "CBS Sunday Morning", "Live with Regis and Kathy Lee", "CBS new' 48 Hours", a PB special on gifted children 그리고 BBC 방송의 "Blue Peter"와 "Our Common Future"(이 방송은 100개 이상의 국가에 방영되었다.) 에 출연하였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방송에도 출연하였다. 그녀가 존 윌리엄스 지휘로 보스턴 팝스와 가졌던 첫번째 연주는 PBS의 "Evening at Pops"에 방영되었고, 그녀가 런던 심포니와 가진 데뷔 연주는 영국의 가장 유명한 예술 전문 프로그램인 ITV의 "The Young South Bank Show"에서 다큐멘터리로 구성되어 방영되었다.
장 영주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모두 한국인이다. 그녀는 4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배운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필라델피아 지역의 오케스트라들과 연주했다. 그녀는 8세 때 주빈 메타와 리카르도 무티 앞에서 오디션을 받았는데, 이들은 곧 뉴욕 필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연주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1992년 5월 그녀가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그녀의 놀라운 재능은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음악 외에 TV 시청을 즐기고, 독서나 수영, 롤러 스케이팅을 좋아하며, 동생 영진(미국명 Michael)이와 놀기도 좋아한다.
자료출처: EMI Classics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실황 연주와 이해
197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일리야 그루베르트
정경화-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1972), Chung KyungWha- Tchaikovsky violin concerto
1978년생으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출신
열
여덟 살이던 1997년. 당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네덜란드 최고 스타 음악가로 부상한 그는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했다. 2003년에는 네덜란드 문화부로부터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가장 큰 상인 더치 뮤직 프라이즈를 수상하기도 했다. 가
볍고 유연한 활놀림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연주자다. 그를 두고 ‘시카고 트리뷴’은 “활을 든 마법사와 같은 팔로 악기에서
색깔을 끌어낸다”고 했고, ‘런던 타임스’는 “젊고 아름답고 놀라운 기술을 지녔고, 빛나고 서정적인 소리를 표현한다”는 호평을
내놨다. 사라 장과 비교해볼 때 산뜻한 표현력이 좀더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야니네 얀센 (Janine Jansen),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파보 예르비 (Paavo Jarvi),Frankfurt Radio Symphony Orchestra,2013
안네 소피 무터 (Anne Sophie Mutter)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지휘:정명훈,Chung MyungWhun,Tchaikovsky Violin Concerto
세 계가 인정하는 바이올린의 여제 안네 소피 무터는 1976년 루체른 페스티벌을 통해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이듬해에는 카라얀 지휘 아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를린필과 협연하며 전 세계 클래식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 세계적인 바이올린 여제의 아름다운 동행 ‘안네 소피 무터 |
15세 때 DG를 통해 발표한 첫 음반으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이후 60개가 넘는 음반을 발매했고, 이 중 ‘카르멘 판타지’는 DG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이후 30여 년이 넘게 ‘바이올린 여왕’의 자리를 지키며 최근까지도 전 세계를 돌며 투어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힐러리 한 (Hilary Hahn)-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op.35 ,바실리 페트렌코 Vasily Petrenko, 로얄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쇼지 사야카(庄司 紗矢香,SAYAKA SHOJI)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유리 하투에비치 테미르카노프,Yuri Khatuevich Temirkanov.
5살 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한 쇼지
Violin: 사야카 쇼지(SAYAKA SHOJI)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35,쇼지 사야카(庄司 紗矢香)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협주곡 Violin: 사야카 쇼지(SAYAKA SHOJI) 정명훈지휘 Tokyo Philharmonic Orchestra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실황 연주와 이해,율리아 피셔 연주,Julia Fischer,Vasily Petrenko.Tchaikovsky Violin Conceto Op.35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Gheorghe Margineanu /Tchaikovsky-Violin Conceto, Op.35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Gheorghe Margineanu /Tchaikovsky-Violin Conceto, Op.35
Gheorghe Margineanu Play Tchaikovsky-Violin Conceto, Op.35.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Cosmin-Horatiu Stoica(바이올린)
"Paul Constantinescu" Symphony Orchestra; Conductor: Ovidiu Balan.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op. 35 레오니다스 카바코스(Leonidas Kavakos)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op. 35 하인리히 시프(Heinrich Schiff),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Patricia Kopatchinskaja)바이올린
Radio Kamer Filharmonie olv. Heinrich Schiff
Patricia Kopatchinskaja, viool
P. Tsjaikovski - Vioolconcert in D, op. 35
Zondagochtend Concert 3 oktober 2010 Concertgebouw Amsterdam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op. 35 하인리히 시프(Heinrich Schiff),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Patricia Kopatchinskaja)바이올린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Graf Mourja(바이올린)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Op.35 Viktor Tretiakov(빅토르 트레차코프),미하일 플레트뇨프Mikhail Pletnev,Tchaikovsky Violin Concerto
November 1994, Tokyo, Japan.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1.Allegro moderato ? Moderato assai (D major)
2.Canzonetta: Andante (g minor)
3.Finale. Allegro vivacissimo (D major)
Viktor Tretiakov - violin
Mikhail Pletnev - conductor
Russian National orchestra
Ноябрь 1994 года, Токио.
П.И.Чайковский,
концерт для скрипки, ре-мажор, соч.35. Исполняет Виктор Третьяков,
Российский Национальный оркестр, дирижер Михаил Плетнев.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Op. 35 -Nitzan Bartana/지휘 Zubin Mehta
Pyotr Ilyich Tchaikovsky
The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The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Nitzan Bartana, Violin
Zubin Mehta, conducting
Recorded in Mann Auditorium
Tel-Aviv, Israel
October 10th, 2007
차이코프스키의 두 여인-성악가 이승안
1876 년 말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폰 메크(Nadezhda Filaretovna von Meck, 1831~1894) 부인과의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철도 경영자의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차이코프스키에게 경제적 원조를 했고, 1877년 차이코프스키는 그 보답으로 교향곡 제4번을 부인에게 헌정했습니다. 이 곡은 그 전에 발표한 3개의 교향곡을 훨씬 능가하는 역작이었으며, 교향곡 작곡가로서 차이코프스키의 역량을 보여준 것입니다.
같은 해, 차이코프스키에게 그의 생애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역설적으로 그것은 결혼 때문이었습니다.
상 대는 밀류코바 (Miliukova, Antonina Ivanovna Tchaikovskaya, 1849~1917)라는 28세 나이의 제자였습니다. 2주간의 신혼여행 중에 그는 그녀로부터 도망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9월 어느 날 밤 모스크바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꾀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 해 9월 말 차이코프스키는 상크페테르부르크로 도망쳤고 결혼 생활을 끝냈습니다. 그 후 요양을 겸해 스위스 등 유럽 각지를 여행했습니다. 1878년 귀국한 차이코프스키는 다시 창작의욕을 회복하고는 폰 메크 부인의 원조로 생활비가 해결되자 음악교수직도 그만두고 작곡에만 전념했습니다.
1881 년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별세했기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하여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을 기념하는「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란 제목의 피아노 삼중주를 작곡했습니다. <출처:CEO를위한클래식작곡가에피소드,이재규엮음,예솔>
< 성악가 Bass-Bariton 이승안 씨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와 Italia Parma Orfeo Academy, France 'Ecole Normal' de Musique de Paris를 졸업했으며 France Nice National Conservatoire를 수료했다. 현재 제주교대와 숭실대, 백석 콘서바토리에 출강하고 있다.>
악기의 왕은 피아노 였지만 피카소나 샤갈등 명화에 등장하는 악기들은 대부분 바이올린이 독차지하고 있다.
바이올린은 파가니니나 사라사테등 수많은 천재들을 탄생시켰고 명연주, 명곡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파가니니등 바이올린의 대가들이
남긴 곡들도 유명하지만 베토벤이나 브람스등 작곡가들이 남긴 곡들도 호평을 받고 있다. 파가니니, 사라사테등 연주가들이 남간
작품들이 기교적이고 연주자 중심으로 흐른데 비해 이들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풍부한 시상이 일품이다.
비니엡스키, 시벨리우스, 생상스등도 바이올린에서 명 협주곡을 남겼고 비발디의 '사계'는 새삼 거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협주곡의 대명사와 같은 곡이다.
injoo Cho 조진주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1st Mov. Allegro moderato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ㄴ 영화<투게더>의 앤딩부분이다.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대합실에서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최고의 연주를 들려준다.
차 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2003년 초에 개봉했던 바이올린 신동에 대한 중국 영화 "투게더"에 아주 중요한 곡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바이올린 콩쿨에 대비하여 연습하는 곡이 바로 이 곡의 3악장이죠. 힘이 넘치는 피날레 부분을 영화의 결말부에서 정말 잘 활용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힘껏 내리긋는 활 동작과 힘이 넘치는 협주곡의 조화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영화용으로 Armand Amar가 편곡한 것이라 한다
Le concert - Tchaikovsky Op.35
영화 <더 콘서트 The Concert> 안드레이 필리포프다 와 각기 다른 사람과 악기가 모여 이루는 작은 세계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뛰어난 기교와 음색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다.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1926년 오데사 음악원을 졸업한 뒤 1933년 모스크바에서 데뷔했다. 소련과 동유럽 전역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1937년 외젠 이자이 바이올린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1934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1942년 스탈린상을 받았다. 20세기 러시아 작품들과 바이올린 고전 연주곡을 녹음한 음반을 통해서 서유럽과 미국에 처음 알려졌다. 1951년부터 유럽 전역을 순회공연하기 시작했고 1955년부터는 미국 순회공연을 했다. 역시 바이올린 연주자인 아들 이고리 오이스트라흐(1931 태어남)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대를 이은 위대한 연주자라는 평을 받았다. 이고리 오이스트라흐는 1952년 폴란드 포즈나인에서 열린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상을 받았고, 유럽과 미국을 순회공연했으며 때로 아버지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와 함께 합동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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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Oistrakh, 1908~1974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
다 비드 오이스트라흐는 살아 생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하이페츠에 버금가는 '2인자'이기만 했을까? 지난 96년 3월호 '객석'의 집중 탐구기사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세계'를 보면, 음반부분에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을 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투표로 선정한 것을 볼 수 있다.
베 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명반으로는 샤를르 뮌슈 지휘, 하이페츠 연주의것 (보스턴 심포니, RCA)이 선정되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오이스트라흐(클뢰탕스-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EMI)이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도 역시 하이페츠의 연주(라이너- 시카고 심포니,RCA)가 오이스트라흐(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CBS)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브람스 협주곡에서는 하이페츠가 아닌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콘드라신-필하모니아,EMI)가 명반으로 선정되었고, 오이스트라흐(클렘페러-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는 그 다음이었다. 이들 모두는 다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음반이지만 오이스트라흐는 불행하게도 어느 하나에서건 윗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하 지만 세상에는 협주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선 아직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만한 것을 찾아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같이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 연주의 완숙도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이페츠는 '너무 완벽해 차갑다'는 평을 자주 들었으나 오이스트라흐는 그 반대로 '따뜻한 인간미가 넘친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위에서 말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연주도 하이페츠의 것을 '불타는 빙산'에 비유한다면 오이스트라흐의 것은 '얼음기둥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헤엄쳐 다니는 금빛 물고기'에 비할수 있을 것이다.
오 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내향적, 사념적이고 절제미가 돋보이며, 폭 넓은 레가토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하이페츠의 연주특성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모든 면에서 하이페츠에 뒤지는 오이스트라흐의 변호를 위해 누군가가 지어내 준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은 언제나 치열하고 숨가쁘게 몰아붙여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이스트라흐의 미덕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발하며 그만의 개성으로 자리잡을수 있었다.
오 데사 태생의 오이스트라흐는 렝폴드 아우어의 제자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오데사 음악원의 또 다른 명교수 스톨리알스키에게 배운 그는 아우어파와는 다른 러시아 바이올린 인맥을 형성했다. 물론 테크닉은 하이페츠를 제외한다면 최고의 수준이었다. 1935년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 2위, 1937년 이자이 국제 콩쿠르 우승 등으로 구소련 밖에서 알려졌고, 길렐스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소련이 정책적으로 서구에 소개하는 연주가로 지목되어 많은 혜택을 누렸다.
레 프 오보린과 리흐테르와의 트리오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 활동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이루어져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만년에는 지휘대에도 서는 모습을 보였으나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오히려 교육분야에선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할 수 있겠다. 기돈 크레머와 올레그 카간 등이 그가 길러낸 제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고르 오이스트라흐는 그의 아들이다. <객석>
출처: 이욱정 감사 축복 은혜 영광 원문보기 글쓴이: 이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