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파하는
프로비덴스 홍 법 원
김형근 / 븐지 편집인
한국불교가 미국속에 포교를 했는가 ? 포교를 했다면 그 실상은 어떻한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얻고 싶다면 로드 아일랜드주의 포로비덴스에 있는 홍법원을 가보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한국불교의 시작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과 함께 한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이민자들이 기독교 조직을 통해 오게 되었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는 불교신자였다. 1920년대에 하와이에 마곡사 출신으로 임꺽정 작가로 유명한 흥명회씨의 4촌, 혹은 6촌이 되는 홍씨 성의 스님이 나타나 이들 신자들을 지도하며 정신적인 지주역을 하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부처님같이 모든 사람으로 부터 존경을 받던 이 스닙이 어느 날 보스톤의 하바드대학교로 공부를 하러 떠나 갔다. 그 2년후 이 스님이 이 세상과 인연을 다하여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이 보스톤에서 하와이로 들려왔다.
이 사실은 지금부터25년전에 하와이에서 그 스님에게 지도 받던 신도를 만난 이러한 이야기를 직접 들은 분은 아마도 흥스님은 인종차별등으로 생활이 어렵고 외로와서 영양실조나 병사했을 가능성이 큰것으로 추측한다. 이민 초기에 수재로 유명한 홍명희 집안 출신이며 만인이 존경하는 홍 스님에 의하여 시작된 미주 한국불교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 맥이 끊기고 지금은 그 기록도 찾아볼 수 없다. 실로 너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 이 이야기는 1992년 로스 엔젤레스에서 활동하던 신상철씨에게 들은 것이다. 신 상철씨는 이 이야기를 역시 로스 엔젤레스에서 활동하던 김학순 법사에게서 들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보도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와이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후에 버지니아 연화정사를 건립했던 성원스님이 오래돈안 하바드대학교에 가서 조사해 보았지만 근거없는 이야기였다. 스님은 2017년에 암으로 입적하였다. 1920년대 이후 어디에도 홍씨 성이 하바드대학교에 입학한 사실잉 없었다. 본지에서 본의 아니게 , 확인없이 오보를 했다.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이 기사는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였기 때문에 미주한국불교사에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 한국불교는 1964년 서경보스님의 도미로 다시 시작한다 할 수 있다. 서경보 스님이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고 그의 제자인 현 메릴랜드 한국사 주지 고성스님이 동부에 있을 때인 1972년 숭산스님이 뉴져지에 살고 있는 동국대 츨신 유영수씨 초청으로 미국에 왔다. 숭산스님은 유영수씨 초청에 미국 구경이나 한번 가보겠다는 생각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탄 숭산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로드아일랜드 주립대학교 동양사학자인 김정선씨를 만났다. 미국에서 동양사를 강의하는 김교수는 동양사를 연구하다 보니까 불교는 동양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연구차 일본에 가서 3개월간 연구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이 말은 들은 승산행원스님은 일본 불교가 한국에서 전래 된 이야기 한국,일본,중국불교의 차이와 특징들을 이야기하면서 나성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숭산스님과 김교수는 미래에 두사람 서로에게 중요한 사람을 만나 비행기안에서 우연하게 만나 나성에서 헤어졌다.
나성 구경을 하고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도착한 숭산스님은 뉴욕에서 유영수,여류 수필가 이계향씨등을 만났다. 이계향씨의 시동생이 고급 골동품점을 경영하였는데 이 사람이 본지20호에 소개된 업스테이트 뉴욕 正法寺주지 에이도 선사와 아주 절친했다. 이 사람의 안내로 正法寺의 맨하탄 56가의 선방에 가서 오십여명의 미국인들이 참선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숭산스님은 미국 구경이나 하고 가려던 생각을 바꿔 미국에 선을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스톤으로 가 비행기 안에서 만난 김정선교수를 만났다. 김교수는 승산스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 한국에서 선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과 상면케됐다.
이 학생들은 하바드와 예일대학등 미국 명문대학생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불교가 무엇이냐? 선은 무엇이냐? 등으로 줄기차게 물었다. 이러한 물음에 <선이란 불립문자요 직지인심>이라고 하면 통역을 맡은 김교수가 불교를 모르니까 이 뜻을 전달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기대하는 이 미국인들에게 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하겠는데 얼핏 생각나는게 최면술이었다. 최면을 걸겠다고 하니까 이 학생들이 <웃기지 말라>식으로 나왔다. 그래서 한 학생을 시법으로 최면을 걸어 몸을 붕붕 공중에 띄웠다. 그러고 나자 여기에 왔던 사람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 해 가지고 납짝 업드리어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런 다음 미동부지역에 <쏭싼스님> ---- 미국인들은 숭산을 쏭싼이라 발음한다---- 이야기가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참선을 배우고 싶다, 불교를 배우고 싶다 하는 학생들과 함께 흑인촌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얻어 거기에서 최면술과 단전호흡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가 홍법원의 전신인 셈이다. 이렇게 하는 동안 소문이 나서 사람들은 모여 들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브라운대학의 프르덴 박사를 만났다. 프르덴박사는 동경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일본말이아주 유창하였다. 그래서 숭상스님이 설법을하면 이 사람이 통역을하여 일요일 마다 설법을 했다. 이러는 사이 사람들은 불어나고 경비는 많이 들어가 숭산스님은 밖에 나가 일을하여 돈을 벌었다.
이러는 사이 숭산스님과 같이 살기를 회망하는 학생들이 나타나 그들과 공동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미국인 제자들은 숭산스님에게 한문을 배우고 숭산스님은 그들에게 영어를 배웠다. 이렇게 하여 승산스님이 설법을 하면 그들이 문장을 만들면서 부터 공안을 시작했는데 이때 만든 공안을 모아 책을 만든것이 'Only Don’t Know'라는 책이다.
이렇게하여 1년을 지나는 사이 여름이 돌아왔다. 여름이 오자 같이 공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결의하여 일을 하여 각자 1천불씩을 내놓으니 1만불이 되었다. 숭산스님도 1천불을 내놓아 1만 1천불을 가지고 4층집을 사게 되었다. 이 집이 전세계가 좁다고 종횡무진 활동하는 숭산스님의 본거지의 토대가 된것이다. 영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어렵지만 같이 생활을 하니 약 3년이 지나니 귀가 뚫리고 입이 열렸다.
현재의 홍법원은 약 13만평인데 여기에 5백명을 동시에 수용할수 있는 숙박시설과 참선도량을 갖춘 건물을 1975년에 짓기 시작하여 19 77년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에 큰 법당 과 작은 법당이 각각 1개씩 있으며 지하는 식당, 1층과 2층에는 도서관, 출판실, 사무실 그리고 오십개의 방이 있다. 이 재원은 주로 미국인들한테 나왔는데 당시 싯가로 약 40만불이 들었다. 법당은 2년후인 79년에 완성하였는데 여기에 든 비용도 수십만 달러가 들었다.
출판실에서는 Primary Point를 계간으로 만들고 있는데 구독자가 약 5천명이라고 책임자가 말했다. 홍법원 출판실에서 발행된 책을 보면 무승스님이 지은 Heart Sutra, Thousand Peaks, 숭산스님이 만든 공안집 Only Don't know, Ten Gates, 우리말로 번역된 Dropping Ashes on the Buddha- -- 이 책은 우리 말로 <부처님 이마에 담배재를 터는>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음. -- , A Gathering of Spirit, 그리고 예불때 쓰는 책을 우리말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Chanting 책이 있다.
홍법원에서 생활하는 대중들은 매일 아침 2시간씩 예불을 하는데 오분향례, 반야심경을 한글로 외우는 것은 물론이요 천수경도 우리말로 외우는 사람이 많다. 필자는 목탁을 치며 우리말로 천수경을 독송하는 미국인 스님을 맨처음 보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의 예불 모습은 어찌나 엄숙하고 경건한지 그 분위기를 글로서는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동안 숭산스님에게 출가한 미국인 스님은 25명인데 1981년 무상스님이 처음이었고 83년에 무승 ,1985년에 도안등이 출가하여 지금은 프로비덴스 홍법원의 비롯한 주지, 선원, 나성 달마선원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도안스님이 홍법원의 주지 무승스님이 선원장이다.
프로비덴스의 홍법원을 본거지로하여 미주 전 지역에 35개의 지원을 합쳐 전세계적으로 110개의 지원이 있는데 그동안 숭산스님에게 출가한 스님과 법사들이 지도자로 활동하고있다. 법사는 일반법사, 일반법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 5년 이상의 수련기간을 거쳐 취득한는 선도법사, 선도법사중에서 1천 7백 공안을 통과하여야 하는 지도법사가 있다. 지도법사는 몇 년에 한명이 나올까 말까 하는데 현재 12명이 있다. 이들 법사들이 홍법원의 핵심적인 일을 하고 있다. 홍법원의 식구는 전세계적으로 약 5만명이며 프로비덴스의 신도는 약 6백명에 이르고 있다.
홍법원에서는 성도제일, 1월 1일, 부처님 오신 날, 그리고 여름에 한 번등 일년에 총 4번 모여서 수련 안거를 갖는다. 이때는 미주 전 지역에서 오는데 미국 뿐 아니라 미국이외의 나라에서도 1년에 한번 정도 함께 모여 수련생활도 하면서 사교도 한다.
홍법원은 1주일에 한번 법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회, 또는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1주일 혹은 한달간 겨속하는 프로그램을 미국인들에게 맞도록 만들어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 홍법원은 규모가 커서 힌달 운영비가 1만5천 달러가 필요한데 이 비용은 회원들의 회비 월 20달러, 기부금, 홍법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숙박비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 대사가 배달민족이 낳은 불제자로서 도보로 가장 많이 그리고 멀리 구도 행각을 벌였다면 숭산행원스님은 이 지구촌이 좁다고 오늘은 미주 내일은 유럽, 다음날은 아프리카로 날아 다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숭산스님 특유의 재담으로 각색을하여 그것도 안되면 최면술도 동원하여 전파하고 있다. 숭산스님은 최면술로 미국 일류대학생들을 단번에 사로잡은이후 한국불교를 미국에 널리는데 있어서 뉴욕주립대 박성배교수와 함께 쌍벽을 이루어 왔다.
고구려의 승랑과 신라의 원측이 중국에가서 이름을 날리며 불교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일제시대에는 한암스님의 제자 유종묵 스님이 뛰어난 학식과 불타는 애국심으로 일본에서 크게 활약하다가 남북 분단으로 말미암아 조국 땅을 가보지 못하고 이 세상과 인연을 다하고 말았다.
위 스님들과는 다르지만 숭산행원스님은 지금까지 한국의 어느 스님도 하지 못한 불사를 하고 있다. 행원스님으로 부터 계를 받은 미국인 법사들의 미래의 활동에 따라 행원스님이 한국불교를 외국인들에게 전파하는 좋은 모델이 될지 어떨지 결정될 것이며 이에 따라 숭산스님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1992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