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0년 02월 16일(日曜日) 07시. ♥ 場所 : 울산광역시 울주 국수봉(國秀峰, 603m), 치술령(鵄述嶺, 765m). ☞ 가는 길 : 07:00(삼천포 NC 마트 앞 출발) → 08:00(사천 IC, 남해안 고속국도 진입) → 08:45-58(진영휴게소) → 09:17(중앙고속국도 대동분기점) → 울산, 언양 → 09:40(서울산, 삼남 IC 나옴) → 09:54(태화강) → 10:06(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율림마을 도착). ☞ 산행코스 : 율림마을 → 국수봉 → 은을암 → 서낭재 → 납골묘 → 425봉 → 콩두루미재 → 갈비봉(610봉) → 치술령 → 경주망부석 → 울산망부석 → 흙사랑동내 → 수왕사 → 박재상 기념관(11.8km. 4시간 47분 소요). ☞ 세부 산행코스 10:13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율림마을 산행시작. 10:15 : 율림마을회관. 10:24 : 율림저수지. 10:56 : 범서면 중리 이정표(← 국수봉 0.5km/→ 공부암 1.2 km/↙ 율림회관 1.9km). 11:00 : 전망바위. 11:10 : 국수봉(國秀峰, 603m,→ 치술령 4.5km/← 옥녀봉 2.8m/↘ 율림회관 2.4km). 11:16 : 국수봉, 정상 평상. 11:17 : 삼거리(← 치술령 4.4km/→ 국수봉 0.1km/↘ 은을암 0.5km). 11:28-34 : 은을암(隱乙庵). 11:40 : 사거리(←치슬령 3.7km/→국수봉 0.8km, 은을암 0.5km/↘ 박재상유적지 3.5km). 11:45 : 삼각점(373m, 번호 언양 424). 11:50 : 서낭재(← 치술령 3.2km/→ 국수봉 1.3km) 11:51 : 벽진이씨 납골묘와 철탑 옆 12:17 : 콩두루미재(← 치슬령 1.5km/→ 은을암 2.5km/↙ 두동,칠조 0.8km). 12:31 : 쉼터. 12:50-13:10 : 점심. 13:13 : 갈비봉(610m. ← 치슬령 1.2km/→ 은을암 3.8km/↘ 범서.남방 1.5km). 13:19 : 헬기장(← 치슬령 0.3km/→ 은을암 4.2km/법왕사 2.1km/석계 1.3km). 13:20 : 치술령(鵄述嶺, 765m,→ 은을암 4.5km/← 치산서원 2.8km/↘ 제네리 6.5km). 13:30 : 경주 망부석(望夫石). . 13:40 : 치술령(鵄述嶺, 765m), 13:55 : 울산 망부석(望夫石. 울산시 기념물 1호), 14;00 : 가랭이를 벌리고 있는 노송. 14:43 : 야영쉼터. 14:48 : 흙사랑 동네. 14:50 : 옻밭마을 경로당. 14:53-57 : 수왕사. 15:00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박제상 기념관 주차장 도착. 산행 종료. ☞ 오는 길 : 15:26(박제상 기념관 주차장 출발) → 16:04-35(양산 하북 통도식당 석식) → 16:40(통도사 IC 진입) → 함안, 진성. 개양 → 18:11(사천IC 나옴) → 18:55(삼천포 도착). ♥ 이웃한 봉우리 : 옥녀봉. ♥ 산행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범서면,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 특기사항 : 치술령(鵄述嶺, 765m)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과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위치한 경계에 있는 높은산으로 남북으로 뻗은 능선의 좌우로 아름다운 산하가 펼쳐지며 정상의 봉우리 뒤로 동해바다가 열리며 맑은 날이면 멀리 일본 대마도(對馬島)가 보일 정도로 시원한 전망을 제공하는 산이다. 신라 충신 박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로 변했다는 망부석의 전설로 유명하다. 정상을 사이에 두고 경주망부석과 반대편 울산 망부석이 있으며 신라 19대 눌지왕이 순박한 서민 부부의 애환을 듣고 임금이 벼슬을 주어 산(山)도, 봉(峰)도 아닌 령(嶺)자를 사용, 지금까지 치술령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 내용은 4식구(부부, 노모, 손주) 가정애 눈먼 노모는 모든 음식을 갓난 손주에게 먹여 노모가 야위어가자 자식은 또 낳을 수 있으나 어머니는 돌아 가시면 불효가 되니 부부가 의논하여 갓난아기를 파묻었는데 임금의 귀에만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국사는 물론 잠도 자지 못해 신하와 의논, 울음 소리를 듣고 찾아 간곳이 치술령 아래로 무덤으로 파 보니 아기 포대기에 금불상이 있어 주인을 알아보니 금실좋기로 이름난 부부로 그 사연을 묻자 말하면서 며느리가 울자 노모는 울음소리를 듣고 손주 웅이가 깨어난 줄 알고 닷새째 물 한모금 먹지도 않은 노모에게 임금이 금불상을 안겨주자 손주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움직이다 쓰러져 돌아가셨다. 이 애환을 한눈에 본 임금은 이산에 벼슬을 내려 치술령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 07시 삼천포 NC 마트 앞 출발, 08시 사천 IC, 남해안 고속국도 진입하여 진영휴게소(08:45-58)에서 쉬었다가 09시 17분 중앙고속국도 대동분기점, 울산, 언양을 지나 09시 40분 서울산, 삼남 IC 로 나와 09시 54분 태화강, 10시 06분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율림마을 도착하여 넓은 길가에 주차. 준비운동을 하고 10시 13분 산행시작. ▲ 남쪽 연화산 능선 아래 평화롭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 10시 15분 율림마을회관 앞을 지나. ▲ 멀리 치술령 능선. ▲ 10시 24분 율림저수지 통과. 오늘 산행 계획은 박제상 기념관에서 치술령 원점회귀였는데 이곳에 오고보니 국수봉 산행 욕심이 생겨 2명만 국수봉을 향한다. ▲ 이정표도 없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 산 능선을 향해 오르니 등산로도 없어 30여분 능선을 헤메면서 올라서니 10시 56분 반갑게 첫 이정표인 범서면 중리 이정표(← 국수봉 0.5km/→ 공부암 1.2 km/↙ 율림회관 1.9km)를 만난다. 이 등산로에는 산행객들이 보이기 시작. ▲ 인공이 가미된듯한 자연적인 병풍바위. ▲ 전망바위에서 한컷. 연화산 능선. ▲ 11시 10분 국수봉(國秀峰)정상의 이정표(→ 치술령 4.5km/← 옥녀봉 2.8m/↘ 율림회관 2.4km)가 있고 정상석은 조망이 좋은 곳에 조성되어 있다. 국수봉(菊秀峰)은 울주군 두동면과 법서읍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두동면의 치술령과 맥을 같이 한다. 신라의 경주(慶州)중심으로 다른 산들은 모두 그 산세가 왕도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자세인데 유독 이 산만 나라에 반역하는 것처럼 등을 돌리고 앉았다 하여 나라국(國)자와 원수수(讐)자를 써서 國讐峰이라 불리어졌지만, 박제상의 충절이 있은 이후로 국가를 수호하는 산이라 하여 국수봉(國守峰)으로 바뀌었다. ▲ 국수봉(國秀峰, 603m) 정상석. 전망대가 있는 정상에는 울산 라온산악회에서 시산재 준비를 하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기념사진을 찍어 본다. 국수봉(國守峰) 표지석 제막식은 울산광역시와 울주군 등 행정기관의 많은 도움으로 범서주민들의 뜻을 모아 지금의 표지석이 설치되었다고 하며 범서를 바라보며 설치된 표지석 바닥에는 범서읍 25개 자연마을과 아파트에서 채취한 흙과 선바위 물을 함께 희석하여 바닥에 깔아 표지석을 설치함으로써 범서의 대동단결과 번영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두었다. 2010년 1월1일 울주군수와 많은 범서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표지석 제막식과 범서의 영원한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기원제를 가졌으며 앞으로 범서의 해맞이 행사장으로 이곳 국수봉이 그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수봉(國秀峰, 603m) 정상 전경.. ▲국수봉 조망 : 반용마을 방향의 풍경. ▲국수봉 조망 : 옥녀봉, 범서척과리. 멀리 동쪽으로 삼태지맥 ▲ 정상석이 있는 국수봉(國秀峰, 603m) 등산안내도. ▲ 11시 16분 정상석이 없는 국수봉(國秀峰, 603m) 정상은 작은 정상 표지석과 넓은 평상 쉼터가 있다. ▲ 11시 17분 은월암 삼거리 이정표(← 치술령 4.4km/→ 국수봉 0.1km/↘ 은을암 0.5km). ▲ 은월암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길의 안전시설. ▲ 11시 28분 혼조(魂鳥)의 바위동굴의 설화가 전해지는 은월암(隱乙庵) 도착. ▲ 은을암(隱乙岩)의 유래는 박제상의 부인은 세 딸들을 데리고 수릿재(鵄述嶺)에 올라가 높은 바위 위에서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통곡하다가 죽으려고 하자 딸 셋도 같이 하려고 하니 어머니는 둘째딸 아영에게 너는 살아남아 동생 문랑(6세)을 양육하여 아버지 후대를 잇게 하라고 하고 큰딸 아기와 막내딸 아경은 어머니와 함께 정절사하여 세모녀 시신은 돌부처가 되어 그 바위를 뒷날 사람들이 망부석(望夫石)이라 불렀다.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 바위동굴에 숨어들어 은을암(隱乙岩)이라 했으며, 여기에 박제상 부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은을암(隱乙岩)에 암자를 짓고 "은을암(隱乙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이 새가 날아 오른 자리를 비조라 하여 두동면 만화리에 비조라는 마을 이름이 되었다. 마을로 내려온 아영과 문랑은 나라에서 박제상의 충절과 부인 김씨의 정절을 높이 치하하여 신모사(神母祠)를 세워 제사로 받들었으며 왜국에서 돌아온 미해공(미사흔)과 아영을 결혼시켜 많은 포상을 하사하여 잘 살게 하였고 박제상은 대아찬의 벼슬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은을암(隱乙庵)은 국수봉(菊秀峰) 7부 능선 암릉사이에 있는 작은암자이다. ▲ 은을암(隱乙庵)의 범종으로 올라가는 철계단 옆에는 신라 충신 박제상의 두 딸의 혼령이 새로 변하여 날아 들었다는 혼조(魂鳥)의 바위동굴의 설화가 전해지는 법당 뒤 동굴. ▲ 은을암을 내려오는 계단에서 본 치술령 능선. ▲ 야생멧돼지 출몰지역의 주의사항인 적힌 안내판 사거리 이정표(← 치슬령 3.7km/→ 국수봉 0.8km, 은을암 0.5km/↘ 박재상유적지 3.5km). ▲ 11시 45분 삼각점(373m, 번호 언양 424). ▲ 11시 51분. 서낭재의 납골묘와 넓은 주차장(← 치술령 3.2km/→ 국수봉 1.3km). ▲ 12시 17분. 콩두루미재(610m,← 치슬령 1.5km/→ 은을암 2.5km/↙ 두동,칠조 0.8km). ▲ 치술령(鵄述嶺) 오르는 길목 곳곳에 벤치가 2개씩 있는 쉼터. 일행을 만나기 위해 속보. ▲ 12시 50분 점심을 먹고 있는 우리 일행들을 만나 합석하여 맛있게 산상뷔페. ▲ 13시 13분 갈비봉 이정표(610m. ← 치슬령 1.2km/→ 은을암 3.8km/↘ 범서.남방 1.5km). ▲ 13시 19분 헬기장에 도착. 옆에 이정표(← 치슬령 0.3km/→ 은을암 4.2km/법왕사 2.1km/석계 1.3km)가 있고 치술령 정상아래 경주 망부석이 하얗게 보인다. ▲ 13시 20분 치술령(鵄述嶺, 765m) 정상 도착, 치술령(鵄述嶺)은 수릿재라고도 불리는데 고개가 아닌 신라 눌지왕이 하사한 산 정상의 이름이기에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정상은 평지로 작은 정상석, 이정표(→ 은을암 4.5km/← 치산서원 2.8km/↘ 제네리 6.5km). 삼각점. 신모사지(神母祠址)가 있다. 정상은 삼거리로 올라온 능선으로 울산과 경북의 도 경계로 은을암, 국수봉(603m), 연화산530m)으로 가는 능선길, 왼쪽은 법왕사와 치산서원, 박제상 기념관으로 하산. 왼쪽은 호미지맥으로 명계. 남산으로 방면의 종주길인 제내리로 가는 길이다. ▲ 정상에 있는 신모사지(神母祠址). 신모사지(神母祠址)는 박제상의 충절과 부인 김씨의 정절을 높이 치하하여 치술신모(鵄述神母)라 하고 신모사(神母祠) 사당을 세워 받들어 제사를 지냈던 터이다. ▲ 치술령(鵄述嶺) 정상 아래에 있는 경주 망부석(望夫石). 경주 망부석은 치술령 정상에서 보면 편편한 바위로 보이나 아래쪽에서 처다 보면 큰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망부석(望夫石)의 유래 :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417~468)때의 충신으로 고구려와 일본에 불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하고자 먼저 고구려에 가서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눌지왕이 왜국에 있는 아우 미사흔을 그리워하자 집에 들리지도 않고 왜국으로 가서 왜왕을 속이고 미사흔을 빼돌려 신라로 도망치게 했지만 자신은 붙잡히고 만다. 왜왕은 박제상에게 자신의 신하가 되면 부귀영화를 보장한다 것을 거절하였고 박제상은 결국 목도(木島)에서 불에 타 숨지게 된다. 박제상의 부인은 세 딸들을 데리고 이 곳 수릿재(鵄述嶺)에 올라가 높은 바위 위에서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며 통곡하다가 죽으려고 하자 딸 셋도 같이 하려고 하니 어머니는 둘째딸 아영에게 너는 살아남아 동생 문랑(6세)을 양육하여 아버지 후대를 잇게 하라고 하고 큰딸 아기와 막내딸 아경은 어머니와 함께 정절사하여 세모녀 시신은 돌부처가 되어 그 바위를 뒷날 사람들이 망부석(望夫石)이라 불렀다.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 은을암(隱乙岩)의 바위동굴에 숨었다고 한다. ▲ 경주 망부석(望夫石)에 오르니 동해바다, 도 경계능선, 국수봉을 보며 휴식. ▲ 경주 망부석(望夫石) 조망 : 경주 외동읍, 두산저수지. 남방마을 멀리 삼태지맥. ▲ 경주 망부석 조망 : 지나온 능선과 국수봉, 뒤로 옥녀봉. ▲ 경주 망부석 조망 : 박제상의 부인은 세 딸들을 데리고 이 곳 수릿재(鵄述嶺) 바위에 올라가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남편이 오기를 기다린 동해바다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 치술령 정상에서 내려와 13시 55분에 만난 울산 망부석(望夫石. 울산시 기념물 1호)으로 옆에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눌지왕의 동생인 미사흔을 구하러 갔다가 죽은 박제상의 아내가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어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남쪽의 울산 방향으로 향하는 곳에 가장 높은 산이기 때문에 동해가 내려다 보이고 일본을 향한 전망이 좋아 날씨가 좋으면 일본 쓰시마섬이 보일 정도로 조망이 좋다. ▲ 아래에서 본 울산 망부석(望夫石). ▲ 울산 망부석(望夫石) 조망 : 호미기맥 마루금 오른쪽 멀리 삼태지맥 능선과 삼태봉. 동대산, 지나온 국수봉 조망, 이정표는 오른쪽 참새미 0.1km로 목이 마르지 않아 생략. ▲ 14시. 괴이하게 생긴 노송. ▲ 하산은 임도로 포장된 임도로 걷기보다 육산은 능선을 선택하여 40여분 내려와서 만난 야영장? 수도꼭지가 두곳이나 있고 잘 가꾸어져 있다. ▲ 14시 48분 많은 집들이 팬션처럼 잘 가꾸어 놓은 흙사랑 동네. ▲ 14시 50분 옻밭마을 경로당을 지나 14시 53분 수왕사에 들어가 5분여 주위 산책. ▲ 15시 정각.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박제상 기념관 주차장 도착. 산행 종료. 후미회원들이 도착할 30여분 여유시간이 있어 맑은 냇가에서 머리와 발을 씻고나니 피로가 씻기는듯 개운하다. ▲ 여유시간 활용하여 치산서원 산책. 신라 눌지왕은 박제상의 셋째딸을 미해공(미사흔)의 부인으로 삼고 박제상에게 대아찬으로 관위를 높여주고, 김씨부인은 국대부인에 추봉하였으며, 사당을 짓고 그 뜻을 기리는 제를 지냈고 조선시대에 와서 이 자리에 치산서원이 세웠졋다고 한다. ▲ 박제상 기념관. ▲ 15시 26분 박제상 기념관 주차장 출발하여 양산 하북 통도식당 배가 부르지만 동태찌개로 일찍 맛있게 저녁식사(16:05-35)를 하고. ▲ 영축산 아래 통도사 입구인 영축산문을 보고 16시 40분 통도사 IC 진입. 함안, 진성. 개양을 지나 18시 11분 사천 IC로 나와 18시 55분 삼천포 도착. 전회원 무사고 산행행사를 마무리한다. ☞ 동행 : 사천 우리산악회원 43명. |
첫댓글 아름다운 동행이였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