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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240908주일오전예배/김동건 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 |
성경 | 요한복음 2:13-19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요한복음 2:13-19)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녹취자료 |
오늘 예배를 통해 오직 예수만 기준되고 배경 삼는 시간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입니다. 이 열심은 어떤 종교나 우상처럼 우리의 열심, 나의 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교나 우상은 열심히 빌고 찾아가야 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계속 진행해가시는 겁니다.
어릴 때 저희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동건아, 학교나 밖에 갔다올 때는 항상 교회에 들렀다가 오거라.”라고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셨어요. 그 당시에는 성도님들께서 교회 주변에 사셨기 때문에 가깝단 말이에요. 걸어봤자 2-3분 정도니까요. 저는 어머님이 시키시니까 그렇게 했었죠. 이후에 제가 신학을 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보니까 그때의 교육이 굉장히 성경적이었던 거예요. 반드시 성전을 들렀다 와야한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주의 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릴 때부터 교육시키셨던 거예요.
여러분, 이 땅의 문제가 정치, 경제, 교육 때문이 아니에요. 교회 문제예요. 교회에 탓을 물려서 교회에게 책임을 묻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사단에게 속아 흑암,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데 이 문제를 정치, 경제, 교육이 해결할 수 없는 거예요. 교회가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복음을 회복하는 언약을 붙잡아햐 합니다.
1. 복음을 회복하는 것
21절을 보니까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참 성전은 바로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님의 자신의 육체가 성전이에요. 성전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신 분이 예수님이세요. 교회가 제대로 복음을 회복하면 다 회복됩니다. 무엇이 회복되어야 할까요? 먼저, 저와 여러분 자신이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을 보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대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거예요. 두 번째는 무엇이 교회입니까? 성도님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예요. 교회인 나 자신이 복음 회복되는 것이 교회 회복인 거예요. 복음의 근본을 안다면 우리가 요한복음 6:28-29절을 이해할 수 있어요. 복음의 근본은 두 가지 배경이에요. 그리스도냐? 흑암이냐? 성령이냐? 악령이냐? 이 두 배경밖에 없어요. 요한복음 6:28-29절을 보니까 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내 중심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해요. 그런데 오늘 여러분의 생각과 개념을 바꿔야 합니다. 무엇을 하거나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에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란 말이에요.
많은 분이 종교성, 우상성으로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열심, 우리의 열심이에요. 하나님의 열심은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 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 하나님의 열심이 있는 거예요. 오늘 참 성전되신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교회 회복, 복음 회복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해요. 은혜를 받지 않으면 안돼요. 충족이 아닌 은혜를 받아야 해요. 은혜는 그리스도를 깊이 깨닫는 거예요. 은혜는 내 안에 복음이 복음되지 못하도록 하는 흑암 세력을 발견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충족을 은혜라고 착각하시면 안돼요. 한때 영국을 뒤흔든 대 부흥사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있었어요. 그분이 설교를 하고 내려오시는데 어떤 어르신 할머님이 오셔서 다짜고짜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른 성도들은 은혜받아서 눈물이 범벅되어 있는데 그 어르신 할머님이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실패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목사님이 너무 당황스러운 거예요. 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이 설교를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할머니의 이유인즉슨 설교 중에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선포되어야 해요.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가 반드시 선포되어야 해요. 이것이 여러분의 영혼 속에 충족이 아니라 은혜의 메시지로 부딪히는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인 거예요. 충족, 인간의 열심이라면 그것은 그냥 강연이에요. 설교가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유튜브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실 겁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제가 주제넘게 감히 뭔가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눈물 흘리게 하고, 마음에 감동이나 감격을 주고, 충족을 주거나 멋있는 문장이나 단어, 저 목사가 쓰지 않는 그 단어나 문장, 내가 써야지.. 그런 식으로 설교를 하고, 메시지를 들으면요 우리 영혼은 다 죽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다 죽어요. 저분이 뭔가 단어도 안 맞고, 문장도 앞뒤가 안 맞는데 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만 증거하구나.. 반복이 아닙니다! 설교 할 제목이 없어서 예수의 피를 강조하는게 아닙니다. 반드시 성도의 영혼을 책임지고, 성도의 영혼이 살아나고 은혜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설교 중에, 예배 중에 강조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여러분들의 영혼이 살아나는 거예요. 죽었던 영혼이 소생케 되고 그때 하나님의 생기가 성령으로 임하는 거예요. 그런 걸 분별하고, 구별하면서 설교를 잘 들으셔야 됩니다. 얼마나 말 잘하고, 강의 잘하고, 강연 잘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의 피언약을 선포했냐, 안 하냐! 그 차원에서 교회와 성도는 어려움을 당하는 거예요. 저는요, 반드시 설교 중에 듣든지 안 듣든지 지겨워하든지 안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반드시 선포 되어야 해요. 저는 그게 제 신앙의 양심입니다. 지겨워 하든, 주무시든, 안 듣든 상관 없어요. 주무셔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언약이 선포 될 때 그 영혼은 반응 할 겁니다. 그 영은 살아날 거예요. 그래서 오늘 충족이 되지 말고, 어떤 감정이 되지 말고, 어떤 멋있는 단어 명언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은혜를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는 은혜 받아야 돼요.
2. 잘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가 되는 것(17절)
그렇게 되면요, 오늘 17절에 말씀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 이 말씀은 이사야서 37장 32절 말씀을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어요. 제가 한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미 이루었다는 거예요. 뭘 이루었습니까? 교회는 잘 모이는 교회도 되어야 하지만 흩어지는 교회도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성전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오늘 나의 예배를 통해서 어떤 말씀을 내가 붙잡았느냐? 그게 제일 중요한 겁니다. 왜냐?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거에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받지만 하나님을 대면하러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오신 거에요. 하나님께 내가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러 왔다.. 얼마나 이게 대단합니까, 영적으로.. 예배 속에서 복음을 놓쳤다면은요, 그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목사가 아닙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성도가 아닙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누구에요?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힘 입어 오늘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거에요. 오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한 주간 여러분들을 통해서 움직일 영의 양식의 말씀을 오늘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목사의 말로 듣지 말고, 성경에 어떤 단어나 문장, 이것이 멋있구나 이런 말씀이 있었구나 그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영적인 은혜의 말씀. 한주간 살아갈 영의 양식의 말씀. 그것을 붙잡아야 돼요. 그래서 강단 말씀을 통해서 모든 답이 다 나와야 됩니다. 불신앙, 염려, 문제가 있었는데, 말씀 듣고 해결이 되었어요. 내가 목사님께 너무 답답해서 이것을 상담하고 싶었는데, 말씀을 들었더니 다 해결이 되었어요. 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지난주에 우리가 말씀을 받았죠? 잘 모이고 흩어지는 교회가 안디옥 교회였어요. 오늘날 한국교회가요, 잘 모이기는 해도 현장에 나가면 아무 힘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 표를 안 내요. 부끄러워 하고 창피해 하고..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예수, 사단과 흑암과 저주와 재앙을 이기는 그리스도 그 예수를 믿는데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하지? 밥 먹는데, 떳떳하게 기도를 못합니다. 아니 왜 우리가 복음을, 예수를 부끄러워 해야 되지? 왜 시대에 남은 자로 하나님이 선택하고 이 시대에 복음 전하라고 우리를 불렀는데 왜 우리가 부끄러워야 되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러분들도 말씀은 안 하시고 계시지만 사실 부끄러운게 많잖아요. 기도하며 눈치 보면서 기도 할 때도 있고, 어떨 때에는 속으로 기도하고 음식 먹고요. 그리고 현장에서 내가 예수 믿는 티를 단 한 번도 안 내잖아요. 왜 부끄러워야 하는가? 그러면 안되요. 잘 모이는 교회라고 하면 우리가 응답받고, 현장에서 나를 통해서 예수님이 증거 되는,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의 응답을 전달해야 해요. 저는 그것을 보면서 성도님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도 그렇구나. 내 자신도요. 왜 부끄러워야 하지? 옛날에는 여러분들 젊으셨을 때, 저 어렸을 때만 해도 막 기도하고, 막 찬양집회 하고, 기독교 문화가 당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것들이 다 창피하게 됐어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핏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오늘 예배 속에서 내가 말씀을 받았다고 하면은 오늘의 나의 응답이 있어야 해요. 기도제목, 기도할 때에 성령이 역사합니다. 기도할 때에 그 응답되는 삶이 여러분에게 성취됩니다. 실체화되고, 구체화되어서 응답됩니다. 어떻게 기도할까요? ‘저는 기도 할 줄 모릅니다.’ 기도 제목까지 하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열심입니다. 기도 제목까지 잘못됐다고 하면 바꾸어주고 수정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열심히 라니까요. 그때에 여러분들의 현장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현장에 성령이 역사해야 해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여러분을 통해, 응답을 통해 확인될 때에 영적인 힘이 생기고 여러분이 처한 현장에 오직, 유일성, 재창조의 절대 응답이 올 줄 믿습니다. 불신자를 막 따라갔어요.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장로, 내가 교회 장로인데 불신자를 따라 갔어요. 그런데 응답을 받으니까 그 교회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라와야 돼요. 어쩔 수 없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어려웠지만 7명의 렘넌트가 응답받으니까 하나님이 그 응답을 7명의 렘넌트 쪽으로 다 몰아버렸어요. 모든 사람이 다 따라와야 돼요. 저와 여러분들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요.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이유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따라와야 돼요. 여러분들을 통해서 살아나야 돼요. 여러분들을 통해서 응답받아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저분이 교회 다닌다고 하는데 표를 안 내는 게 아닙니다. “야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이걸 깨달아야 돼요. 이 응답이 현장에 임해야 돼요. 그러려고 하면은 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성령의 역사를 해야 될 줄 믿습니다.
3.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것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은요. 흩어지는 교회, 모이는 교회가 됐다고 하면 선교하는 교회가 돼야 됩니다. 오늘 본문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결국은 세 가지 뜰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방인의 뜰, 기도의 뜰, 아이들의 뜰. 여기서 장사하고 비둘기를 팔고, 양 팔고 장사한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노끈으로 쳇찍을 만들어놔가지고 막 그냥 쫓아낸 겁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장사하는 집이 아니다’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뜰을 구분하고 성전의 제사와 예배를 제한했어요. 여러분들 누구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어야 됩니다. 차별과 구별과 제한이 있어선 안 돼요.
교회는 세 가지가 절대 있으면 안 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이런 게 있으면 안 돼요. 세 가지 뭐가 없어야 됩니까? 교회는 학벌을 따지면 안 돼요 교회는요. 어디 출신인지? 교회는 따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직업을 따지면 안 됩니다. 교회는 누구나 다 와서 예배를 드려야지 예배가 제한이 되면 안 돼요. 학연, 지연, 뭐 아는 사람 출신이 어디냐? 경상도냐? 전라도냐? 강원도냐? 그런 거 따지면 안 돼요. 어디까지 배웠냐? 가방끈이 짧냐? 가방끈이 기냐? 여러분들 아무리 서울대, 카이스트 나오고 하버드 나와도요. 교회에서는 자기가 배우고 느낀 거 보고 학벌을 얘기하면 안 돼요. 그걸 왜 얘기합니까? 그리스도 공동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응답받으면 끝이지. 이거 따지면 안 돼요. 그러니까 제한을 했다니까요. 남녀노소 제한하고 여자는 이쪽으로 가고 남자는 이쪽으로 가고 예배를 드려라. 완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반대되는 거예요. 지난주에 말씀을 뭐라고 그랬어요? 예루살렘 교회에서 자꾸 제한을 하니까 하나님이 촛대를 옮겨버리잖아요. 안디옥 교회로요..
아니 베드로가 이방인하고 식사를 했는데 이방인도 구원받아야 되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걸 이방인하고 식사를 했다고 율법, 종교, 규례, 전통, 복음 아닌 것과 전혀 상관없는데 그걸 가지고 책을 잡은 거예요. 막 뭐라고 하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그랬어요? 당황하니까 ‘아니 하나님이 좀 이렇게 그런 응답을 줬는데 어떡하냐?’ 이렇게 얼어무렸잖아요. 당당하지 못하고요. 저 같으면요. ‘아니 왜 안 되냐? 모든 민족이 다 구원받아야지! 우리만 구원 받냐?’ 그냥 선민사상이 들어간 거예요. 교회 안에 선민사상 많습니다. 아닌 것 같죠? 제가 많은 교회를 거치면서 성도님들을 보면서 교회 안에 선민사상, 전통, 규례, 복음 아닌 거 많습니다. 많아요.
오늘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뜰을 구분하면 안 돼요. 성전의 예배를 제한하면 안 됩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 예배 나와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담대히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10장 19절에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서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느니라.’ 예전에는 성소를 거쳐서 지성소로 들어가려고 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로 대면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딴 생각하면 바로 죽여버립니다. 하나님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죽으니까 방울을 발목에 매가지고 잡아당기거든요. 움직이면 소리가 나니까요. 안 움직이고 소리가 안 나니까 잡아당겨야 돼요. 그 정도로 무서웠어요. 하나님 만나는 게. 그런데 지금은 무섭지 않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서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 예수의 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정도로 무서웠어요. 하나님 만나는 게. 근데 지금은 무섭지 않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 예수의 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갈 수 있다. 쭈뼛쭈뼛 하지 마세요. 뻔뻔해야 돼요. 어제까지 여러 가지 불신앙, 뭐 염려, 문제, 생각으로 행동으로 죄를 지었다. 상관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는 하나님 앞에 은혜 받아야 산다. 나는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아야 내가 살 수 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당당하게 하세요.
그러니까 아이들까지 이방인들까지 다 장사하는 거예요. 16절에 볼까요?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아이들이 죽고 이방인 다민족들이 다 죽는 거예요. 교회가 렘넌트를 놓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각지대가 렘넌트 후대입니다. 영적인 것 해야 되는데 장사하는 곳으로 다 바꾼 거예요.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그 하나님의 열심을 오늘 붙잡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모든 다민족 다국가 다언어 제3의 나라에 살고 있는 TCK, 국적, 교회가 다 문을 열어야 돼요. 다 열어야 됩니다. 어느 정도로 열어야 되냐? 앞으로 교역자들도요, 외국인 교육자가 있을 정도로 문을 다 열어야 됩니다. 외국인 교육자가 와야 돼요. 전도사님, 목사님인데 외국인이에요. 그 정도로 교회가 다 품어야 됩니다. 앞으로 모든 사람이 다 옵니다. 지금 뭐 MZ세대, MZ세대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하도 우리나라가 어떤 이 생각이 딱 고여 있으니까 이 생각을 열어버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작업하는 거예요. 다민족, 다국가 많은 외국인들이 와야 되는데 우리의 잣대로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MZ세대는 속이지 않고 자기표현을 다 하거든요. 외국인들이 그렇습니다. 지금 그래서 복음의 작업을 하시는 거예요. 어른들 보면 MZ세대 다 대화 안 된다. 물론 맞습니다. 근데 우리나라도 많은 외국인들을 이렇게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문을 여시는 거예요. 생각으로 행동으로 그들과 맞추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 사회와 문화를 바꾸시는 겁니다. 그걸 빨리 아셔야 돼요. 그래서 교회가 문을 열어야 돼요.
너무나 감사한 건 우리 교회가 파키스탄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아니잖아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선교하는 교회가 정말 파키스탄 선교를 통해서 서남아시아, 더 나아가 237, 5천종족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하는 우리 교회가 돼야 될 줄 믿습니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예요. 그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입니다.
19절에 보니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절에 보니까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40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을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완전히 광야에서 렘넌트가 복음으로 세워지는 날 가난 정복은 문이 열립니다. 그래서 성전, 예루살렘 성전을 46년 동안 지었어요. 예루살렘 성전이 그랬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내가 46년 동안 지었지만 나는 3일 만에 일으키겠다. 뭘 뜻합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뜻하는 거예요. 예루살렘 성전 아무리 큰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 전파하지 않고 복음 전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의 전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열심히 그 성전에 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현장에서 렘넌트가 세워지는 날 본격적으로 우리 교회와 모든 현장에 문을 여실 것입니다. 이 언약을 다 붙잡아야 돼요. 후대가 부활의 주요, 예수가 그리스도의 참된 언약을 붙잡고 현장을 정복해야 돼요.
오늘 복음을 회복하고 잘 모이고 흩어지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서 주의 전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열심에 응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 영적인 것 회복 했을 때의 응답과 축복
자, 그래서 영적인 것 회복했을 때 하나님은 응답과 축복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교회가 도피성이 돼야 돼요.그래서 구원이 있고 평안이 있고 안식이 있고 치유가 있고. 야, 교회 가면 살겠다. 참좋은교회 가니까 살겠다, 이 정도 돼야 됩니다. 차별 구별 제한시키는 거 아니라 범죄자도 올 정도로. 도피성이 범죄자들이 피하는 곳 아닙니까? 실수해서 살인이나 범죄를 저질렀는데 이때 당시에는 동서남북에 그 잘못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망가라 그 얘기가 아닙니다. 그 사람도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얘기예요. 그 사람도 그 영혼은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범죄자가 반드시 육신의 처벌은 받아야 됩니다. 그거는 복음으로 수용할 수 없어요. 사람을 죽였다면 40년 50년 무기징역 하여튼 육신적으로는 살아야 돼요. 하지만 그 영은 복음받아야 됩니다. 그 영은 그리스도가 그 안에 들어가야 돼. 그 정도로 교회에, 교회가 도피성이 돼야 돼.
우리 교회도 생각과 우리의 갇혀 있는 것들을 다 우리가 내려놓고요. 누구든 교회에 올 수 있도록 교회가 도피성이 돼야 됩니다. 이 문을 우리가 열어야 돼요. 지나가다 더워서 에어컨 쐬러 오기도 하고 지나가다가 물 먹으러 오기도 하고 지나가다가 화장실 들르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교회가 너무 편한 거예요. 그러다가 예배를 참석했는데 그때 복음이 내 영혼 속에 확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그 영혼은 사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다 문을 열어야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도피성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강단의 메시지로 원네스 되어야 해요. 그래야 사단 세력이 무너집니다. 사단은요, 성도들이 말씀으로 똘똘 뭉칠 때 무너집니다. 교회와 성도는요, 말씀으로 굳건히 서있으면 되는 거에요. 말씀으로 기초가 다져지면 됩니다. 그러면 사단이 꼼짝을 못해요. 이야, 저 참좋은 교회는 진짜 복음, 기도, 전도.. 서론에 뭐 들어갈 틈이 없네, 본론과 결론만 하네.. 그래야 사단이 영원히 떠나가는 것이지, 서론에 있다가 계속 서론만 있으면요, 재밌다고 계속 찍고 들어갑니다.
여러분들 어릴 때, 친구들이 장난하고 하면은 웃으면서 “하지마~” 그러면 어떻게 돼요? 계속 건드려요, 재미 있다고.. 그런데 한번 승질 내고 진짜 막 엄청 뭐라고 하잖아요? 이야, 쟤는 무섭구나 건들지 말아야지.. 재미없다.. 그러면은 장난 안칩니다. 싸움도 안 납니다. 사단도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교회에 확실하면은 우리 교회에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왔더니 복음이 희미해.. 기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전도, 선교에 약간 희미해.. 그러니까 재밌다고 자꾸 찌끄리는 거에, 건드는 거에요. 넘어지고, 본론 속에 들어가려면 또 넘어지고 결론으로 가려면 또 넘어지고.. 혼자 불신앙 하는 거에요. 우리는 안 되니, 되니.. 하나님은 시작도 안 하셨는데.. 되니, 안 되니, 어떠니, 뭐가 문제니.. 교회에 이런 게 문제니, 저런 게 문제니.. 혼자 착각하는 겁니다. 강단의 메시지로, 말씀으로 원네스 되어지고 복음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되고 믿어질만큼.. 오늘 17절, 22절을 볼까요? 17절입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22절에 보겠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래야 비로소 각인, 뿌리, 체질 되어서 기억이 나는 거에요, 하나님 말씀이.. 그리고 어떻게 돼요? 믿었더라.. 여러분들, 말씀이 각인 되어지고 뿌리 내려지고 체질이 되어야 기억이 납니다. 기억이 안나요 안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돼요? 믿음이 와요. 믿음이 옵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인용을 했죠. 시편 69편 9절에 보니까 똑같습니다. 그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열성, 열심. 그 말씀을 인용을 한 거에요. 오늘 본문에.. 여러분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흩어지는 교회, 모이는 교회, 복음을 회복하고 선교하는 교회.. 내 열심, 우리의 열심히 아니라 주의 전을 사모해서,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열심히 한주 동안 응답되어지고 성취되어지는 귀한 한주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우리의 행위가 되지 않고, 내 열심, 우리의 열심히 되지 않고 성전을 향한 열심, 하나님이 나를 통해 우리를 통해 하시는 열심의 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복음이 회복되어지고 잘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또 선교하는 교회로 우리 교회가 모델로 응답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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