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삶는 외 4편
윤관영
국수를 삶는 밤이다 일어나는 거품을 주저앉히며 창밖을 본다 滿開한 벚나무 아래 평상에서 소리가 들린다 웃음 소리가 들린다 젓다가 찬물에 헹군다 누가 아들과 아내 떼어놓고 살라 안 했는데 이러고 있듯 벚꽃은 피었다 기러기아빠라는 말에는 국수처럼 느린 슬픔이 있다 비빈 국수 냄비의 귀때기를 들고 저 벚꽃나무에 뛰어내리고 싶은 밤이다 저 별에게 국수를 권해 볼까 국수가 풀어지듯 소주가 몸 속에서 풀리듯 국수를 삶는 내가 벚꽃에 풀리고 있다
국수가 에부수수 벚꽃처럼 끓는 밤이다
*어쩌다, 내가 이쁜
새벽에, 개똥을 두엄더미에 던지며 처먹고 똥만 싼다고 부삽 득득 긁지만, 기분 좋은 투정도 있기는 있는 것이다 투정에 걸리는 밤송이와 도토리집은 부삽질을 부드럽게 한다 저를 열어 제 속의 것 떨어뜨린 것이 바짝 세운 가시를 그대로 두고 무른 안부터 녹아가면서, 금세 거름빛을 닮아가는 중인 것이다 부삽이야말로 밤송이 까는데 제격이지만 발로 밟힌 밤송이는 이슬에 젖어 눅눅한 것이어서, 가시마저 밤 궁둥이마냥 이뻐 보이는 것이어서, 돌팍을 텡텡 쳐보기도 하는 것인데 눅진한 아침도 이때, 흠칫 이슬을 터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봐도 내가 이쁠 때가 있는 것이다
*이즈막, 꽃
상추 따는 여인의 엉덩이가 쌈처럼 보인 적 있다 서 있는 모습으로는 깻잎 딸 때였지만 이는 원경이 좋다 안경알에 떨어진 땀을 입바람으로 분다 네모난 꽃은 없고 네모난 꽃은 없고 나비는 날개가 크지만 몸통은 벌을 닮았다 잎 다 따가고 남은 곳에 핀 담배꽃 배추꽃, 감자꽃, 장다리꽃, 부추꽃, 가지꽃, 깨꽃 꽃도 인제 먹는 꽃이 예쁘다 이즈막 그렇다 번지는 사과꽃 복사꽃, 잘 안 뵈는 모과꽃 살구꽃 꽃은 왜, 둥글 넓적인가 여인의 엉덩이야 그저 묻은 독에서 김치를 꺼낼 때나 장 뜨는 때가 첫대바기 좋지만, 그건 다, 어머니로 해서 그렇다
*그 자리
마음에 쟁여둔 여인이 앉았던 변기에 앉게 되는 일은 좀 야릇한 일이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온기 아직은 빠져나가지 못한 체취 갓 나은 따스운 달걀을 들고 암탉이 빠져나간 둥우리에 앉는 것만 같아서 가슴털로 짚가시랭이를 뉘어놓은 그 곳에 눕는 것만 같아서 엉거주춤하게 앉아 그네가 앉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야릇하지만 또 불경한 일…
어미닭이 부리로부터 (들었다 놓았다 쉴 새 없던 그 눈동자) 목덜미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부터 가슴털로부터 알에 맞춤하게 제 몸무게를 들어올렸을 두 다리로부터 끝없이 옴직거렸을 미주알 그래서 짧았을 꽁지, 그래서 제 몸이 반원을 정확히 그렸을 둥우리로부터
손을 씻고 차마 그네를 마주는 못 보고 그래서 또 생각는 허벅지의 온기는 피 묻은 달걀을 쥔 것 같기도 한 일이다
*꽃 4
술패랭이 꽃입살에 간질밥먹이거나 佛頭花를 눈 뭉치듯 조몰락거리는 것은 순전히 암띠어서 이다
꽃에 난딱 코를 박는 것도 그 때문, 꽃만 보면 무슨 꽃이든 이내, 이후가 보인다
예쁘다는 것은 그렇다, 지금 저 예쁨은 꽃나무가 들이 버티고 있는 절정, 절정엔 이후가 급박하다
꽃이기에 함부로덤부로 볼 수가 없다 꽃 감상이란 말은 언어도단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
꽃 이름 따져 외고 꽃과 꽃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불경한 일,
꽃 피어 花開나 流水
화주를 마신다 절정은 져 환하니까 후회막급이니까
<수상 소감>
*패배의 고독이 더 큰 패배의 열망을 부른다/윤관영
무림에 〈萬敗劍者〉라는 검수가 있다. 그는 목숨을 건 승부에서 매번 반초 차로 진다. 무학의 정수를 꿈꾸는 자로 實戰으로 무학 이론을 완성해 완벽한 무인이 되려는 자다. 제 몸의 상처로 武의 道를 추구하는 자. 오직 대결만을 위해 떠돈다. 生死鬪를 통해 자신의 무예를 뒤돌아보며 상대의 고절한 절기를 체득한다. 특이한 무기를 쓰거나 남 다른 초식을 구사하면 그의 대결 명부에 올라간다. 그와 싸워 본 자는 이기고도 이겼다는 느낌을 갖지 못 한다는 게 중론이다.
〈만패검자〉는 나의 꿈이다. 허나 언감생심, 나는 내가〈매타자〉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맞을수록 강해지는 자, 패배가 외려 힘이 되는 자, 강한 타격이 반탄력을 불어넣 듯 패배의 고독이 더 큰 패배의 열망을 불러오는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매타자다. 그는 지속적으로 강해져 가지만 승리는 해 본 적이 없는 자다. 패배에 정비례한 열망으로 고수의 꿈을 키워 나가는 이가 매타자다.
문파와 비전 절기가 없으며 동문 사형제가 없는 자가 매타자다. 혼자다. 그는 무에 취해 그 속에 살지만 이기는 자가 아니다. 다만 그는 수많은 결투를 통해 ‘어떻게 해야 지지 않는가’ 하는 것만은 익히 알고 있다. 지지만 잘 무너지지 않는 자인 것이다. 별난 초식이나 독문 병기가 없어 눈에 띄는 자는 아니나 결투 자체를 피하지 않는 이가 매타자다.
저자거리에서 매품을 팔고 있는 매타자를 유심히 보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몇 대의 주먹질을 이기는 외문 무공을 익히고 까불기 십상인 매타자에게도 숨은 고수의 눈길과 시비, 시험을 이기고 싶은 만패검자의 꿈은 있다. 속을 진탕시키는 고수의 내가중수법에는 도리가 없는 것! 느릴지는 모르나 한눈 팔 수는 없다. 더 열심히 내공을 진작시키고 초식을 익혀 진정한 武人의 반열에 오르도록, 나는, 매를 벌어야 한다.
<현대시학> 3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