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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한 달을 네팔에서 보냈다. 16년 전부터 매 년 세계 배낭여행을 다녔으나 코로나 이후 3년의 공백을 딛고 처음으로 배낭여행 짐을 꾸리는데 설렘보다는 걱정이 먼저였다. 네팔은 수도 카투만두가 해발 1300고지고 또 8천고지가 넘는 최고봉을 8개나 가지고 있는 산악지형의 나라여서 사계절 옷을 모두 챙겨야했다.
10년 전부터 안나푸르나 서킷이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관한 여행기를 차근차근 읽어왔던 친구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네팔 트레킹에 따라 나섰지만 남미여행(볼리비아 우유니 해발 3700~4000)때 맛본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잠재울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천공항에서 네팔 트리부반 공항까지 대한항공 직항이 생겨 편리했다. 5만 마일의 마일리지를 쓰고 왕복 20만4천원을 주고 산 비행기 표. 7시간의 비행 끝에 네팔 공항에 도착해 보니 등산 배낭을 메고 비자 신청을 위해 줄을 선 대한민국의 트래커들이 엄청 많았다. 반가워 인사를 하니 네팔에 첫 번째 방문이냐고 묻는다. 네팔은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 히말라야 산맥의 해발 5천 고지를 넘나드는 다양한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여성분들도 코스별로 도전하기 위해 자주 찾는 여행지이기도 하단다. 우리는 여행 비자 30일에 1인 50불의 경비를 내고 여행자들이 많은 카투만두 타멜 거리에 도착했다.
카투만두
한국보다 3시간 15분 늦은 네팔은 북쪽으로 중국, 남쪽으로는 인디아에 접하고 있다. 호수 도시 포카라로 향하기 전에 카투만두에서 몇 일 머물며 여행을 했다. 네팔은 힌두교가 대부분이지만 불교 및 그외 다양한 종교가 있고 시내 교통은 버스, 택시, 릭샤, 말이 끄는 이륜마차인 통가 등이 있어 마치 인도에 머무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카트만두의 핵심 여행지인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으로 다양한 종교 행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아직도 2015년에 일어난 지진피해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린 소녀를 신으로 숭배 한다는 쿠마리를 보기 위해 많이 기다렸는데 대략 30초 정도 얼굴을 보여주다 사라져 야속하기까지 했다. 달라도 너무나 다른, 그 생경한 네팔 문화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다. 광장에는 사람 수 만큼 많은 개가 팔자 좋게 누워있고 여기저기 비둘기 밥을 주는 넉넉한 인심에 놀라울 정도였다. 더르 바르 광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신 시원한 라씨 한 잔이 소란스런 상황들을 잠재울 정도로 상큼했다.
다음날, 힌두 최대의 성지인 파슈파티나트 사원 옆으로 흐르는 바그마티(Bagmati)강으로 갔다. 그곳은 인도의 바라나시처럼 화장을 하는 곳이다. 바그마티 강둑에 늘어선 화장터 가트(GHAT)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에 눈물이 쉴틈없이 흘러내렸다. 화장 직전에 얼굴과 발에 강물을 끼얹는 모습까지 지척에서 보고 돌아와 며칠 동안 생각이 깊어졌다. 종교를 떠나 한 인간의 생을 마무리 하는 그 현장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포카라(Pokhara)
포카라(Pokhara)는 역사와 문화적인 가치보다는 조용한 페와 호숫가를 산책하며 트레킹 전 후 휴식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카투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비행기로 30분 거리를 네팔의 속살을 보겠다는 욕심으로 버스를 택한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늦게야 알게 되었다. 얼추 9시간 동안 한계령보다 더 심한 굽이굽이 고개에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길로 손에 땀을 쥔 덕분에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어지러움을 잡아주는 특효약은 김치 안주에 에베레스트 비어나 고르카 스트롱 6도짜리 맥주였다. 맥주 값이 우리나라보다 비싸 7000원 정도에 먹을 수 있으니 지갑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빠른 치유법이 없는 듯하다.
대부분의 트레킹 출발점인 포카라의 가장 인상적인 두 곳을 소개하고 싶다. 모든 여행의 가이드가 되어주는'윈드폴'이라는 한국인이 경영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다양한 정보와 필요한 것은 뭐든 빌려주는 빅마마 같은 분이 계시다. 그곳에는 늘 한국인들이 북적인다. 실업급여를 받아 왔다는 젊은 청년들부터 은퇴 후 꼭 히말라야 코스를 도전해 보고 싶었다는 초보 여행자들, 10년째 매 년 찾아온다는 슈퍼급 트래커들,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교포들까지 포터와 가이드, 퍼밋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트래킹에 관한 만능해결사인 윈드폴에 도움 요청하면 여행이 퍽 수월해 질 것이다.
두 번째는 산촌다람쥐라는 식당. 대부분 코리아 푸드라고 쓰인 음식점들은 네팔인이 경영하는데 이곳은 한국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먹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한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K-문화가 세계화가 되면서 김치와 삼겹살은 이미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이 되었는지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 삼겹살을 즐기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우리는 산촌 다람쥐 사장님으로 부터 포카라에 테니스장을 소개 받았다. 네팔은 우리나라 70년대 후반처럼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만 테니스를 즐기고 있단다. 그 산촌 다람쥐 사장님은 어린 아들에게 테니스 레슨을 시키기 위해 갈 때마다 택시비로 1000루피 (한국 돈 10.000원)를 지불하고 코트에 다닌다고 전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 지 알 수 있었다.
트래킹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은 지구 둘레의 6분의 1에 달하는 길이로 파키스탄, 인도, 네팔, 티벳, 부탄, 중국 등에 걸쳐 있다. 8천미터급 봉우리 14좌를 보유한 거대한 산맥으로 네팔은 그중 8개의 봉우리가 있고 각각의 베이스캠프까지 도전하는 트래커들이 매우 많다. 일반인들이 즐겨찾는 트레킹은 에베레스트, 랑탕,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이고 그중 해발 4130미터인 ABC (annapuruna base camp)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70프로가 넘는다고 한다.
트래커들은 네팔 정부로 부터 목적지인 산의 높이에 따라 퍼밋을 받아야 하는데 그 금액이 각각 다르다. 3천 미터 급은 30불, 8천 미터급은 100만원도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가이드는 필수. 가이드 비용이 하루 25불, 짐을 지고 가는 포터들도 25불. 산에 오래 머물수록 그 경비가 만만치 않다. 우리는 퍼밋 없고 비싼 포터와 가이드 없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최근에 개발된 마르디히말 베이스캠프가 최소 경비로 갈 수 있는 곳으로 알맞았다. 해발 4600고지를 목표로 올라가다 중간에 고산 증세가 나타나면 돌아오는 계획으로 침낭도 없이 초등학생 소풍가방 크기의 백팩 하나씩 메고 출발했다.
포카라에서 택시를 타고 까레(1720M)에 내려서 걷기 시작해 첫날 피탐데우랄리(2100M)에서 1박, 그 이튿날 포레스트 캠프(2550M)에서 1박, 3일째 바달단다 (3300M)에서 1박을 했다. 3000고지에 다다를수록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심신의 노곤함을 잊게 해 주었다. 다 괜찮았다. 한국 신라면으로 매 끼 식사를 하는 것도 좋았다. 다만 물 한 컵에 2천 원을 주고 사 먹어야 하니 따뜻한 물로 씻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왜 생존 필터가 고산 등반에 필수 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산으로 갈수록 물가는 턱없이 비싸고 찬바람 숭숭 들어오는 롯지의 숙박비는 저렴했다.
바달단다에서 한국인 트래커 4명을 만났다. 그분들은 45일째 트래킹 중에 마지막으로 마르디히말에 들렀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소풍가방 메고 3천 고지까지 오른 우리를 보며 진정한 여행자다운 모습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 밤에 온기라고는 없는 롯지에서 코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추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도저히 하이캠프나 뷰포인트(4600)까지 더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이른 새벽 눈앞에 펼쳐진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설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와 큰 행운을 얻은 것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 올 수 있었다. 3일 동안 걸었던 길을 단 5시간 만에 로우 캠프에서 시딩까지 직할 강으로 내려와 무릎 통증과 뭉친 근육을 푸느라 며칠 동안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불편하기 그지없고 험난하고 힘든 고산 트래킹에 도전하는 수많은 트래커들에 대해 존경과 부러움이 저절로 생겼다.
포카라 테니스장
페와 호수에서 택시를 타고 20여분 지나 포카라 스타디움 앞에서 내렸다. 스타디움은 다양한 스포츠 시설을 한 곳에 갖춰 놓은 종합운동장이었다. 안쪽 깊숙한 자리에 위치한 테니스 코트에 도착해서 보니 앙투카 9면에서 학생들을 위한 테니스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코트는 잘 정비 되어 있었고 바달단다에서 보았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설산들이 코트 한 쪽을 에워싸 깜짝 놀랄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최근에 여러 나라의 선수들이 이 코트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했는지 태극기와 세계 곳곳의 국기가 만국기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코트 정면에 보이는 ‘썸머 테니스 캠프’라는 대형 광고판이 궁금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사를 하는지 관계자를 만나 질문을 했다.
한국에서 온 낮선 방문객을 반갑게 맞은 로크 회장은 “이 썸머 테니스 캠프 행사는 3주 동안 6세부터 16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을 실력별로 나눠 테니스의 기초적인 지도를 하는 행사로 매 년 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G5 주니어 대회를 열고 있는데 한국, 인도, 미국등 20개 국의 주니어 선수들이 참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 코트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트라고 자랑할 수 있는 이유는 8천 미터 급 봉우리의 설산들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품으면서 경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6년 전 네팔 주니어 대표로 한국을 방문하여 테니스 경기를 했다는 프리티 바랄을 만났다. 그녀는 한국에서 머물 때 깨끗하고 선진화 된 도시에 대한 인상 깊은 부분을 전했다. 특히 삼겹살과 김치를 좋아해 지금도 포카라의 한식당에 가서 자주 한국 음식을 먹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서울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프리티 바랄은 현재 테니스 선수 생활을 접고 개인 사업을 하고 있으며 협회 행사를 돕고 있다고 했다.
빈부의 차이가 심한 네팔에서 테니스는 서민들이 즐기기에는 부담이 크단다. 레슨비는 30분에 만 원 정도를 하는데 거기에 코트 사용 요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라 쉽게 접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닌 듯 싶었다. 현재 이 코트는 3개 클럽 대략 100여 명의 동호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단다. 만약 네팔에 갈 계획이 있는 분들은 라켓을 지참할 것을 권한다. 카투만두와 포카라 모두 다 코트 시설이 잘 되어 있으니 현지인들과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후기
“나에게 여행은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동력과 같은 거다”라고 말했던 어느 작가의 말대로 가끔 훌쩍 떠나 있다가 일상으로 복귀를 하면 힘도 얻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하루하루 되풀이 되는 삶에서 궤도를 바꿔 낮선 곳에서 고생하다 돌아오면 철이 든다고 말해야 할까? 음식과 잠자리, 언어의 소통등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여행. 그래도 삶의 데이터베이스를 넓히는 데는 여행이 최고 인듯 싶다. 살다가 가지치기(pruned)가 필요할 때도 역시 여행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해발 4천고지 5천고지에 대한 환상이다. 그곳을 향한 꿈틀거림이 지속된다면 내년에 더 큰 배낭에 테니스 라켓까지 넣어 다시 환상 방황을 시도해 볼 수 있으리라. 글 사진 송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