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百濟 는 왜 이름이 백제 百濟 일까 ?
백제란 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1. 어학적인 면
百 많다. 濟 (물)건널 제, 많고 성할 제
백제(百濟)는 빅 조이(big joy)다.
온조(溫祚)는 처음에 나라의 이름을 '십제(十濟)'라고 했다. '제(濟)'자에는 중국의 제(齊)나라가 물 건너 왔다는 뜻이 담겨 있고, '십(十)'자의 소리에는 '세인(saint)'란 뜻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산동 반도에 있던 제(齊)나라가 망하자, 그곳에서 살던 아리아 인들의 일부가 한반도 서해안 지대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운 것이 백제의 기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추홀(彌鄒忽)'은 '비류(沸流)'가 나라를 세운 곳이다. '미추홀'의 어원은 '만남의 광장'이라는 뜻인 '미트홀(meet hall)'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동족들의 집결을 기다리며 서해안 지대에 미추홀 즉 만남의 장소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아, 배를 이용해 이주한 유민들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미추홀은 땅이 척박하여 백성들이 떠나고 온조가 세운 위례성을 떠났다.
위례성(慰禮城)은 온조(溫祚)가 처음 도읍한 곳이다. '위례'는 '좋은 태양신'이라는 말인 '웰레(well Re)'와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국호에는 태양신이란 말인 '려'와'라'가 있지만, 백제의 국호에는 없다. 당시는 태양신을 숭배하던 시절이어서, 백제는 태양신이란 말인 '레(Re)'를 '례(禮)'로 표기하여 도읍지를 '위례성(慰禮城)'이라 이름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유사』'남부여 전백제' 조에 "비류가 죽고 그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후에 백성들이 올 때 크게 기뻐하였다 하여 나라의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百濟(백제)'라는 말에 큰 기쁨이란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백제'란 말은 영어로 큰 기쁨이란 말인 '빅조이(big joy)'와 어원이 같은 아리아 어의 어휘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百濟'를 '구다라(くだら)'라고 읽는다. 이것은 옛 이름들을, 한자의 음으로 읽지 않고, 원래의 소리로 읽어 온 일본의 전통에 연유한 것이다. '구다라'의 어원은 '큰 나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백제 사람들이 '百濟'를 '큰 나라'라고 훈독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구다라'라고 읽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의 초기 역사에는 의문점들이 많다. 다음은 1996. 12. 30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이규행 옴부즈맨' 칼럼의 일부다.
【장개석(蔣介石) 총통이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에게 그의 고향과 관련해 했다는 이야기가…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 남쪽의 절강성(浙江省)인데 그곳은 옛 백제(百濟) 땅이었다는 사실을 백범에게 말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 '蔣介石(장개석)'의 중국 북경 표준음은 '장제스'이지만, 대만에서 공식으로 발간된 장총통집(蔣總統集)에 쓰인 '蔣介石(장개석)'의 영문 표기는'장가이섹(Chiang Kai-shek)'이다.】
절강성이 옛 백제의 땅이었고, '蔣介石'의 정음(正音)인 '장가이섹'은 북경 표준음과 다른 절강(浙江) 방언으로서 한국식 음과 같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크다. 제(齊)나라가 망하자 제나라에서 살던 아리아 인들의 일부가 한반도로 이동하여 백제를 건국했고, 일부는 절강성 일대로 남하하여 백제와 제휴함으로써 절강성 일대에 백제의 담로(擔魯)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절강성 일대가 백제의 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볼 수 있다.
중국의 북사(北史)와 수서(隋書)에는 다같이 시조(始祖) 구이[仇台]의 동이강국은 건국 초부터 백가(百家-백 개의 가문집단)가 제해(濟海-바 다를 건너)했기 때문에 국호를 백제(빡찌-밝지)라 했다고 쓰여 있다.
2. 역사적인 면.
변서동이 백제전조의 기록에,"백제는 동이강국으로 '백가제해'해서 이름이 유래하였다."라 할만큼 강력한 해상제국이기도 했었다.
백제는 '해양제국'이었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백가제해(百家濟海) 즉, 만국과 해양을 제패한다'는 뜻을 담아 백제라 하였다.
바로 백제가 해상왕국, 일본과 중국의 요서지방 산둥지방까지 지배력이 미쳤으니. 백제가 "동방의 카르타고"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