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글 씹히는 뽀얀 속살
입안엔 바닷내음 담뿍 고여
해돋이의 고장 강구는 강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하다. 태백산맥에서 시작된 오십천이 바다와 배꼽처럼 연결되어 있다. 오십천은 태백산맥 동남쪽에 사는 강구사람들의 정신과 삶을 적셔주는 젖줄이다. 이름 없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이곳에 1929년 축항공사가 이루어지면서 탯줄 같은 긴 강변을 따라서 배들이 정박하게 되었다. 그 후로 강구는 파도가 잔잔한 항구가 되어 동해안의 대표적인 피항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강구의 명성을 있게 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영덕 대게이다. 주말이면 대게 맛을 보려고 전국에서 찾아온 여행자들로 넘치고 대게를 경매하는 어판장은 새벽부터 활기에 넘친다. 불야성을 이루듯 즐비한 음식점의 수족관에는 기괴한 모습의 대게들이 가득 차 있다. 대게는 몸집이 크다고 대게가 아니다.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죽해(竹蟹), ‘대나무게’라 불린다.
고려 태조가 영해를 순시했을 때 주안상에 오르면서 유명해졌고 조선시대에는 나랏님의 수라상에 오르던 진상품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송이와 함께 일본으로 수출되는 귀하신 몸이었다. 영덕 대게의 특징은 딱딱한 껍질에 싸인 분홍빛 겉살과 살며시 찢으면 드러나는 뽀얀 속살에 있다.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한 탄력과 탱글탱글 씹히는 맛이 일품인데 씹을수록 입안에서 향긋한 바다냄새가 나는 듯하다.
잡히는 지역은 수심 200~800m 정도의 심해 해저. 예전에는 울진, 강구, 구룡포 등 동해안 연안에서도 잡혔으나 남획되어 독도에서도 더 멀리 가는 대화퇴 부근에서 잡힌다. 그나마도 한일어업협정으로 어장의 대부분을 일본에 내주어 요즘은 국내산이 크게 줄었다. 10년 전만 해도 강구 앞바다의 ‘무학잠’ 같은 해구에서도 많이 잡혔으나 해저가 오염되어 서식환경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탓에 대게의 본바닥인 강구에서도 국내산을 맛보기가 힘들어졌다. 반입량이 줄어서 마리 당 8만원에서 15만원을 호가하는 영덕 대게는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다. 박달나무처럼 꽉 차서 박달게라 부르는 최상품은 20만원대이다. 이런 실정이니 큰맘 먹고 강구까지 온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러시아산 북한산 일본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들도 마리 당 2만5천원에서 3만5천원은 줘야 하니 한끼 식사로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혀끝에 감도는 고소하고 담백한 게 맛을 잊지 못하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 강구항의 풍물거리이다. 초행길엔 화려하게 단장된 상가의 대게집에 이끌리지만 발길이 잦다보면 세련된 인테리어가 게 값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풍물거리는 아스팔트 포장이 된 주차장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실내포장마차 같은 작은 집들이 1호에서 81호까지 줄지어 있다. 마치 동남아의 수상 가옥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어느 집을 가든 지상의 대게집에 비해 값이 반절은 싸다. 똑같이 경매해온 대게를 장소가 비좁고 허름하니 싸게 팔고 많이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전략이다.
오십천변에 복사꽃이 피고 우실령 아랫마을에 찔레꽃이 피는 봄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강구항을 찾곤 한다. 이때 들르는 단골집이 풍물거리의 77호집(054-734-0478)이다. 눈앞에는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는 어선들이 지나가고 바다냄새, 갈매기 울음소리 어우러져 소주잔은 절로 달콤해진다. 맛있는 게를 먹는 요령은 작더라도 살이 차고 쫄깃하고 내장이 담뿍 들어 있는 것은 골라 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찾아가는 길은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으로 나와 34번 국도를 이용 안동, 진보를 거쳐가면 강구에 닿는다.
시인·여행작가 이형권
첫댓글 고맙습니다.. 영덕을 잘 소개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