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캇 팩은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절제를 배우지 못한 한 여성 재무전문가의 예를 통해 부모의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지만 삶이 무질서한 사람들의 특징은 훈련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부모의 양육의 방식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특히 사랑이 많은 부모와 사랑이 없는 부모의 차이는 시간이라 평가한다.
2.
사랑을 하면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사람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어디에 투자하는지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은 세차 장비와 세차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아이와 시간을 함께 가지는 부모는 아이에게 언제 훈육을 해야 할지, 언제 훈육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구분해서 적절히 반응한다.
그러나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하는 부모는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많이 하지만, 제대로 훈육되지 않는다. 시간을 함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잘 모르고, 사랑한다는 말에 아이도 반응하기는 하지만 그 반응은 사랑을 잃어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반응일 뿐이다.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기 때문에 방치 상태로 두다가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방식의 훈육이 되고, 그것은 결국 잘못된 훈육이 되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
3.
또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부모와 사랑을 느끼는 아이는 고통의 문제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사랑이 넘치는 부모의 훈육방식은 사랑 없는 부모의 그것보다 질적으로 월등하다. 좋은 부모는 시간을 함께 가지면서 아이의 고통에 함께 고통한다. 부모가 자기와 고통을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아이들 역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고통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거야 나도 기꺼이 괴로움을 견뎌야지”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자기절제의 시작이다.”
스캇 팩은 절제를 배우는 기초는 부모가 아이의 고통을 함께 하는 것을 통해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이것이 즐거움을 유보할 수 있는 절제의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아직 예수님을 믿기 전에 쓴 책이지만 정신과 의사로 수많은 상담 끝에 내린 스캇 팩의 결론은 일반은총의 끝판왕인 것 같다.
4.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지셨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 당할 때 얼마나 힘든지를 이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고통을 겪는 신을 본 적이 있는가? 능력있는 신이 하늘에서 능력을 베풀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고통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시고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이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기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맥스 루케이도는 <베들레헴 그날 밤>에서 하나님이 고통을 겪으신 것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이해하실까? 베들레헴에 답이 있다. 하나님은 눈물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과 같은 인간이 되셨고 우리와 동일한 얼굴을 취하셨다." 하나님의 눈물을 보여 주시기 위해 당신과 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눈물과 고통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다.
5.
나는 청년시절에 늘 삐딱한 사고를 하던 젊은이였다. 성탄절 설교를 들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두 살아래의 아이를 다 죽인 사건이었다. 하나님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예수님을 애굽으로 피신시키셨다. "왜 자기 아들만 살리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를 다 죽이시는가?"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숙제였고, 하나님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를 가지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눈물을 보면서 이해되지 않아도 마음의 응어리 하나가 해결되었는데,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었다. 그리스도의 눈물을 통해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시는 훈련 트레이너가 아니라, 가슴아파 하시는 우리 엄마 처럼 느껴졌다.
6.
이 땅의 고난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헤롯이 계엄령을 내려서 아이들을 죽이는지, 하나님은 왜 그 사건을 막지 못하시는지.. 우리의 생각 안에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천국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기에 타락한 세상이 주는 구조적인 악의 문제일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겪으시며 나의 고난에 함께 우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결국 우리를 위해 고통을 당하신 사랑과 우리와 함께 고난 속으로 들어오시는 사랑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 함께 고통하는 부모를 통해 절제를 배우며 고난을 이겨나가듯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고통하는 세상을 살아갈 힘을 공급받게 된다. 이해되지 않아도,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일하시는 분이시다.
7.
헤롯이 통치하는 무시무시한 계엄같은 상황에 예수님은 태어나셨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의 통치자로 유대인 식민지 백성에게 호적을 하라고 선포하던 그런 암울한 시대에 예수님은 탄생하셨다. 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그리스도의 탄생이 그렇게 힘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역사는 결국 승리하게 된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성탄은 유일한 소망이 된다. 비록 세상은 여전히 타락되었고, 내 삶은 여전히 무너져있지만, 성탄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준다. 비루하고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첫댓글 가슴아파 하시는 우리 엄마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