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역사의 개괄
그리스 신화는
시간이 경과할 수록 문화의 발전에 적응하며 변화해왔으며,
이러한 변화에는 전체적인 것과 더불어 무언의 가정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그리스 신화의 문학 형태는
대부분이 점진적인 변화를 거친 것으로,
길버트 커스버트슨의 주장처럼
그 본질은 정치적인 것이다.
농업에 종사하였던 발칸 반도의 초기 거주자들은
애니미즘 사상을 통해
자연의 모든 것에 영혼을 부여하였고,
사람의 형태로 가정된 이러한 영혼들은 지역 신화에서 신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발칸 반도 북부의 부족들이 침범하게 되면서,
정복과 세력, 싸움에서의 용기, 영웅적 자질을 바탕으로 한
그들의 새로운 판테온 신들이 기존 발칸 반도의 신화에 유입되었다.
그 결과 농경 사회에 존재했던 오래된 신들은
그들의 더욱 강력한 침략자에 융합되었고,
그렇지 못한 신들은 쇠퇴하여 사라지게 되었다.
고대 중반 이후에는
남신과 남성 영웅 간의 관계에 대한 신화가 더욱 빈번해지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기원전 630년 경에 확산되었다고 여겨지는
교육적 동성애 (Eros paidikos, παιδικός ἔρως)의 동시적 발전과도 관계가 깊다.
기원전 5세기가 끝날 무렵,
시인들은 아레스를 제외한 모든 중요한 신과
많은 전설적 인물에게
적어도 한 명의 에로메노스 (성적인 관계의 어린 소년)를 정해두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처럼
이전에 존재하던 신화 또한 암시적인 동성애 관계가 가미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시인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유행에 맞추어
그리스의 신화적 인물의 이야기를 각색하였으며,
초기 로마 제국의 문학 신화 수집가들에게는 이것이 더욱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일련의 역사적 이야기를 만들어낸 서사시의 업적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감각의 신화적 연대기로 발전하였고,
그리스 신화는
세계와 인간의 발전 모습 또한 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내용에서 드러나는 자기 모순적 서술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 구성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략의 연대는 파악할 수 있다.
신화에서 설명하는
"세계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세 시대, 또는 네 시대로 나눌 수 있다.
- 창세 신화 또는 신들의 시대 (신통기, "신들의 탄생"): 세계와 신,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신화
- 신들과 인간의 자유 교류 시대: 초기에 신들과 반신반인, 인간이 서로 교류했던 이야기.
- 신들의 활동이 제한되었던 영웅의 시대. 마지막이자 가장 거대한 영웅 전설은 트로이아 전쟁과 후일담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네 번째 시대로 나누기도 한다.)
神들의 시대가
동시대의 신화 연구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아온 반면에,
고대와 고전 고대의 그리스 작가들은 영웅의 시대를 더 선호하였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설명한 후,
그 다음부터는 인간의 업적에 대한 기록과 연대를 정립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서,
영웅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신통기》와
호메로스 찬가의 규모와 유행을 위축시켰다고 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영향으로
"영웅 숭배" 문화는
종교 생활의 개혁을 가져왔고,
죽음 (영웅)의 세계에서
신들의 세계를,
올림피안에서 지하 세계의 신들을
분리하여 표현하였다.
헤시오도스는
《노동과 나날》에서
인간 (종족)의 시대를
금, 은, 청동, 철의 네 시대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종족, 또는 시대는
신들의 창조를 기준으로 구별하는데,
금의 시대는
크로노스의 지배에 속하며, 이후의 종족은 제우스가 창조한 것이다.
헤시오도스는
청동 시대 다음에 영웅의 시대 (종족)를 삽입하였다.
마지막 시대는
철의 시대로,
시인들이 활동하던 시대와 동일하였다.
시인들은 이 시대를 최악의 시대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판도라의 신화를 통해서
철의 시대부터 세상에 악 (惡)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게 되면서,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좌절되고 오직 희망만이 남았다고 한다.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헤시오도스의 네 시대 개념을 가져왔다.
신들의 시대
우주 생성론과 우주론
"근원 신화" 또는 "창조 신화"는
인간의 용어로 우주를 이해하며,
세계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를 말한다.
철학적인 설명으로 시작되기는 하지만,
오늘날에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신화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서술되어 있다.
그는
세상이
지루한 공허인 카오스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공허가 끝나자
에우리노메, 가이아 (대지)가 나타났고,
에로스 (사랑),
어비스 (나락, 타르타로스),
에레보스와 같은 다른 근본 신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가이아는
남자의 도움 없이 우라노스 (하늘)를 낳았고 그와 결합하였다.
이 결합으로
거인족 티탄이 처음으로 태어났는데,
이들은 코이오스, 크리오스, 크로노스, 히페리온, 이아페토스, 오케아노스의 여섯 남자,
므네모시네, 포이베, 레아, 테이아, 테미스, 테티스의 여섯 여자로 구성되었다.
이윽고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외눈박이 키클롭스와
100개의 손이 달린 헤카톤케이레스를 낳았다.
크로노스 ("교활하며, 가장 젊고 무서운 가이아의 자녀" )는
우라노스를 거세시키고
신들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누이 레아를 자신의 배우자로 삼고,
다른 형제 티탄들을 지배층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립 주제는
크로노스가
자신의 아들 제우스에게 적대를 받으며 되풀이되었다.
아버지를 배반하였던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 또한 그럴 수 있다는 두려움에
레아가 자식을 낳을 때마다 빼앗아 삼켜버렸다.
이것을 증오하던 레아는
마지막으로 낳았던 아들 제우스를 숨기고
강보에 싼 바위를 대신 주어
크로노스가 삼키도록 하였다.
성장한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약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하여
구토를 하게 만들었고,
크로노스의 위장에 있던 레아의 다른 자녀들과
바위가 모두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위를 차지하고자
크로노스에게 도전하여 전쟁을 벌였다.
막바지에 이르러
키클롭스 (제우스가 타르타로스에서 구출)의 도움으로
제우스와 형제들은 승리하게 되었고,
패배한 크로노스와 티탄들은 내쫓겨
타르타로스에 감금되었다.
아티카식 흑회식 암포라에 그려진 메티스를 삼킨 제우스의 머리에서 "재탄생"하는 아테나,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투이아가 오른쪽에서 돕고 있다. 기원전 550 - 525년 경 작품. (파리 루브르 박물관)
크로노스와 같은 반란을 겪을까봐 걱정하던 제우스는,
첫 번째 아내인 메티스가
"자신보다 위대한" 신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자
아내를 삼켜버렸다.
하지만 메티스는
이미 아테나를 임신하고 있었고,
아테나는 제우스에게 계속 두통을 앓게 만들다가
무장을 한 채 완전히 성장한 모습으로 그의 머리에서 나오게 되었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詩에 대하여
신통기를 원형적인 시 장르—원형적 미토스—로 여겼으며,
내용 대부분에 마법적인 힘이 깃들여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원형 시인 오르페우스
또한 신통기를 읊는 원형적 가수였는데,
아폴로니오스의 《아르고나우티카》에서는
바다를 잠재우거나 폭풍을 일으켰으며,
하데스로 하강하여
지하세계 신들의 냉혹한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였다.
〈헤르메스에게 바치는 호메로스 찬가〉에서
헤르메스가 서정시를 고안해냈을 때
그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도
신들의 탄생에 관한 것이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는
전해내려오는 신들의 모든 이야기뿐만 아니라,
무사이에게 영감을 비는 긴 첫머리에서
아르카익 시인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충실히 담고 있다.
신통기는
또한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에피메니데스, 아바리스와
그 밖의 전설적 현자가 지었다고 여겨지며,
내밀한 정화 의식과 밀교 의식에 사용되었던 소실된 많은 시들을 주제로 삼기도 하였다.
실제로 플라톤은
오르페우스교 신통기의 몇가지 이야기에 정통했다.
그러나 종교 의식과 신앙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되었기 때문에,
종교의 신앙은 유지된 반면,
그 집단의 구성원들에 의한 이러한 문화의 종류의 보고는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이후 종교적 신앙이 쇠퇴하면서,
일부만이 종교 의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문헌에서 이러한 의식에 대한 언급을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양상은 소실된 직접적인 문헌과 달리 명료하고 의도적인 것에 불과하다.
도기와 종교적 예술품에 묘사된 장면들은
다양한 신화와 전설로 해석되었으며,
잘못 해석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러한 작품의 일부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의 인용과
최근에 발견된 파피루스 조각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파피루스 조각 중의 하나인 데르베니 파피루스는
오르페우스 신앙의 천지 창조 시가
최소 기원전 5세기부터 존재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었다.
그리스 세계에서는
최초의 철학적 우주론자들이
반대하거나 성립해온 대중적인 신화적 개념들이 한동안 존재했었다.
이러한 개념들의 일부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에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호메로스의 시에서는
대지가 오케아노스의 강 위에 떠있는 평평한 원판이며,
태양, 달, 별이 있는 반구형의 하늘에 둘러싸여 있다고 설명하였다.
태양 (헬리오스)은
전차를 몰면서 하늘을 가로질렀고,
밤에는 황금 사발을 타고 대지 주위를 항해하였다.
태양, 대지, 하늘, 강, 바람은 발원의 대상이 되거나
입증 선언에서 이름이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자연의 균열은 보통 하데스의 지하 세계이자
그의 전신인 죽음의 세계로 가는 입구로 생각하였다.
다른 문화권의 영향은 언제나 새로운 주제를 창출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