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1. 주일예배설교
에베소서 1장 3~14절
우연은 없습니다!
■ 그룹 송골매의 노래 중에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있습니다. 노래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우리의 만남 중 많은 경우가 이 노랫말처럼 ‘어쩌다 마주친’ 만남입니다. 계획하고, 사전에 조율한 만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연’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이 말이 익숙하고, 모든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만, ‘우연’이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오히려 ‘우연이 뭐지?’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모든 이유의 전말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 본문은 ‘찬송을 드리자’는 제안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14절에 이르기까지 계속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긴 설명이긴 하지만, 요점은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았으니 찬송을 드리자’는 것입니다. 참 간단하죠?
그런데 이게 간단히 정리해서 그렇지, 실은 깊은 이야기가 있는 사건입니다. 사연이 깊지만, 시간도 깊은 구원 사건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말씀이 4절, 5절, 9절, 11절, 그리고 13절입니다. 4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절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9절입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1절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그리고 13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혹시 지금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이 구원 사건이 사연도 깊고, 시간도 깊은 이야기라는 사실을 확인하셨습니까? 같이 확인해 볼까요? 우리는 이 다섯 절에서 “택함”, “예정”(3번), “경륜”, “계획”, “약속”이라는 단어를 만납니다. 이 단어들이 갖고 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나 될 것 같습니까? 이 무게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저울로도 잴 수 없는 무게입니다. ‘영원의 무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4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 전에”. 이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간입니다. 그렇기에 사연도 깊고, 시간도 깊은 이 구원 이야기는 노래 이상의 노래인 “찬송”이 요청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의 무게이자, 찬송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 구원 사건 이야기는 단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복잡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 이러한 설명의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여기 “신령한”이라는 말이 “신비한”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이 땅의 이해로는 이해할 수 없고, 땅의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하늘에 속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과 구원 사건의 전모는 신령한/신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신령한/신비한 사건인 구원이 나에게 입혀지는 순간 모든 미스터리가 다 풀리고 이해된다는 사실입니다. 7~10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자, 분명하죠?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즉 구원을 받는 순간,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땅의 이해로도 이해할 수 없고, 땅의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뜻의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는 순간, 확 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서는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계획(뜻), 예정, 구원, 통일, 경륜”이라는 말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종의 종교적 언어로 치부합니다. 너희들의 언어일 뿐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즉 거듭나는 순간, 도무지 이해 안 되던 “계획(뜻), 예정, 구원, 통일, 경륜”이라는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신비한 경륜을 찬송하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원이 나를 위해 오래전에, 그리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진행된 사건이요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창세 전에 기쁨으로 준비하시고 계획하셨다가, 때가 찼을 때, 전격적으로 주신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니 이 어마어마한 구원 프로젝트가 기절할 만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구원이 어마어마한 구원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이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던 중, 너무 기뻐 바지가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덩실덩실 췄던 다윗처럼 찬송을 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셨습니까? 그리고 어떠십니까?
■ 그런데 이쯤에서 밝히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10절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해를 돕기 위해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공동번역개정판>으로 더 읽겠습니다.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밝히고 싶은 사실은, “통일”에 대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통일은,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똑같아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다양함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인 것입니다. 이것을 9절에 있는 “경륜”이라고 합니다. 경륜은,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경륜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통일은 경륜의 최종 모습입니다.
결국 이러한 통일 운동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정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만남도 우연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다 마주친’ 것 같지만,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혼란스러워 보이는 만남도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목적인 통일을 위한 거룩한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쳐가는 관계’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유가 있어 만나게 하신 것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만남도, 관계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은 예의바름과 친절함과 온유함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했던 아브라함의 경우를 기억하며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천사는 곳곳에 있고, 그 수 많은 천사를 너무도 많이 놓치고 사는 우리입니다.
만약 이것을 수긍하신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던 방식을 반성하고, 전적으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만남도, 관계도 예의바르고 친절하고 온유하게 대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이자 지녀야 할 성품입니다.
■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구원 프로젝트가 철저히 ‘그리스도를 통해’ 진행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이 뜻을 세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만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치적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은 <복음으로만> 이여야 합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분명하죠?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오직 예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치적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은 <복음으로만> 이어가야 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 바라기는, <오직 예수>, <하나님께만 영광을>, <복음으로만>이 여러분의 영원한 구호이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모든 만남과 관계를 거룩한 목적인 “통일”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예의바르고 친절하고 온유하게 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참으로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만이 있을 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