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0 성령 강림 대축일)
새 이스라엘의 탄생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오늘까지 부활 시기이고, 내일부터는 연중시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올해 부활은 4/1이었고 오늘이 5/21이니 딱 7주간 50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원래 오순절은 가나안 토착민의 농경 축제였습니다. 팔레스티나 땅은 보통 2모작을 합니다. 그래서 봄 추수가 있고 가을 추수가 있습니다. 4~5월 사이에 있는 오순절 축제는 봄 추수 감사절입니다. 그리고 9~10월 사이에는 초막절이 있는데, 이것은 가을 추수 감사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면서 일반 농경 축제가 종교 축제로 바뀌게 됩니다. 먼저 봄 추수와 관련이 있는 오순절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율법의 근간인 십계명을 받고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순간을 기념하는 국가 탄생일입니다. 우리로 치면 개천절이지요. 또 가을 추수와 관련이 있는 초막절은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보살핌 속에서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도착한 것을 기리는 축제일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보면 오순절에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장소는 예루살렘 어느 집회 장소일 것입니다. 구약에 시나이 산이 있다면 신약에는 예루살렘 모교회가 있는 것이지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오순절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같은 오순절에 예루살렘 모교회에서는 사도들이 십계명 대신 성령을 받고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 곧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다음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모습입니다. 신기하게도 갈릴래아 사투리를 쓰고 있는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유다인들이 각기 자기 지방말로 알아듣습니다. 이른바 디아스포라, 즉 해외 교포 유다인들은 오순절 축제를 지내려 순례 차 예루살렘에 왔을 것이고, 이 때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통역이 필요 없이 모두 자기네 말로 들린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기적이라면 기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자 일치의 영입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주님을 체험하고 그분께 같은 신앙을 고백하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아무리 교리와 성경 지식이 풍부하더라고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면 그 지식들은 다 쓰레기일 뿐입니다. 또 성령은 일치의 영으로 우리로 하나로 묶습니다. 한 성령을 받아 모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룹니다. 아까 사도들이 하는 말을 모국어를 잊은 해외 교포 유다인들이 다 알아 들었다고 했는데, 이는 성령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이는 구약의 바벨탑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원래 인간들은 한 가지 언어만 쓰고 있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통역이 필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의 문명과 지식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인간들은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느님보다 높은 탑을 쌓고자 인류 최고의 토목공사를 벌리기 시작하지요. 이에 인간의 교만을 꾸짖으시고자 하느님은 인간들의 말을 섞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인간들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아 혼란을 겪고 싸우다가 바벨탑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른바 바벨탑은 피조물의 한계를 모르는 인간 교만의 탑입니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불일치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성령 강림일에 그 바벨탑의 후예들이 일치를 이룹니다. 성령 안에서 일치를 이룬 그들은 하느님의 위업을 같은 언어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교만이 아니라 순종하면 이렇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계 청년 대회를 한국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통역기도 일부 지급되었지만 언어가 달라도 거기에 참여한 신자 청년들은 같은 신앙과 전례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비가 쏟아져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고, 뙤양볕 속에서도 짜증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주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자리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의 희생과 봉사 덕입니다. 보편지향기도를 할 때 각기 자기네 모국어로 바칩니다. 그러나 통역 없이도 다 알아 듣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잘 몰라도 성령 안에서 일치된 마음으로 그 지향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줍니다.
우리 해밀턴 공동체는 몇 몇 2세대 아이들 말고는, 한국어에 능통합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쓰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동질감이 있으며 의사소통도 잘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안에 머물지 못하면 우리 공동체는 그 먼 옛날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형제애를 느낄 수 없습니다. 또 같은 민족이라도 믿음이 없으면 동포가 아닙니다. 가끔 우리는 한국말로 한국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말 때문에 서로 갈라지고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언어는 일치의 언어이고 복음의 언어입니다.
끝으로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의 인사와 함께 성령을 불어 넣어주셨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승이 없는 상태에서 제자들은 더 이상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두려워 문을 닫아 걸고 숨죽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고대로 그들 앞에 발현하시어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그리고 배신의 과오를 용서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숨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어주셨다는 대목은 성령을 주신 것이고, 이는 제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게 합니다. 이른바 아담이 흙으로 빚어진 상태에서 창조주의 숨을 받고 육적 생명을 얻었듯이 이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숨, 곧 성령을 받고 영적 생명을 얻습니다. 이는 두 번째 창조입니다. 이제 사도로 재탄생하게 된 제자들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 곧 교회를 탄생시킵니다. 성령으로 인한 두 번 째 창조에서 그 주제는 용서입니다. 교회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고해성사입니다. 그리고 용서 받은 자는 제2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둠 속이 아니라 빛 속을 걷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내가 이미 용서 받았으니 제발 미운 형제를 용서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감고 호흡을 길게 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숨을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숨이 우리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다시 그 숨을 상대에게 불어 넣으면 그 숨은 죽지 않고 그 사람 안에서 살아 숨 쉰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작용이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일치의 숨, 용서의 숨, 사랑의 숨입니다. 여러분, 그 숨을 지금 들이키시고 다시 내 뱉으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진실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명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