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 세 분과 함께 최씨의 발상지라는 최읍(崔邑)을 다녀왔다.
최읍은 중국 산동성 제남시 장구구 황하진 토성촌(济南市章丘区黄河镇土城村) 이라는 설이 있는가하면, 빈주시 위교진 최팔촌(滨州市邹平县魏桥镇崔八村) 이라는 설이 있는데, 중국최씨들이 최팔촌을 최읍이라고 믿어 중화최씨역사문화원(中华崔氏历史文化园)을 건설하여 성역화하고 있다.
- 진감선사대공탑비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대웅전 앞에 있는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어서 전주최씨의 뿌리가 중국최씨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금석문(金石文)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지었다.
禪師法諱慧昭俗姓崔氏其先漢族冠蓋山東隋師征遼多沒驪貊有降志而爲遐甿者爰及聖唐囊括四郡今爲全州金馬人也
선사의 법휘는 혜소요, 속성은 최씨이다. 그 선대는 한족으로 중국 산동의 명문 가문 출신이었는데 수나라가 요동을 칠 때 예맥(고구려)에서 많이 죽고, 또 뜻을 굽혀 그곳의 백성으로 된 사람이 있었으니, 당나라에 이르러 네 군을 점령하매 지금은 전주 금마 사람이 되었다.
최읍에 가기 전에 치박(淄博)에 있는 강태공(姜太公) 사당을 먼저 들렀는데, 강태공 사당에는 강태공의 옷과 모자를 묻은 의관총(衣冠塚)이 있고, 의관총 뒤에 강태공 후손이라고 전해오고 있는 강(姜), 여(呂), 정(丁) 등 큰 성씨 가문에서 만든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 중에는 최씨도 있고 노씨(盧)도 있는데 노씨 비석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세운 것이었다.
최씨비석은 2010년 9월 11일 중국최씨들이 세운 것으로 앞면에는 최씨선조지비(崔氏先祖之碑)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최씨가 성씨를 가지게 된 내력이 적혀 있다.
강태공의 생일인 9월 12일에 후손들이 모여서 제사를 모신다고 한다.
中華崔氏之太始祖, 周師齊祖姜太公也. 太公乃炎帝后裔, 輔周文王武王滅商興周, 以首功封于齊國. 太公傳位與長子姜伋, 是爲齊丁公. 丁公薨, 當有嫡子季子繼位. 季子仁愛, 讓國位與庶弟姜得卽齊乙公. 季子食采于崔邑, 以邑爲姓, 遍爲崔氏, 季子卽崔氏得姓始祖也.
중화최씨의 태시조는 주나라의 태사로서 제나라의 시조가 된 강태공이다.
강태공은 염제 신농씨의 후예로서,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서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흥기하도록 만든, 으뜸가는 공을 세웠으므로 제나라 제후에 봉해졌다.
강태공이 장자 강급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니 그가 바로 제나라 정공이다.
정공이 죽자 당연히 적자인 계자가 왕위를 이어야 했다. 하지만 계자는 인애하는 마음으로 서제인 강득에게 왕위를 양보하니 그가 바로 제나라 을공이다.
계자는 최읍에서 살면서 살고 있는 마을 이름으로 성씨를 삼아서 널리 최씨로 불리게 되었으므로 계자가 바로 최씨의 득성시조이다.
중화최씨역사문화원이 있는 최팔촌은 치박에서 약 100km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로 승용차로 약 2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중화최씨역사문화원 옆에 중화최씨역사문화원 관리위원회가 있고 사람이 상주하고 있으면서 만약 후손이 찾아오면 안내를 하고 있었으므로 어려움 없이 관람과 참배를 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도 많이 찾아오는데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 온 것이라고 했다.중화최씨역사문화원에서 청명과 강태공 생일(음력 9월 12일)에 제사를 모시는데 중국 각지는 물론 멀리 미국, 호주, 동남아 등 외국에서도 많은 후손이 참사하여 600~700명 정도가 모여서 함께 제사를 모신다고 한다.
정문 좌우에 있는 익랑(翼廊)에는 염제, 강태공, 최계자를 비롯한 고대 중국 최씨 저명인사를 소개하는 글이 100 페이지 정도로 100여 명의 저명인사가 소개되어 있었다.
중화최씨역사문화원은 2006년에 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0년에 최읍이 있었던 자리를 표시하는 비석을 세우고, 2014년에 사당을 세웠으며, 2016년에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성역화에 사용된 비용은 한화로 추산하여 약 20억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 2010년에 세운 표지석, 가운데 선 사람이 관리인이다. -
사당앞 광장 주변, 정문에서 사당에 이르는 중앙통로, 익랑 앞 등에는 수많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또 벽을 세워 많은 글을 적어 놓기도 하였으나 너무 커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통로 좌우 대지에는 기념식수가 되어 있고, 기념식수를 한 가문이나 개인의 이름과 내력을 적은 비석도 많이 세워져 있었다.
사당(선조전) 앞에 넓은 마당이 있어서 제사를 모실 때면, 제관이 아닌 참사자들이 마당에 도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당(선조전)
사당(선조전)에는 강태공을 주벽(主壁)으로 소(昭)에는 제정공과 청하최씨(淸河崔氏) 선조, 청하최씨 각파의 파조 위패를 배향하고, 목(穆)에는 최계자와 박릉최씨(博陵崔氏) 선조, 박릉최씨 각파의 파조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 주벽 강태공(최계자의 할아버지) -
- 소1 제정공(최계자의 아버지) -
- 목1 최계자(최초의 최씨) -
- 소2 청하최씨의 윗대 위패 -
- 목2 박릉최씨 윗대 위패 -
- 청하최씨 지파 파조들 위패 -
- 박릉최씨 파조들 위패 -
- 관리인들과 함께 -
- 관리인들과 함께 -
혹시 참배하는 후손이 있으면 언제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향(香)을 몇 상자 쌓아 놓아서 아무 준비 없이 갔으나, 무사히 분향을 마칠 수 있었다.
분향을 마치고 약간의 돈을 공덕함(부의상자)에 넣고 왔다.
방명록이 없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돈을 봉투에 넣고 봉투에 이름과 주소, 연락처 등을 적어서 남길 수 있었는데, 그 때는 경황중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최계자 신위 앞에 참배 -
- 최계자 신위 앞에 참배 -
☯주변 관광지.
1. 치박(淄博) : 고차박물관(古车博物馆), 동주순마관(东周殉马馆)
2. 제남(济南) : 대명호(大明湖). 흑호천(黑虎泉)
3. 태안(泰安) : 대묘(岱庙). 태산(泰山)
4. 곡부(曲阜) : 공묘(孔庙). 공부(孔府). 공림(孔林)
첫댓글 좋은 곳에 다녀 오셨네요
사진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좋은 곳에 다녀오셨군요. 사진 잘 보았습나다. 사진에 나온 글씨들을 보니 작은 글자들은 분간하기 어렵지만 비석문, 현판, 위패등에 보이는 큰 글자들은 모두 정자로 쓰여있군요. 근래 중국에서 쓰는 간체자가 아니구요. 자국인 만이 아니라 동양의 외국인들을 의식해서인 듯 하네요. 요즈음 대부분의 중국인들도 간체자만 알고 정자(번체자)는 모른다고 하던데...
익랑에 적혀 있는 고대 최씨 저명인사 소개 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번체자를 사용하고 있고, 종종 전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내용 전체를 전서로 쓴 ' 崔氏先祖頌' 비석이 아주 특이하네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 감사...
옛 족보에 청하, 박릉, 최읍, 강태공이라 하고, 崔자도 "齊나라 최"라고 한 것이 그대로 다 연결이 되네요.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우리의 뿌리를 찾고 공부하는 자세에 느낀바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