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화가 황미나다.
- ‘만화가로서의 삶과 비전’ <황미나 강연회>
광주취재 (개인)
글.사진 김수아
취재일: 6월 29일
지난 6월 29일 오후 3시 광주영상복합문화관 6층 G시네마에서는 (재) 광주문화 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찾아가는 문화컨텐츠 전문가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자로 참석해준 주인공은 만화가 황미나씨. 그녀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만화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만화의 현실을 ‘만화가로서의 삶과 비전’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80년대 소녀들을 가슴 설레게 했던 순정만화의 대모
90년대 소년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던 소년지를 그린 주인공, 황미나
80년, ‘그리면 안되는 게 많았어요....’
‘이오니아의 푸른별’ 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한 작가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심의 비극을 냉담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신인답지 않는 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85년 발표한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라는 작품을 떠올리는 작가의 표정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80년대 작품 활동을 하던 때에는 수차례 검열을 거쳐야 했어요. 작품 속에서 판잣집, 가난한 사람, 이혼한 가정은 나올 수가 없었죠. 이것저것 다 안 된다고 해서 수정하고 보니, 나중엔 이야기가 갈 길을 잃겠더라고요.”
90년, ‘새로운 것을 그리고 싶었어요!!’
소위 여성의 만화라고 불리는 순정만화, 순정만화에는 꼭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한다. ‘누구누구랑 이어주세요! 라는 요청과 요청을 넘어선 협박의 메시지까지... 이런 사태가 늘 벌어지는 순정만화의 틀이 가끔은 답답했노라고 작가는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그녀가 내린 결단은 소년만화를 그려보는 것.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서, 소년만화를 그려보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다른 남자 만화가의 액션씬들을 보면 정말 죽을 것처럼 아파 보이는데 제가 그리는 액션은 왠지 조금 아프다 말 것 같은 느낌이더라고요. 그게 처음 무영여객이라는 소년만화를 그리면서 느낀 한계였어요.”
하지만 이후 당시에는 등장할 것 같지도 않은 BB탄 총을 들고 나오는 주인공이 그려진 슈퍼트리오라는 작품은 그녀만의 코미디요소가 잘 녹아있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타짜와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선생님이 “황군(허영만 선생이 황미나 작가를 부르는 애칭이다.) 난 네가 이렇게 재밌는 만화를 그리는 줄 몰랐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90년, 70의 노모를 통역사로 앞세워 일본의 만화를 엿보다.
- 캐릭터가 중심이 되어 스토리를 전개하는 일본
- 스토리를 따라 캐릭터가 움직이는 한국
만화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 그 일본이 궁금해 작가는 홀연히 일본으로 떠난다. 그리고 당돌하게도 일본 고댠샤 출판사를 견학하고자하는 자신의 의중을 표한다. 작가는 이 견학 도중 만난 편집장과의 만남을 계기로 일본에서의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한국의 만화가가 찾아와서, 일본 만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으니 제 작품이 궁금하기도 하셨겠죠?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제 단편 상실의 시대를 보내드렸고 곧바로 일본과 계약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이 윤희(93년도-신촌에서 카페 ‘윤희’를 운영하는 윤희와 그녀의 카페를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에요.”
일본 출판사와 작업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작품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던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은 작업 전 데생을 요구하기도 하고 수정을 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집 있는 황작가가 매번 수정이 아닌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덕분에 출판사 사람들을 두 손 두 발 들게 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만화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배운 것이 있다.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스토리를 전개할 때, 당시 한국 만화가 가진 일정한 컷, 크기,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다양한 표정을 그려내야 만화를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여태껏 그녀가 잊지 않는 것이다.
‘황미나’하면 레드문, ‘레드문’하면 황미나!
“5년 동안 연작한 레드문은 정말 이 작품이 끝나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유작이라고 할 만큼 공들인 작품이에요. 캐릭터에 의해 만화가 이끌어져가는 작업이었어요. 제 의도가 아니라 기본 캐릭터가 만들어진 후에 작품 속 캐릭터가 이야기를 차근차근 끌고나가는 것이었죠.”
웹툰,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보고 싶은 것을 그리는 만화가, 하지만 한동안 보고 싶은 것이 없어 잠시 방황의 길을 걸었다는 그녀는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파페포포 시리즈가 출간되면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꿈을 갖는다. 기존의 만화형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접근이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2009년부터 네이버 웹툰에 ‘보톡스’라는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20대를 독자층으로 보는 다음보다 10대를 독자층으로 하는 네이버에서 40대 아줌마 영숙이의 이야기를 다룬다는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독자연령층이 정해져있던 시대와는 다르게 컴퓨터라는 특징이 누구나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자나요. 담당자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지금은 10대부터 70대 팬까지 확보하고 있어요. 이게 웹툰의 매력인 것 같아요. 알고 봤더니 제가 웹툰 체질인가봐요.”
황미나가 말하는 만화란?
매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가 참 난감하다고 한다. 그냥 만화가 만화지라고 생각하는 그녀지만 “예전엔 만화를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라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만화를 동영상의 세계라고 말하고 싶어요, 동영상처럼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만화를 보고 또 그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랄까요.”
데뷔 후 60여 편의 장·단편 만화를 그려오면서 그녀는 만화에 대한 끊임없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도전을 일삼았다. 조금은 무모하지만 당찬 그녀의 도전만큼 앞으로 그녀가 그려나갈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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