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松江 鄭澈(1536~1593)
송강은 많이 알려진 인물이니 설명을 생략한다. 그는 임억령(林億齡)․김인후(金麟厚)․양응정(梁應鼎)․기대승(奇大升)에게 배웠다. 그의 제자는 아들 정홍명(鄭弘溟)과 정종명(鄭宗溟)․권필(權鞸)․김대기(金大器)․김덕선(金德善)․모정(牟禎)․성로(成輅)․윤홍국(尹弘國)․임회(林檜)․조언정(曺彦亭)․조홍립(曺弘立)․박대붕(朴大鵬)․허찬(許纘) 등이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도 제자로 볼 수 있을 만큼 영향을 미쳤다.
21) 玉峯 白光勳(1537~1582)
본관은 수원, 호는 옥봉(玉峯)이다. 13세 때 문장가란 평을 들었다. 진도에 유배 온 노수신(盧守愼)과 박순(朴淳)에게 배웠다. 그는 관직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글 짓고 주유천하했다 아버지가 강권으로 27세에 진사에 합격하고 41세에 선릉참봉에 제수되고 44세에 박순의 천거로 예빈시 참봉 겸 감조감의 관직을 경험했다. 그리고 노수신의 천거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며 서로 수창해 사신이 조선 제일의 문장가라며 높이 평가했다.
장흥 안양에서 태어난 옥봉의 생애는 불우했다.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27세 때는 아내마저 사별한다. 그러니 벼슬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호 임제와 같이 동가식서가숙하며 살았다. 말년에 해남 옥천면 송산리에서 살았다. 마을 유물관에는 전남유형문화재 제 81호로 지정된 옥봉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달(李達) 최경창(崔慶昌)과 함께 3당(三唐)시인으로 뽑힌 그의 시재(詩才)가 계승되지 못한 것은 너무도 아깝다.
22) 孤竹 崔慶昌(1539~1583)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이다. 영암 구림에서 태어나 옥봉 백광훈․이후백(李後白)․양응정(梁應鼎) 등과 박순(朴淳)에게 배웠다. 1561년 22세 진사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 1568년(선조 1) 증광시문과 급제 후 병평사(北評事)․예조 및 병조 원외랑, 1575년 사간원 정언을 지냈다. 1576년 영광군수로 좌천되자 충격을 받아 사직했다. 막상 홧김에 사직은 했으나 가난으로 시달렸다. 어쩔 수 없이 대동도(大同道) 찰방(察訪)으로 복직하는 수모를 겪었다.
1582년 52세 때 선조가 고죽의 딱한 처지를 듣고 종성부사(鍾城府使)에 제수하는 은전을 베풀자 북평사가 참소학, 대간에서 갑작스런 승진에 이의를 달고 나선 것이다. 그래서 성균관 직강(直講)으로 보직을 바꿨다. 그는 직강으로 부임하기 위해 서울로 오려고 종성객관에 머물렀을 때 신병으로 타계했다. 이이(李珥)․송익필(宋翼弼)․정철(鄭澈)․서익(徐益) 등과 무이동(武夷洞)과 삼청동(三淸洞)에서 교류하며 수창했으며, 삼당시인이자 8문장으로 꼽힌 그의 말로는 너무도 비참하게 끝났다.
북도 평사일 때 기생 홍랑과의 로맨스는 유명하다. 이후 고죽이 앓아누었다는 와병 소식을 듣자마자 불원천리하고 종성으로 달려갔다. 평양을 떠난 지 7일 만에 당도했으나 그리운 님 고죽은 이승에 없었다. 홍랑이 고죽을 만나기 위해 도착했을 때 고죽은 이미 숨을 거뒀던 것이다. 홍랑은 고죽의 시신을 파주 월동 영태로 운구해 매장하고 3년 시묘 살이를 하다 타계하니 후손들이 고죽의 유택아래 매장했다. 영암 구림에는 고죽과 홍랑의 로맨스를 상징하는 유적을 만들어 놓았다.
〈送別〉고죽이 홍랑에게
말없이 마주보고 유란(幽蘭)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마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묏 버들〉홍랑이 고죽에게
묏 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닢 곳 나거든 날인가 어기쇼셔
장흥 장동/대전/괴봉공파/35세
아~ 그래서 '홍랑'이라는 노래에 묏버들이 나오는군요!
부장공/35세/63년/김천생/일산거주
송강의 명성이나 남긴 유작에 비해 짧게 소개된 것은 사화를 일으켜 수많은 선비들을 사지에 내몬 장본인이라 평가절하하신 원산대부님의 혜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죽과 홍랑의 애로스적 사랑은 어린 란과 버드나무가지를 주고 받는 등 숨은 이야기(?)가 잔잔히 애잔하게 흐르고 있네요. 남녀의 지고지순한 영혼의 교감으로 느껴 집니다.
장흥 장동/대전/괴봉공파/35세
노래 홍랑
쓰라린 이별의 우는 맘 버들가지 꺾어 보내노라
진한 사랑 진한 정을 어이 두고 떠나 갔나요
백년이 흘러가도 천년이 가도 나는 그대 여자랍니다
객창에 피는 묏 버들 보면 날인가 홍랑인가 여기소서
소리없이 울면서 지샌 밤 방울방울 띄워 보내노라
진한 사랑 진한 정을 어이 두고 떠나 갔나요
백년이 흘러가도 천년이 가도 나는 그대 여자랍니다
객창에 우는 두견새 보면 날인가 홍랑인가 여기소서
객창에 우는 두견새 보면 날인가 홍랑인가 여기소서
부장공/35세/63년/김천생/일산거주
湖山 위신복 님
시내용과 일치합니다
안항공파 32세.전남 강진출생.서울 거주.
잘보고 갑니다.
위정철
여기서 송강을 짧게 소개한 이유는 벽천의 해석도 맞지만 그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고 앞으로도 그를 소재로 써야할게 많아서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행원/ 대전 / 괴봉공파 35세
행원/ 대전 / 괴봉공파 35세
행원/ 대전 / 괴봉공파 35세
행원/ 대전 / 괴봉공파 35세
거래처가 있는 전남 영암군 군서면에 왔다가 잠시 들렸습니다... 고죽시비와 고죽관이 있습니다...잘 몰라서 그냥 지나쳐 다녔는데 더 관심을 갖고 봐야겠습니다.
위정철
재치 는 비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