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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앵 대성당(Cathederal d'Amiens) 내부
서쪽 정문으로 들어서 곧장 들어가면 만나는
높이 42m의 아미앵 대성당의 본당
(첫 번째 사진 왼쪽 앞쪽에 보이는) 바로크 양식의 설교단
성당 중앙의 안쪽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경으로 '황금제단'이 있다.
고딕 건축가들의 목표와 이상은
모든 건물을 선과 빛으로 환원하는 것이라던가!
황금 제단
천사들이 성찬의 영광을 노래하는 아래쪽에 성 유물함이 있다.
이 성당은 세례 요한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대 뒷편에 성인의 유골함이 보인다.
본당의 뒤쪽(서쪽)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
성가대 석
성가대석의 벽에는 백합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백합문양은 프랑스 왕실문화의 최절정기였던 17~18세기 부르봉 왕조의 문양이다)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성가대석은 110개의 오크나무(가시나무)로 되어있다.
이 성가대석에 새겨진 인물들은 성서와 신화에 나오는 인물과 그 당시의 인물들로
4000명이나 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의자와 벽 그리고 기둥에 조각했다.
의자는 앉는 곳 안쪽에 접는 장치가 되어 있어 접었다 폈다 할 수가 있다.
의자를 접었을 때
(의자의 앉는 곳을 접어 세워 놓았을 때) 조각 위의 조그마한 받침은
오래 서 있을 때 다리가 아프면 조금 기대고 서 있으라는 배려에서 만들어 놓은 받침이다.
트리포리움(Triforium )
건축에서 교회의 네이브[身廊] 아케이드 위와 클리어스토리[高窓] 밑에 있는 공간.
측랑側廊의 볼트 천장 위까지 뻗어 있다. 로마네스크 시대에 트리포리움은 교회 설계의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며 지붕 공간에 채광과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에서 고딕식 볼트 기법이 발전하자 트리포리움은 크기도 줄어들었고 덜 중요해졌다.
랭스 대성당(1211 착공)과 아미앵 대성당(1220~47)에는 비교적 높지 않으나,
많은 아케이드가 있는 트리포리움이 있다.
앰뷸러토리(Ambulatory 周步廊)
성당 건축에서 측랑이 내진부로 연장되어 생긴, 내진과 후진을 감싸는 회랑이다.
주로 프랑스 북부 고딕양식 성당에서 발견된다.
채광을 위한 대형창
내진(內陣,Choir)의 모습
왼쪽에 '예수 이야기' 조각이 보인다
'예수 이야기' 조각상
'세례 요한 이야기' 조각상
이 성당은 세례 요한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건축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많다.
(왼쪽에서 2번째 그림)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서 살로메에게 주고 있다.
색채 조각이 있는 성인들의 묘가 여러 개 있다
아미앵 대성당 건설의 공로자인 에브라르 드 푸아유 대주교와
그 후임인 조프루아 되 대주교의 청동 무덤도 있다.
프랑스 혁명 때 불어닥친 성당 파괴의 회오리 속에서도 이 무덤과 대성당이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성당 한쪽에는 옛 성당의 자취를 남겨 놓았다
▲ 세례요한의 두개골 뼈.
프랑스의 왈론 드 사르통(Wallon de Sarton)이 제4차 십자군전쟁에 참가했을 때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세례요한의 머리를 가져와 아미앵 대성당에 안치했다.
터키의 톱카피 궁전에도 세례 요한의 두개골과 오른손 뼈의 유골을 전시하고 있다.
세례 요한의 오른손 유골을 세르비아의 한 교회가, 또 두개골을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모스크에도
보관하고 있다. (註) 아래쪽에 조사한 것 올렸으니 참고 하세요)
대성당의 샤펠 (Chapel)
1292년~1375년에는 양쪽 측랑(側廊)에 예배실이 여러 개 만들어 졌다.
(註) 측랑이란 성당 건축에서 신랑(Nave) 양옆에 줄지어 늘어선 기둥 밖 혹은 옆에 있는
복도를 말한다. 소규모 성당은 신랑과 양옆 측랑, 3랑으로 구성되며
규모가 큰 성당은 5랑으로 구성된다.
Chapelle Saint Sebastien
Chapelle Notre-Dame du Pitie (자비의 성녀 샤펠)
Chapelle Notre-Dame Angelette
Chapelle Notre-Dame du Puy
-가운데 그림은 '솔로몬의 재판'-
Chapelle Saint Pierre
Chapelle Saint Michel
Chapelle Saint Sacrement
우는 아기 천사
아미앵 대성당의 미로(미궁)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나왔다는 미로(미궁)는 샤르트르 대성당 같이 13세기에 프랑스에 세워진
많은 고딕 대성당에서 볼 수 있다. 아미엥 대성당의 미궁은 1828년경에 부서졌는데,
19세기 말에 대리석을 사용해 원래대로 복구했다.
처음의 대성당이 1218년에 화재로 소실된 뒤, 1220년에는 삼랑식으로 된 새 대성당을 건설하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지름 14m의 미궁 중심에 새겨 넣은 글을 통해,
공사 책임자가 처음에는 로베르 드 뤼자르슈, 다음에는 토마 드 코르몽에 이어
그의 아들인 르뇨 드 코르몽이었음을 알 수 있다.
'미로迷路'에 대하여
‘迷路’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고 ‘양날 도끼’를 뜻하는 ‘라비리스(labyris)’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날 도끼는 고대 크레타의 상징으로 크레타는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에 얽힌
가장 유명한 迷路 신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이 신비로운 迷路는 서로 연결된 통로들로 만들어진 것인데,
워낙 복잡하게 설계되어 길을 잃기 쉽고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迷路’는 또한 고딕 성당과 교회의 바닥에 새겨진 복잡한 문양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 되어왔다.
북아메리카의 호피 족은 ‘미로’와 어머니 대지 사이의 연관을‘고전적인 일곱 개 통로의 迷路
(Classical Seven Path Labyrinth)’라고 이름 붙여진 상징을 통해 표현했다.
이 상징은 식물들이 나선형으로 자라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자연의 신성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신성한 통로를 우리의 내적 자아에 투사시켜보면 힌두 전통에서 말하는 ‘쿤달리니 에너지(kundalini energy)’를
연상시킨다. 쿤달리니 에너지는 배꼽 주변의 차크라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생명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에너지가 각각의 차크라를 관통해 뇌 근처에 있는 차크라까지 우리 몸의 상층부로 솟아오른다.
인간의 몸속에서 이런 과정이 일어나게 되면 그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迷路는 자기 수련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불리는 시기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자아를 초월해 높은 자아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악마들,
다시 말해 어린 시절 또는 전생에서부터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는 나쁜 믿음과 태도, 두려움과 대면해야 한다.
테세우스와 반인반수의 미노타우로스에 얽힌 이야기는 아마 우리를 동물적인 세계에 연결시키는
천박한 자아(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는 고대 크레타 왕국의 수도인 크노소스에 있는 신비로운 迷宮에 살았다)에
대해 정신적인 자아(테세우스)가 승리를 거두는 것을 상징하는 신화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나중에 아테네의 왕이 되는 테세우스가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테세우스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죽은 자들의 지하세계, 곧 하데스에 다녀오지만
그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둥근 실 꾸러미를 이용해 자신이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나오는
창조적인 사고의 힘으로 迷宮의 중심부로 침착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었고 미노타우로스를 죽임으로써
해마다 9명의 처녀와 총각을 잡아먹던 미노타우로스의 횡포를 끝장낼 수 있었다.
샤르트르 대성당 미로
이 전설은 중세 유럽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실마리clue)'라는
단어가 그 증거이다. ‘실마리’는 원래 둥근 실 꾸러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당의 바닥에 迷路의 문양이 새겨진 것도 이 전설의 인기를 말해준다.
성당의 바닥에 그려진 이런 迷路 문양들은 사색을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미로와 순례자들과의 관계는, 순례자들은 종종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줘야 했으므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의 迷路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迷路처럼 복잡한 미로가 존재하는 것은
수세기에 걸쳐 迷路가 순례자들의 수행이 이뤄지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迷路 속의 체험은 길고 고통스럽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고양을 위한 것이었다.
迷路에 얽힌 이야기와 관습에는 분명 여러 가지 정신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 중 하나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비롯된 심리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해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잠재의식 속에서 아주 끔찍한 두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하지만 테세우스가 무사히 귀환한 것처럼,
우리는 단순한 실천, 즉 용기를 내고 내면의 평온을 추구함으로써 이런 두려움에 맞설 수 있다.
복잡한 迷路의 문양을 손가락을 이용해 추적해보거나 아니면 실제로 迷路 속을 걸어봄으로써
우리는 인생에 대한 시각을 교정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영적 발전에 迷路가 진닌 함의이다.
迷路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당신은 지나온 인생을 극복하기 힘든 곤경과 함정,
그리고 어두움으로 가득 찬 시간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흥미롭고 신비한 모험으로 생각하는가?
당신은 인생이라는 여행이 예기치 않았던 시행착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당신 앞에 놓인 길이 예측 가능한 곧은 길 이기를 바라는가? 당신은 인생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유지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세상사를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삶을 통제하기 위해 항상
분투를 벌이고 있는가? 인생이란 결국 정해진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인가, 아니면
신비로운 여행을 경험하는 과정인가? 당신에게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미로迷路의 중심은 무엇인가?
-세례요한의 유해는 어디에 있나-
헤로디아스(헤로디아)가 살로메를 통해 가져간 세례요한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1세기의 신학자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로디아스가 세례요한의 머리를 마케루스(Macherus)에
묻었다고 한다. 마케루스는 오늘날 사해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예루살렘으로부터는 두어 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시메온(Symeon)과 같은 학자들은 세례요한의 머리가 예루살렘의 헤롯 궁에 묻혔다고 주장했다. 그 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헤롯 궁에 있던 세례요한의 머리를 파내어 비밀리에 페니키아의 에메사(Emesa)라는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에메사라는 곳에 세례요한의 머리가 간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453년에 폭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세례요한이 입고 있던 약대 털옷은 현재 독일 아헨(Aachen)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콥트 기독교정교회도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의 중간의 세테스(Scetes)라는 지역에 있는 성마카리우스(St Macarius)
수도원에 세례요한의 유골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에도 이집트에 있는 콥트 수도원에 가면
세례요한의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곳에 만들어 놓은 무덤을 볼 수 있다. 영국 웨스트요크셔(West Yorkshire)의
할리팍스(Halifax) 마을의 공식 문장(紋章)에는 세례요한의 머리를 그려 놓았다. 기괴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문장이다.
16세기 말의 기록에 따르면 이 마을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머리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캄덴(Camden)의 브라타니아(Britannia)에도 기록되어 있다.
할리팍스라는 이름은 할리그(Halig=Holy)와 팍스(Fax=Face)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성스러운 얼굴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과거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 세계에서는 세례요한의 유해에 대한 별별 전설과 주장들이 있었다.
세례요한의 머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지역만 해도 여러 곳이었다. 예를 들면,
- 독일 뮌헨의 레지덴츠박물관(Residenz Museum)에 있는
세례요한의 머리는 진주로 장식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1385-1918년까지 바바리아를 통치했던 뷔텔스바흐(Wittelsbach)가의 저택을
개조한 것으로 이 가문은 수세기에 걸쳐 귀중한 종교유물들을 수집해 왔다고 한다.
레디덴츠박물관에는 세례요한의 머리뿐만 아니라 세례요한의 어머니인
성엘리사벳의 유해도 간직하고 있다.
* 로마의 산 실베스트로(San Silvestro) 성당에 있는 세례요한의 머리 ( 윗부분 유리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검은 물체)
- 프랑스의 왈론 드 사르통(Wallon de Sarton)이 제4차 십자군전쟁에 참가했을 때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세례요한의 머리를 가져와
현재 아미앵(Amiens)대성당에 있다.
- 시리아 다마스커스(다메섹)의 움마야드(Umayyad) 회교사원에
있는 세례요한의 두개골을 모신 성골함
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톱카프(Topkapi)궁전
세례요한의 팔과 오른손의 유골이 금으로 만든 모형에 보관되어 있다.
세례요한의 손뼈는 원래 비잔틴 제국이 소유하고 있었는데, 오토만 제국의 침략이 있은 후
1484년에 바에지드 2세가 로도의 기사(Knights of Rhodes)에게 선물하였던 성물이다.
그 후 키프러스(Cyprus) 섬의 레프코스 성(Lefkose Castel)에서 발견되어
1585년에 다시 이스탄불로 가져와서 톱카피 궁전에 보관하여 왔다.
터키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톱카프(Topkapi)궁전
세례요한의 두개골 유골이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곳에 보관되어 있다
오토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빼앗은 세례요한의 두개골은
15세기에 메흐메드 2세가 세르비아 왕의 딸 마라 데스피나(Mara Deapina)에게
선물하였던 것이다. 그 후 세사일리 하산 파샤가 소유하고 있다가, 그가 죽은 뒤
1790년 톱카피 궁전으로 다시 가져온 기독교 성물이다
톱카프 궁전(오스만 터키어: طوپقپو سرايى, 터키어: Topkapı Sarayı)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다.
‘톱’은 대포라는 뜻이고 ‘카프’는 문이라는 뜻이다.
- 몬테네그로에 있는 세르비아정교회의 세틴예(Setinje)수도원에 있는
세례요한의 오른 손
-*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이 세례요한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3세기의 종교재판에대한 기록을 보면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성전기사단은 세례요한을 크게 숭배했다고 한다.
-* 세례요한의 두개골의 다른 조각들은 이집트의 콥트정교회수도원(Monastery of St Macarius the Great)에
간직되어 있다고 한다.
-* 일설에는 루마니아의 아토스산(Mt Athos)에 있는 세례요한수도원에 있다고 한다.
-* 아르메니아의 간드자사르(Gandzasar)수도원도 세례요한의 머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간드자사르수도원에는 세례요한교회가 있다. 아르메니아의 간드자사르수도원에 있는 것이 세례요한의 진짜 머리라는
주장은 아르메니아의 역사학자인 모브세스 카간카트바스티(Movses Kaghankatvatsi)의 저서에 따른 것이다.
-* 4세기에 세워졌던 아르메니아 수도원인 수르브 카라페트(Surb Karapet: St Karapet )도 세례요한의 유해 중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고 했지만 터키군이 교회와 수도원을 파괴하는 바람에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예수께 세례를 주었던 손/ 목이 잘려서 헤로데에게 보내졌던 머리(두개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