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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 것을 말씀하시다(6-2)
- 헌금(연보)의 용어에 의한 성경적 관점의 이해 -
마태복음 23장 23-24절 / 1…23(4)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누가복음 21장 1-4절 / 1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을 일곱 번에 걸쳐 말씀해 나가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24절은 그 중에서 네 번째 화를 다루는 것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십일조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외식에 있어왔던 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인데, 현하의 교회에서 이 십일조를 헌금의 기원(유래)로 다루면서 헌금의 기본적 명목으로 십일조를 말해오고 있는 까닭에 헌금에 대한 이해를 가지면서 십일조를 알아야 할 것이란 필요성을 가집니다. 이에 먼저 헌금(연보)의 용어에 의한 정의를 통해 헌금에 대한 이해를 가진 후에 십일조 또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할 것이기에 십일조에 대한 설명을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 후에 이 십일조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어떻게 외식으로 가져나가는 것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십일조의 본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나가고자 합니다. 이곳 글에서는 ‘헌금(연보)의 용어에 의한 정의’를 다룹니다.
헌금의 용어
성도는 매주일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 됨에 있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공예배에 함께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헌금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사용하는 ‘헌금(獻金)’이란 용어 외에 또 하나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보(捐補)’입니다. 헌금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주일이나 일정한 축일을 맞이하여 교회에 돈을 바침. ②어떠한 일에 자발적으로 돈을 바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보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자기의 재물을 내어서 남을 도와줌. ②주일이나 축일을 맞아 교회에 바치는 돈”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두 용어를 보면 결국 같은 의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의미에서 함께 사용되고 있다고 보겠는데, 연보의 용어에서는 연보(헌금)하는 목적이 남을 돕는데 있다며, 이러한 연보(헌금)는 자원함에 의한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8:14),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후 9:8-9)라고 하면서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고후 8:3-4)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헌금의 용어
이 ‘연보’ 또는 ‘헌금’이란 용어를 누가복음 21장 1-4절인 ‘한 과부의 헌금’에서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21: 1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한글개역개정성경)
여기서 ‘헌금함’을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연보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헌금/헌금함’과 ‘연보/연보궤’는 같이 병행하여 쓰고 있는 동일한 것입니다.1) 해서, 성도가 헌금을 한다는 말은 곧 성도가 연보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헌금’이란 표현으로 또한 ‘연보’란 표현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민수기 31장 50절에서부터 보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여호와께 헌금2)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음 성경 구절(개역개정)에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대하 34:9. 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헌금(개역, 연보)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대하 34: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개역,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막 12:41. 예수께서 헌금함(개역,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개역,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개역, 연보궤)에 헌금(개역글,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개역,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요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개역한글, 연보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롬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개역, 동정)하였음이라
고전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개역,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전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개역,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후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개역,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개역,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개역,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개역,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고후 9: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개역,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경적 헌금의 의미
이 구절에서 보는 대로, ‘헌금’은 곧 ‘연보’입니다. 이러한 헌금에 사용된 단어는 (1)구약성경에서의 민수기 31장 50절에서는 ‘접근하다’, ‘생기게 하다’, ‘가져오다(가져오게 하다)’, ‘취하다’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뜻은 제단 가까이 가져온 어떤 것, 즉 희생 예물(제물), 봉헌된 것(봉헌물)을 갖는데, (2)그것이 ‘패물’ 또는 ‘돈’으로 드려졌을 경우에는 역대하 34장 9절, 14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인 ‘헌금’으로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가다’, ‘오다’, ‘가져 오다’란 뜻을 지니고 ‘바쳐진’이란 의미로 쓰여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가져온 ‘여호와의 것(예물/헌금)’을 나타냈습니다.3)
구약에서의 헌금이 행해진 목적
예수님 당시에 이르러서 헌금(연보)은 성전에 놓여 있는 헌금함(연보궤)에 하였습니다. 성전은 이방인의 출입이 허용 된 성전 바깥뜰과 이방인은 출입이 허용되지 않고 유대인만이 출입하는 성전 안 뜰이 구분되어 있는데, 이 안에는 유대인 여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여인의 뜰’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고, 여인의 뜰을 구별하는 남자의 뜰과 이방인이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이방인의 뜰 사이 벽을 따라 일렬로 된 놋쇠로 된 나팔(트럼펫) 모양의 헌금함(연보궤)가 13개 놓여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9개는 성전세나 희생제물 대신 바치는 헌금을 넣는 궤였고, 나머지 4개는 성전의 수선과 장식을 위한 헌금을 넣는 궤였습니다.4)
유대인이 대대로 헌금을 해 옴에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전 생활과 관련해서입니다. 성전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어 자기 백성들과 만나 그들에게 필요한 일 – 속죄 사역 - 을 해 나가시는 성전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잘 보존되어 유지되어야 하며, 이곳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맡은 바의 직무를 제대로 잘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 당시까지 행해져 온 십일조와 함께 성전의 유지와 활동에 있어서 필요한 재정적인 기반이 되는 목적의 헌금이 행해졌습니다.
신약에서의 헌금이 행해진 목적
구약에서의 헌금의 개념은 신약에 이르러서는 성전을 중심한 헌금에서 교회를 중심한 헌금으로의 변혁에 있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성전의 보존과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헌금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대두됩니다만, 신약에서는 성전이 없어지고 새로운 존재인 교회를 위한 헌금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이러한 신약의 헌금의 중심인 교회는 구약의 성전인 건물과 장소 개념이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인 성도의 개념입니다. 해서, 한 장소에 세워진 건물과 그 건물에 속한 것이 존재해 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헌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을 이룸에 있는 살아 있는 생명의 유기체인 성도를 섬김에 있는 봉사에 있어가는 것에서 헌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헌금인 것에서, 신약의 누가복음 24:1에서는 ‘헌금’으로 번역되어 쓰였는데 그 단어는 ‘중여’, ‘선물’, 특히 ‘희생 제물’을 뜻하는 것인데 영어에서는 ‘선물(gifts)’로 쓰였습니다. 이는 ‘동전’을 의미하나 일반적으로는 ‘돈’을 가리키는 것이 ‘자발적인 헌금(연보)’를 가리키는 단어로 바뀐 것입니다. 곧, ‘자발적으로 바쳐진 돈’인 ‘헌금(연보)’입니다.
사도 바울의 헌금 지침
사도 바울은 이 헌금을 ‘모으다’란 뜻에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헌금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요청할 때까지 집에 모아둘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이는 언제든지 헌금 수집 요청이 전달되면 지체하지 않고 즉시 헌금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인데, “매주일 첫날에 이(利)를 얻은 대로 하라”(고전 16:2)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를 얻은 대로’는 원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번영되다’는 뜻과 함께 ‘바르게 인도하다’는 뜻을 지닌 것으로 “이득을 얻은 대로”, “수입을 얻은 대로” 헌금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시는 대로” 또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대로” 헌금할 것을 의미합니다. 해서 매 주간 이를 얻은 대로 헌금할 것을 모아두었다가 매주일 첫날에 하나님께서 마음에 성도를 살피며 섬기게 하시는 감동을 주심에 따르는 헌금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헌금에 있은 실예인 빌립보교회를 빌립보서 4장 15-20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여기에 보는 대로, (1)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여 빌립보교회를 이룬 빌립보교회 성도는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그의 복음 전도 사역에 참여하여 돕는 헌금을 하였습니다. (2)그 뿐만 아니라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두 번이나 여러분은 물자를 보내 도움으로 계속적으로 헌금에 참여하였습니다. (3)이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로 빌립보교회에게서 받은 선물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착한 일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유여함에 있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을 통해 해 나가실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우십니다. (4)바울은 빌립보교회가 행한 헌금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한 영광이 있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서의 헌금은 이렇게 목적을 갖고 준비 해 둔 상태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마치 주머니를 뒤져 나오는 대로 손에 쥐어지는 대로 털 듯이 헌금하는 것이 아니며, 그 또한 복의 수단으로 가져나가거나 한 주간에 쌓여 온 죄를 상쇄하듯이 행하거나 의를 쌓는 등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온 방식에 헌금이 있어왔다면 그 잘못된 헌금에서 벗어나서 헌금의 의미가 지닌 정신에 따라 성도를 섬김의 준비에 있어오는 것에서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따라 사는 헌금에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다음과 같이 빌립보교회를 비롯한 마게도냐에 있는 여러 교회에 행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리며 권면하였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1)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2)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3)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고후 8:1-6)
마게도냐의 교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처한 소식을 듣고는 자신들도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당하고 극도의 빈곤을 겪으면서도 기쁨에 넘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쓰도록 헌금하였는데 자기네 힘이 미치는 한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그 이상을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루살렘교회를 돕고자 한다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참여하는 기쁨을 함께 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은 바울과 그의 일행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협력하였으니, 먼저 그들 자신을 주께 바치고 또한 바울과 그의 일행을 위해서도 무엇을 지시하든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인줄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여서 헌신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리면서 고린도교회에도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1)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2)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6-8)
이 헌금에서 보는 원리에 의한 정신에서 헌금에 참여함에 있는 교회의 헌금이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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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 교회에서는 ‘연보’란 용어와 더불어 ‘헌금’이란 용어가 혼용되어서 쓰이고 있다. 이는 한글개역성경이 이 두 용어를 혼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개역성경을 기준으로 할 때 ‘연보’란 용어가 7회 나오고, ‘연보궤’란 용어가 5회 나오며, ‘연보하다’란 동사 형태가 3회 나온다. 반면에 ’헌금‘이란 용어는 명사 형태로 단지 2회 나온다(눅 21:1, 4). 이렇게 ’연보‘와 ’헌금‘이 혼용되어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활용의 빈도를 기준으로 볼 때 연보가 더 보편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 반면에 한글개역개정성경에서는 구약시대에서 예수님 당시까지는 ’헌금‘, ’헌금함‘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예수님 이후 사도시대의 교회에서는 ’연보‘로 번역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2) 한글개역개정성경에서는 민수기 31장 50절에 “여호와께 헌금으로”라고 하여 ‘헌금’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한글개역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예물로’라고 하여 ‘예물’이라고 번역하였다.
3) 역대하 34:9에서의 하나님의 전에 ‘헌금’한 돈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보수를 위해 납부하는 ‘성전세’였다. 성전을 보수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재정이 필요하였는데, 요시야 왕은 그 재정을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세로 충당하였다. 성전세는 이십세 이상의 백성들이 매년 반 세겔씩 내는 돈으로 성전의 문에서 거두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병행 기사가 실려 있는 열왕기하 22:4에서는 그 성전세에 대해 백성이 여호와께 드린 것으로 되어 있으며, 역대하에서는 보다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니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4) 미쉬나에 의하면 사람들이 돈을 던져 넣을 수 있는 나팔(트럼펫) 모양으로 생긴 헌금함(연보궤)가 13개 설치되어 있는데, 이 성전의 헌금함(연보궤) 13개 가운데 일부는 특별한 명칭이 붙어 있어서 그 특정한 용도를 위해서만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을 넣는 데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