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섬과 등대
오늘은 복지관 수업으로 내면화를 그리는 날이다. 상담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속을 읽고 알아줄
수 있어서 명상 후 내면화를 그린다. 그들만 그리게 하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나도 그림그리기에
합류한다.
눈을 감자마자 이미지가 떠오른다. 등대와 꽃섬이 있는 바다 풍경이다.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렸다.
하단에 반원형태의 둥근 선을 긋고 그 호 안에 꽃을 그려 가득 채운다. 그 위로는 잔 물결치는
바다를 그리고 꽃섬 위 중심에서 약간 위 지점에 등대를 그렸다. 등대의 지붕은 돔형식으로 그리고 그 위에 안테나를 그렸다. 안테나 끝은 붉게 점을 찍어두었다. 그 점 아래로는 붉은 점선을 그어 등대 하단에 꽃섬을 향한 위치에 은단 알만한 붉은 점을 그렸다. 등대의 기둥에서는 불빛이 환하게 양방향으로 비추고 있다.
처음 그린 내면화에는 유년의 자리, 섬의 위치에 단단한 바위가 크게 자리를 차지했었고 인생의 처기 위치에는 넘기 어려웠다는 뜻으로 험준한 바위산이 등장하였다. 그 산 아래의 동굴에서 물이 흘러 시간의 강을 이루었다. 강가에는 마음 고생의 흔적으로 잔 돌맹이도 데굴거렸는데 고맙게도 바위산이 없어지고 돌덩어리도 사라졌다. 검은 색도 없고 넓은 바다가 그려진게 대조적이다. 풍경이 간결하고 색조가 진하지 않다.
나는 첫날 내면화를 그리고나서 엄청 울었다면 지금 그림을 그리고나서는 미소지었다. 넘어야 할 감정의 산을 다 넘어 실감나게 확인하였다 중간중간 시차를 두고 산이 낮아지더니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무수히 많은 내면화를 그리면서 보석도 캐내고 높은 산도 무너뜨렸다. 왜 그렇게 어렵게 뚫고 나와야 하는지도 알아냈다. 하나의 어려움이 다른 것을 물고 들어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나를 찾아봄으로써 만사가 형통하게 풀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걸림없이 순수한 웃음이 만들어지는 자리가 생겼다.
지금 나에게는 넘을 산도 없고 내적으로 걸리적거리게 하는 요소도 제거되어서 바다는 잔물결친다. 잔잔한 바다에서 내 나름의 '등대지기'로 살고 있다. 생명의 핵은 붉은 점으로 남아있고 원기억의 자리, 꽃섬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화해의 꽃밭이 되었으니 돌아간 노년이 향기롭다.
유년이 풍요로와야 노년에 웃을 수 있다. 돌아가 확인한 자리가 꽃섬이 되어있으므로 나는 내가 선 자리에서 기억의 힘을 빌려 빛을 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