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애가
애가(哀歌). 한자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애가는 슬픔과 비통의 노래입니다. 애가의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에카’인데, 에카는 ‘아!, 어찌하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애가가 이처럼 비통에 찬 제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애가의 배경이 BC 587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한 뒤에 백성 중 일부를 바빌론으로 유배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가 안에는 유배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을 좌절과 공포, 폐허가 되어버린 예루살렘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애가는 각각이 조가(弔歌)형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은 히브리어 자음 22개의 순서에 따라 22절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자음 순서를 따르는 알파벳 노래는 시편 34편, 37편, 119편 등 시편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잠언 31장 10-31절에서도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자음을 모두 사용하는 방식은 완전함이나 충만함을 드러낼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애가의 저자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는 비극적 상황과 이에 따른 비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애가가 내용상 예레미야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애가를 예레미야와 한데 묶어서 바라봤으며, 애가의 저자 또한 예레미야라고 말하였지만 사실 애가의 저자는 불분명합니다. 또한 애가에서는 예언자가 주님으로부터 어떤 환시도 받지 못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 이는 예레미야서에서 여러 환시를 봤다고 주장하는 예언자들의 이야기와 상반됩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애가의 저자가 예레미야서의 저자는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5편의 애가 역시 배경이나 양식 등이 상이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한 사람에 의해서 작성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앞서 살펴봤듯이 유배가 시작된 당시의 비참한 상황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고, 황폐해진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볼 때 5편의 애가 모두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해서 함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장에서는 예루살렘의 참상과 내면적인 고백이 등장합니다. 먼저 1-11절에서는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과 대비되는 예루살렘의 현재의 비참한 처지가 드러납니다. 뭇 나라 가운데 가장 뛰어난 도성이었던 예루살렘이 과부처럼 되었으며, 모든 지방의 여왕과 같았던 예루살렘이 부역 신세를 진 것처럼 초라해져 버렸습니다. 위로해줄 사람 하나 없으며, 모두가 예루살렘을 배반하여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성문들은 황폐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갔으며 조롱과 멸시만 가득했습니다. 뒤이어 12-22절은 이러한 예루살렘의 내면적 고백이 이어집니다. 12절에서는 이러한 참상이 하느님의 진노에 따른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인화된 예루살렘은 자신이 의로우신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써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였고 동시에 탄식하면서 자신의 불행을 보며 기뻐하는 이들에게도 벌을 내려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2장에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의 날에 대한 언급이 이어집니다. 내용상 1장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1장이 예루살렘의 참상에 대한 언급이라면 2장에서는 분노하시는 하느님이 전면으로 등장합니다. 이로써 애가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는 것이 단순한 이민족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10절에서 하느님은 진노의 날에 야곱의 모든 거처와 유다의 성채, 시온의 천막을 부수셨으며 모든 궁궐과 성채를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축제와 안식일을 지워버리셨으며, 제단과 성소를 더렵히셨습니다. 그리고 11-22절은 의인화된 시온(예루살렘)이 아버지 하느님께 하소연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주어집니다.
3장은 애가에서 가장 중요한 장으로, 고난과 회복에 대한 내용이 세 절씩 하나의 알파벳으로 전개됩니다. 먼저 1-21절은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고백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22-39절까지는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주어지고, 마지막으로 40-66절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언급합니다. 먼저 나라가 파멸되고 종으로서 유배로 끌려가야 하는 비참한 현실 앞에 커다란 좌절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저자는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이시니 하느님의 자애에 희망을 가지라고,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이의 기도를 들으시어 그들을 고통에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찬란한 영광을 누리던 예루살렘과 현재 비통에 찬 예루살렘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황망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금과 순금은 빛을 잃었고,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더 행복할 만큼 하느님 백성은 버림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여인들이 자식들을 삶아 먹을 만큼 예루살렘이 처한 현실은 비참했습니다. 그리고 애가의 저자는 예루살렘의 이와 같은 참혹함은 예루살렘의 예언자들과 사제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22절에서 시온에게 주어진 죄와 벌이 끝이 나고 하느님께서 다시는 유배보내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을 통해 희망이 선포됩니다.
마지막 5장은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애원의 기도입니다. 1-4장과 달리 5장은 알파벳 노래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다. 바빌론의 속국이 되어버린 유다에는 빈곤과 사회적 무질서가 드리워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줄 지도자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함께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자신들의 불쌍한 처지를 아뢰고 자신들이 전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자비를 간청합니다.
다섯 가지의 조가 형태를 지닌 애가에는 이처럼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과 그에 따른 하느님의 진노의 심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애가는 자신들의 마주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며 죄와 잘못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침략했던 바빌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대신 이를 하느님 진노의 심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지금, 애가는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기대며 자신들을 용서하고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3년 4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