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자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지만, 이해는커녕 정의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 과학의 어떤 분야에서도 연구결과가 이토록 중구난방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 17세기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라이프니츠는 “인간의 두뇌를 방앗간 크기로 확장하여 그 안을 아무리 헤집어도 의식을 찾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 일부 철학자들은 의식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의식이란 무엇일까?
일단 네이버에서 국어사전적 정의를 찾아본다.
1 .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하여 인식하는 작용.
의식을 잃다
의식이 돌아오다
의식이 뚜렷하다.
2 . 사회적ㆍ역사적으로 형성되는 사물이나 일에 대한 개인적ㆍ집단적 감정이나 견해나 사상.
엘리트 의식
3 . <불교> 의근(意根)에 기대어 대상을 인식ㆍ추리ㆍ추상(追想)하는 마음의 작용. [비슷한 말] 제육식.
4 . <철학> 감각하거나 인식하는 모든 정신 작용.
아마 저자는 의식을 1.의 의미로 사용하는듯하다.
1.의 의미라면 영어로 consciousness의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awareness의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는 후자의 의미로 의식을 바라보지만, 일단 물리학자인 저자의 의미를 따라가 보자.)
- 지난 수십 년 동안 뇌과학의 발전을 이끌어온 일등공신은 철학자가 아니라, 다양한 관측장비를 발명한 물리학자들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의식과 관련한 질문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파헤쳐보기로 한다.
- 의식이란 목적(음식과 집, 그리고 짝 찾기 등)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변수(온도, 시간, 공간, 타인과의 관계 등)로 이루어진 다중 피드백회로를 이용하여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 가장 낮은 단계의 의식을 지닌 ‘0단계’ 개체는 움직임이 전혀 없거나 극히 제한된 운동만 할 수 있으며, 단 몇 개의 변수(온도 등)만으로 이루어진 피드백회로를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낸다. 자동온도조절기나 식물이 그 예이다.
-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 중앙신경계를 보유한 생명체의 의식은 1단계에 해당한다. 파충류가 그 예이다.
- 그 다음 단계인 2단계 의식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 때 공간과 함께 다른 개체까지 고려하는 수준의 의식이다(감정이 있는 사회적 동물이 여기 속한다.) 2단계 의식은 대뇌변연계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포유류가 그 예이다(2단계 의식에서 곤충은 제외된다. 곤충은 무리를 짓고 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감정이 없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내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동물이다. 진화과정에서 인간의 의식이 3단계에 이르렀을 때 피드백회로가 너무 많았으므로, 미래를 시뮬레이션하고 실시간으로 최종결정을 내리려면 CEO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하여 인간의 두뇌는 동물과 다르게 진화했는데, 특히 이마 부위에 있는 전두엽이 크게 확장되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의식을 consciousness의 의미로 파악한다.
그래서 의식의 단계를 나눈다.
0단계로 광물이나 식물의 예를 들고 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1단계로 파충류를 예로 들고 가장 간단한 뇌를 필요로 한다.
2단계로 포유류를 예로 들고 대뇌변연계를 통해 감정을 교류한다.
3단계로 인간을 예로 들고 전두엽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
각 단계마다 다양한 레벨로 분류되기도 한다.
0단계에서도 피드백회로의 복잡성과 개수에 따라 의식수준을 수치화한다.
광물은 0-0이며, 꽃은 0-10이 된다.
0-1, 0-3, 0-9,1-5, 2-8
그럼 인간은 어떨까?
갓 인간이 된 자는 3-0, 인간 중 궁극에 이른 자는 3-10이 되는가?
그는 의식을 메시지, 신호, 자극의 의미로 사용한다.
당신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자극을 감지한다.
당신의 뇌는 이 자극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한다.
달다 맵다 짜다 아프다 우습다 힘들다
이 전 과정을 통틀어 의식이라고 한다.
의식에는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이 있다.
당신의 뇌는 수없이 많은 조직체들이 있고, 이들은 모두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다르다.
이를테면 정부의 위원회와 같은 것이다.
정부 내에 수많은 위원회들이 있고, 그 위원회들은 매일 열리고 있다.
하지만 그 위원회의 의사결정들이 모두 대통령 또는 수상에게 보고되는 것은 아니다.
그 중 몇몇의 의사결정들이 수뇌부에 보고되는데, 수뇌부는 이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린다.
이 보고되는 위원회의 의사결정이 바로 표면의식이다.
나머지의 수많은 의사결정들은 수뇌부에 보고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역할을 표면 아래에서 수행하며 거대한 정부조직을 돌아가게 한다.
당신의 몸 안에 있는 개별 세포를 국민이라고 하면, 당신의 뇌는 정부에 해당한다.
개별 세포에서 일어난 일들은 정부의 위원회에 보고되고 이에 대해 위원회는 의사결정을 한다.
이 중 어떤 사건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위원회의 결정이 최상부에까지 보고된다.
수뇌부는 그 보고된 내용에 대해 다시 의사결정을 하고, 이를 다른 정부부처에 지시한다.
이 과정을 표면의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뗏목을 만들기 위해 강에서 떠내려가는 수천 개의 통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수천 개의 통나무 중 강 표면에 보이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나머지의 통나무들은 대부분 강 아래에서 떠내려가고 있다.
하지만 물살 등의 이유로 통나무들의 자리는 수시로 바뀌게 된다.
아래 있던 통나무가 위로 올라오고, 위에 있던 통나무가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위로 올라와 보이는 통나무가 표면의식이고, 분명 함께 떠내려가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 통나무가 잠재의식이다.
손가락에 작은 가시가 박혔다.
아프다.
이 아픔은 표면의식이 되어 온 몸이 그 아픔에 주목하여 해결책을 도모한다.
손가락만 보다가 그만 넘어졌다.
무릎이 까였고 피가 난다.
이제 가시의 아픔은 잠재의식으로 내려간다.
손가락이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릎이 까인 것이 더 주목을 받는 것이다.
무릎을 문지르고 있는데, 집에 불이 났다.
당신은 무릎의 아픔을 잊는다.
무릎의 아픔은 잠재의식이 된다.
집의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다.
집의 불을 끄고 나면 다시 무릎의 아픔이 표면의식으로 올라올 것이다.
표면의식은 의식 전체로 보아 아주 작은 부분이다.
수많은 잠재의식들이 표면의식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처럼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이 상호작용하여 당신이라는 집단의식을 창발해 낸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뜯어보면 수많은 국민들 밖에 없다.
개별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럼에도 개별 국민들의 의식이 상호작용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의식을 만들어 낸다.
단 두 사람이 있어도 집단의식이 만들어진다.
세 사람, 열 사람, 지역, 민족, 국가, 종교, 세대 등의 집단의식도 그렇다.
마치 개별바람이 모여서 태풍을 만드는 것과 같다.
태풍은 어디에 있는가?
뜯어보면 개별 바람들 밖에 없다.
그 개별 바람들은 무시할 정도로 미약하다.
그럼에도 그 개별 바람들이 상호작용하여 무시무시한 태풍을 만들어낸다.
의식은 매 순간 차원을 달리하여 나타난다.
소립자의식, 원자의식, 분자의식, 생물의식, 지구의식, 태양계의식, 은하계의식..
이처럼 개별의식이 모여 집단의식을 이룬다.
그리고 개별의식과 집단의식은 모두 전혀 새로운 차원이다.
당신 속에는 표면의식이 있고, 잠재의식이 있다.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은 부단히 자리를 바꾼다.
당신은 매 순간 같은 사람이 아니다.
예수가 ‘도무지 맹세하지 마라’고 한 이유다.
지금의 표면의식이 내일도 표면의식일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의 의식은 당신 세포들의 의식이 상호작용한 집단의식이다.
세포들의 집단의식인 당신의 개별의식은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집단의식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아래로도 위로도 수없이 많은 차원들이 전개된다.
의식 밖에는 없다.
삶 전체가 의식이다.
존재와 의식은 같은 의미이다.
지복과 의식도 같은 의미이다.
존재, 의식, 지복은 하나다.)
- 대뇌변연계가 발달한 동물 대부분은 포식자나 짝을 만났을 때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주로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물론 인간도 본능이나 감정에 치우칠 때가 있지만, 다양한 피드백회로를 통해 끊임없이 정보를 분석ㆍ평가한다.
- 인간의 의식은 CEO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의식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 만일 인간의 두뇌에 CEO가 없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동물만이 뇌가 필요하다.
뇌는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한 신체기관이다.
움직임이 없는 광물이나 식물은 뇌가 필요 없다.
파충류와 같은 동물은 가장 간단한 뇌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포유류와 같은 동물은 일종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간의 감정교류가 필요하고, 이에 대뇌변연계와 같은 조금 복잡한 뇌가 필요하다.
인간은 어떤가?
저자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의식 중 가장 복잡한 변수를 갖기 때문에 이성의 뇌, 즉 좌뇌가 필요하며 여기엔 의사결정권자인 CEO가 필요하다.
물리학자인 저자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는 좌뇌를 가지고 의식을 분류하고 있다.
좌뇌는 의식을 크게 0단계, 1단계, 2단계, 3단계로 나눈다.
나아가 각 단계마다 더 세밀하게 분류한다.
당신은 가장 작은 수를 아는가?
0.0000000000000000000000000001
?
더 작은 수도 있다.
좌뇌는 오늘도 의식을 끝없이 분류해야 한다.
이것은 이렇고, 곤충은 예외고..
우뇌는 의식을 나누지 않는다.
왜냐하면 존재는 나누어질 수 없는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있다면 모두에게 있는 것이고, 없다면 모두에게 없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는 있고, 어떤 부분에게는 없고..
그럴 수는 없다.
어떤 의식은 더 고차원이고, 다른 의식은 더 저차원이고..그럴 수는 없다.
consciousness는 나누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편리를 위한 것이다.
초등학생에게는 초등 교재로 수업을 해야 한다.
대학원생에게는 대학원생용 교재로 수업을 한다.
그들이 배우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배운다.
다만 편의적으로 수준에 따라 배움의 방법을 달리함에 불과하다.
awareness는 나눠지지 않는다.
당신이 초등학생이든 대학원생이든 같은 의식을 갖는다.
당신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같은 의식을 갖는다.
심지어 당신이 식물이든 광물이든 모두 같다.
우리는 절대평등하다.
단 하나의 의식을 갖는데, 그것이 바로 우주의식이다.
나누고 쪼개고 분석하고 하는 것은 좌뇌의 소관이며, 편리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당신의 우뇌를 통해 전체와 교류하라.
당신은 우뇌로 가는 법을 묻는다.
숫자 세기를 멈추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저서 <월든>에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그는 소로에 찬성한다.
나아가 30분 법칙을 제안한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걱정, 근심, 원망, 미움, 분노, 화 ..)을 어느 정해진 30분에 몰아서 하라.
예를 들어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하는 30분으로 몰아라.
하루의 나머지 시간은 오직 그 시간에 충실하라.
문득 걱정 등이 떠오르면 의도적으로 그 30분으로 몰아라. 그와 소로는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단순하게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