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사상 보도자료 - 이종섶 시집 「바람의 구문론」
128×205×9mm|142쪽|값 8,000원|979-11-308-0416-3 04810 | 2015.6.25
이종섶 시인의 시집 『바람의 구문론』이 <푸른사상 시선 54>로 출간되었습니다. 평범한 소재들을 섬세하게 다듬어 이미지화하면서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시들이 실려 있습니다. 시인의 연락처는mybach@naver.com 입니다.
■ 도서 소개
이종섶의 시들은 자연 그대로의 대상에 시인의 독특한 의식을 투영하여 낯설고 강렬한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음미할수록 새롭고도 확실한 이미지가 그려지고, 그래서 오래도록 기억된다. 표제작인 「바람의 구문론」은 형용사가 되어 꾸며줄 수 있고 동사가 되어 움직여줄 수 있고 접속사가 되어 이어줄 수는 있지만 대상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하므로 명사는 아닌 바람을 노래했다. 그 외에도 시집에는 화장터, 노래방, 게장, 소나무, 손톱, 커피믹스 같은 평범한 소재들을 섬세하게 다듬어 이미지화하면서 그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시들이 실려 있다.
■ 시인 소개
이종섶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낙동강세계평화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물결무늬 손뼈 화석』이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무명 시인 / 나비의 속도에 관한 명상 / 바람의 구문론 / 울음비빔밥 전문점 / 사과 / 팔자를 고치다 / 가로수가 사는 법 2 / 꼬리에 대한 가설 / 내의 뒤집어 입기 / 첼리스트 거미 / 천둥소리 / 버려진 드럼통 / 아쿠아월드 / 입맛 / 나무젓가락
제2부
날지 못하는 짐승은 날개를 먹지 못한다 / 벼랑 주식회사 / 빙어 / 성노래방 / 정치학개론 / 엘리베이터 / 바코드 / 코르셋 / 게장 /미혼모를 위한 변명 / 애완남 길들이기 / 의자 고문 / 겨울옷장 / 시대와 말 걸기, 혹은 불화하기
제3부
4월 / 우주를 연주하다 / 구름떡쑥 / 검멀레동굴 / 노산 / 은행나무 학교 / 민달팽이 / 배추흰나비 / 소나무 평전 / 야생을 사육하다/ 물 위에 쓰는 편지 / 꽃의 무게 / 밥상 / 풀잠자리 / 숲의 콘서트
제4부
똑같이 며칠을 사는데도 / 잡초 / 레몬버베나 / 퇴비젓 / 톱을 깎다 / 때를 밀다 / 눈물 씨앗 / 연민을 키우다 / 자반고등어 한 손 2 /갈비 / 향나무 탁본 / 노면을 읽다 / 틀니 / 내장탕 한 잔 / 낙엽 냉국
해설:질료와 형상의 발견과 시적 지평―이재복
■ 추천의 글
이미지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미지는 단순한 언어의 그림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가 언어의 운동이며 서사이다. 이종섶 시인의 시는 선명하고 정밀한 이미지가 특징이다. 허황되거나 과장된 수사가 없고, 이미지에 사건과 서사를 버무릴 줄 아는 시적 능력이 탁월하다. 정확하고 섬세하며 관념의 거짓 포즈나 지적 허세도 보이지 않고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탐색이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고래의 영혼은 꼬리에 있다.”(「꼬리에 대한 가설」) 고 말하는 시인의 눈을 보라. 그는 단순한 이미지스트가 아니다. 현실과 존재에 대한 내밀한 탐색을 통해 생의 이면을 읽어낼 줄 아는 시안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를 단순히 사물의 외피만을 장식하는 무대의상쯤으로 아는 시가 얼마나 많은가. 묘사 차원에 머무르는 시가 갖는 한계를 돌파할 때 시는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를 잘 체득하고 있는 이종섶 시인은 자유로운 상상의 보법으로 현상의 안팎을 넘나들며 새로운 감각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편을 통해 그의 시적 지형도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뜻깊은 문학기행이 될 것이다.
- 홍일표(시인)
■ 작품 해설
시와 대상 사이의 긴장 혹은 미적 성취는 드러남과 숨김이라는 수법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은유와 환유,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같은 원리가 작동하게 된다. 이 원리들은 세계의 의미 지평뿐만 아니라 미적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방법이다. 한 편의 시는 시인과 시적 대상 사이의 관계 속에서 탄생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차이를 드러내는 데에는 이러한 원리들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정도가 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시일수록 이러한 원리들을 통한 긴장의 정도가 크다.
이종섶의 시에서도 이러한 긴장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시인이 대상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대상에 대한 의식은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보다는 간접적으로 드러날 때 더 강한 미감을 환기한다. 시인의 의식과 대상 사이의 미감은 그 간접화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존재할 때 더 잘 나타날 수 있다. 시인과 대상 사이의 매개로 인해 그것이 미적 굴절로 이어질 개연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이종섶의 시가 드러내는 세계는 조화나 화해보다는 부조화와 불화가 지배적이다. 이것은 시적 대상을 향하는 시인의 의식의 어두움과도 통한다. 시인의 의식이 향하는 곳에는 사물이나 세계의 그림자나 그늘이 깃들어 있다. 시인의 의식의 어두움과 그것의 투사는 세계의 어느 한 면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시인이 어느 한 면만을 지나치게 드러내려다 보면 그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면 곧 그림자와 그늘은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다른 면이 동시에 드러나면 세계의 모순이라든가 부조리는 물론 반어와 역설 같은 수사의 차원까지 탈은폐 전략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반어와 역설은 눈에 보이는 차원만을 주시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차원 이면 곧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주시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 드러난다. 시인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 대해 일정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가령 사람들이 ‘코르셋’을 보면서 ‘잘 다듬어진 몸매만 바라보며 찬사를 늘어놓’을 때에 시인은 그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사슬이 남긴 흉터 자국’(「코르셋」)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잘 다듬어진 몸과 눈에 보이지 않는 흉터 자국이 말해주는 것은 세계 혹은 존재 자체의 모순과 부조리이며, 이 불화가 반어와 역설 같은 시적 원리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코르셋의 이면이 은폐하고 있는 흉터 자국을 주시하고 그것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태도를 지닌 시인에게 세계나 존재는 단선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쉬운 화해의 대상이나 나이브한 대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코르셋이 은폐하고 있는 상처를 어떻게 들추어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세계나 존재 내에서 화해시켜 나갈 것이냐의 문제는 시인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시적 질료가 일종의 에너지 같다면 형상은 그것이 구체적인 형이나 상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시공간의 교차가 생산해낸 불안정한 에너지가 차츰 어떤 형이나 상을 지니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듯이 처음에는 낯설지만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것을 체험하게 된다. 천둥소리로부터 시작된 시인의 의식이 바다, 갈매기, 물고기 같은 시적 대상을 만나 질료와 형상을 갖추어가면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해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차원 이면에 은폐된 미적 질서를 들추어내는 과정과 다른 것이 아니다. 시인의 시 쓰기의 과정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새롭고 낯선 형식의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 시인의 자의식이 여기를 겨냥하지 않으면 미적 긴장은 성립될 수 없다. 시인은 이 시에서처럼 천둥소리를 듣고 그것을 지각의 장으로 투사하여 개념화되거나 도구화된 의식에 물들지 않은 낯선 영역을 발견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상투화되고 낡은 상상과 표현으로 인한 시의 도태 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 이재복(문학평론가 · 한양대 교수)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