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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비결 창22:1-14,히11:17-19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순종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신앙생활의 근본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시험이 올 때 순종하면 축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호와이레라는 말씀으로 창22장을 중심으로 은혜받고자 합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에게 대단한 시험을 주셨습니다. 이번에 어떤 시험이었을까요? 장대한 아브라함 인생 가운데 단연 아브라함은 대략 세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창12장의 어느 날 (1)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신 시험입니다.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고향(갈대아우르, 메소포타미아)을 떠나 내가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면 너를 창대하게 한다는 시험이었습니다.
둘째는 창15장에서 (4)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5) 밖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에서 자녀를 생산할수 없는 상황에서 후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느냐? 하는 시험입니다. 어느 것 하나 예사 시험이 아니었으나 아브라함은 단순-우직하게 그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셋째는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은 앞에 두 시험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시험이었습니다. 셋째 시험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평면적 차원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삼차원적 시험이었습니다. 즉 첫째, 둘째 시험의 목적이 “이삭” 이었는데 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첫째, 둘째 시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아브라함은 그 절대 무의미한 믿음까지 수용하였기 때문에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 축복은 바로 오늘 날 성도들이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진실히 믿는다면 이 땅을 떠난 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시간 아브라함의 시험합격을 듣고 나면 나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다는 성도들이 되어지기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셋째 시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세 번째 시험은 하나님이 그냥 이삭이라고 하시지 않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그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 이었으므로 이삭이야말로 아브라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브라함이 자기 생명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아들이었는데 하나님은 그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번제가 어떤 제사인지 아십니까?
(레1:5-9) 숫송아지를 번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번제는 일단 제물을 잡아 죽인 다음 번제물의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또 번제물의 가죽은 벗기고, 살은 토막 토막 각을 뜬 다음에는 내장도 꺼내고 다리도 잘라서 씻고 이 모두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남김없이 불로 태우는 것이 번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삭을 이렇게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 시험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을 보면 그가 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워지는지 이시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에 있어서 왜 하나님께서 이런 극단적인 명령을 하셨는지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시험이었습니다. 아니, 이삭을 번제로 바치면 이삭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무지막지한 명령을 내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할 수도 없고, 순종하기 어려운 시험이었는데 아브라함이 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이성과 판단을 믿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인한 믿음의 행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던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알려준 그곳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후 이 시험에 준비하는 아브라함을 봅시다.
(창22:3-14)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여 주신 곳으로 갔더라 4 그 때에 셋째 날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보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지체없이 그 다음날 아침에 출발했습니다. 미적거리며 고민하다가 하루 이틀 보내다 보면 마음 약해져서 순종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일러주신 모리아 산을 향해 떠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 사라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이삭이 모리아 산에 가서 제사하고 올 것이라 하면서 3일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험은 한 순간의 결단을 요구하는 시험이 아니라 3일간 70km 거리를 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갔겠는가? 3일째 되는 날 아침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이제 그 산이 멀리 보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3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죽음의 3일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닐까요? 이삭의 번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아브라함아, 네가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나는 안다. 나도 내 아들 예수를 내어줄 때 나도 그랬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님도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시면서 '저 곳이 내 아들 예수가 죽을 곳이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 마음 알겠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브라함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삭이 예수님을 예표하는 신앙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드디어 모리아 산밑에 도착했습니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 머무르라. 나와 아이는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지금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산에 올라가는데 번제는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를 태우는 제사라고 했는데 이삭과 함께 내려올테니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이삭이 뻔히 듣고 있는데 어떻게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히브리서 11:17-19 말씀입니다.
(히11:17-19) 17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삭을 바쳤으니 곧 약속들을 받은 그가 자기의 독생자를 바쳤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말씀에 보증을 주는 말씀이 이사야에 있습니다.
(사44:2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종의 말을 확증하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창15:4, 21:12 히11:18))약속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종들에게 나와 아이가 다시 오리라고 말한 것에 대해 확증을 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삭이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생식 능력이 전혀 불가능한 100세 된 아브라함과 90세가 되어 이미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된 아내 사라가 자식을 낳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바쳐도 그 이삭을 통해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번성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온전히 믿었던 사람이 아브라함 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번제를 통해 이삭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한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처음 믿었던 대로 끝까지 믿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만 믿고 어려울 때는 믿지 못한다면 그런 믿음에 무슨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실 때 믿었던 그 첫 믿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우리들도 이 시간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의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질문을 합니다. (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여기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번제할 나무를 지고 가는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물었던 이 질문은 아브라함의 가슴에 비수를 꼿는 질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8) 번제 헌물로 쓸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고 어떻게 예기치 않았던 질문에 아브라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합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할 말을 주신 줄 믿습니다. 드디어 시험의 절정의 때가 왔습니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위에 이삭을 결박해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삭의 나이는 번제할 나무를 지고 산에 올라갈 정도로 17세 정도였다면 100세에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의 나이는 117세로 힘없는 노인 아니겠어요? 17세의 혈기왕성한 이삭은 아무리 아버지라도 자기를 죽이겠다고 결박하면 그거 하나 뿌리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이삭은 순순히 결박을 당한체로 번제단 위에 누웠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게 아니라 이삭이 스스로 결박당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잡으러 온 로마의 군인들을 단숨에 제압하실 수도 있었으나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내려오시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마든지 노인 아브라함을 뿌리치고 제단 위에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아들이 되려고 이삭도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제 시험의 절정의 순간이 왔습니다.
(10) 자기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 하더니 이삭은 눈을 감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마지막 심호흡을 크게 한 아브라함의 손이 큰 궤적을 그리며 내려오려는 순간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립니다. (11)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므로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그가 이르되 ”네 손을 그 아이에게 대지 말라. 너는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곧 네 유일한 아들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 내가 이제 아노라” 하니라.
하나님이 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시면서 이삭의 몸에 손도 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세 번째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응답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참모습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2. 여호와이레로 응답하신 하나님
이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13-14절입니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양은 본래 들이나 평지에 있어야 하는데 그 모리아산 수풀에 숫양 뿔이 걸려 있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양을 보자마자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 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곳은 어디든 여호와이레가 되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삭이 번제할 어린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의 대답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이 말은 이삭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이 준비하실 줄로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믿었더니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정말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런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가 받습니까?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18). 순종없이는 받을 수 없는 축복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순종이 뭐냐고요 내 이성 내 경험 내 지식을 떠나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결국 시험에 합격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다시 돌려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두 번이나 선물로 받은 이삭은 이제 그 누구도 해치거나 대적할 수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씨가 대적의 문을 차지하리라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고 대적을 이기며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지금도 세계 강국인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
여호와이레란 말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이레는 누구나 다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만 주십니까? 저는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이레의 은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을 몇 사람만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1)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죽었고 아브라함도 이제 나이가 적어도 140세 정도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재산은 아브라함의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이 맡아 돌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종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 손을 내 넓적다리뼈 아래에 넣고 주 앞에서 나에게 약속을 하여라.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여기에 사는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서 구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아내 될 사람을 데려오겠다는 약속입니다(창 24:4).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낙타 열 마리에 여러 가지 좋은 선물을 싣고 800km나 멀리 떨어진 아브라함의 고향인 나홀 성으로 갔습니다. 종은 먼저 여인들이 많이 오는 우물가로 갑니다. 그리고 한 가지 상황설정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오늘 제가 주인 아들의 아냇감을 순탄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는 지금 우물가에 서 있고 성의 여자들은 물을 길러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 중 한 처녀에게 '그 물동이에 있는 물을 좀 먹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 때, 만약 그 여자가 '마시세요. 내가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먹이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 여자를 주의 종 이삭의 아냇감으로 알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드디어 리브가가 우물가로 옵니다. 리브가는 브두엘의 딸입니다.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과 그의 아내인 밀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리브가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이며, 남자와 가까이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리브가는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그 때에 종이 리브가에게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물동이에 있는 물을 좀 먹게 해 주십시오."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내 주여 마시세요" 하며 급히 어깨에서 물동이를 내려 종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종이 물을 다 마시자,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제가 물을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리브가는 물동이의 물을 여물통에 쏟아 부은 다음, 다시 우물로 달려가서 물을 길어와 모든 낙타들이 물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외모도 아름답게 보인 리브가는 낯선 남자가 물을 부탁할 때 물을 마시게 하고는 열 필이나 되는 낙타들을 위하여도 물을 길어주는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던 엘리에셀은 그녀의 집안을 물어봅니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브두엘의 딸이라는 것을 듣고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선택하는 과정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준비하심은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숫양을 준비한 것과 너무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이렇게 우물가에서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미리 준비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사를 네 앞에 보내시리라는 아브라함의 말을 믿었습니다(창24:7).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너무 감사하면서 준비해온 선물중에서 리브가에게 반 세겔쯤 나가는 코걸이 하나와 십 세겔쯤 나가는 금팔찌 한 쌍을 주면서 물었습니다."아가씨 아버지의 집에 우리들이 하룻밤 묵어갈 방이 있겠는지요?" 리브가가 대답합니다. "우리 집에는 낙타에게 먹일 여물도 있고, 여러분이 하룻밤 묵어가실 수 있는 방도 있습니다." 리브가는 그 종을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종은 리브가의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종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결혼할 나이가 된 청년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의 아내될 사람을 찾으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가 우물에 이르러 기도하기를 오 주 곧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여 만일 주께서 나의 가는 길을 형통하게 하실진대 내가 우물가에 섰다가 처녀가 물을 길러 오거든 그녀에게 이르기를 나와 저 낙타에게도 물을 먹게 도와주는 처녀가 있다면 그 처녀가 바로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바로 저 처녀가 우리를 이 집으로 데리고 온 이 아가씨입니다. 리브가의 가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니, 우리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군요. 자,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리브가를 데려다가 그대의 주인의 아들과 결혼시키세요." 종은 리브가에게 금과 은으로 만든 보물과 옷을 주었습니다. 종은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에게도 값진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날 밤을 묵은 후 이튿날 아침 말했습니다. "이제 주인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빠가 말했습니다. "리브가를 십일 동안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있다가 떠나게 해 주세요." 하지만 종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제 길을 형통하게 하셨으므로 기다릴 수 없습니다. 제 주인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가 리브가를 불러서 직접 물어 봐야겠군요 말하고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지금 이분과 함께 가겠느냐?"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예, 가겠습니다." 종은 리브가를 낙타에 태우고 길을 떠났습니다.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오던 날 저녁 무렵, 이삭은 묵상하러 들로 나갔습니다. 이삭이 눈을 들어 보니 낙타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 이삭을 보더니 낙타에서 내렸습니다. 리브가가 종에게 물었습니다. "저 들판에서 우리를 보려고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종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주인의 아들입니다." 그 말을 듣고 리브가는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종이 이삭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다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종의 말을 들은 이삭은 리브가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는 어머니 사라의 대를 잇겠다는 표시입니다.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사십세였습니다(창25:20). 이삭은 리브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어머니를 여읜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 위로를 얻었습니다. 이후 이삭은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낳은 후(25:26) 180세에 죽었는데(35:28) 성경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와 같이 아름다운 부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 거미줄을 통해 목숨을 구한 부르스
스코틀랜드의 독립운동가 로버트 부르스라는 사람이 도피자로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르스는 쫓겨서 달아나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산 속 동굴로 피신해 숨어 들었습니다. 동굴 속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밖을 내다보던 그는 자기 앞에서 거미 한 마리가 열심히 거미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윽고 자기를 쫓는 무리가 동굴 입구에까지 닥쳤습니다. 이제 곧 잡히게 될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엔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냥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 부르스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하나님. 이 작은 거미의 뱃속에 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셨군요. 거미를 통해서 나를 보호해 주시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미를 준비하신 하나님은 그 뱃속의 거미줄로 사랑하는 자를 보호해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좋은 것들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를 그 입술로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리시며 우리 속의 생각까지도 헤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이레는 아무리 시간이 길어지고 세월이 흘러도 순종하는가, 헌신하는가, 괴롭고 힘들어도 믿음에서 이탈하지 않는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가를 보신 후, ‘패스’ 한 자에게 비로소 여호와이레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의 고통을 인내하지 못하면서 내일의 여호와이레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은 필요한 때 필요한 은혜를 준비하셨다가 공급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신11: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넉넉히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들이 인생 살아갈 때에 때를 따라 모든 은혜를 넉넉히 준비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인생에 어떻게 여호와이레라는 기적이 나타났는가를 보았습니다. 문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앙생활에도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끝까지 믿어야 여호와이레가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여호와이레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을 때, 모리아 산 끝까지 올라갈 때, 아들을 번제단 끝까지 올릴 때, 칼을 끝까지 높이 들어 내리칠 때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더불어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통한 여호와이레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 여호와이레가 주는 교훈
오늘 말씀은 결국 여호와이레의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이레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 할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택한자를 시험하시고 연단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도전하시고 시험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가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시험하셨고 모세에게도 바로에게 가서 노예로 고통당하는 내 백성을 출애굽시키라는 시험을 주셨을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여호와이레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엄청난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 갯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립니다.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는 예수님 처절한 기도를 들으신 후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주 하나님은 택한 자들을 도전하게 하시고 시험하시고 단련하십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험-연단 앞에 우리들이 선다면 아브라함처럼 또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부자 청년처럼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지 말고 이성으로 판단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바랍니다.
(2) 여호와이레는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취할 수 있다
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준비해 놓은 축복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것은 여호와이레의 믿음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면 됩니다. 아브라함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런 자리로 내려가지 않으면 ‘여호와이레’의 믿음을, 경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결정적인 절망의 죽음은 마치 아브라함의 칼날이 이삭의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의 생명을 준비한 것이 궁극적인 의미에서 ‘여호와이레’입니다. 죽음 후 천국이 여호와 이레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여호와이레를 통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모형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모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되돌려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부활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마지막 날에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성도들을 영접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구원의 계획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준비하셨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믿음을 위해선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일 예배 한 시간 나오는 것도 아깝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온전해지면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아낌없이 하나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졌는지 시험할 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시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통하여 신앙적으로 크게 성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시험 때문에 전보다 더 형편이 나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험이 닥쳤을 때 시험의 참 뜻을 알고 시험을 믿음으로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이레의 축복이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요?
첫째, 여호와이레의 축복은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창22:1 말씀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했습니다.
영어로 구분해 보면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테스트(test)요, 둘째는 템테이션(temptation)입니다. 테스트(test)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으로서 이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세워주시려 하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사탄이 주는 템테이션(temptation)은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시험입니다. 테스트(test)의 시험은 잘 통과하면 상급이 따르지만 템테이션(temptation)시험은 마귀가 주는 것이기에 손실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들의 희생과 결단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은 아들은 요구했을 때 그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들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말씀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된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가라고 명하시니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여 갔습니다. 떠나라 하실 때 떠났고, 바치라 하실 때 바쳤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떠나라 할 때 떠나지 못했고 바치라 할 때 바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받기를 원합니다. 진정 아브라함의 복을 원한다면 아브라함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말씀에 순종하면 열매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은 지체치 않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준비해 놓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다 책임져 줄 터이니 너는 순종하기만 해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길은 괴롭고 힘이 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그 길은 믿음으로 가야 되는 길이기에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지금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돌아보니 우리의 발걸음 한걸음씩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앞날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드린 모든 것을 돌려주시되 더욱 풍성하게 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풍성하고 놀라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행복침례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