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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예배하는 법
1.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과 예배는 동일한 실재(identical entities)이다.
찬양과 예배는 서로 협력 활동(mutually cooperative activities)을 하며 외견상 표현(outwardly expressed)은 비슷하다.그러나 본질과 목적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찬양의 본질(essence)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서의 찬양은 7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맡기다, 위탁하다. to commend
② 성원하다. 갈채를 보내다. to applaud(에플러드)
③ 동의를 표하다. to express approval
④ 감탄하다. to express admiration
⑤ 말과 노래로 칭송하다. to extol in words or in sing
⑥ 찬미하다. to magnify
⑦ 영광 돌리다. to glorify
찬양에 대한 기독교적 정의는 하나님께 대한 칭송과 감탄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찬양은 하나님이 그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없는 특성(incomparable character)과 경이로운 활동(wondrous acts)을 하셨음에 대해 찬미를 올리는 것이다.
찬양의 독특한 관심/관계(distinctive concern)는 외향적 성질(extroverted nature)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celebration)과 기분을 돋우어 주는(exhilaration) 노래와 외침과 춤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찬양은 묵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진 마음이다. 그러므로 행위가 따르는 것이다.
찬양은 공언하는 것이며(declared)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manifested).
시편 66: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할지어다.”
이사야 40:9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찬양은 밖으로 나타나는 것(demonstrated)이다. 찬양은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taking place)이다.
찬양은 예배하는 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소원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예배자들의 찬양 매너는 자라고 성숙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찬양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기대를 찬양하도록 했다.
하나님은 찬양을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clone)이나 그의 명령에 율법적(legalistically)으로 따르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진정으로(authentically) 진심에서 우러나오는(genuinely) 희생적 의지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단순히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기를 필요로 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를 더욱 원하신다.
하나님께 본질적이며 진심으로 찬양하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찬양은 의지의 기능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와 결심이 우선되어야 한다.
찬양은 우리들의 우발적이고 우연적인(contingent) 느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다윗은 시103:1에서 말하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했다.
성도들도 때로는 맥없고 우울하기도 하며(down in the dumps) 영적으로 메마르기도 한다. 그럴 때 찬양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에 축복하기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찬양은 감정의 기능이 아니라 의지의 기능이다.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
우리의 감정이 극도로 나빠지거나 희망이 꺾일 때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
시편기자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하나님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 가운데서도 찬양을 할 때 축복을 하신다.
언제라도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진실로 믿는다면 찬양하게 된다.
그러므로 찬양하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며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여호와 라파라는 치료의 하나님(출15:26), 여호와 이레라는 준비의 하나님(창22:14), 여호와 삼마라는 주께서 거기계시다(겔48:35)라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
시편 54: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시편 34: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하나님은 결코 찬양하는 자를 떠나지 않으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찬양을 들으시고 축복을 하신다.
유다(Judah)의 찬양
야곱의 네 번째 아들이고 유다라는 이름을 레아(Leah)가 지어주었다. 유다라는 이름은 ‘찬양’이라는 뜻(창 29:35)이다. 그런데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가 오셨다. 그 이유는 찬양하는 자(praisers)의 지파이기 때문이다. 시편 114:2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은 성소를 찬양하는 자 가운데에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토(God's domain)이고 유다 안에서 성소(sanctuary)를 세우신다는 것이다. 시편 76:1에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 바 되셨으며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도다”라고 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별하여 놓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교회의 상징적 존재이다. 유다는 교회를 의미한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찬양하는 자로서 큰 자인 것이다. 오늘도 교회의 위대한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를 알리시는 특별한 방법은 찬양을 통해서이다. 이사야 44:26에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요엘서 3:18에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스가랴 2:12에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라고 했다. 성경은 유다가 특별하게 하나님의 사랑받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 108:8에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홀’(scepter)이란 왕권을 의미하는 말로 찬양이 나의 왕권이다라는 것이다. 찬양하는 자를 하나님은 왕위에 오르게 하신다.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시편 150: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찬양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주신 명령이다.
② 하나님은 찬송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시편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찬양을 사랑하신다.
③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사도행전 16:25-26
찬양은 무기이다.
④ 선한 일이기 때문에/하나님이 좋은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시편 92:1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편 135: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 합당하기 때문에
시편 48:1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⑥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이 충만한 사람을 찾고 있지만 이 세상은 사람을 충만하게 할 곳이 없다.
충만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A.W. Tozer(토저)는 말하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가장 거룩한 아름다움이다’이라 했다.
하나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없으며 힘든 일(arduous task)이 없다.
하나님은 전신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창조자이시며 아버지이신 그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하신 목적대로 그 형상을 찾아야 한다.
언제 찬양할 것인가?
① 어려움 중에 있을 때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찬양은 감격성(emotionalism)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것(emotional)이다.
② 영적 기쁨을 원할 때
누가복음 1:46-47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③ 하나님을 바라볼 때
시편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④ 항상 성전에 있을 때
시편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⑤ 어느 장소에 있을 때
시편 57:8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119:62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역대상 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족장이라 저희가 골방에 거하여 주야로 자기 직분에 골몰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축복하시길 원하신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찬양하라.
시편 34:1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라고 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하루의 어느 시간이라도 찬양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찬양할 때마다 축복하실 것이다.
어디에서 찬양할 것인가?
시편 149: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시편 113:3 “해 돋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이것이 찬양의 교과서이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기까지 어느 곳에 있든지 찬양해야 한다.
특히 회중예배에서 찬양을 해야 한다.
회중예배 중의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것을 아래의 말씀들이 확인시켜준다.
시편 22:22, 25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시편 26:8, 12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시편 35:18 “내가 대회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68:26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서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시편 107:32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교회의 예배는 찬양하는 예배일 때 위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게 된다.
찬양은 회중예배의 가장 중요한 연합의 영역이고 사역이다.
회중예배는 함께 일어서고 함께 손을 들고 함께 손뼉을 치고 함께 찬양하는 표현이 좋아야 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찬양은 우리들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에 소개된 것을 따를 때 유익이 된다.
① 손을 들고 하라(lifting of our hands).
느 8:6, 시28:2, 63:4, 134:2, 141:2.
첫째, 서로 말하는 것으로서의 표현.
둘째, 나를 받아달라는 표현.
셋째, 성령께 마음을 여는 표현.
넷째,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순종하겠다는 표현
② 손뼉을 치라(clapping of hands).
시 47:1.
손뼉을 치는 것은 1)찬양을 더욱 강하게 하고 2)하나님께 오르게 하며(ascend) 3)승리를 유지하게 하고 4)하나님께 기쁨의 소리를 바치게 된다.
③ 악기를 통해서 하라(playing of musical instruments).
시150:3-5.
찬양을 돕는 시설.
④ 일어서라(standing).
대하5:12, 7:6, 29:26, 계4:9-11.
일어서는 것은 찬양의 합당한 표현이다. 두 가지 찬양의 기능으로 존경(respect)과 경계(alertness)를 의미한다.
⑤ 무릎 꿇고(kneeling) 엎드리고(bowing) 부복(prostration)하라.
시 95:6, 계 19:4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표현이다.
⑥ 노래하라(singing).
초이성적, 초합리적(ultra-rational)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현이다.
⑦ 들을 수 있도록 하라(audibly).
시 26:7
⑧ 춤을 추라(dancing).
출15:20-21, 삼하6:14-16, 시30:11, 149:3, 롬3:8.
노래든 춤을 추는 이런 행위는 몸을 통한 헌신의 진정한 표현(bona fide expression)
⑨ 소리를 외치라(shouting).
시47:1, 66:1, 95:1-2, 98:4-6, 100:1.
찬양 중에 할렐루야나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것은 기쁨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⑩ 입술로 증거하라(speaking in tongues).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찬양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전폭적인 헌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편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마가복음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는 온 몸과 마음과 영으로 찬양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임재예배로 들어가라.
하나님의 임재에는 3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편재하신다. God is omnipresent
하나님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나 계신다. manifestation
둘째, 두 세 사람이 그의 이름으로 모인 그들 중에 계신다.(마18:20)
셋째, 성전에 계신다.(역대하 5:13-14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때 영광의 구름이 가득함)
하나님은 임재를 통하여 계시하신다.
예배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take up with)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see)이다.
하나님 임재에 접근(들어가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시편 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시편 100:2,4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42:2, 45:13-15, 68:24-26, 사30:29, 35:10)
둘째, 주의 집(성전)에 들어가 적당한 표현(fitting expression)을 하는 것
역대상 16: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편 96: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시편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시편 132:7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예배하는 것이란 하나님 앞에서 찬양과 감사와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의식(ritual)이나 양식(pattern)에 해당되기 보다는 영적인 부분에 속한다.
예수님은 신령과 진리로 간구하며 찾는 자를 원하신다고 하셨다(요4:23-24).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예배는 바르고 틀린 것을 따지기 전에 그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개인예배(individual worship)와 회중예배(congregation worship)
개인 예배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반면 회중예배는 서로 협력으로 만들어 진다.
개인 예배의 경우 이사야의 예배(사6:1-8)에서 주는 교훈은 회개(repentance)이다.
그리고 시편 100편은 회중예배나 공동예배(corporate worship)에 대한 중요한 말씀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찬양하며 송축할 것(100:1-5)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떤 예배이든지 중요한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의 임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선행 조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 2:3에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고 했다.
이것은 예배의 완전함을 위한 두 가지 원리인 계시성과 응답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편 100:4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으며 시편 150:1에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배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기 위해서는 먼저 예배자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가?
①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② 하나님께 올라가라.
시24:3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③ 하나님이 거하시도록 열정을 다하라.
시132:13-14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를 위한 예배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① 예배 사역자가 되라.(minister)
⒜ 활동적인 자- 모든 예배자는 예배에 활동적이어야 한다.
시편 150: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 봉사하는 자- 교회 안에서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역할에 충실한 자-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 희생하는 자- 예배는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는 반드시 예배자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② 예배를 준비하라.(prepare)
예배자의 책임은 예배에 대한 준비이다.
⒜ 주일에 일찍 일어나는 준비
⒝ 약간의 기도와 찬양으로 준비 -준비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 찬양을 듣고 부르는 준비- 교회에 올 때까지 찬양 CD/TYPE를 듣고 함께 노래하는 것도 필요하다.
⒟ 묵상 준비- 교회에 오면 오늘의 예배를 위하여 묵상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 마음의 조율 준비- 성령 하나님께 마음을 열도록 하는 것이다.
⒡ 죄 씻음 준비- 우리의 삶에서 지은 죄들을 예배 속에서 씻음 받기 위한 것도 중요한 준비이다.
⒢ 적극성 준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위하여 예배 안으로 들어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 힘찬 예배(vibrant worship) 준비
⒤ 결심 준비-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소중한 순간을 잃지 않으려는 결단과 의지도 준비한다.
⒥ 성령 충만함의 준비- 우리는 충만한 예배를 위하여 영적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인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임재하시는 예배는 자신의 죄들로부터 자유함에 있다.
시편 51:2에서(다윗이 밧세바를 겁탈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한 뒤 나단 선지자로부터 경고받은 사건을 배경으로 함(삼하 11,12장) 다윗은 밧세바 간음의 죄를 하나님께 아뢰며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먼저 죄를 고백하며 철저하게 그의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시도했다. 만일 죄를 고백하는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③ 기도에 투자하라.(invest)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예배자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상호교통 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부지런히 예배를 위하여 기도한다면 누구나 예배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예배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기도의 투자에 달려있다.
④ 예배에 모여라.(frequent)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도들은 예배모임을 거절하지 않아야한다.
주님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 격려하고 힘을 모으는 것이 모든 신자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몸에서 잘려나갈 때 우리는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행 2장 교회는 모이는 교회였기에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⑤ 헌금을 가져오라.(bring)
시편 96: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우리는 얼마나 이 말씀을 받아들이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받치기 위해 노력(endeavor)하는 것이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예배자의 책임이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
예배는 우리의 자신 모두를 바치는 것이지만 그 표현을 헌금으로 하는 것이다.
⑥ 자발적으로 하라.(spontaneous)
자발적 예배자(spontaneous worshiper)가 되도록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자발적 예배자가 되기 위하여 훈련해야 한다.
예배에 게으르거나 나태하면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기 어렵게 된다.
예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자아 동기(self-motivated)와 자기 통제(self-control)를 연습해야 한다. 자발적 예배자는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예배가 되기 위해 주저하지 않아야 하고(readily) 전심으로(wholeheartedly)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자의 임무는 밝고(brighten up) 기운이 넘쳐야(cheerful) 한다.
마치 남녀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과 같다.
예배는 찬양의 옷을 입고 웃는 얼굴을 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끌어올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배하는 것은 기분전환이 아니라 책임이다.
목사나 예배 봉사자가 즐거워하고 봉사하는 것은 자기의 기분에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배자의 의무이다.
예배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지배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되도록 하라.
시편 34: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라고 예배자는 계속해서 예배하는 책임만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산제사의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가?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시편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54: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시편 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시편 116: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예배를 말할 때 언제나 등장하는 것이 ‘희생제사’ ‘산제사’이다(sacrifice).
성경이 말하는 희생은 동물적 희생보다는 마음으로부터의 희생을 요구한다.
시편 51:16-17에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예배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오늘날의 예배도 구약의 말씀에 충만해야 한다.
희생제사란 얼마의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역대상 21장에는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했다. 물론 인구 조사 자체가 죄된 행동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수효에 집착하는 다윗의 생각이 죄가 된 것이었기 때문에 무려 7만명이 죽게 되었다. 이 때 다윗의 행동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24).
그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데 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희생제사란 ‘값을 드리는 것’,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예배란 값을 지불하는 예배이다.
예배에서의 희생이란?
첫째, 에너지를 지불하는 것이다.(energy)
한 주간 일을 하면서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나와 휴식을 취하며 편하게 있고 싶어 하기 때문에 예배에 일어서고 앉고 손을 듣고 크게 찬양하는 것에 피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노동의 시간이다.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모두 바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나의 모든 에너지를 예배에 쏟아야 한다. 예배자는 영적 에너지, 정신 에너지, 의비 에너지, 감정 에너지, 물질 에너지를 모두 드리는 예배가 희생이다.
둘째, 준비에 값을 지불하는 것이다.(preparation)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정결한 예배이다(시24:3-4). 고백과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나를 포기하는 값을 지불하는 것이 희생이다. 자기 포기란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예배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 첫째의 일이다.
셋째, 시간을 지불하는 것이다.(time)
우리는 하루에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의 한계성에 살아간다. 그러므로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 예배 시간이란 가장 내 인생에 소중하고 거룩한 시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고 거룩한 것에 희생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예배이다. 예배에 희생의 시간을 드리지 않는다면 낭비하는 시간일 뿐이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예배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라.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면 그 예배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능력이 가득 차게 된다.
3. 영적 전쟁을 위한 병기를 만들라.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전쟁(battle), 전투(struggle), 실제 전쟁(veritable war)과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그리스도인은 매일 주변의 모든 상황과 영적 대결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에베소서 6:10-17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영적 무기를 갖기 원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무기는 예배이다.
예배의 기도 찬양 말씀 봉헌은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도구들이다.
그 중에서 회중 예배의 가장 강한 영적 무기는 찬양이다.
1) 영적 전쟁 무기인 찬양의 예배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군대에 쫓기며 홍해 바다를 건너는 사건을 15:1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찬양을 했을 때 승리할 수 있었다.
출애굽기 15:3을 보면 왜 찬양을 하면 승리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여호와는 용사라는 말씀은 ‘싸우는 자’(warrior)라는 뜻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캐릭터를 이렇게 소개했다.
여호수아 5:13-14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군대장관(commander-in-chief)이다.
여호사밧 왕이 암몬과 모압의 침략을 받게 된 전쟁의 위기에 있을 때 그는 이렇게 했습니다.
역대하 20:12-24에서
12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14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저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20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1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24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시체뿐이요 하나도 피한 자가 없는지라
여호사밧은 전쟁의 위기 때에 찾은 사람이 ‘찬양하는 자’였다.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면 승리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찬양하는 자(praiser)는 전쟁에서 승리한다.
다니엘서 11:32에는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알면 누구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강한 용맹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찬양의 능력을 경험했다.
사도행전 16: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들을 묶고 있던 사슬을 풀게 하는 능력이 찬양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주변에 표적이 나타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도 찬양에서 였다.
2) 영적 전쟁의 무기인 외침(shout)의 예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했다.
여호수아 6: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백성들이 사용했던 무기는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찬양’을 전심으로 부르는 ‘승리의 함성’이다.
여기에 초자연적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함성의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응답이 이루어진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이 찬양의 함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사기 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300명에게 지시했던 것이 외치는 것이었다.
그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친히 싸우셨다.
이것도 승리의 외침이었다.
예배는 침묵하는 것보다 외치는 것이 필요하다.
예배는 침묵(silence)하는 것이 아니라 외치는 것(shout)이다.
오늘의 예배가 무기력한 이유는 승리의 외침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영적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능력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승리의 외침이 예배의 흐름이 되어야 한다.
외침이란 문제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도록 공격하고 적의 힘을 무력하게 만든다.
또한 하나님 되심을 외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dilemma)로부터 승리하는 길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힘을 기뻐할 때 전쟁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
우리가 찬양하면 그는 싸우신다.(We praise, he fights)
예배에서 찬양과 외침은 평화의 사신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한다.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승리의 함성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영적 무기로 삼는 것은 악한 날에 승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에베소서 6:13-14)
그리스도인들을 매 시간마다 공격하기 위하여 마귀는 기회를 엿보며 노려보고 있다.
그 마귀들에게 승리하는 것은 강한 찬양과 외침과 예배이다.
민수기 10: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우리가 승리의 찬양을 할 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신다.
창세기 49:8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는 찬양이라는 뜻으로 유다지파는 적으로부터 승리하였다.
사사기 1:1-2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하시니라.”
찬양하는 자는 승리를 차지하게 된다.
시편 118:19-20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바로 그 문은 찬양의 문이다.
이사야 60:18에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고 했다.
찬양 문을 열어 놓으면 승리하게 된다.
시편 149:1-9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며 저희 왕들은 사슬로, 저희 귀인은 철고랑으로 결박하고 기록한 판단대로 저희에게 시행할지로다 이런 영광은 그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할렐루야”
찬양하는 것은 영적 무기인 두 날을 가진 칼을 품고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교회에서 승리의 함성이 사라지면 교회는 슬픔을 겪게 된다.
3) 영적 전쟁의 무기인 성찬양(High praise)의 예배
시편 149:6 “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성스러운 영광찬양은 생소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배에서 부르는 찬양의 대부분은 개인적 고백찬양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찬양’은 하나님을 최대로 높이는 찬양이다.
성찬양을 왜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강도(intensity)를 높이기 때문이다.
성찬양은 찬양의 수준을 높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한다.
둘째,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exist)를 높이기 때문이다.
성찬양은 그의 권위(majesty)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befit)이다.
셋째, 영적으로 승리(victory)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성찬양은 사탄의 세력들을 물리치는 능력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우리의 찬양 방법은 변해야한다. 개인적인 찬양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으로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좌(throne)의 은혜를 베푸시도록 찬양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트럼펫을 불고 기타를 연주하고 피아노와 드럼을 치는 이유는 바로 영적 전쟁을 위한 것이다.
이사야 30:32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소고를 치며 수금을 탈 것이며 그는 전쟁 때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
또한 예배자들은 성찬양을 하면서 이 땅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찬양의 예배를 드리는 동안 어둠과 사망과 좌절과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시고 참된 자유를 주신다.
이사야 25:7-8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 산은 어떤 산인가? 바로 시온 산이다.
시온산은 찬양의 장소로 유명한 산이다.
시온산은 찬양의 산이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산에 오르면 사망을 멸하고 눈물을 씻어주고 수치를 없이하신다는 것이다. 성산인 시온산에 올라 성찬양을 부르라.
이사야 3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영 위에서 싸울 것이며”
시편 76:2 “그 장막이 또한 살렘에 있음이여 그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우리는 시온 산에서 성찬양을 부르고 그 곳을 처소로 삼아야 한다.
오늘의 시온 산은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찬양이 살아있는 곳이며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며 예배하는 곳이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교회에서 성찬양이 끊임없이 불러져야 한다.
이사야는 말하길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66:6)라고 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큰 소리(uproar)가 흘러나와야 한다. 그 소리는 바로 찬양의 예배 소리이다. 그 소리는 사탄에게나 적에게 공격을 가하는 소리이다.
4) 영적 전쟁의 무기인 소리(sound)의 예배
에스겔 1:24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에스겔은 천국의 찬양 소리를 전능자의 음성으로 표현했다.
요한계시록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사도 요한은 천국의 예배를 표현했다.
천국의 예배나 찬양은 성도들이 ‘서로 함께 모여 발하는 뇌성 같은 소리’이다.
이 소리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이 전쟁을 알리시는 소리이다.
예배 중의 찬양의 소리는 주께서 우리의 대적에게 보응하시는(bring retribution) 소리이다.
영적 전쟁의 승리는 예배나 찬양에서 모두가 함께 소리를 높이고 외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5) 영적 전쟁의 도구인 믿음(faith)의 예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믿음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는 믿음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다.
믿음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은
① 우리의 마음을 주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② 영적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③ 축복의 자리까지 앞으로 가는 것이다.
④ 영적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난주일의 예배에서 영적으로 충만했는데 이번주일에는 별로 힘을 얻지 못했다면 다른 점은 오직 하나 ‘믿음’에 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예배를 원한다면 마음의 자세, 중심의 상태가 중요한 것이다.온전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믿음으로 예배할 때 전투 예배가 되는 것이다.
예배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6) 영적 전쟁의 무기인 말씀의 예배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예배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예배자가 반응하는 행위이다.
영적 전쟁으로서의 예배에서 만일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고 계시다면 그것은 예배자의 반응이 무감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는 예배를 시도하게 될 예배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배의 방해자인 적들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예배의 적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예배 속에서 적들과 교전(engaging)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예배 속에서 적들을 공격(attacking)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예배 속에서 적들을 침몰(sinking)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자들은 예배 속에서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도록 우리 자신들을 만들어야 한다.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말씀을 하실 때 그 타이밍(timing)을 놓치지 않고 의지적인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영적 싸움을 시도하게 될 때 위험에 처하게 되는 4가지
① 우리는 실체 없는 유령들과 싸울 수 있다. We fight a phantom battle.
② 우리는 믿음의 형제들을 공격할 수 있다. We might attack brethren.
③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놓칠 수 있다. We can miss God's timing.
④ 우리는 하나님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을 공격할 수 있다. We can attack things God never intended for us to conquer.
7) 영적 전쟁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예레미야 12:5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보행자, 평안한 땅은 고향과 이웃 사람들을, 말과 요단의 창일한 물은 제사장과 관리들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평안한 고향에서 당하는 괴로움에 굴복하고 감당치 못한다면 어떻게 타향에서 당할 괴로움을 견디겠느냐는 뜻이다. 영적 전쟁은 평상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어려울 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매주일 예배에 모이는 습관을 갖는 것은 영적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중요하다.
찬양을 통하여 영적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평화의 시간과 승리의 소리로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잠언 24: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어려움 중일 때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어려움이 있다고 절망하거나 낙담하면 믿음이 약한 것이고 영적 전쟁에 패배한 것이다.
우리들의 상황이 어떨지라도 찬양의 희생을 드려야 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예배 생활에 성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재해나 불행의 후유증(trail)과 재난과 고생과 시련(tribulation)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test)하는 도구들이다.
이런 상황들에 처하게 될 때 더욱 강한 영적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기쁘지 않는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하나님을 경배하고 송축하는 예배 생활을 멀리 하지 말아야 한다.
시편 144:1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전쟁을 이미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영적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영적 전쟁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일 터널 속에서 사는 것과 같은 답답한 신앙생활을 할 뿐이다.
다윗은 말하길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27:5)고 우리가 영적 전쟁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안전한 곳에 숨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성전이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을 준비하는 생활이란 교회를 가까이 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적들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곳이 교회이다.
그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다윗은 이렇게 말씀했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27:6)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적들은 사라진다. 우리가 교회에서 열정적인 예배를 드릴 때 적들은 완전히 전멸하고 전패(annihilate)할 것이다.
우리는 적들 가운데서도 항상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
8) 전쟁의 교전(engaging)을 하라.
회중 예배에서 위력 있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는 예배인도자가 현재 예배를 영적 전쟁으로 느끼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에 있다. 그리고 회중들도 예배하는 모습이 전쟁을 치루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예배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배인도에 봉사하는 사람이든 예배자이든 진실로 마음으로부터 소원을 갖고 예배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예배 준비를 위하여 토요 기도회와 영적 준비 기도회를 갖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탄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봉사자들을 묶어 놓기 위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영적 충만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주일아침 예배 속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 줄 아무도 모른다. 어느 때는 영적으로 충만하여 사탄을 공격하는 예배를 드리며 승리의 찬양을 드리지만 어느 때는 사탄의 공격에 힘을 잃고 낙심하는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게 된다.
예배가 전쟁의 교전 중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며 바른 방향과 무기를 잘 사용해야 한다.
사탄이 공격을 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영적 힘으로 충만한 예배를 준비하고 드려야한다.
언제나 예배는 승리를 위하여 드린다는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방향의 예배를 드려야 영적 교전을 잘 할 수 있는가?
① 영적 전쟁을 준비하는 예배를 드리라.
② 사탄을 공격하는 예배를 드리라.
③ 계속해서 도전하는 예배를 드리라.
④ 서로가 격려하는 적극적인 예배를 드리라.
사사기 3:1-3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열국은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나 전쟁을 준비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정적이며 편하게 쉬는 생활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연습하며 사는 삶을 하나님은 가르치신 것이다. 전쟁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이기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창과 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무기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마다 전쟁 연습을 하는 삶이다.
세상과의 전쟁, 육신과의 전쟁, 정욕과의 전쟁,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예배훈련을 해야 한다.
우리는 예배의 무기를 통한 환희, 황홀, 큰 기쁨인 랩춰(rapture)를 증가시키면 포획물인 캡춰(capture)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배는 영적 전쟁의 최고의 무기이다.
하나님은 교회가 일어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승리하고(victorious) 정복하고(conquering) 극복하는(overcoming) 교회가 되길 기대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도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예배하는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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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