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객기 참사로 세상을 떠난 분들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미사 때는 사고 소식을 몰라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집회 3,2-6.12-14; 콜로 3,12-21; 루카 2,41-52
+ 찬미 예수님
안녕하셨어요? 성탄 대축일 잘 지내셨지요?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성가정 축일은 1921년부터 지내기 시작해서, 올해로 104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하면 가족 모두 세례를 받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의견이 잘 일치하는 그런 가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나자렛 성가정이 모든 면에서 의견이 잘 맞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파스카 축제 때, 성가정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습니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올 때 부모님은 예수님이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하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요? 저는 당시에 영화가 있었다면, “나 홀로 성전에”라는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는 성탄 때마다 TV에 나오는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볼 때, ‘아니, 어떻게 부모님이 자기 애가 없는 것도 모르고 여행을 갈 수가 있지?’하고 생각했는데, 오늘 복음을 보면 그것이 상당히 성서적 전통에 기반해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과 성요셉은 결국 사흘 뒤에야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는데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후에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예수님께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이 ‘네 아버지’라고 하실 때 이는 성 요셉을 가리킨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 아버지’는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성모님과 성요셉은 예수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렇더라도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부모님과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냅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께서 어떻게 성가정을 이루셨는지가 드러납니다. 세 분 모두 이 집의 진정한 가장이 누구신지 아셨고, 진정한 가장이신 하느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세 분 중 어느 누구도 ‘내 뜻을 따르라’며 강요하시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서로의 말을 경청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한마디로, ‘내가 나의 부모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내 자식이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가, 나중에 자식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 준 하느님 말씀에, 또 성요셉은 꿈에 천사가 일러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신 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다’고 자만하지 않으시고, 가족 서로의 말을 경청하십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이제는 꿈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의 입을 빌어 내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신 듯 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아버지의 권한은 막강했는데요, 원치 않는 딸이 태어나면 버릴 수 있었고,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강제로 노동을 시키거나, 감금하고 매질하거나 죽일 권한까지 있었다고 말하는 문헌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로마 제국의 법적 권한이었기 때문에 십계명을 따르던 유다인들이 이렇게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법적 권위가 이러하던 시대에, 예수님을 대하는 성요셉의 태도는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 우리 집의 진정한 가장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지상의 가장의 태도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데요, 당대의 극심한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감안할 때, 오늘날 이 말씀은 남편과 아내 서로가 지켜야 할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오늘날 혼배 예식 때 신랑과 신부는 서로 신의와 사랑과 존경을 서약합니다. ‘존경’을 서약한다는 점이 제게는 늘 가슴 뭉클합니다. 존경한다는 것은 상대를 ‘들어 높이고’ ‘귀하게 여기고’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큰 위로를 받기도 하고, 가장 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가족 간에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고, 더욱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사랑의 말, 존경의 말인지, 무시하고 하대하는 말인지 늘 살펴야겠습니다. 서로 존경하는 것이 성가정의 핵심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은 서로 존경하셨습니다.
2025년은 희년입니다. 희년은 올해 성탄절부터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 이어집니다. 교황님께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년 문을 12월 24일에 여심으로써 희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각 교구는 오늘 주교좌성당에서 2025년 희년 장엄 개막 미사를 봉헌합니다.
희년은 본래 레위기의 말씀에 바탕을 두는데요, 레위기 25장에서 하느님께서는 50년에 한 번씩 거룩한 해이며 기쁨의 해인 희년을 지내라고 하십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은 땅을 공평하게 분배받았습니다. 이 땅을 사고팔게 되더라도, 희년에는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또한 희년에는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고,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간 사람이 있으면 해방시켜 주라고 하십니다.
이 희년법이 지켜진다면, 세상에는 가난한 가족도 없고 빚 때문에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며, 사람들이 더 많은 땅이나 건물 또는 필요 이상의 재산을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거나 남을 해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희년법은 모든 사람과 토지와 재산이 결국 하느님 것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이 희년을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 은혜로운 해가 바로 희년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이번 희년은, 서기 1300년에 보니파시오 8세 교황께서 첫 번째 희년을 선포하신 이래 서른한 번째 맞는 희년입니다. 희년은 50년 주기로 선포되다가 25년 주기로 바뀌었는데요, 서기 2000년이 스물아홉 번째 희년이었고,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 희년이 서른 번째 희년이었습니다.
이 희년에는 교황청 내사원이 발표한 교령에 따라 전대사가 수여됩니다. (전대사 수여에 대한 교령을 링크에 첨부해 드립니다.) 또한 교황님께서는 희년 정신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 생명을 전달하려 노력하기, 희망을 지지하고 북돋우는 사회적 약속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기,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희망의 징표가 되어주기, 환자들을 방문하고 돌보기, 청소년과 청년들이 꿈을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이주민과 난민에게 희망을 주기, 어르신들의 존재가 보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존경하기, 생필품조차 부족한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등입니다.
교황님은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더 호소하십니다.
“저는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무기와 기타 군비 지출 비용으로, 결정적인 기아 퇴치와 가장 가난한 나라들의 발전을 위한 세계 기금을 조성합시다. 이로써 그러한 가난한 나라들에서 사는 주민들이 더 이상 폭력적이거나 기만적인 해결책에 의지하지 않고, 더 품위 있는 삶을 찾아 조국을 저버릴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합시다.
저는 희년의 빛 안에서, 상대적으로 풍족한 나라들에게 한 가지를 더 호소하고자 합니다. 과거에 그들이 했던 수많은 결정들의 무게를 인식하고 빚을 갚을 길이 없는 나라들의 부채 탕감을 결심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관용의 문제이기에 앞서 정의의 문제입니다.’”
이러한 교황님의 호소가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희년은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온 세상에 공표하고 실천하는 해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세계 주요 채권국들에게 가난한 나라들이 진 부채를 탕감해주자고 호소하셨고, 2015년까지 186조 원 상당의 빚이 탕감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서로에게 희망의 징표 즉 희망이 싸인이 되어주자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이 희년에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과 자비에 힘입어 우리도 서로에게 은총의 통로가 되고, 자비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자는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공동체와 공동체가 서로 힘이 되어주고 희망의 징표가 되어줄 때 2025년은 온 세상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참다운 희년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가족들에게도 2025년이 은총의 해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에게 희망의 싸인이 되어 주어야겠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겠습니다.
* 교황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Spes Non Confundit) | 교황 문헌 | 문헌마당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희년 대사 수여 교령
2025년 정기 희년 대사 수여 교령 | 교황청 문헌 | 문헌마당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 성당에서 성문을 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출처: 교황, 역사상 처음으로 교도소에서 성문을 열다 - 바티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