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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
26: 15-30
15.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16.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17.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18.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편을 위하여 널판 스물을 만들고
19. 스무 널판 아래 은받침 마흔을 만들찌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찌며
20. 성막 다른 편 곧 그 북편을 위하여도 널판 스물로 하고
21. 은받침 마흔을 이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22. 성막 뒤 곧 그 서편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을 만들고
23. 성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둘을 만들되
24.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겹 두께로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며
25. 그 여덟 널판에는 은받침이 열 여섯이니 이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 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26.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찌니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27.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뒤 곧 서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며 28.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29.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30.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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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크게 승리하고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자신에게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으며 빛나는 면류관이 예비되는 승리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망적인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 달란트를 주시고 은사와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딤후2:20-21절 말씀에 보면, 어떤 사람은 금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 그릇으로, 또 어떤 사람은 나무 그릇, 혹은 질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만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서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누누히 우리에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일군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이요, 이 시대가 요청하는 소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상고할 때... 성령께서 은혜의 말씀으로 조명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타난대로 성막을 만들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한마디로 성막 설계도입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영적인 귀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환난과 고통을 견디는 사람
첫째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환난과 고통을 잘 견디어 나가는 사람입니다.
출26:15절 말씀에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조각목은 아카시아 나무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카시아 나무를 연상해서는 안됩니다. 이 아카시아 나무는 사막의 뜨거운 태양과 모진 추위를 견디어 낸 나무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연단과 시련에서 쓰러지지 않는 사람, 환난과 고통을 견디는 자를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환난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롬5:4절 말씀에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습니다.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치고 쉽게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약1:12절 말씀에서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은 사람을 보세요.
그들은 온갖 환난과 역경을 당해도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서서 견디어 나아가니까...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시고 크게 사용하시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욥이라는 사람은 환난과 고통을 만났을 때 얼마나 잘 견디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이 모든 어려움과 환난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은 축복으로 가는 통로요, 신앙을 더욱 성장하게 하는 훈련의 학교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역경을 마치면서 고백한 내용은 욥23:10절의 말씀입니다.
즉,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가 당하는 시련은 마치 불로 단련하는 정금과 같다는 것입니다. 금은 불에 놓으면 놓을수록 더욱 더 정금이 되어 가는 법입니다. 불순물들은 다 사라지고 순도 100%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환난과 고통이 아무리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나를 정금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믿음으로 환난과 고통의 과정을 잘 견디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귀한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2. 말씀과 성령으로 다듬어진 사람
둘째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말씀과 성령으로 다듬어진 사람입니다.
출26:16절 말씀에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 때, 아카시아 나무로 하되 그 조각목을 잘 다듬어 고가 얼마요, 폭은 얼마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잘 다듬어진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아카시아 나무처럼 다듬기 어려운 나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무도 하나님은 잘 다듬으실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저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할 줄을 모릅니다 제가 어떻게 바로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고백했습니다(출4:10).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잘 다듬으셔서 애굽의 바로왕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사사기 6장에 보면, 기드온을 가르켜 '큰 용사'라고 했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본래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와서 언제 곡식을 빼앗아 갈지 모르기 때문에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용기가 없는 사람이요, 평범한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면서 염려스럽게 말을 했습니다(삿6:15). 사실 그의 고백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잘 다듬어 사용하시니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잘 다듬어야 합니다.
성격이 모나고, 괴팍하고, 아무런 지혜나 능력이 없는 사람도... 주님께 겸손히 나아가면 주님은 울퉁불퉁하고 모가 난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잘 다듬어 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다듬는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쳐서 주께 복종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읽거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은 마치 예리하고 날선 검과 같이 찌르고 잘라 수술하는 칼이 되는 것입니다.
우둔한 마음, 상한 심령을 다 해부하고... 길가와 같고, 돌짝과 같고, 가시 밭과 같은 마음일지라도.... 부드러운 옥토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시고, 회개하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부터 잘 다듬어지고 반듯한 나무를 쓰신 것이 아니라, 생긴 그대로를 받아주시고 다듬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말씀과 성령으로 잘 다듬어져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
셋째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출26:29절 말씀에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고 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조각목을 잘 다듬은 다음에... 금으로 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금은 '믿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종종 우리의 믿음을 금으로 비유했습니다(벧전1:7). 믿음의 금으로 잘 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도는 생각이나 행동이나 모든 것을 믿음으로 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계획, 믿음이 없는 행동, 믿음의 없는 조직은 하나의 서클에 불과합니다.
헌금을 해도 믿음으로 하고, 봉사나 헌신을 해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헌신은 힘이 듭니다. 그것은 이미 헌신이 아닙니다. 원망과 불평이 생기고, 결국 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 것은 기쁨이 있습니다. 웬지 모르게 감사가 넘치고 은혜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한 것은 환난도 고통도 능히 이겨나갑니다. 결국 복이 임하고,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계획하고,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으로 마쳐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믿음의 장'이라 불리우는 히브리서 11장을 보세요... 히11장을 읽어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승리로운 신앙의 삶을 살았는가?" 하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승리로운 신앙의 삶... 그 비결은 바로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 나가며,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1:6절에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14:23절에서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사랑으로 하나가 된 사람
넷째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 사람입니다.
출26:17절 말씀은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연하게 하라는 것은 서로 서로 연결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된 사람을 쓰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의 지체라고 했습니다(엡1:22, 고전12:27). 그러므로 지체된 우리는 서로 서로 연하여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온전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깎아서 타인에게 맞추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 고부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지혜로서 시집가는 딸에게 가르치는 내훈(內訓)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시집가서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릴 때는 반드시 '어머님'이란 말을 말머리나 말끝에 꼭 붙이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장에 다녀오겠습니다' 할 때, '어머님, 장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할 때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어머님!' 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로 불화를 없앨 수 있다는 선조들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출가한 색시는 시댁에 가서 모든 것을 맞춥니다. 생활을 맞추고, 풍습을 맞추고, 음식을 맞추고, 예절을 맞춥니다. 모든 것을 다 맞추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시댁에서 좋아하는 음식이나 모든 관습까지도 다 헤아려서 맞추었습니다.
자신을 깎아 타인에게 맞추어야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주님 앞에서 크게 쓰임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깎아 타인에게 맞추는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맞추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맞추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가 되어 기적을 이룬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왕하7:3절 이하에 보면, 사마리아 성에 아람나라가 쳐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피난을 갑니다. 먹을 식량을 싸고 귀중품을 싸고.... 가족들은 서로를 부축이며 안전한 곳으로 피하여 전쟁에 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무도 돌보지 아니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4명의 문둥이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보통 때에도 소외된 사람들이니 전쟁이 난 상황에서 이 사람들을 생각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4명의 문둥이는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그래도 음식을 넣어 주는 것을 받아먹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음식도 끊어 졌습니다.
아람나라의 군사들이 성을 완전히 포위하는 바람에 성 안에 있는 사람도... 점점 음식이 떨어지고 꼼짝없이 갇혀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때 이 4명의 문둥이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왕에 굶어서 죽을 바에야 저 아람군에게 가서 먹을 것 좀 달라고 하자! 그래서 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니 좌우지간 가 보자!"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4명의 문둥이는 뜻을 하나로 뭉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발에 발을 맞추어 아람군 진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하7:6절에 보면,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사들에게 이 4명의 문둥이가 오는 소리를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소리로 듣게 하셔서 모두다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아람군 진영에 가보니 곡식들이며 병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도망가기가 바빠서 모든 식량이며 군수물자들을 그대로 놔두고 간 것입니다.
결국 마음과 뜻을 하나로 뭉친 4명의 문둥이들 때문에 나라를 구원한 사건이 열왕기하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뜻을 이루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전4:9절에도 보면,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삼겹줄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었을 때의 삼겹줄을 말합니다.
교회는 목사와 성도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회사는 경영진과 노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경험이 있는가, 얼마나 일을 잘 하는가를 보시는게 아니라 일치된 마음, 하나가 된 마음을 원하십니다.
분열하고 하나가 되지 못할 때는 마귀가 장난하고, 마음을 모으고 하나가 될 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법입니다.
우리 믿음의 권속들은 언제나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하나님의 법칙대로 행하는 사람
다섯째로,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칙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출26:30절 말씀에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했습니다. 즉, 산에서 보여준 그 모양 그대로, 그 방법대로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막의 설계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보여준 그대로 성막을 세우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는 사람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1:7절에서도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대로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도 다 법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회칙이 있고, 학교에는 교칙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작은 클럽이나 동창회 모임이라도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내용은 바로 우리를 위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청년들에게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데 그것을 없게는 하실 수가 없나요?" 하는 질문입니다. 저도 역시 하나님께 여쭤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세계에도 엄연한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한가운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 놓으신 뜻이 무엇입니까?... 즉, 선악과를 우리에게 주신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고 하는 '임마누엘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생활 한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말씀의 계시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계약'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계약입니다. "따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는 계약입니다. 반대로 "먹지 않으면 영원히 살리라!" 하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인격과 인격 사이의 인격적인 약속입니다. 인격적 관계이기에 여기에 선택이 있고 여기에 존재 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계약을 어기고 따먹은 자들이 꼭 변명을 합니다.
"왜 이것을 만들어 놓았으며 먹지 않게 할 수는 없었느냐?"는 겁니다.
심지어는 "처음부터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합니다.
"강아지 목에 쇠사슬을 맨 것처럼 해서라도.... 못 따먹게 하든지, 아니면 철망을 쳐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불평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자기 존재를 강아지로 하락시키는 것밖에 안됩니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이 인간된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범죄한 자나 타락한 자들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벌써 비인간화가 되고, 존재가 부정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불가피 했다!"고 한다면... 과연 거기에 나의 존재는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가운데서... 이 말씀의 계약을 지켜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인간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 청년은 목사님을 만난 김에 그동안 불만스런 문제들을 풀어놓기로 다짐하면서 입을 엽니다. "목사님 저는 십계명을 싫어합니다. 십계명에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 하면서 십계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생각하는데 바로 앞에서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동쪽은 어디고, 서쪽은 어디라고 써 있습니다.
목사님은 가야할 목적지와는 정반대로 차를 꺾었습니다. 깜짝 놀란 청년은 "목사님! 그쪽이 아니고 이쪽인데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목사님은 "그야, 내 마음대로 가면 되지 뭘 그래..." 하면서 암시적인 대답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빨간 신호등 파란 신호등이 귀찮게 느껴집니까? 그것은 누구를 위한 신호입니까? 법이 누구를 위해서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 때문에 있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에는 "왜?" 라는 질문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뜻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뿐입니다.
그저 믿고 가노라면.... 먼 훗날, 이것이 옳았음을 알고 감사하며 고백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의 말씀은 모두가 사랑이며, 그의 법은 전부가 내게로 향한 축복의 길인 줄 알고....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다윗은 시119:99절 이하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나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스승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지혜롭고,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보니 노인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을 따라 사는 영광 중에 거하다 보니.... 지혜롭게도 되고 명철하게 되고, 자유롭게 되고.... 그리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환난과 고통을 견디는 사람이요,
2. 말씀과 성령으로 다듬어진 사람입니다.
3.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
4. 사랑으로 하나가 된 사람,
5. 하나님의 법칙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삶 속에 모두 다 적용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