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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10
드리며 기도하자 / 고신일 목사
●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장 1~4절)
<목회기도>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를 살게 하신 하나님
살았음에 감사하며 예배드립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답답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심에, 우리가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여기 이런 저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앉았습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치료하시며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붙드시는 손을 체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가슴 뜨거움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복된 자리, 이 귀한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군대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객지에, 외국에 나가 사는 이들 병상의 환자들…, 하나님 저들 긍휼히 여겨 주시옵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우리와 함게 계시고 말씀을 깨닫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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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반가운 만남이기에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반가워하는지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만났을 때 반갑다고 좋아하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만나면 반가운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과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십니다.
"기둥교회에서 만나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비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 위해 모인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는 설교가 있다고 합니다.
[죽음과 심판]에 대한 설교와 [헌금]에 대한 설교랍니다.
그러나 목사가 꼭 해야 하는 설교가 3가지 있는데
① 인간은 모두 죽는다.
② 인간은 모두 심판 받는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③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함을 드러내야 한다.
그 드러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헌금'이라는 설교입니다.
목사가 교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만 전할 수는 없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멘"으로 받아 생명의 양식으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많이 가져도 없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기도 중에도 '있는 것을 감사'하기보다는 '없는 것을 더 갖게 해 달라'는 내용이 많습니다.
잠언에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30:8~9) 했습니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물질을 소유하게 하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얼만큼 갖고 싶으세요? 부자 되고 싶으십니까?
돈이 많으면, 땅 많으면… 빌딩이 있으면… 부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가진 것을 잘~ 쓰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오래 전, 미국 라스베가스에 하워드 휴(Howard Hough)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호텔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부자였으나 모든 것을 의심하는 병이 들어서 아무 음식이나 먹지 않고 아무나 만나지 않다가 탈진되어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에 가는 중에 사망했습니다.
부검결과 사망원인이 영양실조였다고 합니다.
재물을 많이 가졌다고 더 오래 살거나 더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탐심을 버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6~8절 말씀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6~8)
9절에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9)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13:5)고 했습니다.
탐심을 버리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보물 있는 그곳에 마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꼭 필요한 물질, 돈을…
우리가 쓰며 살아야 하는 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살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신학(神學)에 잘못 몰입하면 이 세상을 이분(二分)하려는 생각을 합니다.
<영적인 것/신앙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세속적인 것>으로 세상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이 이를 증거 합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물질과 마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히브리적 사상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물질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질은 없이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관심이 있으면 반드시 물질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지켜라, 십일조를 드려라, 첫 것을 드려라, 감사를 드려라, 성전을 지어라…> 하는 말씀들은 모두 물질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우리가 드리는 희생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하나님께 중심을 보여 드리며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임원을 선출하기 위해서 예배 참석/주일성수/ 봉사활동 헌금(십일조) 등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모든 임원들의 신앙생활을 재 점검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시간, 재능, 물질…을 하늘에 쌓는데 최선을 다했는가?' 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간의 보물, 재능의 보물, 물질의 보물을 하나님께…, 교회에… 얼만큼 두고 사십니까?
어떤 일에도 어떤 곳에도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은 쉽게 손을 떼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함부로 마음을 떼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돈이 제일 많이 가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신문을 볼 때 어떤 기사를 관심있게 보십니까?
증권에 투자를 한 사람은 주식 변동에 관한 뉴스를 관심있게 봅니다.
아파트를 많이 사 둔 사람은 아파트 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많이 투자했기에 관심이 있을 뿐 아니라 죽기 살기로 붙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헌금은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보여 드리기 위해 헌금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 헌금을 어디에 드려야 합니까?
마태복음 16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의 교회는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시대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모든 교회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단체입니다.
주님께서 "내 교회"라고 부르셨을 때는 주님께서 소유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교회 전체가 주님께 속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 있는 각각의 교회 역시 주님께 속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소속해 있는 교회에 헌금을 드리면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간혹, "목사님, 헌금은 꼭 교회에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말고 다른 사역에 기부금을 내는 일도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회단체나 선교기관에 많이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교회만이 유일하게 주님이 세우신 단체요,
위하여 주님께서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교회 밖에서 예수 이름으로 모여 사역하는 여러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교회 후원사역(Parachurch movement,
Parachurch ministry)'이라고 합니다.
이 용어의 접두사인 'para'는 <(副), 옆에 서서 시중 들다, 돕다… >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후원사역은 교회를 실제적으로 돕는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교회밖의 선교단체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 봉사하고 다시 각자 소속한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 잘 하게 해야 하는데 교회에서 사람들을 자기들의 선교단체로 끌어 냅니다.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고 헌금도 교회에 내지 못하게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잘못된 단체입니다.
만약 헌금이 개 교회가 아니라 다른 사역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것은 실제적으로 교회를 해체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곳에 기부금을 내는 것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헌금은 교회에 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선교기관이나 사회봉사기관에 돈을 내는 것은 말 그대로 선행이요, 기부금일 뿐입니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헌금일 수 없는 것입니다.
목회자이고 달라스신학대학원 교수이며 많은 책을 저술한 진 겟츠(Gene A. Getz)는 [물질 소유에 대한 성경 신학(A Biblical Theology of Material Possessions)]이란 저서에서 헌금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에… 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든지 간에 지역 교회가 제일 먼저 초점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다.
이같이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을 회피하는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만일 그리스도인이 지역 교회라는 개념을 회피한다면 이는 다른 많은 성경의 중대한 원리들을 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
- 도날드 S. 휘트니(Donald S. Whitney) 지음,
Spiritual Discipline within the Church에서 인용
비록 교회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회의 모든 사역을 돕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헌금은 소속한 교회에 해야 합니다.
사회 단체나 교회밖 선교단체에도 기부금을 내시고 선행을 베푸십시오.
그러나 헌금은 교회에 해야 합니다.
리처드 B. 커닝햄(Richard B. Cunningham)은 "헌금은 예배의 두드러진 한 형태이다.
이는 매주 예배 시에 감사와 자기 헌신의 중심점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헌금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 사도의 사역을 위해 헌금을 했을 때 저들의 헌금을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8) 고 표현했습니다.
사실상 바울은 저들에게 "너희들이 교회를 통해 내게 준 것은 구약 시대에 번제단 위에 제사에 쓸 양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같은 것이니라" 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할 때처럼 헌금을 드릴 때에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바울을 통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7)
헌금은 반드시 마음에서 우러나는 드림이 되어야 합니다.
간혹 공포적인 분위기를 조장하고, "안하면 망한다"고 하면서 강권하더라도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없이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헌금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돌려 받으려는 생각을 갖고 드리는 것은 헌금이라 볼 수 없습니다.
헌금은 "이것을 드려서 무엇을 얻을까"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이것을 드리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헌금하는 사람의 태도와 희생 수준이 중요합니다.
본문(눅21:1~4)의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은 전부의 희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칭찬하신 것입니다.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헌금에는 마음 뿐 아니라 시간, 노력, 땀, 눈물… 이 담겨 있기 때문에 드리는 사람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고후 9:5)
구약 시대의 제사를 위해 제물을 준비한 사람은 허물없는 좋은 것을 취하여 그 제물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 후에 드렸습니다(민8:12).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도 같은 것이라도 준비된 물질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늘 주머니에 헌금할 것을 준비하고 다닙니다.
저는 새 돈이 생기면 헌금 하려고 따로 보관합니다.
그런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모임에 갔는데 헌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때 저는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헌금 바구니가 지나갈 때 헌금을 내지 않으면 민망하니까
주먹을 꼭 쥐고 마치 헌금을 내는 것처럼 바구니에 손을 넣었다 뺍니다.
여러분, 없으면 다음에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여 죄를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준비된 예물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같은 돈이라도 깨끗한 것으로 정성껏 준비하여 먼저 기도하고 드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물질보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고후8:5, 삼상15:22~16:7).
헌금은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후하게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1~3절 말씀처럼 힘대로, 또는 힘에 지나도록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고후8:1~3)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9:7).
또한 후하게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후9:13)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쓰는 돈 중에 누구에게 가장 후하게, 인심 좋게 쓰십니까?
어떤 사람은 팁을 주는 데는 후한데, 하나님께 드리는데는 주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내는 일은 후하고,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지난 여름 피서를 위해서 쓴 돈과, 이런 저런 사람들 접대를 위해 사용한 돈과…하나님께 드린 물질과 차이가 어떤가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후하게 드렸는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건축헌금도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11년 동안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매년 매 학기 때마다 질문하는 학생들의 질문 내용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 중에 거의 매 학기마다 질문받은 것 중의 하나가 "교수님, 십일조는 구약 율법시대의 유물인데 지금도 계속 해야 하나요?"입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학생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안하는 사람이든지, 십일조가 하기 싫은 사람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말아라. 왜 헌금을 하면서 죄를 짓느냐" 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구약성경의 [십계명],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도 시대에 떨어지는 말씀이니까 다 폐하고 살인을 해도 좋고, 도적질해도 좋다고 해야 하느냐?"
예수님은 분명히 "내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완전케 하러 왔다"(마5: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천번제란?
헌금에 대해 시비 거는 사람, 대부분 안 하거나 하기 싫은 사람입니다.
어떤 신문에 보니 어느 교회 장로님이 "일천번제를 현대 교회에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쓴 글을 보았습니다.
요즘 일부 목회자와 평신도 중에 일천번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인터넷을 접속하여 듣는 분들…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고 싶으면 설교문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기둥교회 주보(2004.2.22)에도 실었고, 일천번제 봉투에도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아래 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큰 소리로 읽으세요.
■ 번제(Burnt offering)란?
이스라엘에는 5가지
【 번제(燔祭), 소제(素祭), 화목제(和睦祭), 속죄제(贖罪祭), 속건제(贖愆祭)】
제사가 있었다.
그 중에 번제는 버려질 더러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제물로 드릴 희생물을 모두 태워서 드렸다.
번제물로는 수소, 수양, 수염소가 주로 드려졌으나 가난한 자들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드릴 수도 있었다. (레1:14, 5:7, 12:8, 14:22)
희생동물은 흠 없는 수컷이어야 했으나(레22:20, 말1:8), 새들은 암수를 구별하지 않았다.
■ 일천번제(一千燔祭, a thousand burnt offering)란?
하나님의 전(temple)이 건축되기 전에는 보통 산당(high place)에서 제사를 드렸다(왕상3:2).
그런데 솔로몬은 산당이 큰 기브온(Gibeon)에 가서 일천번제(一千燔祭, a thousand burnt offering)를 드렸다(왕상3:4).
이것은 번제를 1,000번 드렸다는 회수를 말하거나 1,000일 동안 드렸다는 일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솔로몬이 1,000마리의 제물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드렸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많은 제물을 계속해서 드리는 데는 적어도 7~8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솔로몬은 이렇듯 정성 담긴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으며 그로 인해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왕상3:13)까지 받았고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받았다(왕상4:29~34).
<헤쎄드 종합자료 열왕기상하 참조>
■ 우리가 드리는 일천번제(一千番祭)는?
솔로몬이 드렸던 태울 번(燔)자의 일천번제가 아니고 차례 번(番)자의 일천번제(숫자로 1,000번을 채우는 것)를 말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예물이 한번이냐 100번이냐 하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비록 적은 과부의 두 렙돈(눅21:2) 같은 것이라도 그것이 정말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것 같은 정성으로 1,000번을 정해 놓고 예물을 드리며 기도한다면 소나 양을 잡아 태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중심을 보시는(삼상16:7)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기둥교회 모든 성도가 한 맘 되어 '드리며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일천번제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글 : 고신일목사 -
요즘 교회에서 권하는 일천번제는 1000마리의 제물을 태워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태울 번(燔)"자가 아니라
"차례 번(番)"자로 1000번을 정해 놓고 기도하며 예물을 드리자는 것입니다.
기둥교회 성도 여러분, 기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물 드릴 때 봉투에 기도 제목을 써놓고 먼저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일천번제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기도제목을 정하고 1000번의 예물을 드리며 정성을 다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회복됩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많이 넣어 시작하려 하지 말고 1000원씩 넣더라도 끝까지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고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진짜 부자는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울은 영원한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3:20)
기독교 역사를 보면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지킨 이들이 많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선교사의 길을 간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회적인 인정과 돈벌이를 포기하고 선교현장으로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학, 대학원을 나와서 산골, 이름 없는 섬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서너명과 평생을 지내며 목회하며 헌신하는 수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쌓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 말씀에 보면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20)
천국에 어떤 것을 쌓아두셨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기둥교회에 있습니까?
언젠가 제가 했던 헌금에 대한 설교를 들은 청년이 "목사님! 이 세상에서 제일 인기 없는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아세요?…
목사님처럼 헌금 설교하는 목사님이래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인기가 없더라도 가르칠 것, 전할 것은 마땅히 해야지"라고 말하고 잠시 후에 만난 분은 "목사님! 그동안 몰라서 못했었습니다.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하며 인사를 하더군요. 같은 설교를 듣고도 반응이 달랐습니다.
소는 물을 먹고 사람에게 유익한 젖을 냅니다.
그러나 뱀은 같은 물을 먹고도 사람에게 해로운 독을 냅니다.
오늘 이 설교를 통해 여러분의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드림의 생활을 하여 축복 속에 산다는 간증을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물질의 궁함이 없도록, 일용할 양식을 구하시고… 넉넉한 은총을 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바르게 구별하여 잘 쓰고… 보물을 하늘에 쌓으며 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베풀고, 자신도 윤택하게 사는 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중심을 보시기 원하시는 그 일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드림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부족한 종이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주님 말씀을 들은 심령들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시고 믿고 순종하여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