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매일묵상| 23.5.5(금)
조금만 더
잠언 6:9~11
“게으른 사람아, 언제까지 누워 있으려느냐?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느냐?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하면, 네게 가난이 강도처럼 들이닥치고, 빈곤이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달려들 것이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입니다. “내일부터 하지 뭐.”, “오늘까지만 쉬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룰 때 삶의 겨울은 성큼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한 시간만 더 자지, 조금 더 쉬지 하며 게으름에 익숙해져 갑니다. 게으름도 병이 됩니다. 잠언 26장 14절에서 솔로몬은 말합니다. “문짝이 돌쩌귀에 붙어서 돌아가듯이, 게으른 사람은 침대에만 붙어서 뒹군다.” 이어서 15절에서도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밥그릇에 손을 대고서도, 입에 떠 넣기조차 귀찮아한다.”
‘조금만 더’는 단지 좀 더 자자는 말이 아닙니다. 『게으른 자의 내면을 그리는 말입니다. 그는 ‘조금만 더’를 삼중적으로 반복하면서, 잠과 졸음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는 사실적이기보다는 풍자적입니다.그는 잠이 더 필요하여 잠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잠 자체를 즐기고 있습니다.』(김정우, 대한기독교서회백주년 주석 잠언, p234~235)
이쯤 되면 병입니다. 머지않아 슬피 우는 후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후회할 때는 늦었습니다. 지금 부지런하면 내일도 부지런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게으르면 내일도 게을러집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봄에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어찌 여름에 가꿀 것이 있겠습니까? 여름에 가꾸지 않았는데 어찌 가을 추수를 하겠습니까? “조금만 더 자야지”, “조금만 더 눈을 붙여야지”, “조금만 더 팔을 베고 누워 있어야지” 할 때, 가난이 강도처럼, 방패로 무장한 용사처럼 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새 겨울이 왔다는 말입니다.
『잠과 가난의 관계가 제시됩니다. 여기서 강도는 ‘각설이 타령’이나 부르는 ‘유쾌한 거지’가 아닙니다.』(같은 책, p235) 거의 무장 군사 수준입니다. 신속하고 교묘하게 작전을 짜 조직적인 집단으로 쳐들어옵니다. 이쯤 되면 가난은 거의 나랏님도 어쩌지 못하는 구조적인 수준입니다.
누구에게나 새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그 전 날 밤을 잘 보낸 사람입니다. 밤의 문화를 습관적으로 만드는 사람에게 새벽은 없습니다. 밤 늦도록 술을 마시는 사람과 아침의 약속은 없습니다. 하루의 첫 시작, 아침을 약속할 수 없는 사람과 무엇을 하겠습니까? 가난은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에 마비된 것입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