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개념, 성격과 특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9세기 말기에 유럽 소시민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20세기에 들어와 크게 유행하였다. 근대주의 또는 현대주의라고도 한다. 기존의 리얼리즘과 합리적인 기성 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여기서 <모던>이라는 말은 단순한 시대적 구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리처드 엘먼과 찰스 파이들슨이 지적하듯이 그것은 <독특한 종류의 상상력, 즉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상상적 전체를 이루는 주제와 형식, 창작의 조건과 유형>을 가리키는 말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사회 질서, 종교, 도덕의 전통을 밑받침하고 있던 확실성에 대해 회의를 품은 니체의 허무주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혁명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 선구적 사상들이 이미 그 토대를 마련해 놓았으며, 세계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황폐화시킨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크게 성행하였다.
모더니즘은 다양한 양상으로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었다. 표현주의, 미래파, 이미지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주지주의, 신즉물주의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낭만주의나 사실주의와 대등한 중요한 문예사조이면서도 그 개념의 정립이 막연할 수밖에 없다. 모더니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것은 신모더니즘 혹은 후기모더니즘이라 불린다. 나치의 전체주의와 대량학살, 원자폭탄의 위험, 자연환경의 황폐, 인구 폭증 등의 전후 상황 속에서, 후기모더니즘은 전기모더니즘으로부터 이탈하여 그 극복을 지향하는 양상과, 존재의 ‘무의미성’과 허무의 세계로 더욱 심화되는 두 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 모더니즘의 성격
본래 모더니즘은 적게 않게 포괄적인 성격을 지닌다. 서구의 교회사에 따르면 모더니즘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삼는다. 그런가 하면 문예사회학적인 입장을 취한 여러 논의에서 이 개념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부산물인 산업사회의 형성과 때를 같이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런 모더니즘의 성격은 그 개념이 현대가 아니라 근대주의의 외연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유의성을 가지는 모더니즘은 근대주의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강하게 반발한 경우다.
근대주의에 발판을 둔 시와 소설은 말할 것도 없이 부르주아지의 세계 인식태도 내지 미학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대를 지배한 부르주아지 문화는 시발 후 얼마 동안 매우 신선하면서 활기에 찬 행동철학을 자아냈다. 그러나 그 테두리가 굳어지면서 그것은 일종의 고정관념 같은 것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헤겔 철학의 뼈대를 이룬 합리의 체계, 이성 우월주의가 그랬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과 예지로 끊임없이 진보하는 인간 활동의 궤적이다. 그리고 끝내 인류는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서구 사회는 거듭되는 전란, 혁명, 파괴, 폭력에 휩쓸려 들었다. 그에 부수되어 일어나는 체제 전복, 가치 체계의 붕괴는 일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들은 기성예술, 곧 부르주아 예술이 낡은 허울에 안주하는 나머지 인간과 그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전위적 예술가들은 기성 예술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흔히 새로운 문학, 예술은 선행한 사상체계나 세계관의 부수현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일찍이 서구에서 형성된 고전주의나 낭만주의가 그랬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모더니즘은 그것과 성격을 근본적으로 달리한다. 적어도 이 유파에 속하는 문학에는 스스로 파악한 세계개혁의 요구가 있었다. 말을 바꾸면 20세기 접어들어서 형성된 모더니즘에는 독자적인 행동철학이 선행되었던 것이다.
모더니즘은 두 갈래로 전개된다. 하나는 대륙 쪽에서 전개된 모더니즘이고, 다른 하나는 영미 주지주의계 모더니즘이다. 전자는 입체파, 표현파 및 다다, 초현실주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헤겔식 근대주의 미학에 대한 혐오는 매우 컸다. 그 나머지 문학에서의 문체, 형태, 양식, 제도의 근거가 되는 말 자체를 부정, 파괴하려 들었다. 그리하여 이들에게는 과격파 모더니스트라는 명칭이 붙는다. 후자는 헤겔식 세계인식 태도에 대해서는 다른 모더니즘의 유파와 보조를 같이하여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 이들은 시와 문학의 새 지평을 타개하기 위해 진지한 모색을 시도했다. 또한 그 방법으로 새로운 형태, 문체, 기법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하여 대륙쪽의 경우처럼 시와 문학 자체의 부정, 모독에는 이르지 않았다. 그 방법이 대륙쪽 모더니즘처럼 격렬하지 않았다. 영미계 모더니즘의 최초 형태로 나타난 것이 이미지즘이다.
다. 모더니즘의 특성
첫째, 모더니즘은 무엇보다도 기성 전통이나 인습과의 단절을 뜻한다. 19세기의 부르조아 사회가 굳게 믿던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가치관을 모두 배격한다. 모더니즘이 무엇보다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기존 전통과 인습은 19세기의 리얼리즘 문학 전통이다.
모더니즘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모습에 대하여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한다. 리얼리즘은 삶의 실재를 객관적이고 확고 불변한 것으로 파악하려 하는 한편, 모더니즘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며, 따라서 그 정체를 결정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것으로 파악하려 한다. 요컨데 예술은 실재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창조해 낸다는 것이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이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리얼리즘 문학이 내세우고 있는 예술적 태도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리얼리즘 문학의 취하고 잇는 도덕적 윤리적 태도까지도 거부한다.
둘째, 모더니즘은 주관성과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는 개인주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것은 객체보다는 주체를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을, 그리고 집단 의식보다는 개인 의식을 휠씬 더 높이 여긴다. 예술은 우주나 자연 또는 삶의 실재를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라는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은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 같은 작품에서 리얼리즘 소설 전통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었다. 이렇게 개인의 주관성과 내적 경험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의 작품은 복잡성을 수반하게 된다. 이러한 복잡성과 그것으로부터 비롯하는 난해성은 모더니즘 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모더니즘의 세 번째 특징은 문학의 독자성과 자기 목적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19세기 리얼리즘 문학에서 일종의 도구나 수단으로밖에 쓸모가 없었다.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것은 비공리적인 문학이다. 문학은 바로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도덕적, 윤리적이건 또는 심리적이건 모든 공리적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난, 문학만을 위한 문학이다.
넷째, 모더니즘 작가들은 비록 철학가들은 아니지만, 현대인이 놓여있는 인간 조건을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즐겨 다룬다. 그들이 즐겨 다루는 실존적 인생관은 다음 다섯 가지, 즉 20세기 현대인이 처해 있는 비극적 상황, 개인과 사회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긴장, 자유의지와 선택의 문제, 소외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등으로 요약된다.
다섯째, 모더니즘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형식주의이다. 모더니즘은 삶을 담아두는 그릇에 대하여 전통적인 문학과 태도를 달리한다. 전통적인 그릇으로는 20세기 삶의 다양한 경험을 도저히 담아둘 수 없다는 것이 모더니스트들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모더니즘이 지향하고 있는 문학 형식이란 무얼까? 한마디로 그것은 <무형식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이 전통적인 작품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플롯이나 구성 또는 성격 형성보다도 관점이나 시점에서다. 모더니즘은 전통적 작품에서 즐겨 썼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 복수적 관점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의식의 복합성과 시간의 유동성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모더니즘의 기법적 특징은 신화의 사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모더니즘 문학은 19세기의 리얼리즘 문학과 비교하여 구성이 한결 산만하고 느슨한 것이 특징이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산만한 구성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화나 신화적 원형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