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4]
박연세(朴連世, 1883-1944)①
박연세는 1883년 전북 김제에서 박자형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서당을 다니며 한문을 배웠고,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전킨(William M. Junkin)이 세운 군산 영명학교를 다녔습니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여서 기독교적인 교육을 받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아버지의 전도로 본격적으로 교회도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1세(1904년) 때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제로 돌아와 신명학당(1908년 개교, 현 치문초교 전신)에서 한문과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는 일본인들이 호남평야를 차지했기에 조선인들은 군산 지역 산비탈에 움막(토막집)을 짓고 살아야 했습니다. 울분을 참으며 신앙생활을 성실히 해서 1916년 집사가 되었고, 1918년에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1919년이 되자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 김병수(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재학)가 군산으로 내려와 서울에서 시작될 만세운동에 대해 전해주었습니다. 2월 28일에는 김병수가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李甲成)의 요청을 받아 독립선언서 200매를 군산으로 가져와서 스승 박연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때 박연세는 영명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5일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했으나 사전에 동향을 감시하고 있던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당시 체포되어 끌려가는 박연세를 영명학교 교사들과 학생들, 멜본딘여학교(군산영광여고 전신) 교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구암병원 직원들이 울면서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소식이 군산 시내에 퍼지게 되면서 3월 5일 계획된 군산 만세운동은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