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2월24일~29일)의 전설3[일루전ILLUSION]제1부 (106~111회)를 묶어 보입니다.
-------------------------------------------------------------------------------------------------------------------------------------
왜옥동네의 전설•3
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제106~111회)
사실 나도 이미 이별이 불가피한 것은 느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곽 선생이 말한대로 나는 공연히 그렇게 보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에 상황이 뜻밖의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랬다. 정용철이 전문으로 매리를 월북시킬 수 있겠는가 물어왔길래 양수가 무슨 영문인가 물어봤다. 그러니까 해주에서 이른바 여첩보 요원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것은 가급적이면 서울 여성으로서 사상이 확실한 이를 보내주면 평양으로 보내어 첩보 활동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해서 남파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중앙 당에서 여성 당원들 중에 마땅한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겠다고 하면 사람이야 있었지만 해당될 만한 이를 접촉해보면 누구나 가족을 떠나 홀로 월북하는 것은 극구 싫어했다. 결국 대안으로 전국적으로 여성 당원 중에 미혼이면서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를 찾는 중이었다. 경북 도당에서 그 사실을 듣자 용철은 대뜸 매리가 머리에 떠올라 양수에게 의견을 타진했던 것이다. 양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바로 명령형식의 전문을 보내온 것이었다.
정용철이 직접 전문으로 양수에게 ‘전매리’를 지명해서 해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수신 제까브리스트 상동 자주 성취 3인 현장 탈출 다급함 월선 가이드 급파 요망 응답 즉시 바람 송신 상동 나타샤 이상”
“가까운 곳에 은신 중입니더. 여기로 모시까예?”
“여게 오마 알 게 할긴데. 그냥 오라고 해요.”
그가 나가고 거의 반시간 남짓 되었어도 위원장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모르스 무전기에 응답 신호가 왔다.
“수신 상동 나타샤 천사01568 시4701122200전후15 점220623-714403상여. 송신 제까브리스트 이상”
작은 가방에서 일제가 군용으로 쓰던 5만분의 1 지도 중 이 지역 일대가 나타나 있는 페이지의 면을 펴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확대경 같이 생긴 경위도를 정밀 확인하는 방위경을 올려놓고서 응답 무전 내용을 해독하고 있는데 젊은 주인남자가 노조위원장을 데리고 왔다.
정식 명칭은 노조위원장이지만 호칭할 때는 평소에 부르던 대로 편하게 그냥 조합장이라고도 불렀다.
“늘 그래요. 좀 어지러울 때가 종종 있었소.”
“대회를 끝내고 안정하게 되니까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
“편히 앉읍시다. 답신이 왔소. 새달 12일에나 월선 가이드가 나타나기로 했소. 금태봉의 상여집에서 그날 밤 열 시께 접선하겠다고 했소.”
월선 가이드란 삼팔선을 넘는 길을 안내할 자를 뜻했다.
“앙이 그러마 여게서 보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구마. 그라고, 금태봉이라 캤지예? 그게는 꼴두바우에서도 삼십리는 족히 될 낀데. 그때꺼정 눈이 녹기는커녕 더 와서 쌓이마 가기도 힘들지러.”
“차라리 잘 된 거 아닌가 싶소. 지금 이 여자도 몸이 성치 못하고요, 무엇보다도 조합장이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지 못한 듯하니까 어디 경찰 손닿지 않는 곳으로 나가서 의사 진료를 받아볼 수 있도록 수를 씁시다. 그럴 여유가 생긴 거는 다행인 듯싶소.”
“오늘 당장 할 일이 바로 그거요. 동지가 삼척 쪽이든, 봉화 쪽이든 사람 눈을 피해서 병원을 찾아갖고 조합장 동지를 진료할 수 있는 곳을 탐색해 봐주시오. 오늘 중으로 파악이 되마 바로 그 병원으로 동지를 모시고 갑시다. 필요하면 나도 동행하겠소.”
“그라고 금태봉까지는 가보지 않아 그 길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삼십릿길이라카마, 여자가 동행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라면 세 시간이면 될 성싶소. 당일에 여기서 저녁을 일찍해 먹고 길 나서면 될 듯하오. 그러나 저러나 이 여자도 그렇고, 조합장 동지도 콘디숑이 좋지 않은데 이틀 사이에 잘 회복하도록 해야겠심다. 먼길 떠나야 할 형편이니까 몸이 건강해야 해요. 자, 잘합시다. 조합장 동지는 들어가 쉬시오. 여기 동지가 병원을 물색해서 알아오면 조합장 동지를 모시러 가겠소.”
군정 당국은 미국인이 경영하는 광산에 노조가 결성되고 파업 시위가 터진 것을 듣자말자 삼척 경찰서에 노조를 해산하고 파업 지도부를 체포 구속시켜서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삼척경찰서는 자기 산하의 산업체 문제가 어떻게 중앙의 군정청에서 먼저 알게 되었는지 황당해하면서 상동을 관활로 하는 장성 지서를 동원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태를 미처 깨닫지 못해서 보고도 하지 않는 지서장은 삼척 서장으로부터 전화통으로 불같이 닦였던 것이다.
새해(1947) 일월 12일 밤 10시께 방위를 나타내는 암호 숫자로 표시한 지점을 알려온 것이다. 그 지점이 바로 금태봉이고 그 금태봉에 있는 상여집을 접선 장소로 지정해 온 것이었다.
그 사이 두 주일 가까이 양수와 매리 두 사람은 그 대구집에 꼼짝없이 묵고 지냈다. 그러나 우구치 숯막을 다녀간 형사들이 후속 조치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런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다.
광산 쪽에서는 노동자들이 대거 체포되었고, 체포되지 않는 노동자들도 도피하거나 은신하여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광산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런 곳에 삼척 경찰서에서 두어 차례 다녀간 모양이었으나 어떻게 할 단서도 조치도 해내지 못했다.
광부들이 해산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미국인 광산주는 다시 삼척의 영월 정선 일대를 중심으로, 그리고 타지는 충청도 제천, 경북 점촌과 봉화 그리고 대구에 광부 모집 광고를 냈다.
조합장은 제천까지 나가서 진료를 받고 출발하기 이틀 전에 돌아왔다. 그러나 화색이 돌아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수척해보여서 일행이 될 사람들의 마음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정월 12일. 음력 섣달. 구정을 꼭 열흘 앞둔 때.
그들은 당일 저녁을 앞당겨서 든든히 먹고 길을 나섰다. 날씨가 맑고 하늘이 겨울답지 않게 푸르고 높아보였다. 하현달이 머리 위해 하얗게 떠서 금태봉 산자락까지 세 시간 반 동안 동행하다시피 했다.
일행은 세 사람. 양수와 매리 그리고 노조위원장.
노조위원장의 가족은 대구에 있었으므로 편지를 남기고 홀로 월북 행에 따라 나선 것이다. 그 편지는 이미 구랍 연말, 노조 결성 대회를 마치고 은신하면서 양수에게 부쳐주도록 부탁했었다. 양수가 도치에게 춘양에서 부쳐주기를 부탁했던 그 편지가 그것이었다.
도착해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남자가 나타났다. 양쪽 모두 시간을 거의 정확하게 지킨 셈이었다.
“합천 가는 빠수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오?”
“아이고, 여기서 합천 가는 차를 타려고요? 이리 오시오. 내가 메모해 드리리다.”
캄캄했다. 그가 라이터와 준비해 온 양초를 꺼내 불을 붙여 밝히고 거기 몇 개를 포개어 놓은 널을 하나 끌어내려 걸터앉았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빈 쪽을 펼치고 거기에 양수가 01이라고 숫자를 적었더니 그가 568이라고 이어서 썼다.
양수와 매리, 노조위원장(조합장) 그리고 지난 밤 접선한 길 안내자 등 네 사람은 상여집 안에서 쪼그리고 앉거나 누워서 밤을 새고는 새벽 미명에 길을 나섰다.
매리는 이 길이 정당한가 회의를 하면서도 양수와 함께 하기 위해 무작정 따라붙은 것이다. 이제는 운명적이었다. 막상 출발하고 보니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차량을 이용하면 도로 곳곳에 있을 검문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산길을 걸었다.
그렇게 산길만 온종일 헤매듯이 가고 있었지만 안내자가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서로 아무 대화도 없이 그저 묵묵히 걸었다.
백운산 봉우리라고 짐작되는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보면서 계곡을 따라 사뭇 이동했으니 북행길임은 확실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선을 향하고 있으리라는 짐작만 했다.
온종일 걸었지만 오십릿 길도 줄이지 못한 듯했다.
저물자 추운 밤을 산속에서 눈을 붙이고자 해도 잠이 들지 못해 온몸을 떨면서 새었다.
날이 밝아질 듯하자 출발하려고 몸을 추스르는데 결국 조합장이 앓는 소리를 하고 일어나질 못했다. 돌아보니 심한 고열의 열병이 발병했었다. 네 사람 모두 응봉산 한 계곡에서 발이 묶여버렸다.
그들은 비어 있는 낡은 초가 독립가옥을 어렵사리 찾아서 조합장을 간병했다. 그의 병은 중석 광산의 광부들이 걸리는 직업병이었다. 생각하면 마땅히 이 병을 놓고서도 노조는 사업주를 상대로 따지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책임 지게 할 뿐 아니라 그런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예방 조치와 안전 조치를 강화하게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데까지 이를 수 없는 것은 그저 급여 수준이나 훨씬 높인다거나, 광부를 훨씬 늘려서 현재 열두 시간씩 2교대 작업을 여덟 시간씩 3교대 작업이 가능하도록 조업 조건을 개선한다든가, 갱도 작업과 발파 작업과 채굴 작업에 따르는 안전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워 투쟁하기에도 벅차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