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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짜리 아이를, 그 천사 같은 아이를, 짐승만도 못한 새끼가 죽여서 여기에 버렸어! 이 쓰레기들 틈에! 서울에 사는 온갖 인간들이 버리고 싸놓은 이 쓰레기 들 틈에 내 딸을 죽여서 버려놨어! 그런데, 그 짐승만도 못한 새끼는 지금 어떻 게 됐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대요! 그렇게 되는 동안 넌 뭐 했어? 넌 그날 민아 생일인지도 모르고 잖아!
오성호 하여튼…… 그쪽으로 갈께. 만나서 얘기해.
(크레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순정 (갑자기 다급한 아이의 비명) 아빠! 오지 마세요! 안돼요! 아빠!
성호, 주춤 했다가 다시 걸어가는데,
순정 아빠아—!
아이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사람들이 놀라서 외치는 들린다. 성호, 고개를 들어본다.
허공에 매달려 있던 김우택이 땅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 그의 처절한 비 명 밤하늘의 허공을 뒤흔든다.
사람들이 모두 경악한다.
그의 몸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날 것 같은 찰라,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줄에 매달린 채로 그대로 있다.
김우택은 완전히 얼이 빠진 듯하다. 경찰들이 그를 붙들려고 쫓아간다. 그러나 크레인이 작동하 다시 허공으로 솟구치는 김우택. 혼이 빠진 것 같은 비명.
김우택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줘요
순정 너무 놀라지들 마세요, 경찰 아저씨들. 그냥 경고에 지나지 않으니까. 무슨 뜻인 지 알았죠? (다시 아이의 바뀐다. 울먹이며) 그러니까 아빠…… 내가 오지 말랬잖아 아빠, 엄마 말 들어요 엄마 너무 무서워
아이의 그 은 너무 절실해서, 성호에게는 딸의 목직접 듣는 것 같다.
반장 (마치 마이크 테스트 하) 아, 아, 아, 아! 정순정씨, 정순정씨! 내 말 들려요? 내 말 들립니까, 정순정씨? 나는 강남서 강력계 변승호 반장입니다! 내 말 들립 니까? 정순정씨!
순정 아저씨, 우리 엄마 지금 얘기하기 싫대요. 엄마 기분이 되게 나쁜가 봐요. 우리 엄마 화나면 진짜 무서워요.
반장 (기동대장에게) 뭐고, 이거? 말이 통해야 뭘 해보지.
기동대장 (반장에게 낮은 ) 그래도 계속 말을 시켜요. 작전 들어갈 거니까 계속 신경을 이쪽으로 끌어요!
(대원들에게 빠르게 지시한다.) 눈치 못 채게 조심해서 접근하고, 준비되면 연락해.
어둠 속으로 몸을 굽힌 채 빠른 걸음으로 흩어지는 체포조.
반장 (다시 메가폰으로 다.) 여하튼, 정순정씨! 저기 매달려 있는 사람 풀어주세요! 우선 저 사람 풀어준 뒤에 원하는 게 뭔지 이야기합시다!
순정 (갑자기 쨍쨍한 외친다) 안돼요!
반장 왜요?
순정 저 변호사 아저씨 나쁜 아저씨예요! 오로라공주가 벌 줄 거예요!
반장 (성호에게) 오형사 딸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오성호 민아요. 오민아.
반장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아이에게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민아야. 착하지?
순정 (잠시 말이 )
반장 민아는 착한 아이잖아, 그지?
순정 (흐느끼기 시작한다) 아빠……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아빠
아이의 슬픈 흐느낌 계속 된다. 모두들 침묵 속에서 그 울음듣
성호, 반장에게서 메가폰을 받아들고 나선다.
오성호 ……울지 마, 민아야. 울지 마 (그는 지금 진짜 자신의 딸에게 이야기하) 미안해…… 민아야. 아빠도 너 보고 싶었는데…… 미안해.
순정 아빠……(계속 흐느낀다) 너무 무서워요.
오성호 이제 괜찮아, 민아야. 이제 괜찮을 거야. 내가……아빠가 잘못했어.
(그 역시 울먹이며.) 우리 민아한테도, 엄마한테도…… 용서해 줘
S# 111 크레인(EXT/N)
크레인 바로 밑까지 접근해 있는 기동대 체포조.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조종석 안을 본 다. 조종실에 앉은 순정의 모습. 침투조장이 무전기에 대고 속삭인다.
조장 공격 준비 끝. 명령 대기 중.
조종석에 앉아 있는 순정의 얼굴. 눈물이 흐르
순정 (민아의 ) 아빠, 울지 마요. 아빠가 울면…… 민아도 슬퍼. 엄마도 슬퍼 할 거야.
크레인 쪽에서 보이는 성호. 그리고 그 주변에 늘어선 경찰들.
S# 112 쓰레기 매립장(EXT/N)
크레인을 쳐다보고 있는 성호. 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있다.
오성호 이제 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우리 민아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무서워 하 지 않아도 돼. 알았지?
순정
오성호 아빤…… 민아 사랑해
그 순간, 기동대장이 무전기에 대고 명령을 내리
기동대장 돌격 !
동시에 어둠 속에서 크레인 조종실 뛰어드는 침투조의 모습이 보인다. 최루탄도 터지 아이가 다급하게 외치는 들린다.
순정 아빠——!
참담한 표정으로 크레인을 보고 있는 성호.
S# 113 크레인(EXT/N)
최루탄 연기 속에서 순정에게 달려드는 기동대원들. 격렬히 저항하는 순정.
순정 아빠, 아빠! 이러지 마! 난 가기 싫어……!
막 침투조에게 결박되는 순간. 순정, 무서운 얼굴로 조종간을 당긴다.
S# 114 쓰레기 매립장(EXT/N)
울부짖음에 함께 놀라 허공을 쳐다보는 경찰들.
매달려 있던 김우택이 줄이 풀려 땅을 향해 떨어지 처절한 비명.
떨어지고 있는 김우택의 얼굴. 죽음을 향해 시시각각 달려가는 얼굴.
경악의 표정으로 보고 있는 반장, 기동대장, 정형사 등. 성호는 마지막 순간에 눈을 감고 만다.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싶은 순간, 땅 위 약간 1M의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멈추는 김우택의 몸.
얼이 빠진 채로 징징 울고 있는 그에게로 경찰들이 달려간다.
S# 115 크레인(EXT/N)
기동대원들에게 양팔을 결박된 채로 끌려나오는 순정.
몸 안에서 모든 것이 빠져 나간 듯, 텅 빈 표정이다. 어느새 달려온 방송 카메라의 조명 이 그녀의 얼굴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후래쉬도 터진다.
순정의 앞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의 시점으로 어지럽게 보여진다. 후래쉬를 터뜨 리는 기자들. 그리고 카메라, 길을 헤치는 경찰들. 그 중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타나는 성호.
순정과 성호의 시선이 서로 마주친다. 두 사람은 말이
다시 경찰들에 끌려 나가는 순정.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본다. 산처럼 쌓여 있는 쓰 레기 더미들.
다시 후래쉬가 터지듯 급한 WHITE OUT.
S# 116 회상. 쓰레기 매립장(EXT/D)
순정의 순간적인 회상. 거칠고 과다 노출된 화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는 민아의 사체. 발가벗은 몸이 옷가지에 대충 싸인 채로 다른 쓰 레기들 속에 묻혀 있다. 마스크를 쓴 경찰들이 사체를 조심스럽게 끌어 올린다. 어느 한 순간 드러나는 민아의 싸늘하게 굳어진 얼굴.
그 위에 들려오는 민아의
민아 엄마, 나 추워…… 추워, 엄마
요란한 경찰차의 사이렌 과 함께,
다시 후래쉬가 터지는 것 같은 빠른 WHITE OUT.
S# 117 경찰차 안(EXT/N)
경찰차 안. 요란한 사이렌 계속 들리며 차는 몹시 흔들린다.
기동대원들에게 팔을 결박되어 앉은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순정.
순정 (민아의 , 온몸을 떨) 엄마, 나 추워…… 추워, 엄마
다시 후래쉬가 터지듯 빠른 WHITE OUT.
S# 118 회상, 마술학교 앞(EXT/D)
역시 순정의 순간적인 회상.
화이트 속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 그 속에서 민아의 해맑은 들려온다.
민아 엄마!
아주 느리게 화이트 인 되는 이미지 속에 이쪽을 향해 웃으며 뛰어오는 민아.
이윽고 차문을 열고 타는 민아. 손에는 마술봉을 들
마술학교 앞에서 차를 세워두고 기다리던 순정, 웃으며 민아를 돌아본다.
순정 오늘은 뭐 배웠어요? 우리 공주님?
민아 (마술봉을 아래위로 흔들며)자, 봐봐! 없어져라 없어져라
순정, 웃으며 민아를 차에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민아 엄마, 잠깐만!
도연이 순정의 차 쪽을 향해 달려오
도연 민아야, 이거 내 선물이야. 생일 축하해.
민아 고마워.
아이의 뒤에서 여자의 날카로운 들린다.
여자(OS) 뭐해? 빨리 안 오고!
저만큼 차 앞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 여자. 백화점의 그 여자다.
도연 안녕!
하고는 얼른 뛰어가는 도연.
민아 (멀어져 가는 도연의 모습을 보며) 엄마, 도연이 불쌍한 애야.
순정 왜? 왜 불쌍해?
멀리 도연이를 사납게 불러 차에 태우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차에 타기 전에 도연이 이쪽을 향해 다시 손을 흔든다. 여자도 힐끗 이쪽을 본다.
민아 (손을 흔들어주며) 친엄마가 아니고 새엄만데, 되게 못됐대.
아빠만 없으면 맨날 때린대.
순정 (말없이 차를 출발 시킨다.)
민아 그래서…… 자기 전에 맨날 기도한대. 새엄마 죽게 해달라구
순정 (할 말이 없어 말을 돌린다) 우리 민아, 오늘 생일 뭐하고 싶어?
민아 (도연이가 준 선물 포장을 풀어, 조그만 코코낫 버터 쿠키다.)
……내가 좋아하는 거네.
엄마를 쳐다보며 웃는 민아의 얼굴에서 다시 빠른 WHITE OUT.
S# 119 경찰차 안(EXT/N)
말없이 보고 있는 성호. 그는 순정의 앞에 정형사와 함께 앉아 있다.
흔들리고 있는 순정의 얼굴. 텅 빈 시선으로 성호를 본다. 입이 달싹거리는가 싶더니 작 은 노래한다.
순정 (들릴락 말락한, 중얼거림 같은) 아빠……, 이제는 알아요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아빠가 하던 말…… 전에는 몰랐지만……
다시 빠른 WHITE OUT.
S# 120 회상, 압구정동 거리(EXT/D)
순정이 차 운전을 하 전화 통화를 하 그러도 한편으로 고개를 기울여 길 을 찾
순정 민아야, 엄마 곧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일 끝내고 금방 갈테니까……
하는데, 쿵, 과 함께 몸이 쏠린다. 놀라 몸을 일으켜 앞을 본다.
차 안에서 보는 그녀의 시점. 아차 하는 사이에 앞차와 추돌했다. <가든 숯불갈비>라는 상호가 선명한 봉고차.
순정이 차에서 내려 앞 차가 얼마나 박혔는지 살핀다. 앞 차에서도 운전자가 내려 가까이 다가온다. 장명길이다.
장명길은 순정을 노려보고 자신의 차 뒤를 살핀다. 표정으로 보아 차가 크게 박힌 것 같 지는 않다.
장명길 아이, 씨바……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순정 죄송해요, 아저씨. 다친 덴 없으세요?
장명길 다쳤지, 차를 그렇게 갖다 박았는데……(목을 억지로 좌우로 비틀며 과장해서)아야, 아야……(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린다)
순정 정말 죄송해요, 아저씨. 차는 괜찮은 거 같은데
장명길 옴마? 이 아줌마 봐? 차가 괜찮은 거 같애? 봐, 봐! 이거 봐아!
봉고차의 범퍼 부분. 약간 눌린 자국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다.
순정 아저씨. 제가 좀 바빠서 그러는데요, 연락처 적어드릴 테니까, 손 먼저 보시고 요..
장명길 뭐? 사람 이렇게 해놓고(연신 손으로 목을 만진다) 바쁘니까 그냥 간다고? 이거 아 주 싸가지 없는 년이네, 이거
순정은 그의 욕설이 귀에 거슬리지만 참으려고 애쓴다. 뒤에서 밀린 차들이 빵빵거린다.
순정 그럼 제가 지금 어떡해요?
장명길 어떡하긴! 같이 병원에 가야지.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뺑소니 칠 거야?
순정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요…… 저 지금 우리 애 데리러 가야 하거든요. 애가 지금 절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장명길 씨발년아! 그렇게 애 기다리는 년이 집에서 애나 보지, 왜 차는 끌고 나와서 남에 차를 박고 지랄이야, 지랄이!
순정 (참다 못해)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요?
장명길 어라? 이 쌍년이 어따 대고 눈을 부라려? 날 치겠네. 자, 쳐 봐. 쳐 봐!
뒤에서 차는 신경질 계속 빵빵거린다. 순정,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 순정.
순정 언니, 죄송해요. 잠깐 일이 생겨가지고요, 잠깐만 기다려주면 안돼요? 죄송해요, 언니
그 동안에 장명길은 손으로 목을 싸쥐고 봉고차에 몸을 기댄 채 엄살을 부리
장명길 아야, 아야…… 아이고 목 아파 죽겠네, 씨바
거의 울 듯한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순정. 뒷 차들은 계속 빵빵거리고 있다.
후래쉬가 터지듯 빠른 WHITE OUT.
S# 121 회상, 최신옥의 가게(INT/D)
짜증스럽게 전화를 끊는 신옥.
신옥 별 유난을 다 떨어요...접촉사고 났대. 그러니까 내가 애 있는 여자는 쓰지 말자 고 했잖아!
그녀가 짜증스럽게 곁에 나사장이 신문을 보
나사장 짜증내지 마세요. 얼굴에 주름 생겨요. 좀 기다리지 뭐.
신옥 (예의 그 응석부리는 어린애 같은 말투) 안돼, 마사지실에 예약해 놨단 말야.
저만큼 가게 구석에서 혼자 앉아 쳐다보고 있는 민아.
민아 아줌마, 우리 엄마 언제 온대요?
신옥 (짜증스럽게)몰라! (하다가 금새 웃는 얼굴로)민아야. 너, 엄마 곧 올 거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민아, 불안하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신옥 (나사장의 팔을 끼며) 가요, 빨리!
나사장 (일어나며) 가게는 어떡하고?
신옥 문 닫고 가야지. 곧 오겠지 뭐.
(문 쪽으로 걸어가며 민아에게 다.) 뭐하니 너? 빨리 나와!
빠른 WHITE OUT
S# 122 회상, 최신옥의 가게 앞(EXT/D)
문이 잠긴 가게 앞에 혼자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민아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점점 불안한 표정. 솟구치는 울음 을 간신히 참는 얼굴.
WHITE OUT
S# 123 회상, 공중전화 부스(INT/E)
전화기를 잡으려고 손을 뻗치고 있는 민아. 손이 닿지 않는다. 다시 부스를 나오는 민아. 거리는 이미 땅거미가 지고 불이 들어와 있는 가게들도 보인다.
거리를 걸어가는 민아. 한참 걷다가 차도 쪽으로 내려와 팔을 든다. 그러나 택시들은 그 냥 지나친다. 계속 한 팔을 들고 서 있는 민아. 이윽고 그 앞에 멈추는 택시 한 대.
WHITE OUT.
S# 124 회상, 택시 안(EXT/E)
택시 뒷자리에 오두마니 앉아 있는 민아. 불안하게 앞을 보
자꾸만 올라가는 택시 요금 미터기.
불안한 얼굴로 손으로 천 원 짜리 두어 장을 꼭 쥐고 만지작거리
흔들리는 박의 이름과 사진이 있는 개인택시 등록증.
힐끔거리며 뒷자리를 보는 백미러에 비친 박의 두 눈.
얘! 거기 껌 하나 씹어!
좌석 사이에 놓인 껌 통에서 민아의 손이 껌 하나를 집는다. 껌을 까서 입안에 넣고, 부 시럭거리며 유치원 가방에서 연필을 꺼낸다. 박을 눈치를 보며 껌종이에다 택시 앞에 붙은 등록증의 이름과 차번호를 적은 다음, 그 껌 종이를 가방 안에 다시 넣는다.
불안한 얼굴로 창 밖을 보는 민아. 창 밖은 벌써 많이 어두워졌다. 민아, 다시 택시 미터 기를 본다.
민아 아저씨…… 저 차비가 모자라는데요 그래도 집에까지 데려다주면 안돼요?
백미러에 비친 의 두 눈이 민아를 본다. 그 눈이 사나워진다.
너 차비도 없이 택시를 탔어?
후래쉬가 터지듯 빠른 WHITE OUT.
S# 125 회상, 거리(EXT/N)
택시가 서고 민아가 내린다. 택시가 떠난 뒤에 혼자 서 있는 민아. 그 얼굴을 지나가는 차의 전조등이 강하게 훑고 스쳐간다.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다가 이윽고 무작정 걷기 시작하는 민아.
걷고 있는 민아의 얼굴. 무서움을 참 그러나 점점 무서움과 슬픔이 아이를 사로 잡는 듯 마침내 실룩실룩 울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흘러내리는 눈물. 그래도 계속 앞을 보며 걷는 민아. 그 때 짧은 경적 들리며.
꼬마야!
걸음을 멈추는 민아. 고개를 돌려 , 차 한 대가 곁에 서 있다. 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고개를 내미는데 홍기범이다.
기범 너 어디 가니? 아저씨가 태워줄까?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홍기범의 그 얼굴 위로 들려오는 순정의
순정(OS) 안돼! 안돼, 민아야!
S# 126 경찰차 안(EXT/N)
경찰차 안의 순정의 얼굴. 갑자기 정신이 나간 듯 지르
순정 안돼, 민아야
그녀의 눈앞에 후래쉬가 터지듯 민아의 마지막 모습, 쓰레기 더미 속에서 끌어올려지는 민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가운 민아의 얼굴 위에 후래쉬가 터지 경찰차의 사이 렌 계속 된다.
팔을 뻗어 순정을 진정시키는 성호.
순정 (기진한 듯 중얼거린다) 안돼, 안돼……민아야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며.
천천히 F.O.
S# 127 오성호의 집(INT/D)
화면 서서히 밝아지면, TV 화면.
죄수복을 입은 순정이 떠들썩한 취재진들에 둘러싸여 법정 문을 나서고 있는 모습을 배경 으로 현장보도를 하고 있는 리포터.
화면에는 ‘연쇄살인범 정순정, 정신치료 감호 판결’이란 자막이 보인다.
리포터 혼자서 다섯 명을 살해한, 사상 유례가 없는 여성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인 정순정 에 대한 마지막 공판이 마침내 끝났 재판부는 정순정이 정신질환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기징역에 정신치료 감호에 처 하도록 판결했 평범한 한 아이의 엄마가 이토록 끔찍한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면에는……
누군가 채널을 돌린 듯 바뀌어지는 화면.
면도를 하던 성호가 TV를 보며 우두커니 서 있다.
뭔가 차가운 느낌이 나는 지 자기 목을 쓱 쓰다듬는 성호. 조금 베었다.
어두운 방. 리모콘으로 이리저리 화면을 돌려보는 성호. 홈쇼핑 채널, 뮤직 비디오, 드라 마 등등의 리다가 기독교 채널에서 멈춘다.
한창 목사가 열띤 설교를 하고 있는 린다. 성호의 무표정한 얼굴. 이윽고, TV를 꺼버리며 화면만을 보고 있는 성호.
S# 128 치료 감호소 입구(EXT/D)
흰 벽이 길게 보이는 치료소 감호소 건물 앞.
<국립 정신치료 감호소> 간판이 보인다. 어느새 여름이 완연한 듯 짙푸른 사방.
승용차 한 대가 건물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성호.
잠시 감호소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건물 쪽으로 다가간다.
S# 129 치료 감호소 면회실(INT/D)
마주앉아 있는 성호와 순정. 치료 감호소이긴 하나, 두 사람 사이에는 쇠창살이 가로지르 고 있고, 순정의 뒤에는 감호관이 앉아서 감시하
오랜 침묵.
창백하고 퀭한 순정. 약간 초점 잃은 시선을 한쪽에 두고 실어증 환자처럼 말이
그런 순정을 착잡하게 보는 성호.
오성호 아직도 말하기 싫어, 해?
순정
오성호 나 경찰 그만 뒀어. 너무 늦었지? 체질도 아닌 걸 진작 때려치웠어야, 너나 민아 고생 안 시키는 건데 말야
(여전히 아무 말이 없는 수정을 쳐다보다가)
목사 공부도 그만 뒀다. 내가 목사 할 인간 못 된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순정
오성호 (감호관을 슬쩍 보고는 목낮춰) 만났어?
미세한 순정의 반응. 그녀의 시선이 성호의 얼굴을 힐끗 보다가, 다시 돌아간다. 사이.
보일락 말락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오성호 내가 보던 성경책 가져와서 차입 시켰어. 틈틈이 읽어. ……도움이 될 거야.
순정
오성호 간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호. 그러나 순정은 그 자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성호가 나가려 하자, 비로소 그녀는 그를 쳐다본다.
순정 (희미한 미소) 성경…… 고마워.
성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S# 130 치료감호소 병실(INT/D)
좁은 병실의 낡은 침대에 혼자 앉아 있는 순정.
바깥에서 들어온 햇빛에 길게 드리워진 쇠창살의 그림자.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두터운 성경책.
잠시 내려다보던 순정, 천천히 펼쳐본다. 표지를 넘기자, 뭔가 눈에 띈 듯 한참 보고만
있다.
성경의 속표지에 끼어진 <오로라 공주> 스티커. 순정의 창백한 손이 그것을 집어 든다.
스티커를 들여다보는 순정의 얼굴. 사이. 스티커를 내려놓고 성경책을 잡는다. 성경의 두 꺼운 가죽 표지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이윽고 스티커가 끼워져 있던 속표지의 가죽 접착면을 손가락으로 뜯어내기 시작한다.
가죽 표지를 손톱으로 뜯어내는 순정의 손. 가죽이 뜯겨지고, 종이를 뜯어내자, 드디어 나 타나는 얇고 날카로운 면도칼.
그것을 내려다보는 순정의 창백한 얼굴 위로 차가운 미소가 번져간다.
면도칼을 집어 옷소매 속으로 감쪽같이 감추는 순정의 손.
S# 131 치료감호소 치료공방(INT/D)
널찍한 방에는 남녀 환자들이 치료를 위한 종이 공예를 하 군데군데 제복을 입은 감호관들이 서 있다.
에 혼자 앉아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한 남자 환자.
그의 가슴팍에 붙은 명찰과 번호가 보인다. 홍기범.
그는 색색가지 종이를 접어서 퀼트를 만들 뭐가 즐거운지 작은 노래를 흥 얼거리
……좋아?
종이접기를 하던 홍기범이 고개를 들면,
앞에서 보고 있는 환자복의 순정.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기범도 얼결에 미소를 짓는다.
순정 환자 노릇 하는 거 좋아?
기범의 표정이 약간 변한다.
순정 나, 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기범을 향해 가까이 와보란 듯 손가락을 까딱거 린다.)
기범이 영문을 모른 채 순정을 향해 고개를 숙여 가까이 간다.
정순정 (여 33세) 이혼 후 홀로 서기에 성공한 밝고 당찬 여자.
오성호 (남 43세) 순정의 전남편. 강력계 고참형사.
정형사 (남 28세) 황형사의 파트너, 신참내기 열혈형사.
반장 (남 50세) 황형사의 직속상관.
최신옥 (여 27세) 타고난 미모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외모지상주의자.
나사장 (남 48세) 최신옥과 내연의 관계. 전형적인 강남의 신흥부자.
박 (남 49세) 개인택시 운전사. 먹고 사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장명길 (남 35세) <가든숯불갈비집>의 사장. 마마보이. 걸핏욕이다.
김우택 (남 38세) 주로 가진 자들을 변호해주는 수완 좋은 변호사.
오민아 (여 7세) 순정의 살해된 딸.
홍기범 (남 30세) 유괴범
그 외 백화점 여자, 아이(도연), 이형사, 최형사, 검시관, 피부 관리사 1,2, 원장, 아파트 경비원, 자동차 세일즈맨, 외제 자동차 지점장, 절도전과범 외.
S# 1 백화점 지하 주차장(INT/D)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지는 어서 오십시오 라는 경쾌한 과 함께
화면 밝아지면, 강한 역광을 등지고 주차장 들어오는 승용차 한 대.
없이 윈도우 열리자,
안내원 (주차권을 내밀며)깜빡이 켜 주시구요,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타이어 긁는 과 함께 지하로 빠르게 꺾어지는 하얀 소형 승용차.
딸깍 딸깍 지속 들리는 깜빡이 . 그 앞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외제 승용차 한 대.
그 차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하얀 승용차.
S# 2 백화점 매장(INT/D)
우아한 음악과 함께 중간 굽 정도의 구두를 신은 여자의 발을 따라가면,
화려하게 꾸며진 신학기, 새 봄 배너들이 보이는 강남의 한 백화점 내부.
매장마다 분주하게 물건을 사거나 고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밖에는 비가 오는지 우산 비닐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틈에 섞여 지나가는 예쁜 어린이 우산. 우산을 질질 끌며 종종걸음 치는 여자아이.
그 아이를 휙 잡아끌며 사납게 눈짓을 하는 여자.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보석코너에서 이것저것 끼고 걸어보는 여자.
그 사이에 한 눈을 팔며 마네킹 쪽으로 가는 아이. 다시 휙 팔이 끌려진다.
엉덩이를 때리 듯 아이를 끌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여자.
한 층 뒤쳐져 오르는 무리들 속에 끼어 있는 순정의 모습이 얼핏 스치고.
4층, 팬시용품 상점에서 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뺏 내려놓고 다른 곳으로 또 가버리는 여자.
잠시 후, 그 물건을 집어 올리는 손. 별 모양이 새겨진 마술봉이다.
그 봉을 만지는 순정에게 쏜살같이 다가오는 판매원.
판매원 (상냥하지만 과장되게)요즘 그거,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놀란 듯 돌아보는 순정.
S# 3 백화점 화장실(INT/N)
쏴아 틀어진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 순정.
씬2의 아이를 끌고 여자가 들어온다.
대뜸 벽에 붙여놓고는 머리를 툭툭 쳐대며.
여자 너 무슨 애가 이렇게 산만하니?
이 넓은 바닥에서 내가 계속 널 찾아다녀야 되겠어?
아이(도연) (고개만 숙이)
여자 (손가락으로 아이의 입을 비틀며)너, 벙어리야? 왜 대답을 안 해?
아이(도연) 잘못 했어요, 아줌마
여자 (아이의 뺨을 때린다)너 지금 뭐라구 그랬어? 아줌마? 일루 와. 말루
안돼, 넌! (애를 끌어당기며)일루 안 와?
아이는 버티며 울음을 터뜨리고, 보다 못한 순정이 끼어든다.
순정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여자 (순정을 훑어보며)무슨 상관이세요?
4
기어코 아이를 질질 끌며 칸 밀어 넣는 여자.
그 사이로 보이는, 공포에 질린 눈물 그렁한 아이의 눈. 아이는 우산을 놓치고, 쾅 문이 닫힌다.
동시에 우르르 바삐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여자(OS) 너 같은 애는 맞아야 돼! (찰싹) 맞아야 정신을 차려! (찰싹)
아이(도연)(OS) 끅……끄윽……잘못……했, 어요(딸꾹) 끅 끄윽
여자(OS) 맨날 해놓고 (흉내 내며) 잘못했어요. 너 지금 나 갖고 노는 거니? 어른 가지고 놀아? (찰싹) 다시 말해봐, 아줌마?
사람들, 인상을 찌푸리기는 하지만 무심하게 들고 난다.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아이의 우산만 들고 서 있는 순정.
거울에 비친 화장실 문 아래 비칠거리는 아이의 발, 여자의 하이힐.
아이(도연)(계속 딸꾹질) 엄……마, 엄마
순정,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는데 (사이) 자지러지는 아이의 비명에 퍼뜩 눈을 뜬다.
.
한 짝 밖에 보이지 않는 하이힐. 주저앉은 아이의 원피스 자락. 요란하게 울리는 여자의 핸드폰. 잠시 정적이 흐른다.
여자 (문을 벌컥 열며) 나가 세수 해! 셋 셀 때까지 그쳐! 하나, 두울 (문을 닫고는 양양거리는 ) 응, 자기야. 여기? 백화점! (간드러진 웃음) 맞아, 나 쇼핑으로 스트레스 풀잖아. 자긴 아직 비행기 안 탔어? 타기 직전? 그럼 내일 아침인가? (더욱 애교 있게) 선물 샀지? 아이, 내 선물
아이는 너무 울어서 방향을 잡지 못한다. 부르터진 입술로 발을 쫑긋하고 세수를 하려고 애쓴다. 그런 아이의 얼굴을 씻기는 순정. 곱게 닦아준다. 아이는 그제야 순정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손으로 쉬잇 하 아이의 손을 잡고 나가는 순정.
텅 빈 화장실. 여전히 간드러지게 통화하고 있는 여자. 똑똑 떨어지는 물.
잠시 후 화장실 안을 휘 둘러보는 누군가의 시선.
끝 칸의 청소도구 함을 열고, 구석에 놓여 있는 <청소중>이라는 푯말을 꺼내는 누군가의 손.
바닥에 끌리는 푯말과 조용조용 움직이는 중간 굽의 여자구두. 주방용 기구의 포장지가 바닥에 떨어진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한 발걸음. 그 때, 뒤집어지는 여자의 웃음. 신호처럼, 여자가 있는 칸으로 다가가 문짝을 내리 찍는다.
쾅, 문이 열리면 변기에 걸터앉아 있던 여자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그녀의 얼 굴에 찍히는 쇠로 된 날카로운 산적꽂이.
쉴 틈 없이 내리 꽂히며 붉은 피가 벽면으로 튀어 오른다.
벽에 튀어 오르는 피들은 꽃처럼 붉고 화려해 보인다. 차츰 그 피들이 천천히 흐르듯 일 렁이다 추상적인 형상으로 변하 타이틀이 뜬다.
나는야 오로라 공주
다시 그 형상은 점멸하는 밤거리의 붉은 불빛들로 천천히 바뀐다.
S# 4 밤거리(EXT/N)
이른 봄비가 스산하게 뿌려지는 강남 밤거리의 불빛들.
점멸하는 밤 풍경을 배경으로 크레딧 오르며 들리는 경찰차의 사이렌 .
그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 어느 경찰차의 지붕 위에 놓인 경광등.
비를 맞으며 돌아가
S# 5 백화점 지하주차장 입구(EXT/N)
오성호의 차 안. 백미러에 매달린 십자가상이 흔들린다.
와이퍼가 빗물을 밀어내며 백화점 지하 주차장 입구 쪽으로 거칠게 다가가는 차.
백화점 직원 복장을 한 남자가 급히 다가오며 뭐라고 다. 그를 따라가면, 창문을 내 리고 있는 오성호의 옆얼굴이 얼핏 보인다.
직원 (신경질) 싸이렌 좀 꺼주세요!
오성호 죄송합니다!
정형사 (옆에서 궁시렁거리는)뭐가 죄송해요?
빠르게 지하주차장 쪽으로 다가가는 차.
S# 6 백화점 지하 주차장(INT/N)
안내원 (함박웃음을 지으며)어서 오십시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안내원이 내미는 주차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광등을 가리키는 오성호.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주차권을 건네는 안내원.
오성호 경찰이거든요?
안내원 (여전히 미소 지으며) 네에. 그런데요?
정형사 (운전석 창 쪽으로 고개를 빼며) 여기 사건 터져서 우리 출동 한 거라구요!
안내원 네에. 그런데요?
하는 수 없다는 듯 오성호, 주차권을 받는다.
빠르게 내려가는 차.
정형사 씨바, 사건 출동한 경찰차도 주차권 받아서 지하로 들어가나?
오성호 열 받지 마세요, 정형사님. 경찰차가 경광등 켜놓고 백화점 정문에 서 있으면
장사가 되겠습니까? (주차권을 건네며) 확인 도장.
정형사 힐끔 주차권을 보고는 외면해 버린다.
S# 7 백화점 화장실(INT/N)
군데군데 핏물이 흐르고 있는 칸 주위에서 감식반이 감식을 하
뭔가 부지런히 기록을 하고 있는 정형사. 그 사이로 얼핏 보이는 처참하게 뭉개진 피해자 의 시신. 감식반의 카메라 플래쉬가 연신 터지고 있는 와중에 세면대 쪽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오성호.
정형사가 다가와 고개를 기울여 성호의 얼굴을 , 기도를 하 황당하다는 표정 의 정형사.
오성호 (입을 달삭거리며 기도한다)……불쌍하고 가련한 영혼을 주님의 품으로 안아 주시 옵고……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기도하옵나이다……아 멘!
정형사 (따라서)아멘!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성호를 보고) 수십 차례는 찌른 것 같아 요. 창 같이 뾰족한 흉기로 우발적인 것보다 아무래도 원한 같은데요?
오성호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 여기 주방용품은 어디서 팔지?
정형사 주방용품요?
오성호 포크도 삼지창 아니냐?
정형사 (말 된다는 표정) 기도하도 볼 건 다 보네.
S# 8 백화점 화장실 앞(INT/N)
성호 나오면 <수사중, 접근금지>의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백화점 직원들이 물품 상자들로 가리
오성호 뭐하시는 거요?
담당자 지금이 신학기 대목, 고객들이 알면 어떻겠어요? 지장이 많잖아요. 안 그렇 습니까?
오성호 (끄덕이며)그렇죠. 장사하셔야죠.
담당자 그리고, (복도에 서 있는 순경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도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 접근 못하게 우리가 지킬게요.
오성호 (뻘쭘하게 보다가) 여기, 주방용품은...
담당자 아래층이요
성호, 그러다 복도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이를 본다.
반짝이는 마술 봉을 들고 있는 아이. 혼자서 중얼거리
아이(도연) (마술봉을 흔들며) 없어져라…… 없어져라
S# 9 외제차 매장(INT/D)
화면 가득 자신 있고 밝은 모습의 순정. 미소를 띤 채 경쾌하고 능숙하게 자동차에 대 해 설명을 하 마치 암송하듯 쉴 새 없이 기계 말을 하고 있는 순정.
어쩐지 그녀의 미소까지도 기계 보인다.
순정 저희 차는 최고의 품위와 자존심을 가지신 분을 위한 차라고 자부합이 우 아하도 감각적인 몸매를 보세요. 그리고 이 환상적인 피부! 자동차를 제대로 아시는 분은 자동차에도 피부가 있다는 걸 아시죠. 정말 미끈하지요?
또한 6단 멀티모드 자동변속기는 절정의 승차감을 느끼도록 해준답아름답 고 섹시하고 일 잘하는 와이프! 게다가 정숙하기까지 하고! 그런 와이프가 있으 면 정말 환상이겠죠?
고객1(O.S) 차가 정숙한 차도 있어요?
순정 그럼요. 말 잘 듣고 정숙하죠. 바람도 피우지 않고, 오직 한 주인만 섬기죠.
고객2(O.S) 야, 너 장가가지 말고 그냥 이 차하고 살아라. 너 그런 마누라 원하잖아?
몇 사람의 웃음.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든다.
계속 미소를 짓고 있는 순정의 얼굴.
S# 10 외제차 매장 사무실, 시간경과(INT/D)
사무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우고 있는 순정. 앞 씬의 밝고 명 랑한 모습과는 달리 좀 지치고 초라해 보인다.
직원들 서넛이 나가다 말을 건넨다.
직원1 정순정씨. 오늘도 점심 싸왔어요?
순정 (빙긋 웃는) 네.
직원2 아, 정순정씨 중장비 면허 땄때믄? 이젠 트럭까지 취급하려구?
순정 (농담처럼) 제 꿈이 크레인 기사잖아요! 큰 거 팔면 커미션 더 남구?
직원2 무섭다. 근데, 순정씨 오늘따라 기분이 좋네?
순정 (웃으며) 네 좋아요!
일행이 나간다. 순정, 그들의 모습 보다가 샌드위치 비닐을 꽉 쥐어본다.
이윽고 핸드폰을 꺼내며 잠시 망설이는 얼굴의 순정.
S# 11 오성호의 차 안(EX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