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을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전쟁이 주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망가져가거나 인간성을 상실하는 출연자들이 나오는 것인데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예외라기보다 이 영화의 제작시기를 감안하면 월남전 때문에 인간들에게 생긴 광기를 다룬 영화로 오히려 원조에 가깝다고 말 할 수 있다.
철강공장이 즐비한 미국 펜실베니아의 한 작은 마을 클레어타운(Clairtown)에서 평화롭게 살던 평범한 러시아계 친구들에게 월남전쟁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모두 한결같이 패배자가 되거나 또 회복하기 힘든 피해자가 된다
이 영화의 중심인물로 가장 나이도 많고 친구들에게 리더와도 같은 존재이다. 평소 사슴사냥에서 비롯된 원샷 정신과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답게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을 하는 강인한 모범생이며, 주인공답게 유일하게 온전한 육체로 살아남게 되지만, 한집을 쓰는 친구 닉과 스티븐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정신적으로 자신도 어쩔 수없이 변해감을 느낀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Angela(Rutanya Alda, 1945, 라트비아)와 결혼식을 마치고 월남으로 출발. 전쟁에서 기적같이 살아남긴 하였으나 육체적 불구자가 된 후, 그 누구도 만나길 싫어하며,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조차 멀어지려고 하는 정신적인 장애를 겪게 된다.
사랑하는 Linda (Meryl Streep, 1949, 뉴저지)를 홀로 남겨두고 월남으로 갔으나, 포로가 되어 VC(Vietcong)들에게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탈영하여 점점 황폐해져간다. 결국 잔인한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의 희생자로 목숨을 잃는다.
대충 한 시간 정도씩 나뉘어 마치 3부작과도 같은 형태로 줄거리가 전개되는 이 영화는 월남전에 참전하기로 된 이들 세 명과 블루칼라 동료들, 그리고 고향친구들 Stanley(John Cazale,1935-1978, 보스턴), John(George Dzundza,1945,독일), Axel(Chuck Aspegren, 인디애나, 실제 철강노동자) 등이 러시아정교회에서 열린 스티븐의 결혼식과 리셉션파티 뒤 사슴사냥을 위한 하룻밤 여행(워싱톤주의 North Cascades National Park에서 촬영)을 하는데, 어쩌면 고별의식이라 할 수 있는 이 장면들이 영화 초반부 1/3을 장식한다. 2부는 이들 세 명이 월남에서 포로로 겪는 힘든 역경을 그리며 시작한다. 탈추한 닉은 마이클이 그렇게도 만류하지만 끝내 마이클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가고 결국 마이클 혼자서 고향에 돌아오게 되는데, 탈출 과정에서 헤어져 서로의 생사를 모르게 되는 상황이 들어 있다.
영화의 가장 인상적이고 클라이맥스 장면이 많은 마지막 1/3 은 마이클이 고향 클레어타운에 홀로 돌아와, 닉의 애인인 린다를 위로하면서 서로 점점 가까워지고 또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마이클은 먼 이국땅에 두고 온 닉을 잊지 못하고 결국 그를 구하러 다시 월남으로 간다. 사이공함락의 대혼란 속에서 겨우 찾은 닉은 그러나 친구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 폐인이 되어 있다. 마이클은 닉을 구해내려고 무척 애를 쓰지만, 닉은 끝내 러시안 룰렛게임의 희생자가 되어 죽어간다.아침 일찍 불구가 되어 휠체어를 타고 닉의 장례식에 참석한 스티븐을 비롯하여 고향 친구들은 장례식이 끝낸 후, 예전처럼 존이 운영하는 바에 모여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죽은 닉을 위해 건배도 해보지만, 예전 같지 않고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무겁게 짓누른다. 살아남았지만 우울한 그들은 존이 우연히 선창한 ‘God Bless America’를 따라 부르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전쟁영화의 형태를 빌리긴 하였지만 결코 전쟁영화로만 볼 수 없는 이 작품은 국외에서 벌어진 전쟁의 광폭한 모습과 동시에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사슴사냥을 하는 국내의 평화를 함께 그리면서, 한마을 친구들이 느끼는 고뇌와 갈등 그리고 우정과 사랑 등의 인간관계를 주제로 한 영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1960년대 초부터 1975년까지 많은 미국 젊은이(우리 한국 젊은이들도 포함) 피 흘리고 목숨까지 잃어가며 치른 월남전쟁이 과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는지, 또 그 전쟁이 오늘날에 남긴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치미노 감독은 1975년 사이공 함락장면(실제 뉴스필름)을 영화 속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음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긴 이 전쟁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전쟁이 진행중이다.)
1960년대부터 TV를 통해 본격적으로 음악을 작곡하던 Stanley Myers (1933-1993, 영국/생전에 약130여 편의 영화음악 작곡)가 만든 OS에서 우리는 ‘슬라브 댄스’ 무곡(결혼식 피로연)을 포함한 참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들을 들을 수 있다. 주인공들이 모두 러시아계여서인지, 결혼식과 장례식을 포함하여 사슴사냥 장면에서 러시아정교회 찬양대의 성가가 구름에 둘러싸인 웅장한 산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특히 다음 세 곡이 가장 인상깊게 기억에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1997년 Mike Figgis가 만든 ‘One Night Stand’에서 일명 ‘Cavatina’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String Quartet In B Flat Major’ 가 등장하는데, 짧고 간단한 기악곡이나 간결한 아리아를 의미하는 이 카바티나가 어느 특정 곡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세계적 명성의 클래식기타리스트 John Williams(유명한 작곡가와 동명이인)가 연주하는 Main Title Theme의 제목으로(마이어스 작품) Opening Credits부터 Ending Credits까지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기타 연주곡을 말한다. 마이클이 홀로 귀향을 할 때와 닉의 애인이었던 린다와 사랑을 나눌 때도 잔잔한 분위기로 반복되면서 사랑의 Theme 역할을 하는 음악이다. 이 곡은 영화개봉 후 성악을 전공한 Cleo Laine에 의해 ‘He Was Beautiful’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발표되었다.
1960년대 인기그룹으로 4인조 중창단 The Four Seasons의 리더로 활약하던 Frankie Valli(1937, 뉴저지)가 1967년 발표하여 당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곡으로, 1997년 영화 ‘Conspiracy Theory’에 Morten Harket(1959, 노르웨이/A-Ha 멤버 )이 리메이크한 곡을 사용하여 다시 인기를 얻기도 한 유명한 곡이다. 스티븐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무대 위 밴드가 부르는 노래이며 존이 운영하는 바(Welsh's Lounge)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당구를 치던 고향 친구들이 Jukebox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을 따라 부르는데, 입대 전 마이클과 린다가 어색한 분위기로 이 곡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그 유명한 ‘White Christmas’를 만든 작곡가 Irving Berlin(1888-1989,러시아)의 또 하나 명곡인 이 곡은 ‘The Star Spangled Banner’와 함께 미국 제2의 애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러시아에서 이민 온 벌린이 만든 곡이어선지, 영화의 끝장면에서 러시아계 미국인인 주인공들이 닉의 장례식이 끝나고 존의 바에 모였을 때, 그 우울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존의 선창은 린다에 이어 자연스럽게 합창으로 바뀐다. 대단원의 마지막 장면에 “Home Sweet Home..."이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이 곡을 사용한 것은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성을 내포하는 의미가 있다.
감독 뿐 아니라 공동제작에 직접 각본까지 쓴 마이클 치미노 (Michael Cimino/1939, 미국 뉴욕)의 출세작이 된 이 영화는 그의 불과 그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1979년 제 51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하여 총 5개의 상을 안겨준 치미노 생애 최고의 작품이 되었는데, 1974년부터 지금까지 감독을 한 작품이 8편에 불과한 그의 이후 활동은 그렇게 대단했던 당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을 주기도 한다. 한편 어떤 역을 맡아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로버트 드 니로는 1980년 ‘분노의 주먹’, 1984년 ‘Once Upon A Time In America’와 함께 그에게도 생애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후반부에 턱수염을 기르고 군복을 입은 모습은 극중 인물과 너무 잘 어울리는 마이클 브론스키 그 자체였다. 오늘날 대배우로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메릴 스트립 또한 바로 전 해에 ‘Julia’(1977)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두 번째 작품에서 출세작을 선보인 셈이고, 러시안 룰렛의 광기에 희생이 된 닉역의 Christopher Walken은 이 영화로 그의 생애에 유일한 아카데미상(조연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골수암을 앓으면서도 투혼을 발휘해 촬영 끝까지 고군분투한 스탠리역의 John Cazale (1935-1978, 보스턴)은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면서 이 영화를 유작으로 남겨 안타까움을 주었다.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의 하나로 부각되었던 러시안 룰렛이라는 잔혹한 게임은 세간의 큰 화제거리로 대두된 적이 있었고 또 한때 많은 사람이 유행처럼 이 무모한 게임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당시 베트남에서는 영화 속의 장면같이 실제로 이런 게임이 유행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을 광기의 소도구로 침소붕대한 치미노를 비난하는 글도 있었듯이 사람의 생명을 내 건 참으로 끔찍한 발상의 놀이다. 하지만 유사한 놀이가 전혀 없던 사실도 아닌 만큼 인간이란 정말 잔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임이다.
글 출처: 김제건의 엉화 음악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