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인의 행차에 삼초가 있으니 갑오(甲午)에 일초가 되고 갑진에 이초가 되었으며 삼초를 손병희(孫秉熙)가 맡았나니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
이렇게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고 그의 만사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불사르셨도다.
知忠知義君事君 一魔無藏四海民
孟平春信倍名聲 先生大羽振一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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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께서 언급하신 甲午 는 1894년이다. 그리고 갑진은 1904년이 된다. 이 2개의 연도는 성사께서 천지공사를 행하시던 때의 일이다. 반면에, 삼초가 되는 甲寅 은 1914년이므로 성사께서 화천하시고 나서 벌어지는 일이다. 1914년에 손병희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이전에 올린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초의 끝을 헤아리다 보면 성사께서 언급하신 대인(大人)이 누구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甲寅 (三哨) 의 끝은 계해(癸亥)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三哨 와 관련된 일진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데, 아래와 같다.
(아래)
갑寅( 三哨 ) 을묘 병진 정사 무오 기미 경신 신유 임술 계해 (10개)
(1) 병신이 육갑한다.
42. 또 종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시속에 병신이 육갑한다는 말은 서투른 글자나 배웠다고 손가락을 꼽작이며 아는 체한다는 말이니 이런 자는 장차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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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10개의 간지 중 병신육갑하기 좋은 干支 는 '임술' 이다. 왜 그런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써먹은 사람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임술' 생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 그 근거는 아래에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주역에도 나와 있다. 일부의 정역을 아주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는 글이기도 하다.
(아래)
16.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
(2) 계해(癸亥) : 甲寅 (三哨) 의 끝
이제 癸亥 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만 추적하면 된다.
태극진경 3장
46 9월 중순에 다시 적선동(積善洞)에 큰 집을 얻어 제3차 백일공부를 하시고 계해(癸亥 : 도기 15, 서기 1923)년 원조 치성을 공부 파석(罷席) 치성과 아울러 올리시니라. 이때 도화동 가…
53 이날 상제님께서 임원들에게 하교하시기를 "금년이 이재신원(利在新元)의 계해(癸亥)년이니 대도의 제왕지운(帝旺之運)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내 이제 전도문(傳道文)을 내리느니 이로써 세운(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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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利在新元' 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걸로 끝났다....
이것으로 '아기판' 이 끝났다........
태극진경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癸亥 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다른 분들이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참고)
33. 현하의 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아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후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나니라.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9XBfBujuvAI&list=RD9XBfBujuvAI&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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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1922. 5. 19. 사망 후 안운산은 1922. 9. 6 태어났는데, 손병희 사망에 맞춰 6월생이라고 주장하지만, 제가 확인해본 결과 양력 9월 6일 맞습니다.
삼초를 맡은 의암이 중심이지 육갑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즉, "삼초 끝"은 바로 "의암의 죽음"을 말합니다.
통령이라 칭한 의암의 사망 후 대인, 즉 사실상 박성구처럼 왕노릇한 안세찬을 지칭하는 겁니다.
https://naver.me/FOM4ZZd0
증산도를 창립한 안운산은 임술(壬戌,1922)년 7월 15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산면(大山面) 운산리(雲山里)에서 안병욱(安柄彧)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운산의 이름은 세찬(世璨)이요 한때 홍찬(興燦)이라 하였고 운산은 그의 호이다.
증산도는 도전에 안운산 "대두목이 강세하는 때"라고 했고, 상도도 박성구 대두목이라고 했는데, 그 대두목이라고 칭해진 분들의 역할이 왕후장상 해원도수였던 셈입니다.
상당수 도인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두목" 박성구나 "대인" 안운산은 비슷비슷하네요.
여튼 님은 저로 하여금 항상 미진한 부부을 정리하게 해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주는 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할에 고맙습니다.
참! 기억해보니 1984년 "증산교"가 "증산도"로 개명하는 데 제가 지대한 역할을 했네요.
안경전 오른팔에게 "교" 주제에 "도"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해서 그들이 충격을 받았거든요.
얼마후 이름을 바꿨더군요.
그러고 보니 상도방면도 제가 주도해 나게 한 강릉방면 덕택에 덤으로 난 거네요.
양쪽 소위 자칭 타칭 대두목 일에 조금씩 관련된 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