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어둠을 뚫고
해가 바뀌어 두 달이 지나는 이월 끝자락 금요일이다. 날이 밝아오기 이전 여명에 현관을 나섰다. 부곡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데 평일 틈이 날 때 온천을 한 차례 더 다녀올까 해서다. 이번에는 새벽에 온천욕을 즐기고 난 뒤 아침나절을 산책으로 보내고 오후는 오후대로 일정을 한 가지 더 추가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요량이라 하루에 세 가지를 할 참이다.
어둠이 사라지지 않은 5시 이전에 현관을 나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원이대로로 나갔다. 엊그제까지 영하권 아침 날씨가 완연히 풀려 봄기운을 느낄 만한 했다. 불모산동 기점에서 출발 마금산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 첫차를 타고 새벽어둠을 달렸다. 거리는 밤을 새워 밝힌 가로등과 네온의 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도계동과 소답동을 거쳐 목욕에 나선 이가 몇 늘었다.
감계 신도시에서 무동을 거쳐 갈 때는 가끔 찾은 최윤덕도서관이 떠올랐다. 사실은 목욕 후 그곳 도서관을 찾아갈 셈인데 금요일은 정기 휴관이라 대산 들녘 마을도서관으로 갈 생각이다. 북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난 종점에 닿자 어둠 속에 온천장의 불빛이 선명했다. 평소 다니는 대중탕을 찾으니 입욕객이 더러 보였는데 그들은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를 몰아온 이들로 짐작되었다.
내가 온천욕을 즐김에는 발바닥에 굳은살이 자주 붙고 무릎 아래 종아리 근육 통증을 풀기 위해서다. 전자는 가족력으로 젊은 날부터 신경 써 관리해 오는데, 후자는 연전 퇴직 후 귀촌을 앞둔 대학 동기의 일손을 돕다가 입은 부상으로 인해서다. 친구가 시골에 지은 집 뒤란에 두려는 표고목을 함께 자르다가 통나무가 무릎을 스쳤다. 그 일이 있고 삼 년째인데 여태 불편을 겪는다.
다른 입욕객들과 같이 온천수에 몸을 담근 뒤 냉탕과 사우나실을 오가며 느긋하게 보냈다. 이른 아침이다 보니 아무래도 입욕객이 적어 온천수는 깨끗한 편이었다. 하루 일을 마친 오후에 대중탕을 찾은 이들이 있기도 하겠으나 나는 언제나 새벽 이른 시간에 들린다. 탕에서 불린 발바닥의 굳은살을 깎는 데는 나만의 도구인 문구용 가위 날을 펼쳐 조심스레 긁어내면 깨끗해졌다.
목욕을 끝내고 종업원이 파는 삶은 달걀 세 개를 사 대중탕을 나오자 구름 속에 드러난 아침 햇살이 비치는 즈음이었다. 북면 온천장에서 들녘으로 나가 인적이 아무도 없는 들길을 걸었다. 예전에는 순수 벼농사 농지가 과수원이나 텃밭으로 바뀌어 곳곳에 농막이나 창고가 보였다. 월계마을 앞에서 신천 천변 따라 걸이 본포 취수장으로 가니 색이 바랜 물억새가 펼쳐진 둔치였다.
수변 생태 보도교를 건너자 본포교 아래 생태공원이 나왔다. 그곳을 따라 강둑을 계속 걷지 않고 본포마을 회관 앞으로 가서 시내에서 오는 41번 버스를 타고 가술로 갔다. 삼월부터 평일 오후 거리에서 아동안전지킴이 봉사활동을 수행할 구역이다. 식당으로 들어 추어탕으로 점심을 때우고 인근 마을도서관을 찾았다. 평생학습센터 캘리그래피 수강생들의 작품전이 열려 둘러봤다.
서가에 신간으로 비치된 조수용의 ‘일의 감각’을 뽑아 읽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과 같을 연령대 작자는 관련 업계에서 대단한 인물이었다. 한때 카카오 공동 사장을 역임하고 그곳을 떠나 자기 사업에 열중했는데 잡지, 식당, 가방, 건축 등에 그의 전공을 살린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공감’은 돕고 싶은 마음이라는데 수긍이 갔고 매사 긍정적 사고를 본받을 만했다.
산업디자인을 예술과 수익성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확장한 이의 책을 완독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집으로 오던 마을버스에서 ‘묵은 물억새’를 남겼다. “한때는 은빛으로 석양에 일렁이다 / 바람이 불어오면 서로는 몸을 부벼 / 겨우내 야위진 가닥 갈색으로 바랬다 // 뱁새가 날아 앉던 물억새 그루터기 / 싱그런 새순이야 늦은 봄 움트기에 / 갯버들 수액 올라도 잠 깰 줄을 모른다” 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