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새 부대를 주소서 (눅 3-37)
2025년 1월 9일 (목요일)
찬양 : 구주를 생각만 해도
본문 : 눅 5:30-39절
금식 4일째 기운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 일어나 활동하기까지 힘겹다. 움직이면 사는데 움직이기까지 싸움이 있어야 한다. 금번 금식은 단순하게 하고 있다. 말씀과 기도 그리고 등산 ~
이날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은 레위가 큰 잔치를 벌인 이후에 벌어진 전혀 엉뚱한 일이다. 30절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여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문제 삼은 세리와 죄인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람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의식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율법을 확대 적용한 것이다.
세금 징수원들은 로마 점령자들과 협력하고 종종 강탈 혐의로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멸시를 했다. 또 '죄인'은 눈에 띄게 율법을 어긴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일컫는 넓은 의미의 용어였다.
바리새인의 가르침은 개인의 거룩함을 유지하고 오염을 피하기 위해 불의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분리되도록 권했기에 예수님의 행동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은 부정함을 피하는 것이 정함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 여겼기에 이렇게 비방한 것이다.
여기에 예수님은 혁명적인 말씀으로 대답하신다. 31-3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사명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으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이들을 위해 오셨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죄인을 무조건 용납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아니라 죄인을 회개시켜 그들도 구원을 받게 하려고 한 행동이란 것이다.
율법의 한계는 죄인과 의인을 나누어 구별함으로 의인을 보호했다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은 이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이란 것이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꼬투리를 잡는다. 33절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한 영혼의 감격적 잔치를 빌미 삼아 이런 꼬투리를 잡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것이 인생의 한계다. 무엇인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면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님은 긴 장문의 말씀을 통해 유명한 결론을 도출하신다. 38절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이전이 사고방식으로는 늘 꼬투리를 잡느라 새로운 은혜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함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적 세계관에서는 부정한 것을 만지면 부정해졌다. 그래서 부정한 것을 피하는 것이 정결함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하시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의사로서 부정한 자를 만짐으로 건강하게 하는 길이다.
세상이 피하던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 사역은 새로운 부대라는 것이다. 과거의 틀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금식 4일차에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작은교회의 하늘 부흥을 꿈꾸며 세워진 라마나욧선교회가 더 나은 사람들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 의사가 필요한 병든 사람을 찾는 곳인데 ...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세계관이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금번 금식은 나에게 간절하다. 힘으로 되지 않고 능력으로 되지 않는 현실에 오직 성령을 구하고 있다. 주님의 통치가 없이 작은교회에 하늘부흥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그래서 간절하게 성령을 구한다. 10일간의 금식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한다. 진정 성령의 새 부대를 구한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충만하게 저를 채워 후반전 사역을 감당하게 하소서. 이 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새 부대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