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매주 주일 쉬는 것은 언제부터 가능했을까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죽은 뒤부터였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불에 휩싸여 죽으면서, 이런 말을 외쳤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는 근로 기준법전과 함께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외쳤습니다. 이런 사건 이후 매주 주일 노동자들이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태일은 고향 대구에서 서울로 17살에 올라왔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 취직했는데요. 1970년부터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의 처참한 삶의 고뇌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태일은 어린 나이에 노동자 권리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박정희 정부와 자본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전태일 열사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틀을 굶은 채로,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었습니다.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했습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노동 운동의 역사는 전태일 열사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까지 하는데요. 이런 말이 과언이 아닐 겁니다. 오늘날 노동자가 쉴 수 있는 것도 바로 전태일 열사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에 전도자는 해 아래서 일어나는 어떤 학대를 보았다고 하였나요?
#전도서 4장 1-12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학대, 수고, 동무>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1) 전도자는 무엇을 보았나요? (1절)
-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습니다.
2) 전도자는 학대받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나요? (1절)
- 학대받는 자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었으나 학대받는 자들에게는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3) 이런 학대를 본 전도자에게는 누가 더 복되어 보인다고 하였나요? (2-3절)
- 전도자는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이 더 복되도다고 하였습니다(2절).
- 산 자와 죽은 자들보다 아직 출생하지 인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고 하였습니다(3절)
4) 살아오면서 받은 학대 받은 경험이 있었나요?
5) 혹 나 자신은 누군가를 학대한 적은 없었나요?
<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와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
현대사회도 여전히 학대가 존재하고, 여전히 인권이 유린되는데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을 공동 집필하였습니다.
계몽의 변증법이란 무엇인가요? 두 가지를 말하였는데요. 1) 첫째, ‘신화’와 ‘폭력’에서 ‘계몽’으로 전환되고, 2) 둘째, ‘계몽’에서 다시 ‘신화’와 ‘폭력’으로 전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즉, 이성의 계몽을 통해 신화와 폭력이 사라지는 듯했지만, 도구적 이성을 통해 사람들이 계몽을 통해, 신화와 폭력의 구조로 전락한다고 하였습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현대사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영화, 음악, 라디오를 통해 오락적 문화가 형성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을 더하는 파시즘(fascism : 전체주의) 운동이 양산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철학자 푸코는 인간이 학대받고, 유린당하는 이유를 권력으로 인해서 그렇다고 보았습니다. 푸코는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곳곳에 권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감옥에도, 심지어 가정, 학교, 공장, 군대, 병원 안에도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푸코는 성에 있어도 전통적 성인,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하는데, 이도 잘못된 권력과 지식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사실 푸코는 동성애자로, 에이즈에 걸려 죽었는데요. 자신이 볼 때, 세상은 성 소수자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의 사회로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인권이 유린 되고, 학대, 착취가 존재합니다. 이런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런 권력, 인간의 이기심, 원죄 이후 타락의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1) 전도자는 어떤 사람이 시기를 받는다고 하였나요? (4절)
- 전도자가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시기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2) 우매자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하였나요? (5절)
-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자기의 몸만 축낸다고 하였습니다.
3) 전도자는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나은 삶은 무엇이라고 하였나요? (6절)
-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고, 분주한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한 것이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D. A 개럿은 5-6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의 주석에서 서술합니다. 특히 이 구절들에 모순되는 두 개의 속담이 연이어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전도자가 게으름과 일에 노예처럼 사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순되는 두 개의 속담이 병렬로 삽입되어 있다. 첫 번째(v. 5)는 전통적인 지혜로, 어리석은 자는 게으름에 의해 자신을 소비한다. 즉, 게으름은 분명 가난을 가져온다.
두 번째(v. 6)는 조금 부족하게 가지면서도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많은 것을 가지면서도 일과 걱정으로 소진되는 것보다 낫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도자는 게으름과 일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개럿, D. A.(1993). 속담, 전도, 노래(Vol. 14, p. 307). 내슈빌 : Broadman & Holman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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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apparently contradictory proverbs are inserted in juxtaposition. The first (v. 5) is a traditional wisdom saying—the fool consumes himself by laziness. That is, laziness is sure to bring poverty.
The second (v. 6) states that it is better to have a few things (one handful) and yet be satisfied and happy than to have many things (two handfuls) and yet be consumed with work and worries.
The Teacher steers away from both idleness and slavery to work.
Garrett, D. A. (1993). Proverbs, Ecclesiastes, Song of songs (Vol. 14, p. 307).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4) 나 자신은 무엇으로 분주하고, 평온함을 잃어버리고 있나요?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1) 전도자는 해 아래서 어떤 헛된 것을 보았다고 하였나요? (7-8절)
-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살지만, 그의 모든 수고가 끝이 없었습니다.
-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자신이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는지 모른 채, 자신을 위하여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헛되고, 불행한 노고라고 하였습니다.
2) 왜 사람은 자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부요를 추구하려고 할까요?
3) 나 자신이 행복하도록 오늘 하루 어떤 상을 허락하면 좋을까요?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이유를 무엇이라고 하였나요? (9-12절)
-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9절).
- 혹 넘어지면 한 사람이 그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10절).
-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듯하기 때문이었습니다(11절).
- 한 사람이면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고,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12절).
2) 나 자신에게 100억이 주어진다면,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해 보고 싶은가요?
3)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