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찾아가는 길은 도로가 좁고 굴곡이 심한데다가 사람도 자동차도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말할 수 없이 혼잡했다. 더구나 충칭은 도심지의 교통난이 심해서 최근에는 오토바이는 신규 등록신청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하니 보통문제가 아니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는 1940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1945년까지 사용하던 건물이었으나 1991년에 도시재개발계획으로 청사의 존립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내 몇몇 대기업들이 힘을 모아서 복원작업을 시작하여 1995년에 완공한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후에 중국 상하이에서 설립되어 27년간 활동을 해왔는데 제1기 상하이 시대(1919~32)와 제2기 이동시대(1932~40), 제3기 충칭시대(1940~45)로 구분하고 있다.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로 일본군에 쫓겨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40년 충칭에 정착하여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으로 중국육군군관학교 뤠양(洛陽)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군사위원회를 두는 등 독립군 양성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임시정부청사는 좁다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회의실과 접견실, 장관실 등 5개 동의 건물이 층계를 이루면서 비좁게 늘어서 있었다. 1호동에 있는 전시실을 들어서니 김구 주석의 흉상이 전람관 중앙 태극기 앞에 있어서 길손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청사 안에는 김구 선생과 장제스 총통간의 회담 자료와 독립신문, 광복군 관련 자료,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한인 애국단 입단 선서문 등이 전시되어 있고, 방마다 그 당시에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 침대와 선풍기 등이 놓여 있었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는 동영상으로 상영하고 있고.
임시정부 청사를 돌아보니 그 당시 어려웠던 여건 속에서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선인들의 의지와 노력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임사정부 청사를 이처럼 지켜준 것이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