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만 다닌 유치원… 산업화로 크게 늘어났대요
유치원
요즘은 거의 모든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유아 교육을 받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비율은 지난해 기준 94.3%예요. 하지만 유치원이 없던 먼 옛날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정이 유아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서유럽 기독교 사회에서는 집에서 성경 내용을 가르쳤고, 동아시아 유교 사회에서는 가정에서 예의범절을 가르쳤죠.
대구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고 있어요. /대구교육청
그러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뒤 공장 노동자가 크게 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대신 돌봐줄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어요. 영국 사업가 로버트 오언(1771~1858)은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에 ‘인격 형성 연구소’를 설치하고, 부설 기관인 어린이 학교를 만들었지요. 이곳에선 10세 미만 어린이 교육을 담당했답니다. 이후 유아 교육은 발전하는데요. 독일 교육자 프리드리히 프뢰벨(1782~1852)은 유아 교육을 ‘초등 교육의 축소판’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유아에게는 유아에게 걸맞은 학습 단계와 방식이 있다’는 생각으로 놀이, 장난감을 강조했죠. 또 유아 교육 이론은 이탈리아의 마리아 몬테소리(1870~1952)나 스위스의 장 피아제(1896~1980) 같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 유치원 교육의 이론적 토대가 됩니다. 이들의 이름은 지금도 유아용 학습 교구나 유치원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까지 가정에서 유아 교육을 담당했답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유치원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서울도 아니고 부산에서 제일 먼저 세워졌습니다. 19세기 말 부산 개항(항구를 열어 외국 선박 출입을 허가함) 이후 부산에서 머무는 일본인이 늘었고, 이들 자녀를 위한 부산유치원이 1897년 문을 열었습니다. 즉 일본인을 위한 유치원이었죠. 이어 1913년 설립된 경성 유치원 역시 일본인 자녀를 교육했습니다. 반대로 1909년에 함경북도에 설립된 나남유치원은 한국인을 위한 유치원이었답니다. 유아 교육과 선교에 관심을 가진 선교사들이 교회에 유아 교육 기관을 세우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일제강점기 때 한국 어린이들은 유치원 교육을 받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1942년 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약 175만3000명이었는데, 유치원을 다닌 학생은 2만1000명에 불과했죠.
해방 이후 다른 교육 제도들은 자리를 잡아갔지만, 유아 교육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그러다 마치 옛날 유럽에서처럼, 산업화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증가하며 유치원을 찾는 사람도 덩달아 늘었죠. 1980년 당시 유치원은 약 900곳이었고,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는 전체의 5%가 채 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러다 1982년 유아 교육에 대한 법이 만들어지고 예산이 크게 늘어나는데요. 유치원은 1990년 8400곳으로 10년 전의 약 9배가 됐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