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선언문 인쇄인 이종일 선생님을 알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104주년 3.1항일 광복 만세 투쟁절입니다.
이종일 인쇄인은1858년생으로 3.1항일 만세투쟁
당시 민족 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 보성사 인쇄사
사장으로 보성사에서 광복선언문을 3만5천부
를 인쇄하였습니다.
2월 27일 밤, 보성사에서 인쇄한 광복
선언서 3만 5천매를 당시 보성사 사장
이종일(1858~1925)집으로 비밀리에 운반하여,
다음 날 비밀리에 각처로 배포했습니다.
광복선언서는 전국적으로 일어난 거족적인
광복만세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발판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종일 선생님 집터는 현재 천도교 중앙본부
편입되어데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석파 이종일 선생은 1873년 문과에 급제 후,
선생님은 일본에 다녀온 후, 큰 충격을
받아, 교육 사업에 투신하게 됩니다.
보성보통학교 교장으로 광복협회에 참여
했고, 신문사업 등을 시작했습니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인 선생님은
천도교 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을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이종일 선생님은 3월1일 태화관에서 열린
광복선언식에서 광복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3년형을 받고 2년 6개월 후
가출옥했습니다.
1922년 3월 1일 또 다시 보성사 직원 50명과
제2의 3.1만세투쟁 기념식을
거행하기로 계획하고 그때 낭독할 자주
광복선언문을 작성하여 인쇄토록 하였으나,
일경에 발각되어, 인쇄물을 압수당하고
체포되었습니다.
1925년 8월 31일 68세의 일기로 영양
실조로 서거하였습니다.
"이종일 선생님은 인쇄인으로 광복투쟁가로
오늘의 대한민국의 만든 분입니다.
선생님이 인쇄인이라는 것 이 인쇄인의 한사람으로
존경하고 선생님의 정신을
본받아 이어가는 인쇄인이 되겠습니다."
인쇄인 한영국 씀
광복뜻: 나라를 되찾고 스스로 다스리는 국가가 있는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오는것을 의미한다
(8.15공복절)
첫댓글 광복선언문 3 만5천매 인쇄한 이종일선생님
33 인의 한분
기억 하겠습니다
오늘 만이라도 기억해 주세요!
33인의한 분 이종일 선생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태안 신두리해안사구 다녀 오면서
기념관에 잠시 들러
이종일선생에 대해
잘 알고 왔습니다.
https://m.cafe.daum.net/beautiful5060/8aAI/15696?svc=cafeapp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