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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3.1절 기념으로 한편 더~~~♡
● 列國志 제48회
주혜왕(周惠王) 26년, 제환공은 동맹 제후들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토벌하러 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그때까지 초나라에 있던 신후(申侯)가 초성왕(楚成王)에게 말했다.
“정나라가 초나라에 복종한 까닭은, 초나라만이 제나라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정나라를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면, 신은 과군께 복명할 말이 없게 됩니다.”
초성왕이 신하들과 의논하자, 영윤 자문(子文)이 말했다.
“소릉의 회맹 때 허목공(許穆公)이 군중에서 죽어, 齊侯는 그를 가엾게 여겨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허나라는 제나라를 가장 잘 섬기고 있습니다. 왕께서 허나라를 공격하면, 제후들이 필시 구원하러 갈 것이고, 그러면 정나라의 포위는 절로 풀릴 것입니다.”
[제46회에, 허목공은 병중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소릉의 회맹에 도착했었는데, 그날 밤 훙거하였다. 제환공은 사흘간 머물면서 발상하고, 허나라로 하여금 후작의 예로써 장례 지내게 하였다.]
초성왕은 자문의 말에 따라, 친히 허나라를 토벌하러 가서 도성을 포위하였다. 제후들은 허나라 도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정나라를 떠나 허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그러자 초군은 퇴각하였다.
신후는 정나라로 돌아가서, 자신이 정나라를 구한 공이 있다고 의기양양해 하며 봉지를 늘여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문공(鄭文公)은 이미 호뢰 땅을 준 것만으로도 신후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여 봉지를 더해주지 않았다. 신후는 입으로는 원망하는 말을 내뱉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원한을 품었다.
다음 해 봄, 제환공은 또 군대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토벌하러 갔다. 陳나라 대부 원도도(轅濤塗)는 지난번에 초나라를 정벌하고 돌아갈 때 신후와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에, 정나라 대부 공숙(孔叔)에게 서신을 보냈다.
신후는 지난날 나라를 팔아 齊侯에게 아첨하여, 호뢰 땅을 상으로 받았습니다. 지금 또 나라를 팔아 초나라에 아첨하여, 그대의 주군으로 하여금 은덕을 저버리고 의리를 배신하게 함으로써 전쟁을 자초하여 그 화가 백성과 사직에 미치게 하였습니다. 신후를 죽이면 齊軍은 싸우지 않고 물러갈 것입니다.
공숙은 그 서신을 정문공에게 바쳤다. 정문공은 지난번에 공숙의 말을 듣지 않고 수지에서의 회맹 때 도망치듯 돌아옴으로써, 제군이 두 번이나 정나라를 토벌하러 오게 만든 것을 마음속으로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 잘못을 신후에게 돌렸다.
정문공은 신후를 불러 질책하였다.
“너는 초나라만이 제나라를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제군이 다시 쳐들어왔는데, 초나라의 구원병은 어디 있느냐?”
신후가 막 변명하려고 했으나, 정문공은 무사들에게 명하여 끌어내어 참수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수급을 상자에 담아, 공숙으로 하여금 齊軍 진영에 가서 바치고 사죄하게 하였다.
공숙이 제환공에게 말했다.
“과군께서는 지난번에 신후의 말을 잘못 듣고서, 군후와 우호를 맺지 못했습니다. 이제 삼가 신후를 참하여 신으로 하여금 막하(幕下)에 사죄하게 하였습니다. 군후께서는 용서해 주십시오.”
제환공은 평소에 공숙의 현명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나라와의 화평을 허락하였다.
제환공은 다시 영모(寧母) 땅에서 제후들과 회맹했는데, 정문공은 왕명 때문에 친히 회맹에 참석하지 못하고 세자 화(華)를 대신 보냈다.
[제47회에, 주혜왕은 정문공에게 밀서를 보내, 제나라 대신 초나라를 따름으로써 차자(次子) 대(帶)를 도와줄 것을 요청했었다.]
한편, 정나라 세자 화(華)와 그 아우 공자 장(臧)은 모두 정문공의 정실부인 소생이었다. 정문공은 처음에 부인을 총애했으므로, 화를 세자로 세웠다. 정문공은 후에 또 부인을 둘 얻었는데, 둘 다 아들을 낳았다. 정실부인은 총애를 점점 잃어가다가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또 남연(南燕) 길씨(姞氏)의 딸이 잉첩으로 정나라 궁중에 들어왔는데, 아직 문공을 모시지는 못했다. 어느 날 밤, 그녀의 꿈에 헌칠한 대장부가 나타나 난초를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백조(伯鯈)인데, 너의 조상이다. 이제 이 난초를 줄 테니, 너의 아들로 삼아 나라를 번창하게 하라.”
그리고 난초를 주었다. 꿈을 깨고 보니, 방안에 난초 향기가 가득하였다. 함께 지내는 다른 잉첩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그녀가 조롱하면서 말했다.
“귀한 아들 낳겠네?”
그날 정문공이 궁으로 들어와, 그녀를 보고 기뻐하자 곁에 있던 여인들이 서로 돌아보며 웃었다. 정문공이 웃는 까닭을 묻자, 꿈 얘기를 했다. 정문공이 말했다.
“그건 좋은 징조다. 과인이 그대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해주겠다.”
정문공은 난초꽃을 꺾어 오게 하여, 그것을 그녀의 허리에 채워 주며 말했다.
“이것으로 신표를 삼겠다.”
그날 밤, 정문공은 그녀를 불러 동침하였다. 그녀는 그날 임신을 하고, 뒤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난(蘭)이라 하였다. 그녀는 차츰 총애를 받아 연길(燕姞)이라 불렸다.
세자 화는 부군이 연길을 총애하는 것을 보고, 훗날 폐립의 일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은밀히 숙첨(叔詹)에게 의논하였다. 숙첨이 말했다.
“득실(得失)은 천명(天命)에 달려 있습니다. 세자께서는 효도만 하시면 됩니다.”
세자 화는 다시 공숙과 의논했는데, 공숙 역시 효도를 권하기만 할 뿐이었다. 세자 화는 불쾌한 기분으로 돌아갔다.
공자 장은 기이한 것을 좋아하여, 물총새 깃털을 모아 관을 쓰고 다녔다. 사숙(師叔)이 공자 장에게 말했다.
“그건 예에 어긋나는 복장이니, 공자께서는 쓰지 마십시오.”
공자 장은 그런 직언이 싫어 형에게 하소연했다. 그리하여 세자 화는 숙첨·공숙·사숙 세 대부에게 심중으로 불만을 갖게 되었다.
[제37회에, 숙첨·도숙·사숙을 정나라 사람들은 ‘삼량(三良)’이라 불렀다. 앞서 공숙이 신후의 수급을 바치고 사죄했을 때, 제환공은 평소에 공숙의 현명함을 알고 있었다고 하였다. 현명한 신하들에게 불만을 가진 세자 화와 공자 장은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정문공은 영모의 회맹에 세자 화를 대신 보내기로 했는데, 세자 화는 齊侯가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까 두려워 가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숙첨이 빨리 가라고 재촉하자, 세자 화는 심중으로 숙첨에 대해 더 원한을 품게 되었으며, 자신의 안전을 도모할 술책을 생각해냈다.
세자 화는 제환공을 뵙고서, 좌우를 물리칠 것을 청한 다음 말했다.
“정나라의 국정은 모두 설씨(洩氏)·공씨(孔氏)·자인씨(子人氏) 세 집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수지 땅에서의 회맹 때 정나라가 도망치듯 떠난 것도 실은 세 집안이 주도하여 행한 것입니다. 만약 군후의 도움으로 이 세 신하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정나라는 부용처럼 제나라를 섬기겠습니다.”
제환공이 말했다.
“허락하겠소.”
제환공이 세자 화의 요청을 관중에게 고하자, 관중이 말했다.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제후들이 제나라에 복종하는 까닭은 예의와 신의 때문입니다. 자식으로 부친의 명을 어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며, 우호를 맺으러 와서 자기 나라를 어지럽히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은 신의가 아닙니다.
그리고 신이 듣건대, 그 세 집안은 모두 현명한 대부들이어서, 정나라 사람들이 ‘삼량(三良)’이라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맹주를 귀하게 받드는 것은 인심을 따르기 때문인데, 인심을 거스르면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게 되면 반드시 재앙이 닥치게 됩니다. 신이 보건대, 세자 화는 장차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니, 주군께서는 그의 청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제환공이 세자 화에게 말했다.
“세자가 말한 바는 참으로 국가 대사이니, 세자가 군위에 오른 후에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겠소.”
세자 화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땀이 흘러 등이 다 젖었다. 세자 화는 제환공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정나라로 돌아갔다.
관중은 세자 화의 간사함을 미워하여, 그의 말을 정나라 사람에게 누설하였다. 그 말을 들은 정나라 사람이 먼저 달려가서 정문공에게 고하였다. 그때 세자 화가 돌아와 정문공에게 복명하면서 거짓으로 말했다.
“齊侯는 군주가 친히 오지 않았음을 불쾌하게 여겨 화친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초나라를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문공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불효막심한 놈이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다가, 이제는 어디서 감히 거짓말을 늘어놓느냐!”
정문공은 좌우에 명하여, 세자를 밀실에 가두게 하였다. 세자 화는 벽에 구멍을 뚫어 탈출하려고 하다가 발각되었고, 정문공은 그를 죽여 버렸다. 과연 관중이 예견한 바였다.
공자 장은 송나라로 달아났는데, 정문공이 사람을 보내 추격하여 도중에 죽였다. 정문공은 제환공이 세자 화의 음모를 들어주지 않은 은덕에 감복하여 다시 공숙을 제나라로 보내 사례하고 동맹을 청하였다.
호증선생이 시를 읊었다.
鄭用三良似屋楹 정나라는 삼량을 집의 기둥으로 삼았는데
一朝楹撤屋難撐 하루아침에 기둥을 철거하면 집은 지탱하기 어렵네.
子華奸命思專國 세자 화가 명을 어기고 나라를 마음대로 하려다가
身死徒留不孝名 몸은 죽고 불효자라는 이름만 헛되이 남겼도다.
이는 주혜왕 22년의 일이었다.
그해 겨울, 주혜왕의 병이 위독해졌다. 태자 정(鄭)은 혜후(惠后)가 변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두려워 하사(下士) 왕자 호(虎)를 제나라에 보내 어려움을 고하게 하였다.
얼마 후, 혜왕이 붕어하였다. 태자 정은 주공(周公) 공(孔)과 소백(召伯) 료(廖)와 상의하여 발상을 하지 않고, 제나라에 가 있는 왕자 호에게 사람을 보내 은밀히 알렸다. 왕자 호가 제환공에게 혜왕의 붕어를 고하자, 제환공은 조(洮) 땅에 제후들을 소집하였다. 정문공도 역시 동맹을 맺으러 왔다. 함께 삽혈한 제후는 齊·宋·魯·衛·陳·鄭·曹·許 8국의 제후였다.
8국의 제후들은 각각 표문을 지어 대부를 주왕실로 파견하였다. 그 여덟 명의 대부는, 제나라 대부 습붕(隰朋), 송나라 대부 화수로(華秀老),노나라 대부 공손 오(敖), 위나라 대부 영속(寧速), 陳나라 대부 원선(轅選), 정나라 대부 사숙(師叔), 조나라 대부 공자 무(戊), 허나라 대부 백타(百佗)였다. 8국의 대부들이 탄 수레가 연이어 도착하였는데, 그 위용이 아주 성대하였다. 그들은 천자에게 문안한다는 핑계로 왕성 밖에 집결하였다.
왕자 호가 먼저 가서 소식을 전하자, 태자 정은 소백 료를 대부들에게 보내 노고를 위로하고 발상하였다. 주공과 소공은 태자 정을 받들어 상례를 주관하게 하였고, 8국의 대부들은 각각 군명을 받들어 조문하였다. 상례를 마치고 주공과 소공이 태자 정을 왕위에 옹립하고 백관의 하례를 받았다. 그가 주양왕(周襄王)이다.
혜후와 태숙 대는 몰래 원통해 했지만, 감히 다른 뜻을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양왕은 다음 해에 개원하고, 열국에 그 사실을 알렸다.
주양왕 원년, 양왕은 봄 제사를 지내고 나서 주공 공을 제나라로 보내 제육을 제환공에게 하사하고 왕위에 추대한 공을 표창하라고 하였다.
제환공은 그 소식을 듣고, 제후들을 규구(葵邱) 땅에 소집하였다. 제환공은 규구로 가던 도중에 관중과 주왕실의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관중이 말했다.
“주왕실은 적서(嫡庶)를 분명히 구분하지 않아, 몇 차례 화란(禍亂)을 겪었습니다. 지금 주군께서는 세자의 자리를 비워두고 계신데, 빨리 세자를 세워 후환을 막으십시오.”
제환공이 말했다.
“과인에게 아들이 여섯 명 있는데, 모두 서출(庶出)입니다. 나이로 보면 무휴(無虧)가 첫째이지만, 현명함으로 따지자면 소(昭)가 첫째입니다. 장위희(長衛姬)가 과인을 가장 오래 섬겨, 과인은 이미 그녀에게 무휴를 세자로 세우겠다고 허락하였습니다. 역아(易牙)와 수초(豎貂)도 누차 무휴를 세자로 세우라고 말했는데, 과인은 소의 현명함을 사랑하여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부가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제33회에, 환공은 왕녀와 혼인하고, 徐·蔡·衛 세 나라에서 각각 그 딸을 잉첩으로 보내왔다. 왕녀가 정실부인인데 자식이 없었고, 서희도 자식이 없었다. 채희는 채나라로 쫓겨 갔는데, 그 얘기는 제46회에 있었다. 위나라에서 잉첩으로 온 여인이 위혜공(衛惠公) 삭(朔)의 딸로서 장위희이다. 제39회에, 위나라를 정벌하러 가서 위의공(衛懿公)의 여동생을 첩으로 맞이하였으니, 그녀가 장위희의 동생인 소위희(少衛姬)이다. 앞서 말한 적은 없고 나중에 나오는데, 그 외에도 부인이 네 명 더 있다. 공자 소는 정희(鄭姬)의 소생이다.]
관중은 역아와 수초가 간사하고 아첨을 잘하는 자들임을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이 평소에 장위희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에, 훗날 무휴가 군위에 오르면 안팎으로 무리를 이루어 필시 국정을 혼란케 할 것을 염려하였다. 그에 비하면, 공자 소는 정희(鄭姬) 소생이었기 때문에, 공자 소가 세자가 되면 정나라와 우호를 맺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관중이 대답하였다.
“패업을 계승하려면 현명한 자가 아니면 안 됩니다. 주군께서 이미 소의 현명함을 알고 계시다면, 그를 세자로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무휴가 자신이 장자임을 내세워 다투고자 할 것인데, 그것이 걱정입니다.”
“周王의 지위도 주군께서 정하셨습니다. 이번 회맹 때 주군께서 제후 가운데 가장 현명한 사람을 택하여 소를 부탁하시면,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구에 도착하자, 제후들도 모두 모이고 태재 주공 공 역시 당도하여, 각기 관사로 들어갔다.
그때 송환공(宋桓公) 어열(御說)이 훙거하고, 세자 자부(茲父)가 공자 목이(目夷)에게 군위를 양보하였는데, 목이는 수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부가 즉위하였으니, 그가 송양공(宋襄公)이다. 양공은 비록 상중이었지만, 맹주의 명을 어길 수가 없어 상복을 입은 채로 회맹에 참여하였다.
관중이 환공에게 말했다.
“송나라 세자는 군위를 양보할 줄 아는 미덕을 지녔으니, 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상복을 입은 채로 회맹에 참여하였으니, 제나라를 섬기는 자세가 매우 공손합니다. 세자의 일을 그에게 부탁할 만합니다.”
[과연 송양공은 관중이 판단한 대로 현명한 인물일까? 송양공을 기억해 두라.]
환공은 그 말에 따라, 관중으로 하여금 은밀히 송양공의 관사로 가서 자신을 뜻을 전하게 하였다. 관중이 제환공의 뜻을 전하자, 송양공은 친히 제환공을 뵈러 왔다. 제환공은 송양공의 손을 잡고서 간곡하게 공자 소를 부탁하였다.
“훗날 군후께서 주장하셔서, 공자 소가 사직의 주인이 되게 해주십시오.”
송양공은 감히 그런 막중한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제환공이 자신을 믿고 부탁하는 그 마음에 감복하여 마침내 허락하였다.
회맹하는 날, 제후들은 모두 의관을 정제하고 모였는데, 허리에 찬 패옥이 부딪히는 소리가 쟁쟁하였다. 제후들은 천자의 사신이 먼저 단에 오르도록 양보한 다음, 차례대로 단 위로 올라갔다. 단상에는 천자의 빈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제후들은 북면(北面)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절을 올렸는데, 마치 조정에서 천자를 알현하는 것과 같은 거동이었다. 절을 마치고, 제후들은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다.
태재 주공 공이 천자가 하사한 제육을 받들고 동쪽을 향해 서서, 신왕의 명을 전했다.
“천자께서 문무(文武)의 일에 바빠, 저를 보내 백구(伯舅)에게 제육을 하사하셨습니다.”
제환공이 제육을 받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자, 태재 공이 만류하며 말했다.
“천자께서 다시 명을 내리시길, 백구는 연로하여 힘들 것이므로 한 등급을 올려 당에서 내려가 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환공이 그 말에 따라 계단을 내려가지 않자, 관중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천자께서 그런 명을 내리셨다 하더라도, 신하로서 공경하는 예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에 환공이 대답하였다.
“천자의 위엄은 조금이라도 어길 수 없으니, 소백(小白)이 감히 왕명을 빙자하여 신하로서의 직분을 페할 수 있겠습니까?”
환공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머리를 조아려 재배한 다음, 단상으로 올라가 제육을 받았다. 제후들은 모두 제환공이 예를 지키는 것을 보고 감복하였다.
제환공은 제후들이 해산하기 전에 다시 맹약을 밝히고, 주나라의 오금(五禁)을 낭송하였다.
“샘을 막지 말 것. 곡식 매매를 막지 말 것. 아들을 바꾸어 세자로 세우지 말 것. 첩을 본처로 삼지 말 것. 부인이 국사에 참여하게 하지 말 것.”
그리고 제환공은 또 맹세하였다.
“무릇 우리의 동맹은 우호를 위함이노라.”
문서로 작성하여 희생 위에 놓고, 사람을 시켜 포고하게 하였다. 다시 희생을 죽이고 삽혈하지는 않았지만, 신복(信服)하지 않는 제후가 없었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紛紛疑叛說春秋 의심과 반란이 분분했던 춘추시대라고 하지만
攘楚尊周握勝籌 楚를 물리치고 주왕실을 높이는 뛰어난 계책이 있었다.
不是桓公功業盛 제환공의 강성한 공업(功業)이 아니었다면
誰能不歃信諸侯 누가 삽혈하지 않고도 제후들을 신복시킬 수 있었을까?
회맹의 일을 마치고, 제환공이 문득 태재 공에게 말했다.
“과인이 듣건대, 삼대(三代)에 봉선(封禪) 의식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절차가 어떠한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삼대’는 하·은·주 세 왕조를 말한다.]
태재 공이 말했다.
“옛적에 봉(封)은 태산(泰山)에서 행하고, 선(禪)은 양부산(梁父山)에서 행했습니다. 태산에서 행한 봉은,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금가루로 글을 써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 하늘의 공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니, 높은 산 위에 또 흙을 쌓아 그 높음을 상징했던 것입니다.
양부산에서 행한 선은, 땅을 쓸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땅의 낮음을 상징했습니다. 부들로 수레를 만들고 마른 풀과 짚으로 깔개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흙으로 덮습니다. 그것은 땅의 공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삼대는 천명을 받아 일어났고 천지의 도움으로 융성하였기 때문에, 그런 보답의 의식을 행했던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하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을 정하고, 은나라는 박(毫)에 도읍을 정했으며, 주나라는 풍호(豐鎬; 호경)에 도읍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태산과 양부산은 모두 도성에서 아주 멀었는데도, 봉선 의식을 행했습니다. 지금 그 두 산은 과인의 봉토 안에 있으니, 과인은 천자의 총애를 받들어 그 의식을 행하고자 합니다. 여러 군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태재 공이 제환공을 보니, 의기양양하여 뽐내는 기색이 역력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응답하였다.
“군후께서 하시겠다는데, 누가 감히 안 된다고 말하겠습니까!”
제환공이 말했다.
“내일 여러 군후들과 다시 의논합시다.”
제후들은 모두 해산하였다.
태재 공이 관중을 찾아가 말했다.
“봉선의 일은 제후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부께서는 왜 한 말씀 간하여 중지시키지 않았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우리 주군께서는 승벽(勝癖)이 강하여, 은밀히 간하여 그만두게 할 수는 있지만 공개적으로 바로잡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관중은 밤중에 환공을 찾아가 물었다.
“주군께서 봉선을 행하겠다고 하신 것이 진심입니까?”
환공이 말했다.
“왜 믿지 않습니까?”
“옛날에 봉선을 행한 사람은, 무회씨(無懷氏)로부터 주성왕(周成王)에 이르기까지 72명이었는데, 모두 천명을 받은 후에 봉선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무회씨는 상고 시대의 제왕으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환공이 화난 기색으로 말했다.
“과인은 남쪽으로 초나라를 정벌하여 소릉에 이르렀고, 북쪽으로는 산융을 정벌하고 영지와 고죽국을 평정하였으며, 서쪽으로는 사막을 건너 태항산(太行山)에 이르렀는데, 그 어떤 제후도 나를 거스르지 못했습니다. 과인은 병거지회(兵車之會)를 세 번, 의상지회(衣裳之會)를 여섯 번, 모두 아홉 번 제후들을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삼대가 비록 천명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보다 더 낫겠습니까? 태산에서 봉을 행하고 양부산에서 선을 행하여, 자손들에게 보여준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병거지회’는 병거를 거느리고 회맹하는 것이니, 무력으로써 회맹하는 것이다. ‘의상지회’는 갑옷이 아닌 평복을 입은 평화적인 회합을 말한다. 제35회에, 북행에서 첫 번째 회맹할 때 관중의 제안으로 의상지회를 하였다.]
“옛날에 천명을 받은 사람은 먼저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난 후에 제물을 갖추어 봉선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에 그 전례가 매우 융성했습니다. 호상(鄗上)에서는 가서(嘉黍)가 생겨났고, 북리(北里)에서는 가화(嘉禾)가 생겨남으로써 시절이 융성했었습니다. 강수(江水)와 회수(淮水) 사이에서는 띠풀 하나에 등줄기가 셋이 있는 것이 생겨나 ‘영모(靈茅)’라고 불렸습니다. 그건 모두 왕자(王者)가 천명을 받았을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해에서는 비목어(比目魚)가 나타났고, 서해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나타났는데, 모두 상서로운 동물로서 부르지 않았는데도 15번이나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모두 사서(史書)에 기록되어, 자손들이 영예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봉황(鳳凰)이나 기린(麒麟)도 오지 않고, 솔개나 부엉이만 많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가화도 생겨나지 않고 쑥만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봉선 의식을 행하려 하신다면, 열국의 식자(識者)들이 주군을 비웃을 것입니다.”
[‘가서’는 한 줄기에 여러 개의 이삭이 달린 기장이고, ‘가화’는 한 줄기에 여러 개의 이삭이 달린 벼이다. ‘비목어’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물고기로 암수가 나란히 붙어야 헤엄을 칠 수 있고, ‘비익조’는 눈도 하나고 날개도 하나여서 역시 암수가 짝을 짓지 않으면 날 수 없다고 한다. 모두 상상의 동물이며, 남녀 간의 사랑이 두터움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기린’도 봉황과 마찬가지로 상상의 동물이다.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이리의 이마, 말의 발굽을 가진 모양인데, 머리에는 살로 된 뿔이 있고, 등의 털은 오색이며 배의 털은 누렇다고 한다. 살아있는 풀을 밟지 않고 생물을 먹지 않는 어진 짐승으로, 성인(聖人)이 세상에 나면 나타난다고 한다. 용·거북·봉황·기린을 ‘사령(四靈)’이라 하여, 상서로운 동물로 여긴다. 훗날 아프리카의 목이 긴 동물에게 이 이름을 붙였다.]
환공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다음 날, 환공은 봉선 의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제환공은 귀국한 뒤, 자신의 공이 비할 바 없이 높다고 여기고 궁궐을 개축하여 더욱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그리고 수레와 복식도 천자에 비할 만큼 화려하게 하여, 제나라 사람들은 분수에 넘치는 것이 아니냐고 뒷공론이 분분하였다.
관중은 부중(府中)에 3층의 누대를 지어 ‘삼귀대(三歸臺)’라고 하였는데, 인민이 귀부하고 제후가 귀부하며 사이(四夷)가 귀부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또 담을 쌓아 문과 문 사이를 가로막음으로써 안과 밖을 가리고, 반점(反坫)을 설치하여 열국의 사신들을 대접하였다.
[‘반점’은 제후들이 회견할 때 헌수한 술잔을 엎어놓는, 흙으로 만든 받침이다. 문 사이에 담을 쌓아 안팎을 나누는 것이나, 반점을 사용하는 것은 모두 제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포숙아가 그런 일에 의문을 품고 관중에게 물었다.
“주군이 사치하니 자네 역시 사치하고, 주군이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니 자네 역시 분수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구먼.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관중이 말했다.
“주군께서 애써 노력하여 공업을 성취하셨으니, 잠시의 쾌락을 누리실 만하지 않는가? 만약 예로써 제약을 가하면, 주군께서는 너무 힘들어 도리어 태만해질 것이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주군에 대한 비방을 나누어 받으려는 것일세.”
포숙아는 입으로는 알았다고 했지만, 심중으로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관중은 삼귀(三歸)가 있었고, 관중의 가신들은 공무를 겸하지 않아 많은 가신을 거느렸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군주가 담을 쌓아 문을 막았는데, 관중 또한 담을 쌓아 문을 막았다. 군주가 다른 군주와의 회견 때 반점을 사용하였는데, 관중도 또한 반점을 사용하였다.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른다고 할 것인가?”]
한편, 태재 공은 규구에서 주나라로 돌아가는 도중에 회맹에 참석하러 가는 진헌공(晉獻公)을 만났다. 태재 공이 진헌공에게 말했다.
“회맹은 이미 끝났습니다.”
진헌공은 발을 구르며 한탄했다.
“폐읍은 거리가 멀어 의상지회의 성대함을 보지 못했으니, 인연이 없는가 봅니다.”
태재 공이 말했다.
“군후께서는 한탄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齊侯는 자신의 공이 높은 것을 믿고 교만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릇 달이 차면 이지러지고, 물이 차면 넘치는 법입니다. 제나라가 이지러지고 넘치는 것을 머지않아 볼 수 있을 것이니, 회맹에 참여치 못했다고 어찌 상심하십니까?”
진헌공은 수레를 돌려 서쪽으로 돌아갔는데, 도중에 병을 얻어 晉나라에 도착하자 훙거하였다. 이로부터 晉나라는 크게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제5회에, 주유왕(周幽王) 시절 견융의 침입을 받았을 때 晉侯 희구(姬仇)가 구원병을 이끌고 온 이후, 晉나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다가, 제39회에, 비로소 晉나라의 역사와 진헌공에 대해 잠시 언급했다가 또 지금까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晉나라는 제환공의 회맹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금 느닷없이 진헌공이 출현한다. 이제 晉나라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려는 것이다.]
첫댓글
덕분에. . . 고맙습니다
골드훅(운영위원) 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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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능 주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