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중선(鬧中禪)은
시끄러울 료(鬧)' 자 '가운데 중(中)' 자 참선 선(禪)' 자—
시끄러운 가운데 참선하는 것을 요중선(鬧中禪)이라
그러고.
고요한 가운데 하는 참선, 정중선(靜中禪)
그건 인자 조용한 선방이나 조용한 방에서 아무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아니한 조용한 데 앉아서 가부좌를 하고
죽비를 치고 그렇게 앉아서 공부하면 그것을 정중선이라 그러고.
밖에 나와서 일하면서 또 차를 타면서 걸어가면서 그런 가운데에 '이뭣고?
이렇게 자꾸 그 시끄러운 속에서 공부를 다져 나가면
그걸 요중선이라 그러는데
조용한 데에서 공부를 익히는 것은 시끄러운
속에서 요중선을 하기 위해서 익히는 공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괜찮습니다.
만날 조용한 데서만 해야만 공부가 잘된다고
생각하시면 그것은 공부에 소극적인 방법을
취하는 사람이라 이 공부가 매카리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시끄럽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는 것인데, 밤낮 조용한 데서만 익혀야만 공부가 좀 된 것 같고 그래야만 공부가 잘된다고 생각하면은 그 사람은 정말
생사를 당적할 만한 그러한 힘 있는 공부에 힘을 얻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초학자는
조용한 데에서 기초를 닦고, 시간 있는 대로
조용한 데에서 공부를 해야는 하지마는,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도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래서 참선하는 데 옆에서 말을 하던지 또 애들이 떠들던지 그러더라도 아! 공부 좀 헐라는데 시끄럽게 떠든다'고, '저것이 마구니가 와서 그런다'고 신경질을 팩!
내고 그럴 것이 아니라
이 시끄러운 속에서 오히려 정신을 바짝 챙겨가지고
화두를 한 번 떠억 들어라.
이런 식으로 마음을 써 나간다면 일 자체를 싫어하고
꺼려하고 그렇게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밤낮 조용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조끔 뭐 일할 거리가 생기면은 짜증이 나고 심술이 나고 불평이 나고 그런데, 일을 만나면 일한 속에서도 하고 조용한 시간에는 조용한 데서 하고,
명두래명두타(明頭來明頭打)
밝은 놈이 오면 밝은 놈을 치고
암두래암두타(暗頭來暗頭打)
어둔 놈이 오면 어둔 놈도 치고
사방팔면래연가타(四方八面來連架打)
사방팔면에서 오면은 작대기를 연거푸 치고
허공래선풍타(虛空來旋風打)라,
허공에서 오면은 허공으로 오면은 바람을 돌려서 친다.
이건 보화존자의 법문입니다마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가면,
납자스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지어나가시면
그것이 바로 적극적인 수행 노선이라 훨씬 몸도
건강해지고 정진도 훨씬 더 힘 있게 되어 갈 것입니다.
더욱이 세속에서 사시는 신남신녀여러분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께 '보살님'이라
한 이름을 붙여서 불러온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첫댓글 모든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며
우주법계에 깨달은 부처님으로 가득차기를 발원합니다_()_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精進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