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 56] 신명기 19장-21장 묵상
ㅁ도피성(신명기 19:1-13)
"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창 9:6)
곧 그 피의 원수를 갚으리라는 것은
노아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던 계명들 중의 하나였다.
이제 우리는 신19장에서 피와 피에 관한 율법,
또 피살자와 살해자의 피에 관한 율법들,
또한 그런 문제에 관한 유효한 예비 조항들을 읽게 된다.
도피성은 고의적인 살인이 아니고
우연히 불운으로 일어난 살인자가
죽임을 당치 않도록 하기 위한 보호 조직체였다.
이 도피성들의 설치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 있으며(출 21:13),
거기에 관한 율법은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민 35:10 이하).
여기에도 그것이 반복해서 언급되어 있다.
세 가지 내용으로 지시사항이 나타나 있다.
우선 이 목적을 위해 가나안에 있는 세 성읍들을 지적한다.
모세는 이미 그가 정복지로 알고 있는 요단 건너편에 있는 세 성읍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는 그들이 그 국토의 다른 지방에도 설치해야 될 때는
그들에게 세 성읍을 더 지정하라고 명하고 있다(신19:1-3,7절).
그 땅을 가능한 한 동일한 넓이의 세 구획으로 나누되
도피성은 각 구획에서 중심되는 부분에 있게 하여,
그 땅의 모든 구석에서도 같은 거리상에 있게 해야 했다.
메튜 헨리는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멀리 떨어진 도피성이 아니라고 했다.
즉 우리는 도피성을 찾아 하늘로 올라가거나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말씀이 우리 가까이에 있으니 그 말씀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롬 10:8).
복음이 우리 문에 다가와서 구원을 전달해 주며 받아들이라고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범죄인의 도피를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은 더욱 편하게 해야 한다.
아마 그들은 이들 도피성으로 갈수 있는 뚝길이나 넓은 가도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통치자들은 연중 어떤 날을 정하여
이길을 잘 보수하고 거침돌들이 있으면 모두 제거했으며
부숴진 다리는 수선했는지 살피기 위해 사자를 파송했고,
두 갈래 길이 있으면 거기에다 바른길을 지적해 주는
이정표를 만들어 세워 큰 글자로 미클랏, 미클랏 - 도피성,
도피성이라고 새긴 간판을 달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사신을 파견했다고 한다.
이와같이 복음 전파자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로 향한 길을 항상 가르쳐 주어야 한다.
사람이 이웃을 어떤 돌연한 격정이든지
혹은 살의를 품은 계획적인 살인이 아니라
단지 우연히, 예를 들어 도끼를 휘두르다가
사람이 가까이 있으므로 해서 살인한 경우라고 가정되어 있다.
이런 모든 경우는 그 경우에 따라 고려되어야 하고
정상에 따라 판결되어야 한다고 생각될 수 있다.
인간 생명이 얼마나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우리의 죽음이 얼마나 종종 우리를 쉽게 찾아오는가를 생각하라.
"인생은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고 했다(전 9:12)
살해된 사람들의 친척들이 그들의 친구에 대한 애정과
공의에 대한 열의 때문에 보복의 피를 흘릴 수도 있다고 상징되어 있다.
비록 율법이 다른 사람을 보복으로 죽이는 것을 허락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피의 보복자들, 곧 친척의 피가 그들의 마음에 격분을 일으켜
그 살해자를 죽일 수도 있으며 비록 그가 우연이였을지라도
그리고 그가 죽임을 당할 만한 이유가 없다 할지라도
도피의 성에 이르기 전에 그 보복자들이 그를 죽이면
그는 살인자로 헤아림을 받지 않는다는 허락 사항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살해자의 죄에 대하여 곧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게 하셨다.
만일 단순한 과실치사가 그를 위험에 그대로 노출시켜 둔다면
확실히 오랜 원한이나 돌연한 격정으로부터
어떤 사람의 피에 대한 고의적인 횡포가 있게 되고
그는 결국 함정에 빠지게 되고 아무도 "그를 막지 못하게 된다"(잠 28:17).
그러나 신약 성경은 이 율법이 말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살인자의 죄가 극악하고 무서운 것으로 말하고 있다.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고 했다(요일 3:15).
만일 피의 보복자가 다만 우연히 흘린 피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보복을 하겠다고 부당하게 요구할 때,
그런 때에는 도피성이 그 살인자를 보호해 주게 되어 있다.
무지에서 오는 죄도 사실상으로 하나님의 진노 앞에 들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과 회개로 나아가면
거기에는 구원의 길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박해자였던 바울도 자비를 얻었다. 왜
냐하면 모르고 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셨다.
하나님께서 이후 그들의 영토와 신앙의 힘을 확장하셔서
그 모든 곳이 모세의 율법의 통치하에 들어와
그 율법의 혜택을 받게 될 때에는 세 도성을 더 설정하려고 했다(8-10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들에게 약속하신 바와 같이
그들의 국경을 확장하시겠다는 은혜스러운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불순종하면 그 약속은 취소될 것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조건이 반복되고 있다.
즉 만일 그 약속이 이행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너희가 이 모든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것을 주실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주시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정복지에 세 도성을 더 지정하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국경이 확장되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비록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자요 보호자이며
또 모든 생명을 돌보시는 분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피는 특별히 그에게는 귀한 것이다(시 72:4).
박학한 에인즈워드(Ainsworth)에 의하면
유대 학자들은 자기들의 국경이 확장된다는 약속은
결코 성취되지 않았음을 고백하라고 했다.
그래서 이 세 도피성을 추가할 기회는 영원히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기를 거룩하신 하나님
은 허탄하게 그것을 명하시지는 않았다.
곧 메시야의 날에 그 오실 왕이 이 여섯 도성 외에
다른 세 도성을 추가하실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이
영적인 성취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으며
복음의 영역에 따라 이스라엘은 그 약속대로 확장된 것을 알고 있고,
그리스도, 즉 "우리의 의" 가 되시는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에게로 피하는 자들에게 그 도피성은 마련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도피성은 고의적인 살인자들의 은신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때에는 그를 붙잡아 내어 피의 보복으로 넘겨주어야 한다(신19:11-13절).
이것은 고의적인 살인은 결코 법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죄를 짓고 "그 죄악 중에 계속 행하는
" 뻔뻔스런 죄인들을 위한 도피처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짖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히 10:26).
죄를 범하고 그 죄에서 떠나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자들은
그 안에서 안식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죄 안에서 머물면서
그리스도에게 피난처를 찾으려고 하면 얻을 수 없다. 아멘.
- 1년 1독 성경통독 학교, 꿀송이 보약 큐티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 <2025년2월25일,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