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늦게 이 곡을 발견하여 올립니다.
어버이날이라고 집에 찾아가 뵙지도 못하고
전화만 띡- 드렸습니다. 목요일쯤에나 찾아가 뵈리라고...
항상 바쁘다는 핑계를 둘러대지만,
어머니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막내자식을 기다리실 것입니다.
1. 시인과 촌장(1981년) 오종수와의 듀엣 짝사랑, 님타령등이 실려 있습니다. 님타령은
피버스의 싱어였던 이명훈이 불러 더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하덕규 본인이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 음반이기도 합니다만
81년대 초반의 음반으로서는 꽤 들을만 하고 이때의 시인은 詩人입니다.
2. 하덕규 독집(1983년) 진달래, 꽃을 주고 산 사랑등이 실려 있습니다.
3. 시인과촌장(1986년) 평화(비둘기) 컨셉 앨범 형식의 흔히들 이야기 하는 1집입니다.
시인이 市人으로 바뀌면서 이전 앨범과는 다르게 자신의 삶과 주변의 삶을 조금 아우르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낭만적 목가적 분위시에서
모던 포크로 넘어오는 단계로 하덕규 특유의 재능이 잘 표현 된 앨범인데 아쉽게 그의 면모는 이 앨범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 앨범 이후에
서서히 그의 종교세계에 근접하는 음악세계로 변해갑니다. 80년대 중반 자아적 포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포크 가수
였는데....
이후에 음반은 잘 아시리라....
우리노래전시회II 옴니버스에 실려 있는 기쁨보리떡(시인과촌장 편집시디에 실려 있습니다. 편집시디가 3장이라
잘 찾아야 합니다)이 있으며 같은 앨범에 소리두울이 부른 코스모스는 하덕규의 번뜩이는 재치를 잘 나타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참고가 되셨기를 출처 : 윈드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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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보리떡
하덕규
어머니 걱정마세요 이제 꽃밭이 열리고 맑은 꽃들은 기지개를 켤테니까요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봄이 정말 와 준다면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요 그렇다면 돌아갈 여비도
마련해야니까 노을에게 몰래 부탁도 하고요
기쁨 고향 방앗간엔 어머니 좋아하시던 웃음보리떡도 해두라지요
어머니 걱정마세요 기다림이 오래 되면 착한 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요
그렇다면 돌아갈 여비도 마련해야니까 노을에게 몰래 부탁도 하고요
기쁨 고향 방앗간엔 어머니 좋아하시던 눈물보리떡도 해두라지요
어머니 걱정마세요 기다림이 오래 되면 착한 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요 고향으로
돌아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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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촌장 <푸른 돛>(1986년)
1980년대가 남긴 소중한 음악유산 중의 하나가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 '시인과 촌장'이다. 싱어송라이터 하덕규와 기타리스트
함춘호, 둘의 이상적 제휴가 만들어낸 시인과 촌장은 어지럽고 일그러져가는 시절에 투명한 소리와 시적(詩的)인 메시지로 당대 허(虛)했던 음악
감상자의 가슴을 매만지며 감동의 울림을 빚어냈다.
팀의
작가인 하덕규의 말에 따르면 동시대 록 밴드 '들국화'의 통쾌한 사운드와는 길이 다른 나지막한 사운드의 접근법이었다. (하덕규는 이전에
남궁옥분의 '슬픈 재회' 그리고 1980년대의 수작 포크송으로 기록되는 '한계령'을 써서 이미 싱어송라이터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
나지막함은 세태에 굴복하는 패배주의적인 연약함이 아니라 자기성찰을 통해 비상을 꿈꾸는 내면의 꿈틀거림으로 표현되었다. 들국화가 위로 솟구쳐
올랐다면 그들은 속으로 파고들었다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1986년에 발표된 이 앨범을 시인과 촌장의 처녀작으로 여기지만 실은 하덕규는 오종수와의 라인업으로 이미 1981년에 서영은의
단편소설의 제목을 빌린 '시인과 촌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는 팀의 2집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하덕규는 함춘호와 짝을 이룬 이
회심작에서 그 때까지 자신이 바라던 음악의 정점 이를테면 격동의 1980년대를 살아간 젊은 세대의 고민, 갈등 등 사유 일반의 음악적 결정체를
일궈낸다.
얼핏
그 은은하고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문학적 승화로 기억되곤 하지만, 그 밑에는 리얼리즘의 알레고리들이 도처에 잠복해 해석에 따라선 '저항적
표출'로도 볼 수 있다. 그 시대에 대한 예술적이지만 한편으로 리얼한 기록이기도 한 셈이다. 앨범을 여는 첫 곡 '푸른 돛'에서 이미 그 '더블
판타지'의 프리즘이 확인된다. '모두 억척스럽게 살아왔어/ 솜처럼 지친 모습들/ 하지만 저 파도는 저리 드높으니/ 아무래도 친구, 푸른 돛을
올려야 할까...'
여기에서 하덕규는 수록곡 '비둘기에게' '떠나가지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이 말해주듯 전체를 잇는 주제어로 비둘기를
삼아, 혼탁한 시절에 무뎌지지 않는 불변의 자아와 지고의 순수를 갈구한다. '비둘기에게'에서 그는 '천진난만하게 사는 나를/ 맥 빠진 눈을 가진
나를/ 부탁해, 부탁해, 부탁해...' 라고 절규한다.
함춘호의 기타연주는 그의 언어를 더욱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얼음무지개' '풍경' 등의 곡에서 그는 물처럼 흐르면서
살포시 감겨오는 어쿠스틱 연주로, 때로는 강한 톤의 일렉트릭 기타솔로로 전체 사운드를 세련되게 채색해놓았다. '말하는' 기타가 따로 없을
것이다.
하덕규도 나중 “그가 없었다면 2집 앨범은 안 됐을 것이다. 그의 기타가 빛나는 앨범이다. 난 그때 내 노래를 연주와
편곡으로 풀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함춘호였다!”고 술회한다. 대중들이 강렬하게 기억하는 시인과 촌장도 2집의 하덕규 함춘호 라인업이었다.
그 대중들의 기억에 부합하듯 2000년, 하덕규와 함춘호는 14년 만에 다시 만나 < The Bridge >이란 타이틀의 컴백 앨범을
만들었다.
'고양이' '진달래' '푸른 돛' '매'와 같은 곡은 하덕규의 단아하면서도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 함춘호의 기타언어가
완벽하게 결합한 산물이다. 갖가지의 아기자기한 실험들이 돋보이는 '고양이'와 '매' 정도만으로 앨범은 거뜬히 송라이팅의 걸작 서클의 문을 연다.
라디오에서는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사랑해요라고 쓴다' 하는 익숙한 노랫말이 등장하는
'사랑일기'가 줄기차게 사랑을 받았다. 1988년의 3집 앨범 '숲'에 수록되어 있고 나중 조성모에 의해 리메이크된 '가시나무'와 함께 그들
노래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 바로 '사랑일기'다. '풍경'은 2004년 자연을 강조한 한 아파트 CF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지금의
기준에서도 드높은 서정적 미학이 재확인되었다.
서정성으로 쏘아올린 80년대 내면적 포크의 걸작. 포크는 언어의 예술이며, 시대언어의 장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언어와
어쿠스틱 기타와의 악수라는 포크의 패턴이 갖는 역사적으로 장구한 흡수력을 이만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앨범도 없다. 실로 '노래가 있는
풍경'이다. 마음만 갖춰진다면 지금도 그 고감도 가사와 연주는 어둠 속의 등불처럼 은은히 빛을 발한다.
2005년 9월
임진모(jjinmoo.izm.co.kr) |
80년대 중반에 라디오 깨나 들었거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떤날'이란 그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포크계의 거성 조동진의 동생 조동익과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함께 만들었던 듀오로 티비에 한 번 출연 안하고 당시 17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운 기묘한 그룹이다. 대중적 명성은 없었으되 매니아 층이 뚜렷하게 존재하여 지금도 '어떤날'을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함께
아는 노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친해지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그룹이었다.
오늘은 '어떤날' 이야기를 할것은 아니었는데...
여하튼 이시기에 이 비슷한 감성의 듀오가 한 팀 더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시인과 촌장' 이었다.(도시
시자와 시골 촌자를 써서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이라는 뜻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되겠다.)
이 시인과 촌장이 어떤날하고 비슷한 이미지로 다가갔던 결정적 이유는 맴버 중 하나였던 함춘호가 빠지고
어떤날의 맴버들이 앨범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1981년 첫번째 앨범과 1986년의 '푸른돛' 앨범을 만들때 활동했던 맴버(누가 시인이고 누가 촌장인지는
모르겠다.)였던 함춘호가 군에 입대하게 되어 #$시인과 촌장#$의 불세출의 히트작 "숲"이란 앨범의 프로듀서를 앞서 말한 조동진이 맡고
악기파트를 이병우가 맡아 제작을 하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말 그대로 '현대적'인 편집기술과 악기 배치로 많은 음악 팬을 만들었던 조동진은
자기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내어 앨범을 제작했고 거기에 시집까지 출간한 하덕규의 노랫말과 아름다운 맬로디가 어울려 한 장의 명반을 탄생시켰던
것이었다.
이때 군대를 간 함춘호는 제대 후 우리나라의 세션기타리스트(음반만들때 기타 쳐주는 사람)로는 손무현과 함께
최정상급 연주자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숲'이라는 앨범보다는 "푸른 돛"이라는 앨범이 나에게는 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함춘호의 거친 슬라이드 기타와 압도적 힘에 하덕규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어우러져 독특한 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앨범이었다. 하덕규는 이후 기독교에 귀의 하여(젊었을때는 한 대마 했다고 본인이 말했었다.) 찬송을 열심히 부르고 다니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나같은 광팬에게는 너무나도 아까운일!
어머니와 함께 귀향을 준비하는 시인과 촌장의마음은 어땠을런지 함께 들어보자.
작성자 : 김성회 [anamkim] - 경기고 동문회
사이트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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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머님.!!!!!!! 그리움을 말로 해야 아시지요. 저는 그리움을 가만이 봅니다. 그래 저는 불효 자식 입니다. 이 불효 자식을 어머님은 한없이 한없이 사랑 합니다.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