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더쿠 https://theqoo.net/square/3356992706
1. 양녕이 비행을 저질렀을 때마다 자기는 말없이 공부함+고자질
첫째로 세자가 기행과 방탕함으로 입지가 약화되어 가고 있을 때에 맞추어 충녕대군이 공적인 자리에서 총명함을 드러내었다. 이 때마다 어김없이 태종이 칭찬하고 신하들이 칭찬하는 분위기로 흘렀고 이는 세자의 심기를 많이 건드렸다. +이때 양녕이 빡쳐서 ㅈㄹ한 적이 많은데 그 어록 모음
양녕: 네가 그랬지? 네가 꼰질렀지 색기야?, 양녕: 꼰지를 시간에 잠이나 쳐 자라, 넌 책만 읽어서 돼지, 내가 왕되면 너 가만 둘 줄 아냐? 등 쌉소리 파티
2. 양녕한테 대놓고 디스하면서 동시에 아빠한테 큰형의 비행을 지속적으로 고자질
둘째로 세자(양녕)의 망동에 노빠꾸로 디스함. 매형인 이백강(태종의 장녀인 정순공주의 남편)이 거느린 기생을 세자가 데려가려 하자 매형 첩이랑 같이 뭐하는 짓이냐고 꾸짖으며 "할머니(신의왕후 한씨)의 제삿날에 소인배들하고 어울려서 놀다니 이건 또 뭐하는 짓이냐?"라고 한 것이 대표적임. 결정적으로 삼촌인 정종의 첩 초궁장 뺏어간 거, 문제였던 신하의 첩을 강제로 품고 양녕의 딸까지 낳은 어리도 세종이 태종한테 고발함. 또 한번은 "나 새 옷 장만했다."라고 자랑하는 세자에게 먼저 네 인성부터 갈고 닦으라고 충고했는데 옆에 있는 신하들도 충녕대군의 말이 맞다며 모두 세자를 욕하는 등 세자의 속을 있는 대로 긁었음. 1달 뒤 긁힌 세자가 태종에게 "그래봐야 말만 번지르르하지 충녕은 심약한 놈이 틀림없다"고 헐뜯자 태종이 "충녕, 그 아이가 겉으로는 유약해도 결단력에서 있어서 당할 자가 없다!"라고 오히려 두둔함. 대충 보면 알겠지만 누구라도 욕먹을 짓만 세자가 골라서 함. 이런 일은 <조선왕조실록>에 자주 나타남.
3. 남재 연회에서 남재가 ㄹㅇ 노빠꾸로 님이 왕 될 거라서 기쁨~ 이라고 했는데 연회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아빠한테 말만 하고 넘어감
셋째가 아주 결정적이다. 충녕대군은 자신의 집에서 1차 왕자의 난 당시에 살해된 남은의 형이자 태종이 즉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남재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 도중 남재가 갑자기 충녕대군에게 "제가 예전에 잠저 시절의 주상(태종)께 학문을 권했더니 "왕위도 못 잇는데 학문은 해서 뭐합니까?"라고 하셔서 '임금의 아들이라면 왕위에 오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군께서 학문을 좋아하시니 기쁩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 때 남재와 충녕대군 두 사람만 있던 것도 아니고 연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이 듣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충녕대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상적인 케이스라면 꾸짖고 역모로서 고변하는 등 확실히 선을 그어야 했지만 충녕대군은 태종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끝냈고 태종은 "그 늙은이 과감하구나!"하고 웃을 뿐이었다. 만일 충녕대군이 이를 꾸짖고 부왕에게 고발했다면 남재는 의금부에 끌려가 실컷 매타작을 당하고 목이 날아가거나 유배될 정도의 위험한 언행이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왕실에서는 사석이든 공석이든 말 한 마디가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것이 정치판이다. 하물며 왕자가 보는 앞에서 대놓고 꼬드겼으니 조금만 삐끗했어도 남재는 물론이고 충녕대군까지 싸잡아서 역모죄를 의심받을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이 일화들만 봐도 왕자 시절의 충녕대군은 대놓고 야심과 야망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견해가 대부분임
한편 남재는 정도전 오른팔이었던 남은의 친형인데 남은이랑 반대로 이방원 손 잡고 같이 왕자의 난을 일으킨 사람ㅋㅋㅋㅋㅋ
이방원 때문에 동생이 죽었는데도 상관없다고 느꼈던 것 같고 이방원의 사람이었음 수양대군 세조의 피는 충녕대군 시절의 세종을 닮은 것임
첫댓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역을 일으킬 수 있는 양녕을 왕이 되어서도 살려줬으며, 서로 사냥도 자주 나가고 술잔치 벌려줬다는 것도 있음. 세종은 왕 되고 양녕이 사고쳐도 엔간한 거 봐줬음. 또 양녕도 동생 효령대군에게 귓속말을 해주니 불가로 가지 않았나.
애초 태종의 뜻이 양녕대군이 아니라 충녕에게 있어 양녕을 세자로 세웠기에 정신병에 걸린 척 패악을 부린다는 얘기도 있고.
세종은 형 양녕이 취하는 모습을 짐작하고 우러러보며 사랑하고 하여 매양 대궐로 맞아들여 술을 대접하며 즐기기를 곧잘 하였다. 양녕이 사냥을 좋아하여 세종도 함께 성 밖으로 나가곤 하였는데 정의(情誼)가 두터웠다.
또 양녕 귀양살이 할 때 몰래 위로하러 갔다는 얘기도 있고.. 완전 사이가 안 좋았음 왕위 오르자 마자 죽어야 했는데 세종 기간 동안 팅자탱자 잘 놀다 세종보다 개오래 살다 마지막에 심지어 세조에게 빌붙어서 목숨 보전했잖아.
세종의 야심이 있었다는 건 부정 못하지만 사이가 원수 사이처럼 안 좋았다는 아니라고 생각함..
오 맞아 사이가 원수처럼 좋지 않았다는 말은 없음 저기에! 실록에 따르면 충녕도 왕좌에 대한 야심이 있었다고 기록 돼있어서 퍼온거고 애초에 태종 뜻이 양녕 말고 충녕한테 있어서 패악 부린다는건 정설 아님!
양녕은 그냥 양아치 쓰레기 맞았음... 걍 인성이 그런거
태종은 적장자가 국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기 때문에 양녕이 사고만 안쳤어도 세자 물려줬을거야
물론 결론적으로 충녕이 세자가 되어서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일이 되었지만 ㅎㅎ
흥미돋
태종이 장자인 양녕이 책임 없이 야망만 켜서 충녕한테 세자자리 토쓰하고 니 형 방해되면 죽여도 된다고 한거구나... 죽였으면 손주인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죽임당하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역사가 달라질 포인트는 어디에나 있었네
오 양녕이 안죽은거랑 단종이 세조한테 죽은거랑 관련이 있어??궁금해서 물어봄
오 글쿤 재밋다 고마워!
@재미를찾아다니는사냥꾼 다른 글도 봤는데 양녕이 수양대군한테 힘 실어줬대ㅋㅋ 단종한테 사약 내리라고 청 올린것도 양녕이라고 함... 세종이 태종 말대로 형인 양녕을 죽였다면? 손주인 단종이 폐위되지 않았을지도
공주 남편이 첩둔 것도 어이없어... 죽여버리지 그랬슈
근데 개차반형 두고 내가 왕 못된다 생각하먄 자다가도 이불 찰 것 같음
태종이 결단 내려서 폐세자시키고 세종도 야망과 욕심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둘의 합작 나이스,,, 아 근데 형제간의 우애,, 너무 잘 지켰잖아ㅠ,,, 나중에 양녕이 세조 편에 안 붙고 그래도 왕실 큰 어른으로서 어린 단종을 조금이라도 지지해 주고 지켜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