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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49회
[제39회에, 진헌공이 여희의 간계에 빠져 세자 신생은 곡옥으로, 공자 중이는 포읍으로, 공자 이오는 굴읍으로 보낸 것까지 얘기했다. 이제 그 얘기를 이어간다.]
진헌공(晉獻公)은, 안에서는 여희(驪姬)가 참소하고 밖에서는 양오(梁五)와 동관오(東關五)가 미혹되게 하여 세자 신생(申生)과는 더욱 소원해지고 여희 소생의 해제(奚齊)만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생이 항상 조심하고 부친에게 순종했으며 또 여러 차례 전쟁에서 공을 세웠기 때문에, 여희는 신생을 해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여희는 우시(優施)를 불러 뱃속에 든 얘기를 털어놓았다.
[제39회에, 시(施)라는 이름의 배우가 있었는데, 미소년으로 영리하고 꾀가 많았으며, 말을 잘해서 헌공이 아주 총애하였으며, 여희와 사통하게 되어 정이 아주 깊었다고 했었다.]
“이제 신생을 폐하고 해제를 세자로 세우려고 하는데, 어떤 계책이 좋겠는가?”
우시가 말했다.
“세 공자가 모두 멀리 변방에 가 있으니, 누가 감히 부인을 가로막겠습니까?”
“세 공자는 모두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이고, 조정 일에도 깊이 관여해 왔기 때문에 조정 안에 그들의 측근이 많아, 내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네.”
“그렇다면, 차례대로 하나씩 제거하면 됩니다.”
“누구를 먼저 제거해야 되겠는가?”
“반드시 신생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그는 사람됨이 인자하고 결백합니다. 결백한 자는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인자한 자는 남을 해치는 것을 꺼려합니다.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는 자는 분노하면 참지 못하고, 남을 해치는 것을 꺼려하는 자는 스스로를 해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자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군은 그의 사람됨을 평소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모략으로 비방해서는 믿지 않을 것입니다. 부인께서는 반드시 밤중에 울면서 주군께 호소하되, 세자를 칭찬하는 것 같이 하면서 모함을 해야만 그 말이 먹혀들 것입니다.”
[인자하고 결백하다는 것은 훌륭한 성품이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그걸 이렇게 역이용한다. 선하면서 또한 지혜롭지 않으면 안 된다.
논어에서 공자 말씀하시기를, “침윤지참(浸潤之譖)이나 부수지소(膚受之愬)가 행해지지 않게 하면 명찰(明察)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침윤지참’은 물이 차츰차츰 배어들어 가듯이 남을 여러 번 차츰차츰 헐뜯어 곧이듣게 하는 참소이고, ‘부수지소’는 살을 에는 듯한 통절한 호소이다.
주자가 해석하기를 “남을 헐뜯는 자가 갑작스럽게 하지 않고 차츰차츰 적셔들듯이 하면 곧 듣는 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에 끌려들어가 깊이 믿게 된다. 원통함을 호소하는 자가 급박하게 하고 자신에게 절실하게 하면 곧 듣는 자는 상세히 알아보지도 못하고 성급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둘은 살피기 어려운 것인데, 이것을 잘 살필 줄 알면 그 마음이 밝고, 가까운 것에 가려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날 밤, 여희는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헌공이 놀라서 우는 까닭을 물었지만, 여희는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헌공이나 몇 번이나 묻고 또 다그치자, 여희는 비로소 마지못한 척 대답하였다.
“첩이 말씀드린다 해도, 주군께서는 필시 믿지 않으실 겁니다. 첩이 우는 까닭은, 첩이 오래도록 주군을 모시면서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헌공이 말했다.
“어찌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시오?”
여희가 눈물을 거두고 대답했다.
“첩이 듣건대, 신생은 사람됨이 밖으로는 어질지만 안으로는 잔인하다고 합니다. 그는 곡옥(曲沃)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백성들이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음도 불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백성들을 어딘가에 써먹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신생은 항상 말하기를, ‘주군께서 첩에게 미혹되어 필시 나라를 어지럽힐 것이다.’라고 한답니다. 조정의 신하들도 모두 그 말을 들어 알고 있는데, 주군께서만 모르고 계시는 겁니다. 나라를 바로잡지 않으면 그 화가 주군께 미칠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첩을 죽여 신생하게 사죄하심으로써 그 음모를 막으십시오. 첩 하나 때문에 백성을 혼란케 하지 마십시오.”
“신생이 백성에게 어질다면, 어찌 아비에게는 어질지 않겠소?”
“첩도 역시 의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첩이 바깥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신생은 ‘필부가 어진 것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어진 것은 같지 않다. 필부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을 어진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슨 부모가 있겠습니까?”
“신생은 결백을 좋아하니,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소?”
“예전에 유왕(幽王)은 세자 의구(宜臼)를 죽이지 않고 신(申)나라로 추방했다가, 申侯가 견융(犬戎)을 불러들여 여산(驪山) 아래에서 유왕을 죽이고 의구를 군위에 세웠습니다. 그가 평왕(平王)으로 동주(東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왕의 악명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누구도 평왕을 결백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헌공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 옷을 떨치고 일어나 앉아서 말했다.
“부인의 말이 옳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여희가 말했다.
“주군께서는 늙었음을 핑계대고 신생에게 나라를 넘겨주십시오. 그가 나라를 얻게 되면 자신의 욕망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주군을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 곡옥이 익(翼)을 겸병했을 때에도 골육이지 않았습니까? 무공(武公)은 친족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晉나라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생의 뜻도 그와 같을 것이니, 주군께서는 그에게 양위하십시오.”
[제39회에, 진소후(晉昭侯)는 숙부인 환숙(桓叔)을 곡옥 땅에 봉하고, 국호를 晉에서 익으로 바꾸었다. 그 후 무공이 소자후(小子侯)를 유인하여 죽이고, 익나라를 병합하여 국호를 다시 晉이라 하였다. 진헌공은 무공의 아들이다.]
헌공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소. 나는 지금까지 무(武)와 위(威)로써 제후들에게 임해 왔소. 이제 내가 살아 있으면서도 나라를 잃는다면 武라고 할 수 없고, 자식 하나 이겨내지 못한다면 威라고 할 수 없소. 武와 威를 잃게 되면 다른 사람이 능히 나를 제압할 것이니, 비록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죽느니만 못할 것이오. 부인은 염려하지 마시오. 내가 알아서 처리하리다.”
“지금 적적(赤狄)인 고락씨(皐落氏)가 누차 우리나라를 침범하고 있으니, 주군께서는 신생으로 하여금 그들을 정벌하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그가 군사를 잘 부릴 수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기지 못한다면 그를 처벌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것이며, 만약 이긴다면 그는 백성의 신임을 얻음과 동시에 그 공을 믿고서 음모를 꾸밀 터이니, 그때 그를 도모한다면 나라사람들도 필시 복종할 것입니다. 적에게 승리하면 변방을 안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자의 능력도 알게 될 것이니, 주군께서는 세자에게 그 일을 시키십시오.”
“좋소.”
헌공은 신생에게 전령을 보내, 곡옥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락씨를 정벌하라고 명하였다. 소부(少傅) 이극(里克)이 간했다.
“세자는 군주 다음 가는 분으로, 군주가 원행(遠行)하게 되면 세자가 정사를 맡습니다. 그리고 조석으로 군주께 문안을 드리는 것이 세자의 직무입니다. 지금처럼 세자를 멀리 보내놓고 있는 것도 안 될 일인데, 하물며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터에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헌공이 말했다.
“신생은 이미 여러 번 군사를 거느린 적이 있소.”
“전에는 주군을 따라 간 것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세자 혼자 군사를 전제해야 하니, 더욱 안 됩니다.”
헌공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하였다.
“과인에게는 아들이 아홉이나 있소. 아직 누가 세자가 될는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경은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이극은 말없이 물러났다.
이극이 호돌(狐突)을 만나 그 일을 고하자, 호돌이 말했다.
“세자가 위태롭도다!”
[제39회에, 공자 중이(重耳)가 포읍으로 갈 때 호모(狐毛)가 수행했는데, 호돌은 호모의 부친이며 晉나라의 충성스런 원로대신이다.]
호돌은 신생에게 서신을 보내, 전쟁터에 나가지 말 것을 권하고, 만약 이긴다 하더라도 더욱 시기를 받을 것이니 차라리 타국으로 달아나는 것이 좋으리라고 전하였다.
신생은 서신을 읽고서 탄식하였다.
“부군께서 나에게 병사(兵事)를 맡긴 것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며 내 심중을 측량코자 함이다. 하지만 군명을 어긴다면 그 죄가 클 것이니, 차라리 싸움에 나가 다행히 죽는다면 오히려 명예라도 남으리라!”
신생은 직상(稷桑) 땅에서 고락씨와 크게 싸워 패퇴시켰다. 신생은 헌공에게 승전보를 전했다.
여희가 헌공에게 말했다.
“세자는 과연 용병에 능합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헌공이 말했다.
“죄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좀 더 기다려 봅시다.”
호돌은 晉나라가 어지러워지리라 생각하고, 병을 칭탁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다.
[‘두문불출’은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시, 우(虞)나라와 괵(虢)나라가 있었는데, 두 나라는 동성(同姓)으로서 경계가 인접하여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존하는 관계였으며 晉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었다.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고 돕는 형세를 ‘순치지세(脣齒之勢)’라고 한다.]
괵공(虢公)의 이름은 추(醜)로서, 싸움을 좋아하고 교만하여 진나라 남쪽 변방을 수시로 침범하였다. 변방에서 또 급보가 들어오자 진헌공은 괵나라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여희가 헌공에게 말했다.
“왜 신생을 또 보내지 않으십니까? 그의 위명(威名)이 널리 알려졌고 용병도 잘 하므로, 필시 성공할 것입니다.”
헌공은 이미 여희의 참소에 빠져든 상태인지라, 신생이 괵나라에 승전하고 나면 그 위세가 더 강해져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여,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헌공은 대부 순식(荀息)에게 물었다.
“괵나라를 정벌할 수 있겠소?”
순식이 대답했다.
“우나라와 괵나라는 지금 친목하고 있으니, 우리가 괵나라를 공격하면 반드시 우나라가 구원할 것입니다. 만약 군사를 돌려 우나라를 공격한다면 역시 괵나라가 우나라를 구원할 것입니다. 한꺼번에 두 적을 상대한다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과인은 괵나라를 어찌할 수 없단 말이오?”
“신이 듣건대, 괵공은 여색을 탐한다고 합니다. 주군께서는 나라 안의 미녀를 구하여 가무를 가르친 다음 수레와 의복을 화려하게 치장하여 괵공에게 전하십시오. 그리고 공손한 말로 화평을 청하면 괵공은 반드시 기뻐하며 받아들일 것입니다. 괵공이 여색과 음악에 탐닉하게 되면, 장차 정사에 태만하게 되어 충신들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 견융에게 뇌물을 보내 괵나라의 변경을 침범하게 하고, 그 틈을 타서 도모하면 괵나라를 멸할 수 있습니다.”
헌공은 순식의 계책을 쓰기로 하고, 여악(女樂)을 괵나라에 보냈다.
괵공이 여악을 받아들이려 하자, 대부 주지교(舟之僑)가 간했다.
“이는 晉나라가 우리 괵나라를 낚시질하려는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 미끼를 삼키려 하십니까?”
하지만 괵공은 주지교의 간언을 듣지 않고 마침내 진나라와 화평을 맺었다. 그날부터 괵공은 낮에는 음란한 음악을 듣고 밤에는 미녀들을 껴안았다. 그러니 자연히 정사에는 소홀하게 되었다. 주지교가 다시 간하였으나, 괵공은 노하여 그를 하양관(下陽關) 수비대장으로 보내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晉나라의 뇌물을 받은 견융이 괵나라의 국경을 침범하였는데, 위예(渭汭)에서 괵군에게 패퇴 당하였다. 그러자 견융주는 온 나라 군사를 총동원하여 쳐들어왔다. 괵공은 앞서 이긴 것만을 믿고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나아갔다. 양군은 상전(桑田) 땅에서 대치하였다.
진헌공이 다시 순식에게 물었다.
“지금 견융과 괵나라가 대치하고 있는데, 과인이 괵나라를 정벌해도 되겠소?”
순식이 대답했다.
“아직 우나라와 괵나라는 친교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오늘 괵나라를 취하고 내일 우나라를 취할 수 있습니다.”
“경의 계책이 무엇이오?”
“주군께서는 우나라에 많은 뇌물을 주고 괵나라를 정벌할 길을 빌려달라고 하십시오.”
[길을 빌려 괵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가도벌괵(假道伐虢)’이라는 하는데, 속셈을 감춘 채 적을 기습하는 계책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과인은 지금 괵나라와 우호를 맺어 정벌할 명분이 없는데, 우나라가 그 말을 믿겠소?”
“주군께서는 은밀히 북쪽 변방의 백성들에게 명하여 괵나라로 넘어가 농사를 짓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괵나라 변방 관리가 불평을 할 것이니, 이를 명분으로 삼아 우나라에 길을 청하십시오.”
헌공은 또 다시 순식의 계책을 사용하였다. 과연 괵나라 변방 관리가 와서 나무라자, 양국은 서로 싸우게 되었다. 이때 괵공은 견융과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쪽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헌공이 순식에게 말했다.
“이제 괵나라를 정벌하는 데 명분이 없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소. 다만 우나라에 어떤 뇌물을 주어야 할지 모르겠소.”
순식이 말했다.
“우공(虞公)의 성미가 비록 탐욕하나 진귀한 보물이 아니고서는 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두 가지 물건이 필요한데, 주군께서 내놓지 않으실까 염려됩니다.”
“경은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말해 보시오.”
“우공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훌륭한 옥(玉)과 말입니다. 주군께서는 수극지벽(垂棘之璧)과 굴산지승(屈産之乘)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두 가지로써 우나라에 길을 빌린다면, 우공은 이를 탐하여 저의 계책에 빠질 것입니다.”
[‘수극지벽’은 수극 지방에서 나는 아름다운 옥이고, ‘굴산지승’은 굴지국(屈之國)에서 온 네 필의 명마를 말한다.]
“그 두 가지는 나의 가장 진귀한 보물인데, 어찌 남에게 줄 수 있겠소?”
“신은 주군께서 내놓지 않으시리라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빌려 괵나라를 정벌하면, 괵나라는 우나라의 원조가 없어 반드시 멸망할 것이고, 괵나라가 멸망했는데 우나라만 홀로 존립할 수 없으니, 옥과 말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는 옥을 잠시 바깥 창고에 맡겨 두고 말을 잠시 바깥 마구간에 맡겨 두어 기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극이 말했다.
“우나라에는 궁지기(宮之奇)와 백리해(百里奚)라는 두 현신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을 살피는 데 명철한 사람들이니, 그들이 우공에게 간하여 우리를 방해하면 어떡합니까?”
순식이 말했다.
“우공은 탐욕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비록 그들이 간할지라도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헌공은 옥과 말을 순식에게 내주고, 그것을 우공에게 주어 길을 빌리도록 하였다.
우공은 처음에 晉나라에서 길을 빌려 괵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말을 듣고 몹시 노하였다. 그러나 옥과 말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기쁨으로 변하였다. 우공은 손으로는 옥을 쓰다듬고 눈으로는 말을 바라보며 순식에게 물었다.
“이는 당신 나라의 보물이 아니오? 천하에 드문 것인데, 왜 과인에게 주려는 것이오?”
순식이 말했다.
“과군께서는 군후의 어짊을 사모하고 군후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이 보물을 사사로이 갖지 못하고 대국의 환심을 얻고자 합니다.”
“그렇더라도 필시 과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지 않겠소?”
“괵나라가 누차 우리의 남쪽 국경을 침범하므로, 과군께서는 사직을 보존코자 뜻을 굽혀 화평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괵나라는 서약문의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매일같이 우리를 책망하니, 과군께서는 길을 빌어 그들의 죄를 묻고자 합니다. 다행히 싸워 이긴다면 노획하는 물품을 모두 군후께 바치겠습니다. 그리하여 과군께서는 군후와 대대로 우호를 맺고자 하십니다.”
우공이 크게 기뻐하자, 궁지기가 간했다.
“주군께서는 허락하지 마십시오. 속담에 이르기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하였습니다. 晉나라가 우리와 동성인 괵나라를 삼킨다면 비단 괵나라 하나뿐이겠습니까? 晉나라 혼자서 우나라와 괵나라를 한꺼번에 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두 나라가 순치지세(脣齒之勢)로 서로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괵나라가 오늘 망한다면, 내일은 그 화가 반드시 우리 우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순망치한’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서로 의지하고 돕는 한 나라가 망하면 다른 한 나라도 위태로워짐을 말한다.]
우공이 말했다.
“晉侯가 보물을 아끼지 않고 과인에게 화평을 청했는데, 과인이 그까짓 작은 길 하나를 아껴서야 되겠소? 그리고 晉나라는 괵나라보다 열 배나 강한 나라이니, 괵나라를 잃고 晉나라를 얻는다면 이롭지 않을 것이 무엇이오? 그대는 물러나 과인의 일을 방해하지 마시오.”
궁지기가 다시 간하려 하자, 백리해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제지했다.
궁지기가 물러나와 백리해에게 말했다.
“그대는 나를 도와 한 마디 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제지하니, 무슨 까닭이오?”
백리해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어리석은 자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마치 주옥(珠玉)을 길에 버리는 것과 같다 하였소. 걸왕(桀王)은 관룡봉(關龍逢)을 죽였고 주왕(紂王)은 비간(比干)을 죽였으니, 모두 지나치게 간했기 때문이오. 그대는 위태로웠소!”
[관룡봉은 하나라 걸왕의 신하로서, 걸왕의 무도함을 간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비간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데, 비간이 계속 간하자, 주왕은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고 들었다.’라고 하며 비간의 가슴을 쪼개고 심장을 꺼내 죽였다.]
“그렇다면 우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오. 그대는 나와 함께 떠나지 않겠소?”
“그대는 떠나는 것이 좋겠소. 그런데 다른 사람과 함께 떠나면, 죄가 더 무거워지지 않겠소? 나는 천천히 떠나겠소.”
궁지기는 가족을 데리고 떠났는데, 아무도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순식은 晉나라로 돌아와 헌공에게 보고했다.
“우공은 이미 옥과 말을 받고 길을 빌려줄 것을 허락했습니다.”
헌공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괵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이극이 말했다.
“괵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번거롭게 주군께서 친히 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헌공이 말했다.
“괵나라를 멸할 수 있는 계책이 있소?”
이극이 말했다.
“괵나라의 도읍인 상양(上陽)의 관문이 하양(下陽)입니다. 하양만 깨뜨리면 괵나라는 절로 무너집니다. 신이 비록 재주 없으나 이 일을 맡기를 원합니다. 만약 공을 세우지 못하면 그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헌공은 이극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병거 4백승을 거느리고 괵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그리고 먼저 사람을 우나라로 보내 晉軍이 도착할 때를 알렸다.
순식이 우공을 먼저 찾아가자, 우공이 말했다.
“과인이 귀한 보물을 받고서도 보답하지 못했으니, 이번에 우리도 군사를 일으켜 돕겠소.”
순식이 말했다.
“군후께서는 군사를 일으키기보다 하양관을 우리에게 내주십시오.”
“하양관은 괵나라의 관문인데, 과인이 어떻게 내준단 말이오?”
“지금 괵공은 상전에서 견융과 싸우고 있는 중인데, 아직 승부가 결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군후께서는 전투를 돕는다는 핑계로 괵나라에 병거를 보내주십시오. 그때 우리 晉나라 병사들이 은밀히 들어가면 하양관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신에게 철엽거(鐵葉車) 1백승이 있으니, 군후께서는 이를 이용하십시오.”
[‘철엽거’는 철판으로 둘러막은 병거이다.]
우공은 순식의 계책을 따랐다.
하양관의 수장(守將) 주지교는 우공의 말을 믿고 관문을 열어 병거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병거 속에서 진군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관문을 점령하고, 곧 뒤이어 이극이 이끄는 군사가 관문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주지교는 이미 하양관을 잃고서 괵공에게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晉軍에게 항복하였다. 이극은 주지교를 향도로 삼아 상양을 향해 진군했다.
한편, 상전에서 견융과 대치하고 있던 괵공은 진군이 하양관을 돌파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회군하다가, 견융의 공격을 받고 크게 패하여 겨우 병거 수십 승을 이끌고 상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괵공은 상양을 방어할 별다른 계책이 없었다.
이윽고 晉軍이 도착하여 성을 포위하였다. 포위가 8월에 시작되어 12월에 이르니, 성중에는 연료도 식량도 다 떨어졌다. 게다가 싸울 때마다 패하니, 병사들은 지치고 백성들은 밤낮으로 울부짖었다. 이극은 항복을 권유하는 서신을 써서 주지교로 하여금 성안으로 쏘아 보내게 하였다. 괵공은 서신을 받아보고서 말했다.
“나의 선군께서는 왕실의 경사(卿士)였는데, 내가 어찌 제후에게 항복할 수 있겠는가?”
괵공은 그날 밤 가족들을 데리고 낙양(洛陽)으로 달아났는데, 이극은 추격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향화와 등촉을 밝히고 晉軍을 환영했다. 이극은 성안으로 들어가 백성들을 위로하고, 추호도 백성들을 범하지 못하게 했다. 창고에 있는 보물의 10분의 3과 여악을 우공에게 바치니, 우공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극은 사람을 보내 헌공에게 보고하고, 자기는 병을 칭탁하여 성 밖에 병사를 주둔시키고 있었다. 우공은 여러 차례 약을 보내며 이극을 문안하였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났는데, 홀연 헌공이 군사를 이끌고 우나라 교외에 이르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우공은 헌공이 무슨 일로 왔는지를 물었다. 첩자가 말했다.
“아직 괵나라를 정벌하지 못한 줄 알고 접응하러 왔다고 합니다.”
우공이 말했다.
“과인은 晉나라와 강화 맺기를 원했는데, 이제 晉侯가 친히 왔으니, 이는 과인이 바라던 바이다.”
우공은 황망히 교외에까지 나가 헌공을 영접하고, 군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다. 두 군후가 인사를 나눈 후, 헌공은 우공과 기산(箕山)에서 사냥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우공은 자기 나라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 성중의 무기·병거·준마를 모조리 동원하였다.
하루 종일 사냥을 하던 중, 갑자기 성중에 화재가 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헌공이 우공에게 말했다.
“아마 민간에게 실화(失火)한 것이겠지요. 곧 진화될 것이니 다시 한 번 더 짐승을 몰아 봅시다.”
대부 백리해가 은밀히 우공에게 말했다.
“성중에 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주군께서는 돌아가셔야 하겠습니다.”
우공은 헌공을 작별하고 먼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