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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mkorea.com/7373401708
4편을 읽고 오셨다는 것을 전제로 글을 쓸 거라서 혹시 4편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해하는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4편에서 파푸아뉴기니를 다뤘는데요,
4편에서는 부건빌 이름만 꺼내고 그냥 넘어갔거든요?
부건빌은 사실상 파푸아뉴기니와 별개의 나라이고, 소개할 것이 은근 많기 때문에 이렇게 따로 5편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닙니다.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되겠습니다.
부건빌 자치주
Autonomous Region of Bougainville
수도 : 부카 (Buka)
최대도시 : 아라와 (Arawa)
면적 : 9,384㎢ (대전과 세종을 포함한 충청남도의 면적과 비슷)
인구 : 30만명 추정 (2011년 추정치는 249,358명)
언어 : 영어, 톡 피신
민족 구성 : 대부분 멜라네시아계
종교 :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대부분의 주민이 기독교인
하얀 부분이 파푸아뉴기니에 해당하고, 부건빌 지역은 빨간색입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부건빌의 수도인 부카는 부건빌 섬이 아닌 부카 섬에 위치하는데요,
부카 섬은 부건빌 섬 서북쪽에 400m의 해협을 두고 마주보고 있습니다.
1616년
(빌렘 스하우턴, 네덜란드의 항해사)
오 여기 또 새로운 섬이 있구만!
뭐? 내가 유럽인들 중에서 1등이라고?
근데 내가 지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현 인도네시아)에서 본국 네덜란드로 돌아가는 길이라 갈 길이 바빠서 얼른 가야되는데...
1768년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 프랑스 해군 제독, 탐험가)
히히 이 섬은 내 이름 붙여야지
1884년
(독일 제국)
와 코코넛 오일을 유럽에 가져다가 팔면 엄청 쏠쏠하네ㅋㅋ
코코넛 오일 원료가 나오는 파푸아뉴기니 북쪽 땅에 무역회사 설립해야징
(당시의 무역회사는 현재의 회사 개념은 아니고 그냥 식민지의 종류 가운데 하나라고 이해하면 편함)
(이미 뉴기니 섬의 서쪽 반은 네덜란드령 동인도 소속이었고, 남은 동쪽 부분도 험준한 산맥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지리적으로 분리되어있었음)
응애 나 독일령 뉴기니
근데 우리 뉴기니 섬 북동쪽 부분이 우리 땅인건 알겠는데,
저기 동쪽에 있는 섬들은 어디까지가 우리꺼지...?
그냥 저기 솔로몬 제도까지 다 우리ㄲ...
어허.
솔로몬 제도는 우리가 예전부터 침발라놨어.
아 여기서 영국이랑 충돌하는 건 쫌 에반데
여기서 충돌하기엔 여긴 너무 덜 중요한 지역이란 말이야;;
저기 빨간 선을 기준으로 합의하실?
콜
부건빌 섬은 독일 제국과 영국의 합의로 독일이 소유하는 것을 결정되었고, 자연스럽게 독일령 뉴기니에 속하게 됩니다.
이후 뉴기니섬 동남쪽은 호주 식민지(퀸즐랜드 식민지)의 요청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고,
호주의 독립과 동시에 호주령 뉴기니가 되었습니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호주가 독일령 뉴기니 지역을 점령했고,
종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령 뉴기니의 통치권도 그대로 호주에게로 넘어갑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이 부건빌 섬을 옛 독일령 뉴기니 지역을 점령했는데,
부건빌 지역의 주민들은 옛 독일 땅이었던만큼 일본군에 적극 협조합니다.
당연히 이를 호주 정부가 꼴보기 싫어했고,
일본이 결국 항복하며 부건빌 지역의 통제권은 다시 호주 정부에게로 돌아갑니다.
독일령 뉴기니 ~ 제2차 세계 대전 이 사이 시기에 대한 내용은
https://m.cafe.daum.net/subdued20club/ReHf/5003647 4편 파푸아뉴기니 편에서 조금이나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두었습니다.
1962년
(프란시스 하가이, 부건빌 부카 섬 출신의 주민)
(특이사항 : 가톨릭 교육을 받고, 교사가 되는 교육도 1년 받음)
하... 이거 교회에서는 실용적인 교육도 안 가르치는데 이런 교육을 받아서 어디다가 써먹지...?
이건 우리 부건빌 지역이 발전하는데 도움 되는 교육이 아니잖아.
프란시스 하가이가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
고해신부에게 성적인 죄를 털어놓았다가 고해신부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바람에 배교하기에 이릅니다.
개ㅈ같네...
이후 프란시스 하가이는 가톨릭과 지역 전통 종교를 혼합한 형태의 대안 교회인 '하할리스 복지회' (약칭 HWS)를 만듭니다.
HWS는 교회로서의 기능도 수행했지만, 자원을 모으고 이익을 공유하는 경제 공동체로서의 기능도 수행합니다.
비슷한 시기, 호주 정부는 지방 의회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인두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고,
하가이는 HWS를 이끌고 인두세 부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이 시위에서 하가이를 포함한 461명이 체포되고 65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하가이는 호주령 파푸아뉴기니의 수도 포트모르즈비로 연행되어 실형을 살 뻔했지만, 항소를 통해 극적으로 판결이 뒤집히며 풀려나게 됩니다.
1964년
오? 여기 부건빌 섬에 구리가 엄청 풍부한거 같은데? 조금 더 자세한 조사 한 번 해봐야지...
1969년
와씨 뭐야 여기 구리 겁나 많잖아ㄷㄷ
뭐? 조사해보니까 금도 있어?!
여기 광산 지어야징
(팡구나 광산 건설)
(아직 호주로부터 독립하기 전인 파푸아뉴기니, 독립 준비 중인 상태로 의회 등은 이미 존재함)
야야 여기 부건빌 땅 우리 파푸아뉴기니 땅인거 알지?
우리도 여기 광산 만드는데 투자했으니까 우리도 뽀찌 좀 '줘'
ㅇㅋ 님도 여기 광산 주주니까 수익의 20%는 보장해드림
(부건빌 섬 주민들)
근데 너네 지금 우리 소유의 땅에서 구리 캐고 있는건데 우리한테도 보상해줘야 되는거 아님?
ㅇㅋ
(부건빌 섬 주민들)
오? 얼마나?
한 0.5%에서 1.25% 정도?
(부건빌 섬 주민들)
부건빌 섬은 당연히 이 광산을 둘러싸고 불만을 표출했고,
그와중에 당시 호주 외무부 장관이던 찰스 반스가 '부건빌 놈들에게 줄 건 없다' 라고 발언을 해서 부건빌 주민들이 고소를 하는 등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이 광산을 둘러싼 보상 문제는 호주 고등법원까지 올라갔으나, 호주 연방법에 의해 보상이 부적절하다고 판결이 나와 부건빌의 분리주의 움직임은 커졌습니다.
호주는 이들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부건빌에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딱히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건빌 자치 정부의 고위 공무원 2명이 파푸아뉴기니인들로부터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부건빌 섬은 난리가 나버립니다.
1972년 프란시스 하가이는 부건빌의 분리주의를 예고하는 부건빌 인식 세미나를 열며 부건빌 분리주의에 불을 붙입니다.
(그런데 프란시스 하가이는 파푸아뉴기니 독립 1년 전인 1974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파푸아뉴기니의 독립은 1975년 9월 16일로 예정되어있었고,
1974년 부건빌 특별 자치 위원회(BSPC)가 파푸아 의회와 협상 테이블에 올지만, 팡구나 광산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합의가 되지 못합니다.
1975년 5월
우리는 파푸아뉴기니를 탈퇴하겠다.
어이어이 좋게 말로 하자구 말로
하지만 파푸아뉴기니 정부, 파푸아뉴기니 의회, 부건빌 임시 정부 간의 합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1975년 9월 1일, 파푸아뉴기니 독립 2주 전
우리는 호주로부터 파푸아뉴기니와 따로 독립하겠다!
우리는 '북솔로몬 공화국'이다!
당했네 이거...
저희 북솔로몬 공화국 UN 가입 신청이요^^
(국제연합, UN)
거절이요.
어? 이게 아닌데...
야 그럼 솔로몬 제도 너네라도 우리랑 통합하실?
원래 우리는 하나였는데 옛날에 독일이랑 영국이 그냥 둘로 나눈거잖아 알지...? 그치...?
(영국령 솔로몬 제도)
우리 아직 독립 2~3년전인데...?
너네랑 통합하는거 영국한테도 물어봐야되고, 우리 국민들한테도 물어봐야되고, 어쩌구 저쩌구...
(별로 내키지 않았음)
아... 우리는 파푸아뉴기니 정부를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구나...
드루와^^
우리가 잘해줄게~
1976년말,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북솔로몬 공화국(부건빌)에게 자치권을 부여하고, 5년 안에 완전한 독립을 약속하는 '부건빌 협정'을 맺으며 부건빌을 합병합니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파푸아뉴기니 전체 GDP의 12%, 국가 수출 수익의 45%를
부건빌의 팡구나 광산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파푸아뉴기니는 부건빌을 절대 놓아줄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팡구나 광산의 수익으로 인한 혜택은 파푸아뉴기니 지역만 보았고, 강 오염 등의 환경 문제는 부건빌 주민들만 떠안게 되는 상황에서 부건빌 주민들은...
1988년
오래 참았다.
전쟁이다.
부건빌 내전 발발
내전 초반에는 광산 주변에서만 전투가 일어났으나,
내전이 진행되면서 전장은 섬 전체로 퍼졌고, 팡구나 광산도 문을 닫게 됩니다.
야 우리 국방 협력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었잖아.
헬리콥터 좀 지원해줘봐
ㅇ?
이거 빌려는 주는데 전투용으로 쓰면 안된다!
ㅇㅋㅇㅋ
(기관총 달아야지ㅎㅎ)
파푸아뉴기니는 호주로부터 지원받은 물품을 전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겼고,
여전히 팡구나 광산에 큰 이권이 걸려있던 호주 정부는 파푸아뉴기니의 이러한 행태를 알고도 묵인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자금과 기술자 등을 대놓고 지원해주었죠.
한편 부건빌의 상황은 좋지 않았는데요,
부건빌 지역도 파푸아뉴기니와 마찬가지로 다민족 지역이었는데,
부건빌 독립 선언이라는 공통의 목표는 이뤄냈으나 각 부족별로 지향점이 달랐고, 부건빌 반군정부도 부건빌 전체를 장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부건빌 반군을 몰아내기 위해 파푸아뉴기니 정부군과 손을 잡은 지역도 일부 존재했죠.
뭔 이런 오합지졸이 다 있냐ㅋㅋ
1993년, 파푸아뉴기니는 부건빌의 최대도시인 아라와를 점령하기에 이르고,
1994년에는 팡구나 광산 탈환을 목표로 진격했으나... 실패합니다.
이 실패는 곧 부건빌 반군의 반격의 기회였고, 이후 정부군의 세가 급격하게 약해져 1996년에는 파푸아뉴기니의 정부군이 철수합니다.
와 갑자기 이렇게 밀린다고?
야 우리 용병 회사에 연락해서 용병 고용해서라도 싸울거야!
(바그너 그룹 같은 민간군사기업을 의미)
뭣???
에반데
(제리 싱이로크, 파푸아뉴기니 정부군 사령관)
에반데
에반데
너네 그따구로 할거면 우리가 준 헬기나 무기 같은거 다 내놔 ㅅㅂ
뭔 용병이야 용병 드립은
결국 용병 도입을 추진하던 파푸아뉴기니 내각은 사퇴했고,
이후 1998년 내전은 공식적으로 종료됩니다.
파푸아뉴기니는 호주의 간접적인 지원을 받고도 내전의 목표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고,
부건빌은 땅은 지켰지만 10년에 걸친 내전으로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어버립니다.
이후 2001년에 파푸아뉴기니와 부건빌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는데,
주요 내용은
1. 자체적인 헌법을 가진 부건빌 자치 정부 창설
2.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를 할 수 있는 권리
3. 부건빌 지역의 무기 폐기
...등이었습니다.
특히 2번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는 자치 정부 창설 후 15년 주기로 시행하기로 했는데,
부건빌 헌법이 2004년에 만들어졌으므로 2019년이 딱 15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에 따라 2019년에 부건빌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가 진행되었고,
투표율 87.38%, 독립 찬성 98.31% 반대 1.69%로 최종 독립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다만 투표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었고, 파푸아뉴기니가 무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2021년 7월, 파푸아뉴기니 정부와 부건빌 자치 정부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합의 내용에 따라 부건빌은 2027년에는 독립을 이뤄내게 됩니다.
파푸아뉴기니 의회의 비준이 있다면요.
(2024년 8월 현재까지 파푸아뉴기니 의회는 이 협정을 비준하지 않음)
뉴욕타임스는 이 부건빌의 독립투표 결과가
(누벨칼레도니(=뉴칼레도니아))
태평양의 프랑스 땅인 누벨칼레도니(=뉴칼레도니아) 독립투표와
(서파푸아)
파푸아뉴기니 바로 옆 인도네시아 땅인 서파푸아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으나,
2020년 누벨칼레도니에서는 투표 결과 독립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고,
(심지어 최근 폭동으로 인해 독립운동 지도부들이 프랑스 정부에 체포됨)
서파푸아는 인도네시아가 정말 철저하게 분리주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있어서
두 곳 다 독립이 근 시일내에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연, 부건빌은 성공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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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