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대장 : 다른 얘기 할께요. <수탉>. 옛날에 어떤 수탉이 개처럼 보이고 싶었대요. 하지만 금방들 알아봐서 실패했대요.
스미스부인 : 반대로 수탉처럼 보이고 싶었던 개는 한 번도 안 들켰대요.
스미스 : 이번엔 내가 하나 하죠. <뱀과 여우>. 옛날에 어떤 뱀이 어떤 여우한테 가서 “어디서 뵌 것 같군요.” 하니까 여우가 “저도요.” 했대요. 그러니까 뱀이 “그럼 돈 좀 주시오.” 했고 그러자 이 교활한 짐승은 “여우는 돈을 주는 법이 없소.” 하고는 산딸기와 병아리, 꿀이 가득한 계곡으로 뛰어 달아났대요. (후략)
최근에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라는 희곡을 읽다가 감동이 시청 앞 붉은 악마같이 밀려와 그만 털썩 쓰러져 다리를 떨며 3일 밤낮을 꼬박 라면만 먹었다.
ㅠㅜ 이오네스코는 너무 잘 썼다. 내가 쓰려는 문장을 그가 이미 60년 전쯤에 간단히 해 먹은 것이었다.
덕분에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아져 버렸다. 사실 쓸 말이 없어져 버렸다.
티브이에서 월드컵 중계방송이라도 해 주지 않았더라면, 라면 가닥이 목에 걸려 죽었을지도 몰랐을 만큼 절망적이었다.
다행히 ‘골’을 외칠 때마다 라면이 조금씩 소화되었다.
하지만 축구 경기가 없는 시간이 문제였다. 축구가 끝나면 10분 쯤 뒤부터 이오네스코에게 얻어맞은 부위가 부어올랐다.
나는 손이 떨려 라이터를 들고도 눈 앞의 담배에 불을 잘 붙였다.
그리고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취했다.
게다가 선풍기는 죽어라 강하게 틀어놓아봤자 시원했다.
여름조차 사정없이 강력본드처럼 달라붙었지만 이불이 너무 얇아 추웠다.
에어컨디셔너 만큼은 잘 작동 되었지만 리모컨에 건전지가 없었고 전기세도 없었다.
- 그래서 위의 문장 같은 -_-;; 증상을 부리다
여친이 정신이 들 때 까지 나를 야구 방망이로 때려야겠다고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기적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구글어쓰 라는 장난감을 발견했다.
위성사진으로 세계 어느 나라든 도시든 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매트릭스의 NEO 부럽지 않게 쓩 하고 날아올라, 런던이나 파푸아뉴기니로 가 볼 수 있었다.
특히 제일 먼저 달려간 런던에선 아, 저기 내가 살던 집이다! 아, 저기 내가 배달 오토바이 세워 놓고 담배 말던 골목이다!
아, 저기......저기는.... 옛 애인이 살던 집이다 ㅠㅠ 저 펍은 그 때 애인이랑 다투고 술 마셨던 펍이다.....하면서 하루 종일 놀았다.
8번 버스 종점 Bow Church 에서 Victoria Station까지 길 따라 가 보기도 했다. 아, 정말로 8번 버스에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 앞의 정밀한 위성사진과 약간의 기억력을 합성하면 내가 있는 곳은 라면 끓여먹은 설거지가 잔뜩 밀려있는 서울의 옥탑방 구린 컴퓨터 앞이 아니라
실제 손에 잡힐 듯한 런던이 되었다.
핸드폰이 울리거나 우편배달부가 벨을 누르지 않으면
나는 전혀 계속 런던에 있을 수 있었다.
주말엔 브릭레인에 과일을 사러갔고 주 중엔 쓰시 배달 가게에서 단골들에게 쓰시를 배달하러 다녔다. 저녁 땐 카나리 와프의 도크 앞에서 맥주를 마셨다.
나는 구글 어쓰에 빠져 있느라 런던에서처럼 양파 볶음을 해서 밥을 먹었고, 그 때 듣던 콜드 플레이나 라스무스의 음악을 들었다.
하루는 양파 볶음이 지겨워 날을 잡아 리버풀에 여행을 다녀왔다. 리버풀은 아름다웠고 비틀즈의 음악을 내내 들었고 중국음식점에서 밥을 먹었다.
... 그렇게 놀다보니 이오네스코 라는 천재로부터 한 방 맞은 자리가 좀 아물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요즘 자고 나면 1000만원만 생겨라, 라고 잠꼬대를 많이 했었는데 그것은 1000만원만 있으면 런던에 직접 날아가서 쓰고 있는 런던이야기를
정말 대놓고 뽕빨나게 잘 써 재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구글 어쓰로 날아갈 수 있으니까 이젠 100원도 필요 없다.
방구석에 팬티만 입고 앉아서도 충분히 쓸 수 있다. 하루에 20 매씩 두 달 잡았었는데 더 빨리 쓸 수 있겠다.
나는 지금 이 게시물을 리버풀스테이션 앞의 카페 네로 앞마당에서 쓰고 있다.
음..에스프레소 마끼아또가 오늘따라 기분 좋게 쓰군. 역시 네로 알바 중에서도 제일 예쁜 사브리나가 커피를 쫌 알아. 이 적절한 우유거품의 비율을 봐.
첫댓글 ^^ 히, 화이팅이에요! 전 요즘 15번 버스가 올때마다 박상씨를 생각하고, 옆에 있는 플랏 오빠는 [15번 잘만 오네 -_-;;] 이러면서 함께 26번 버스를 기다린답니당 ㅎㅎ
고맙습니다! 덕분에 자기 전에 잠깐 들렀던걸 벌써 한시간째 구글어스에 붙어있네요. 올드스트릿에서 킬번을 거쳐 윌스덴의 우리집까지 55번이랑 98번타고 다니던 길 그대~로! 이건 감동이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번스토리는 완전 .. 피식~피식~ 연신 피식웃음 띄게만드시는군요. 항상 재밌게 읽고 감탄하게만드시는.
앗!양파볶음.. 완전 공감했어요ㅋㅋ
눈 감고도 런던 시내를 자신했었는데 구글어스에서 완전히 굴욕을 당했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다 잊었나봐요,,, 결국 살던 집도 못 찾고,,, 우울합니다. 다음에 다시 도전할렵니다.